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153화
* * *
"다녀올게요. 오빠."
강한윤을 꼭 껴안은 마리아는 얼굴을 비볐다. 고양이가 자신의 냄새를 마킹하듯이 가슴에 배에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누님 이제 슬슬 가요."
보다 못한 마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평상시엔 도도하고 능력도 좋고 성격도 좋은데. 이럴 모습을 보면 적응이 되질 않는다.
"가기 싫엉..."
이제는 칭얼거리며 애교떠는 모습에 마로스가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마리아의 뒷덜미를 붙잡고 힘으로 끌어당겼다.
"가자고요."
"오빠! 오빠...! 놔! 나 가기 싫어!"
처절한 마리아의 비명이 들리고 작전실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둘이서 먼저 떠나는 모습에 강한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로스가 참 고생이 많네."
"그러게요. 아무튼 저희도 출발할게요."
다가온 세리스가 주위의 눈치를 살짝 살핀 뒤 입술을 내밀며 눈을 감았다. 분홍 입술이 동그랗게 모인다.
물론 다른 이들은 키스를 끝낸 상태였다. 라이라, 그레모리, 방금 끌려간 마리아까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는 이별의 키스다. 세리스와 포옹하며 쪽 하고 짧게 입술을 부딪쳤다.
"성녀님의 입술이라 그런지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네."
"치. 장난치지 마요. 하지만.. 뭐 나쁘지 않네요..."
장난스런 미소를 짓는 강한윤. 그에게 세리스도 마찬가지로 장난을 치듯이 배를 톡 쳤다.
"다들 다치지 말고 돌아와."
"당연하죠. 다치면 말짱 도루묵이 될 텐데요."
"그렇지."
그레모리와 라이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이러면 확실히 생존에 신경 쓰겠지. 걱정을 한시름 덜은 강한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부 준비가 됐다면 가요."
위험한 작전이다. 어쩌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움직였다. 이대로라면 가기 싫어질 테니까.
완벽하게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섰을 때 움직여야 한다. 이 의지와 결심이 꺾이기 전에 떠나야 한다.
최대한 무심한 척 말한 라이라가 먼저 작전실 바깥으로 나갔다.
모두 그녀를 따라서 작전실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작전을 위해서 움직일 시간이다.
*
에리엘, 흑령, 노아가 소속된 1팀은 이틀 전에 미리 출발했다.
세리스, 마로스, 마리아, 라이라, 그레모리가 소속된 2팀이 가야하는 도시는 더 먼 곳에 있어서 더 오래 걸린다.
작전 시간에 맞춰서 행동하기 위해 움직이는 시간에 텀을 준 거다.
그들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를 야영한 뒤에 헬리에크로 향했다.
"모두 작전은 숙지했나요."
2팀의 대장을 맡은 라이라가 팀원들을 슥 훑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중요한 작전인 만큼 모두 눈빛이 살아있었다.
후우. 담배를 마지막으로 빨아들인 라이라는 땅에 담배를 떨어뜨렸다.
살아있는 불씨를 발로 비벼서 끄곤, 작전 내용에 대해 생각했다.
간단하다. 헬리에크에서 제물을 만들기 위해 열리는 연회에 참석한다.
참석해서 관련된 마족과 귀족을 전부 해치우고 나오면 될 뿐이다.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펠리컨 자작을 데려가야 한다는 점이 걸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투에 방해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전장에서 바로 이탈시킨다. 그리고 전투를 이긴다.
라이라의 머릿속에서는 간단한 플랜과 대처법이 들어있었다.
'가미긴이 준비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강한윤에게 미리 얻은 정보였다. 가이안은 준비를 끝마칠수록 강해지는 악마다.
준비를 끝내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그 사실은 확실히 알았지만 어떻게 끝을 봐야 할까.
라이라의 생각은 온통 그쪽으로 쏠려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펠리컨 자작과 접선한 라이라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했다. 동시에 그의 몸 상태를 읽어냈다.
