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만 꿔도 세계 최강-38화 (38/136)

〈 38화 〉 1부 37화 악연 아니면 필연 (1)

* * *

1부 37화 악연 아니면 필연 (1)

생각보다 봉사활동을 가는 인원이 적어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말이 입으로 튀어나왔고, 어떻게 들었는지 뒤에 있던 승만이가 내 질문에 대답했다.

"어제는 1학년, 내일은 3학년, 오늘은 우리 학년이 봉사활동을 가는거야."

"아, 승만아. 먼저 와 있었구나. 근데 내가 오늘 봉사활동에 대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너는 알고 있어?"

"모르고 지원한 거야?"

"응. 어쩌다 보니. 너는 어쩌다가 지원을 했어?"

"나야, 봉사활동 점수도 관리해야 하고, 이럴 때아니면 언제 봉사활동을 하겠어."

"아... 그럼 우리는 어디로 봉사활동을 가는거야?"

"우리 동네에 아직 판자촌이 있는 건 알고 있지?"

"아직 비개발 지역인 곳?"

"응. 거기에 사시는 형편이 어려우신 어르신들이랑 몸이 불편한 분들 집에 찾아가서 몇 시간동안 청소도 하고 말동무도 해주는 일이야."

"아.."

"담임 선생님이랑 2인 1조로 하는 거니까 힘든 일은 없을 거야."

"2인 1조?"

'그래도 혼자 하는것 보다야 낫겠지.'

"응. 2인 1조 좋은 일이니까 기분 좋게 하자고!"

"그, 그래."

승만이랑 이야기하는 사이 봉사활동을 가시는 선생님들이 하나 둘씩 구령대에 모이기 시작했고, 곧 20인승 미니버스가 학교 정문으로 들어와 구령대 앞에 정차했다.

"자. 천천히 줄 서서 탑승!"

'꽤 가까운 거리인데 학교에서 미니버스까지 대절했구나.'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천천히 버스에 탑승을 했고, 버스는 곧 출발했다. 십분 정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오르막을 오른 뒤에 버스는 멈췄고, 선생님들은 먼저 일어나서 내릴 준비를 했다.

"가방은 여기다 놓고 가도 돼. 혹시 모르니 중요한 소지품들은 다 챙겨가도록!"

"네. 선생님."

버스에서 내리자 이 동네를 예전부터 봉사를 하시는 자원봉사자분들이 마중을 나오셨다. 선생님들께서 자원봉사자 분들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에 판자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분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 담임 선생님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좋지 않아 보였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종찬아, 우리가 오늘 봉사활동을 가는 집에서는 장난치거나 그러지 말아라."

"선생님 제가 무슨 장난을 친다고.."

"요새, 종찬이 많이 활발해졌던데?"

"하하.. 근데 특별히 조심할 거라도?"

"음, 들은 바로는 하반신마비의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인데 얼마 전 자살시도까지 하셨다고 하더라고."

"아.. 안타까우신 분이네요."

'그래서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거였구나..'

"원래 너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반을 대표하는 학생으로 왔으니,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진지하게 봉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종찬이 네가 아무렇지 않게 한 행동이 그분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과 나는 자원봉사자분들에게 건네받은 메모지를 들고 주소지를 찾아 나섰고, 얼마 가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집의 구조가 불안해 보였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 및 도시 이재민들의 주거 형태로서 판자촌이 확산되었다고 들었다.

현대에 와서 정부가 무허가 불량 주거지를 철거에 나섰고, 많은 판자촌들이 철거도 되고 양성화 정책을 통해 불법 점유를 사실상 합법화시키는 방식으로 이주사업도 실시했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 동네에 마지막 남은 판자촌이었다.

"종찬아, 들어가자."

"네. 선생님."

현관문을 열자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진동했고, 집안 바닥에는 발을 어디로 디딜지 모를 정도로 쓰레기가 가득했다.

"청소하기 전에 선생님이랑 여기 살고 계시는 집주인 분한테 인사 먼저 드리자."

"네. 알겠습니다."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자, 우리가 방문을 연지도 모를 정도로, 책상에서 의자 대신 휠체어에 앉아, 노트에 뭔가를 적어가며 몰두하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일하는 중 이신 건가?'

"안녕하세요. 오늘 청량 고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러 온 윤은영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고요."

"안녕하세요. 권종찬입니다."

인사를 건네자, 하던 일을 잠시 멈추는 듯했지만,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다시 원래 하고 있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벙거지를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어서 얼굴은 자세히 안 보였지만,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골격 상태와 피부로 보았을 때 내 예상보다 젋은 사람 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젋으신분이 어쩌다...'

여전히 반응이 없자, 선생님과 나는 혹시나 집중을 하고 있는 일에 방해가 될까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거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먼지를 털어낸 뒤 걸레로 바닥을 닦아냈다.

청소를 시작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거실은 어느 정도 청소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모든 창문을 열어 집안에 남아있던 퀘퀘한 냄새를 환기 시켰다.

"종찬아, 이제 바깥에 대문 앞 청소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저분이 계시는 방도 치워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될 수도 있잖니."

