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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4화 (197/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4화 거지와 녹림 (3)

마교가 등장하기에 앞서 암약하는 무리가 있었으니, 바로 광마패도가 속한 흑련회(黑蓮會)였다.

시후가 읊은 대사는 ‘난 흑련회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삼 초 가운데 처음을 양보받고, 두 번째에 흑련회를 들먹이면서 시선을 끈다.

여기까지는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부 회주의 전언을 전하러 왔습니다.”

가만히 무기를 맞대고 노려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조금씩 창을 비틀어 빼내는 연기를 하였다.

어차피 전력을 다한다고 한들 빼낼 수도 없겠지만.

그도 자신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비영(非影) 이십삼호(二十三號)라고 합니다.”

“증거를 대라.”

다 거짓말인데 증거가 있을 리가.

다만, 주변의 시선이 모두 쏠린 상황에서 물질적인 증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아무리 지능이 낮게 설정된 광마패도라고 한들 알 것이다.

“파양도(破養刀) 양진두 님에게 인사드립니다.”

파양도.

그가 진신 무공을 펼칠 때 모습을 본 회주(會主)가 붙여준 별호.

이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거기다가 그의 진짜 이름까지 부른다면 그 증거로 충분할 터.

아니나 다를까, 그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

“제기랄, 정말 흑련의 사람이었군. 왜 이딴 식으로 접촉을 하는 거지?”

“급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 회주께서 이목을 끄는 건 좋으나, 정도가 과하니 자중하라 전하셨습니다.”

그의 어깨가 축 늘어지는 걸 보고 시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먹혔다.’

시간을 질질 끌 필요가 없으니, 이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할 때였다.

“주변의 보는 눈이 많으니, 이제 삼 초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계속 대치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도 맡은 바 임무가 있는지라, 수상쩍게 여겨지면 곤란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광마패도는 착자결을 풀었고, 뒤로 물러나는 시후를 향해 그가 대도를 휘둘렀다.

붉은색 도기(刀氣)가 쏘아지더니 이내 늑대의 형상을 만들었다.

대단히 화려한 공격이었다.

보는 눈이 있으니 일부러 힘을 빼고 화려한 공격을 넣은 듯했지만, 그건 광마패도의 기준이었다.

“미친.”

언제나 변수를 만들어 내는 건 지능이 높은 놈들보다 낮은 놈들이었다.

광마패도가 가볍게 날린 공격은 시후에겐 너무나 벅찬 수준이었다.

물론, 전력을 다한다면 막을 수 있겠지만.

결단을 내린 시후는 창을 꽉 붙잡았다.

“막창(幕窓)! 막차아앙!”

가장 쓰기 싫었던 십창 초식 중 최후의 초식이자 최고의 방어 초식을 펼쳤다.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부끄러움보다도 생존에 관한 본능이 더욱 컸기에 가능했다.

연거푸 최후 초식을 펼친 시후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힘을 너무 소진한 탓도 있지만, 부끄러움이 너무 커서 미칠 지경이었다.

“빨리.”

시후는 자신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광마패도를 향해 낮게 윽박질렀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뒤로 물러났다.

[돌발 임무 ‘광마패도의 분노를 잠재워라’가 완료되었습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완료하여, 연계 임무 ‘독안비객의 추궁’으로 발전합니다.]

[기막이 해제되었습니다.]

기막을 거둔 그는 발을 한차례 굴려 주변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대도는 다시 땅에 틀어박혔다.

“흥이 가셨다! 모두 일 각 내로 꺼져라!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놈들은 모조리 죽는다!”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산적들은 없었다.

그의 행동에 의문을 표시하는 산적들은 진작에 죽었으니깐.

덕분에 표국의 앞뒤로 길이 쫙 열렸고, 표두들은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문제는 부서진 마차가 두 대나 존재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있었다면 마차를 수리하고 출발하겠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 각이라는 시간은 돌아가기도 빠듯했으니깐.

덕분에 쟁자수를 비롯한 표사들의 발에 불똥이 떨어졌다.

