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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2화 (185/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2화 어긋난 톱니바퀴 (1)

“아까 지도가 제대로 나온 거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시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단순히 시작 지점의 오류라기엔 뭔가 너무 이상했다.

“뭐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백창현 부장이 자신을 대신해 초기화한 걸 알 리 없는 시후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스터 에그? 엊그제 추가한 무령지체? 아냐, 그건 분명 돌려봤을 때 이상이 없었는데?”

눈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시후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노인의 관심이 곧바로 나온 만두로 향했다.

시후에게 먹어보라 권하지도 않은 채, 그는 게걸스럽게 만두 접시를 비워나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시후는 백창현 부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로그아웃을 하고자 했다.

“로그아웃.”

시후가 눈을 감으며 말을 내뱉었지만, 그의 귓가로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는 그대로였다.

천천히 눈을 뜬 그의 눈에 자신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시후는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재차 눈을 감고 외쳤다.

“로그아웃.”

하지만, 주변의 말소리는 그대로 들려왔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접속 종료. 접속 강제 종료. 클라이언트 종료. 강제 차단.”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지만, 그 어떤 말로도 접속이 끊어지는 일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한참을 중얼거리던 시후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앞자리에는 여전히 노인이 앉아 있었다.

알 수 없는 상황에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이마에 느껴지는 고통은 꿈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었다.

“미친놈이었나?”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노인의 말에도 대꾸할 정신이 없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깐.

“GM 호출! 탈출! 운영자!”

시후가 당황한 만큼 목소리는 점차 커졌고, 객잔 내부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늘어났다.

아는 명령어를 모조리 내뱉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시후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앞에 앉은 노인이 만두 한 접시를 모조리 비워 나갈 동안 고민하던 시후의 입술이 갑자기 파르르 떨렸다.

이 상황이 일어나게 된 이유로 짐작되는 게 하나 있었다.

“설마 강제 시뮬레이션······.”

그가 접속하는 도중에 누군가 초기화를 실행한 뒤 강제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면······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시후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초기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강제 시뮬레이션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뮬레이터를 돌리는 속도는 보통 2만 배.

과연 자신의 뇌가 2만 배라는 과부하를 견딜 수 있을까.

견딜 수 있다면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씨X. 이러다가 죽는 거 아냐?”

등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그와 동시에 캡슐이 강제적으로 열리는 경우를 떠올려 봤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자신이 나갈 방법은 강제로 전력을 차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정전이 일어날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까울 것이다.

“와······ 미치겠네.”

머리를 붙잡고 고뇌에 빠진 시후를 빤히 바라보던 노인은 갑작스레 품에서 책을 한 권 꺼내어 툭 던졌다.

갑자기 머리맡에 들리는 소리에 시후가 식탁에 올려진 책과 노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미친놈에게 주기는 아쉽지만, 선의를 보여 준 보답이다. 심심하걸랑 익히거라.”

그리곤 시후가 잠시 책에 시선이 팔린 사이, 노인은 점소이에게 전낭을 통째로 던져 주고는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시후는 노인이 던지고 간 책을 손을 뻗어 붙잡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원신공을 획득했습니다.]

“이게 왜!”

시후는 당장이라도 노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일원신공을 들고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황금각을 빠져나온 시후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노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바다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돌로 변한 망부석의 전설처럼, 시후는 넋이 나간 듯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시후의 손에 들린 일원신공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일원신공을 익혔습니다.]

손에 들려 있던 책이 난데없이 사라지자, 멍하니 있던 시후는 땅에 주저앉아 허탈한 듯 웃었다.

“하하······ 그래, 한참 동안 쥐고 있으면 배워졌었지······.”

화낼 기력조차 없었다.

천무 온라인의 ‘과거’에 갇힌 것도 허탈한데, 그 과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구주신협의 무공, 일원신공을 자신이 익히다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고,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꼴이었다.

절망의 구렁텅이로 끌려가던 시후는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긍정적인 생각을 시작했다.

“아냐, 아냐. 뭔가 조치가 있을 거야.”

누군가 자신을 대신해 시뮬레이터를 돌렸다면, 분명 자신의 자리를 훑어보지 않겠는가.

분명 자신의 핸드폰과 겉옷이 남아있다는 걸 발견했을 것이다.

“그럼 내가 퇴근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사무실을 둘러보겠지.

“그래, 배율을 생각한다면 아직 한참 멀었지.”

2만 배속으로 돌렸다면, 지금 밖에서는 1초도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중앙 컴퓨터에서 캡슐의 불빛을 봤다면 가는데 대충 5초? 그쯤 걸리겠지? 캡슐 안에 들어있는 날 보고 강제 종료를 한다면······ 빠르면 20초 정도 걸리겠지? 아냐, 넉넉잡아도 1분이면 충분할 거야. 그래, 현실에서 일 분이면 여기선······ 2주.”

시후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수치에 입이 턱 하니 막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자신을 못 보고 그대로 사무실을 나갔다면?

자신의 뇌는 끊임없이 타들어 가겠지.

“씨X. 아냐, 이대로 있을 순 없어. 생각해라. 머리를 굴려. 길은 있어, 있을 거야.”

탁자에 머리를 처박은 채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시후의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바로, 많은 게임 방송을 보면서 했던 생각.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시뮬레이션이 종료되는 충족 값은 간단했다.

마교 교주의 사망.

간단하지 않은가?

다만, 값은 간단할지 몰라도 그 과정은 절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최악을 가정한다면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 단 한 명만 죽이면 되잖아? 할 수 있지. 내가 못 할 이유는 없잖아? 오히려 구주신협보다 더 빨리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혼잣말을 중얼거릴수록 시후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무려 6년이다.