"그러면 선생님은 바깥 청소를 하시고 계세요. 제가 방안에 들어가 볼게요.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때 그만두면 되죠."

선생님은 내가 열심히 청소를 하는 모습에 흡족해하시면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래. 알겠어. 대신 기분 상하시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대문 밖을 청소하러 나가셨고, 나는 청소도구를 챙겨 방문을 두드린 뒤 방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역시나 내가 방안에 들어온 지도 모를 정도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어 보였고, 청소도구를 바닥에 내려두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이왕 온 김에 방 청소도 좀 하고 가겠습니다."

그러자, 집중해서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손의 움직임이 멈췄고, 화가 잔뜩 난 듯 벙거지 모자를 내던지고는 나를 바라봤다.

"쫌,시키지도 않는 일.... 너,너는??"

'마,말도 안 돼...'

벙거지 모자를 벗은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다리가 굳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턱에 수염이 더부룩하게 났고, 초췌해 보이긴 했지만, 그는 내 꿈속에서 첫 전투를 벌였던 '테라'였던 것이었다.

"너... 는.. 설마 테라?"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확실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테라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꿈속에서 나의 첫 전투 상대였고, 자각력을 처음으로 잃을 뻔했었던 상대였기에 얼굴을 잊어 버릴 수 없었다.

"너는 그때 그 도둑놈??"

'도둑..? 아 괴도루팡 스킬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구나'

테라도 나를 보고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는 미친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앳된 얼굴이라고 생각은 했다만, 설마 고등학생이었다니."

"......."

현실 세계에서 테라를 직접 마주하게 되니 처음에 겪었던 당황스러움보다 약간의 두려움이 앞섰다. 마지막에 채린이에게 당해 지배석을 빼앗겼지만, 결국 내 꿈속에서 나와 싸우다 벌어진 일이었다.

당연히 상상은 해봤다. 훗날 누군가의 꿈 자각력을 잃게 만들고, 그중에 한 명이 룰을 깨서 현실 세계의 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내 앞에 나타나는 상상을 말이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이 상황에서 테라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내 상상과는 다르게 결코 원망하거나 분노에 휩싸인 모습은 아니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지?"

"테라....."

내가 조심스럽게 꿈속의 닉네임을 부르자, 테라는 다시 한번 크게 웃어댔다.

"크하하하! 그 이름을 다시 들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사, 살아있었구나."

"뭔 소리 하는 거야? 꿈속에서 자각력을 잃은 것 뿐인데. 그런데 꽤 놀랍네? 나를 알아보다니.."

"수염 빼고는 전부 똑같은데?"

"그 말이 아니야. 나는 이제 자각력을 잃어 꿈속생활을 할 수 없으니 불과 며칠 전에 만난 너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데, 너는 체감상으로 반년은 더 흘렀을 텐데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잊을 수 없지. 네가 첫 상대였으니까.."

"첫 상대? 과연 그랬던 거군.. 자각력을 잃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 곰곰이 너의 행동들을 되짚어 봤지. 다시 생각해봤더니 나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끌고 있던 거였어."

"네 말이 맞아. 전투가 처음이라, 사역마 스킬로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게 전부였어."

"빨리 눈치채지 못한 내 잘못이지."

"근데..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만나다니..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어."

"그래, 나도 꿈속에서 만났던 사람을 현실 세계에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처음이라고?"

"그것도 내 자각력을 잃게 만든 장본인이라니.. 크하하하!"

"네가 내 꿈속으로 침입해서 벌어진 일이잖아."

"그래. 변명할 생각은 없어."

"어째서 내 꿈을 침입한 거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타인의 꿈속을 누비고 있었을 뿐이야. 누군가에게 지배석을 빼앗긴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어째서..."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테라가 앉아 있는 휠체어로 향했다. 테라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현실 세계의 내 모습은 처량하지?"

"자살시도를 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크하하하!"

"그것 때문에 다리가... 그렇게 된 거야?"

"왜? 이 다리를 보니 쓸데없는 동정심이라도 생기는 거냐?"

"그, 그건.."

"걱정하지 마, 내 다리는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이렇게 된 것뿐이니까. 지배석을 빼앗겨 자각력을 잃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어."

테라의 말을 듣고 조금은 안도했다. 나 때문에 자각력을 잃고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시도를 했다가, 몸에 이상이 생겨 하반신마비의 장애자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행스럽게 나의 불길한 예감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자각력을 잃고 자살시도한 것은 맞는 이야기지."

"..... 미안하다."

"크하하하! 이래서 어린애들이랑은 대화가 안 통한다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자각력을 잃고 좌절해서 자살시도를 한 것이 아니라는 거지. 그냥 이제 어느 정도 이룰 것은 이뤘으니, 이제 그만 인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크하하하!! 무슨 이야기이긴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원망하지 않는다니 고맙다."

"크하하하! 우리가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의 사이까지는 아니지 않냐?"

테라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자각력을 잃게 만든 죄책감이 조금씩 씻겨 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테라에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방식으로 내 꿈속을 들어온거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