“갑급! 갑급 표물만 챙겨라!”

“부피가 나가는 갑급은······.”

“버려!”

물건을 이리저리 들고 뛰어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추나행은 광마패도와 못다 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면 필시 무슨 말을 나눴는지 물어보겠지.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던 시후는 내려온 길을 돌아 흑마를 끌고 왔다.

“알아서 올 순 없냐?”

시후는 말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막 출발 준비를 마친 표국의 뒤에 바짝 붙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부서진 짐 마차에서 많이도 옮겼다.

그 탓에 기존 짐에서 무게가 더해지자, 마차들은 연신 삐걱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바닥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바퀴 자국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앞에서 웬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소협!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은 돈이죠. 다만,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시죠.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예? 아, 예.”

쓸데없는 대화를 길게 나눌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돈이 쓸데없는 건 아니지만, 곧 추나행이 도착할 테니까.

“어디까지 단서를 주지?”

원래라면 이야기를 잘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호전적인 광마패도의 성향으로 인해 추나행은 어쩔 수 없이 그와 손을 섞어야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그의 무공에서 다소 이상한 점을 느껴야 했을 테지만, 자신이 개입한 이상 사라진 선택지에 불과하다.

생각이 깊었던 탓일까.

“광마패도와 무슨 말을 나눈 게냐?”

그도 아니면 추나행이 워낙 은밀히 다가온 탓일까.

시후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그가 뒤에 있는 걸 알아차렸다.

“아, 인기척 좀 내고 다가와요. 애 떨어지겠네.”

“고추 달린 놈이 애 떨어질 일이 뭐가 있어?”

“그럼 고추 떨어질 뻔했다고 하죠.”

“말 돌릴 생각하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하거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막까지 두르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그 거리에서 그게 느껴져요?”

“광마패도야 전음으로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네 녀석의 말은 들리지 않으면 뻔하지 않으냐? ”

“제가 전음을 펼치면요?”

“못하잖아?”

물음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말이 내재한 의미는 확신이었다.

덕분에 무시당한 시후의 표정은 다소 구겨졌다.

“일단 앞쪽과 거리를 좀 벌린 뒤에 이야기하죠.”

“그럴 필요 없다.”

[기막이 펼쳐졌습니다.]

노인네가 성질도 급하긴.

뒤편을 힐긋 바라보자, 광마패도의 모습이 능선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약속부터 하나 하시죠.”

“무슨 놈의 약속?”

“제가 조금 뒤에 할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속이요.”

“아무에게도? 그건 좀······.”

“아, 그럼 저도 말 못 해요.”

추나행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렸지만, 어차피 가려운 놈이 등 긁는 법이었다.

시후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추나행의 고개도 끄덕여졌다.

“이런 망할 놈. 좋다. 이 매듭을 걸고 맹세하마.”

추나행이 칠결(七結) 매듭을 쥔 채, 시후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어차피 자신이 나서서 선택지를 지워 버린 이상, 벌인 일을 처리하려면 그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그를 관찰하세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

“몰래 그의 산채 주변을 정탐하다 보면, 모종의 인물이 그를 찾아갈 겁니다.”

“모종의 인물?”

시후의 말에 추나행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럴 법도 했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수수께끼 같은 말만 던지고 있으니깐.

하지만, 대화는 상대방이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알맞은 대화법이 존재했다.

직설적으로 말해주길 좋아하는 사람과 에둘러 말해 주길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법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추나행은 이런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뒷배가 있군!”

정답에 접근한 그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확 굳어졌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약을 팔 때가 되었다.

신의도 홀딱 삼켰던 그 약을.

“신기자 어르신, 알죠?”

“내 모를 리······ 설마!?”

화등잔만 하게 커진 추나행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시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가 신기자 어르신과 인연이 깊습니다.”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신기자 어르신이 모습을 감춘 지 오 년이 넘었거늘······. 혹, 신기자 어르신의 제자더냐?”

제자는 개뿔.