입사와 동시에 개발에 들어갔고, 전반적으로 모르는 게 없었다.

물론, 방대한 게임인 만큼 모든 걸 알지는 못하지만, 핵심은 모조리 꿰뚫고 있기에 자신감이 더욱 커졌다.

“구주신협이 고생고생하며 얻는 기연들? 벌 거 아냐, 편법으로 얻을 방법이 많잖아?”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자신감을 증폭시켰다.

단,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단독으로 마교를 상대할 수는 없다.

게임 내 모든 기연을 끌어모으고, 온갖 신병이기로 몸을 둘러도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구주신협이 걸어갈 길을 비슷하게 따라간다면, 자연스럽게 정의맹을 끌어당길 수 있을 테고······ 최대한 NPC들을 이용한다.”

결정을 내리자 속이 시원해졌다.

물론, 한참 뒤에 등장해야 할 마교를 섣불리 끌어냈다간, 오히려 정파가 괴멸당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구상해 둔 길을 걸어가기 위해 시후는 극 초반부에 일어난 일들을 머릿속으로 열거하기 시작했다.

“일단,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 표풍객잔.”

시후가 구주신협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도, 이번 일은 겪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단순히 기연을 얻기 전 사고만 당하는 부분이었으니깐.

다만, 구주신협이 그 자리에 오는지 안 오는지가 중요했다.

이미 시작부터 틀어졌기에 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지만, 확인을 안 하고 넘어갈 수야 없지 않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표풍객잔을 찾으러 떠나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주머니에는 동 한 냥조차 없었다.

한숨을 길게 토해낸 시후가 황금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서 있던 점소이는 시후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조금 전 오셨던 분이군요.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

“전낭.”

앞뒤 다 잘라먹은 시후의 말에 점소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자, 자신이 처한 처지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아까 그 전낭에는 은 열 냥이 들어 있었고, 만두 한 접시가 은 여섯 냥이었으니 네 냥을 줘야······.”

“아.”

자존심을 뭉개면서 꺼낸 시후의 말에 점소이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탄식의 의미가 깨우침이 아니라는 걸 모를 정도로 시후가 둔하진 않았다.

덕분에 시후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리곤 속으로 조금 전 사라진 노인과 과거의 자신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썅.’

* * *

은 네 냥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화로 계산한다면 고작 사만 원에 불과한 이 금액으로 하루나 지낼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시작 시 열 냥만 지급하는 건 너무 부족한데? 이건 건의해야겠어.”

자신이 직접 겪어 보니 게임 초반에 지원해 주는 금액이 터무니없이 적어 보였다.

나가면 이 부분을 꼭 손보리라 다짐하며, 난주(蘭州) 시내 중심부에서 외각의 허름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스듬히 걸려있는 간판에는 ‘표풍 객잔’이라 어설프게 쓰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허름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제법 깔끔했다.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곧 가겠습니다!”

자리는 넉넉히 비어 있었고 입구를 들어오는 사람을 지켜보기 위해 가장 끝에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조그마한 창이 나 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는 자리였다.

“저희 표풍 객잔에서는······.”

“소면 한 그릇.”

“다른 건 괜찮으십니까?”

점소이의 질문에 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진 돈이 많으면 이것저것 시켰겠지만, 돈을 반절 이상 날려 버린 상황에서 막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구주신협이 오지 않는 걸 확인하게 되면, 돈 나갈 곳이 더 있을 예정이었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서인지, 객잔은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곧 시후의 앞으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소면이 나왔다.

최대한 천천히, 마치 진귀한 음식을 음미하듯 느긋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어찌나 식사를 오래 하는지 소면이 중면으로 팅팅 불어났고, 국물에서 더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지 않았다.

점소이가 슬슬 눈치를 주기 시작했지만, 시후는 연신 입구를 힐긋거리며 식어 버린 국물을 비울 뿐이었다.

국물도 바닥이 나고 있는 상황인지라, 슬슬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는 찰나.

객잔 문이 열리며 제법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던 그녀는 안쪽으로 쭉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주신협은 결국 이리로 오지 않았다.

시작부터 어그러졌기에 다른 곳으로 빠졌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기 위해 국물을 후루룩 비우던 시후는 자신의 앞에 털썩 주저앉는 여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선 곤란하다.

“지금 제가······.”

“싫어.”

말을 미처 다 꺼내기도 전에 시후는 칼같이 말을 쳐냈다.

덕분에 여인의 얼굴이 다소 붉게 물들었지만,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후의 팔을 붙잡았다.

“대협, 말이라도 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싫다고 했······.”

콰앙!

시후는 끝까지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 셋이 객잔 문을 거칠게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여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시후의 앞에 붙어 있는 여인을 확인하곤 웃으며 다가왔다.

“기껏 도망치곤 여유롭게 밥이라도 한 끼 하려고 했어? 그래, 먹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어야지.”

실실거리며 다가오는 남자들과 자신을 번갈아 보는 여인의 눈이 자신의 어깨너머를 응시했다.

곧 그녀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자신을 향해 허리를 푹 숙였다.

“대협, 그럼 믿고 가겠습니다!”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여인은 벽으로 후다닥 달려가더니, 조그마한 창문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어찌나 늘씬하던지 몸까지 빠져나가는 데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본 시후는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돌발 임무 ‘오해’가 발생합니다.]

반투명한 창 너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세 명의 왈패들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돌발 임무가 발생한 이상, 저들은 시후를 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들의 우락부락한 근육을 본 시후는 허탈한 심정을 담아 한마디를 내뱉었다.

“썅.”

- 3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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