“아뇨, 인연이 깊을 뿐이지 제자는 아니고······ 따지고 보면 협력 관계라고 할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준 마스터 NPC인 신기자와 시후가 추구하는 방향은 같으니까.

다만, 여전히 임무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심이라는 녀석은 가만히 두면 더 깊게 가라앉는 법이니, 시후는 조금 더 말을 덧붙였다.

“그의 주변을 맴돌다 보면 누군가 접근할 테고······ 일단,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모든 걸 말해 드리면 신기자 어르신이 천벌을 맞으실 수도 있으니, 다 설명해 드리진 못 하는 점은 이해하시죠?”

“끄응······.”

천벌이라는 핑계는 그의 질문을 원천 봉쇄했다.

덕분에 짜증이 난 추나행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바닥에 비듬을 흩뿌렸다.

시후는 겨울이 주는 선물을 몸으로 만드는 추나행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떨어지는 비듬만큼 고민도 털어 낸 것일까.

추나행의 하나뿐인 시선이 시후를 넘어 광마패도가 사라진 능선을 향했다.

“이 사실을 알려 준다는 건, 내가 그 녀석을 붙잡아서 정보를 캐내도 관여하진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겠냐?”

“물론이죠.”

“좋다.”

[연계 임무 ‘독안비객의 추궁’을 완료하였습니다.]

[독안비객 추나행의 호감도가 반신반의(半信半疑)(49)에 도달하였습니다. 신뢰를 쌓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독안비객 추나행에게 흑련회의 실마리를 주었습니다. ‘준동’ 임무가 발동했을 때, 정의맹으로 활동할 시 추가 혜택이 주어집니다.]

[기막이 해제되었습니다.]

광마패도의 뒤를 쫓는 추나행의 시선이 다시 시후에게 돌아왔다.

“어디로 가느냐?”

“저는 악양으로 가요.”

“그럼 무한을 지나겠군?”

“특별한 일이 없다면?”

“좋다. 서신 하나를 써줄 테니, 무한에 도착하면 거지 놈들에게 전해 주거라.”

거지가 거지에게 거지 놈들이라니.

시후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꼬질꼬질한 품에서 목탄과 천 쪼가리를 꺼내 들었다.

멀어지는 표국과의 거리만큼, 천에는 글자가 빼곡히 채워져 갔다.

‘써 내려간다’라는 표현보다 ‘휘갈긴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재빠르게 움직이던 그의 손이 어느순간 뚝 멈추었다.

휘갈긴 천을 곱게 접은 뒤, 옷에서 풀어낸 실밥을 가지고 대충 휘감아 건네주었다.

[일반 임무 ‘독안비객의 부탁’을 수락하셨습니다.]

“서신을 전해 주고 나면 아마도 연개 녀석이 찾아올 텐데······ 그냥 대충 상대하고 쫓아 보내면 된다. 이것저것 물어볼 테지만, 네놈이 뭐 대답할 리도 없고······. 뭘 그리 쳐다봐?”

“줄 거 없어요? 설마 맨입으로 부탁하려는 건 아니죠?”

“하······. 옜다.”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는 바지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아이 손바닥만 한 동 패를 꺼내 던졌다.

갑작스럽게 날아오기에 받긴 받았지만, 구릿한 냄새에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는지, 동 패가 아니라 똥 패처럼 보였다.

“그 패를 가지고 개방을 찾아간다면, 적어도 홀대는 하지 않을 게다.”

[선 보상으로 ‘분식 패’를 획득하였습니다.]

자신이 기획한 아이템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들어봤다.

개방 인물들에게 호감도를 쉽게 올릴 수 있는 물건이라고.

그 기억이 정확하다면, 고작 이런 잔심부름으로 받기엔 너무 좋은 물건이 아닌가.

“걸리면 말짱 도루묵이니 들키지 않게 조심하세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게야? 네놈이야말로 어설픈 실력으로 자만하지 말고 돌아다니거라.”

“걱정해 줘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니깐, 어휴.”

시후는 손에 들린 분식 패를 흔들며 표국을 향해 걸어갔고, 추나행은 그런 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 15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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