그의 목 근육이 경직되어있다.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연회까지 남은 시간이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 곧 악마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긴장하고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평온을 가장하지만, 라이라에게 숨길 수는 없었다.
이 자작은 전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네. 그를 보자마자 판단을 내린 라이라.
그녀의 시선은 자작을 호위하는 기사에게로 향했다.
"전투가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면 바로 이탈하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기사와 라이라는 시선을 마주쳤다. 서로의 생각이 통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그들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모두 준비하도록 해요."
라이라가 2팀의 인원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연회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연회장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15분.
여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5분을 더 마련 한다면 남는 시간은 고작 40분.
"40분 안에 전부 가능하겠죠."
라이라의 강압적인 질문에 시녀들이 몸을 움찔했다.
대답을 묻거나 의견을 묻는 말투가 아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시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무조건 일을 성공 시켜야 한다..!
라이라의 날카로운 시선에 시녀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어울리는 옷이 뭐가 있지? 으음... 이게 어울리려나."
"화장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아니면 제가 선택해드려도 될까요?"
"..."
분주한 시녀들에게 시달리는 것은 나머지 2팀의 몫이 되었다.
"연회에 갈 준비를 전부 끝마쳤습니다."
시녀들의 손에 이끌려서 꾸며진 2팀의 인원들은 방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야영을 하고 와서 조금 추레한 상태였던 게 거짓말 같다.
모두 어딘가의 귀족처럼 멋을 부린 것처럼 변하고 거울을 보면서 놀랐다.
"이런 느낌은 항상 적응이 안 되네요..."
특히 꾸밈과는 거리가 멀던 세리스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거울에 나타난 본인의 모습과 굽이 있는 구두로 걷는 게 어색했다.
"괜찮네요."
파티에 가는 복장처럼 꾸며진 이들을 둘러본 라이라가 말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화장이나 옷을 고르는 데에서 약간의 어색함이 있지만, 합격점은 넘기는 수준이었다.
중얼거림에 가까운 그녀의 말에 모든 시녀가 마음을 놓았다.
"이제 연회장으로 가도록 해요."
붉은 색 원피스를 입은 라이라가 가장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
도시의 분위기는 가라앉아있었다.
전쟁을 앞둔 스산한 분위기에 시민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아이들과 집으로 들어 가버렸고.
군기가 바짝 든 병사들은 날이 선 눈빛으로 도시를 순찰했다.
"뭔가... 안 어울리네요."
저택의 바깥을 쳐다본 세리스가 중얼거렸다.
저기에 있는 이들은 어둡지만 여기는 이상하리만치 밝다.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연회장. 이 곳은 마치 다른 세계 같았다.
하지만 이 안에 마족이 숨어있다. 마기에 민감한 세리스는 미약하지만 마족의 흔적을 눈치 챘다.
"다들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마족의 존재를 눈치 챈 세리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마족. 절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
세리스는 주먹을 쥐었다 편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많네요."
"으응.. 겉으로 보기에는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보기에는 마족의 존재가 있는지 모르겠다.
혼잡할 정도로 사람이 빽빽한 연회장의 안.
여기에 마족이 숨어있다는 걸까. 그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정도로 좋은 분위기다.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춤을 추며 술을 마신다.
한 구석에서는 화기애애하게 담화를 나누고 있고, 한 구석에서는 담배를 태우는 귀족들도 있었다.
"후우.."
라이라도 답답한 마음에 일단 담배를 태웠다. 여기에서 마족이 무슨 짓을 한다는 걸까.
일단은 두고 봐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번 연회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은 여기 있는 남작님이죠."
2층의 테라스에서 말하는 그의 목소리로 모두가 시선을 모았다. 고양이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손짓하자 가느다란 조명이 귀족 한명을 비췄다. 관심을 받게 된 그는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도움을 주실 여러분들에게도 영원한 축복이 있기를. 이 연회의 의미를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야?
연회의 의미?
그런 게 있었나?
아무것도 모르고 연회를 참여한 귀족. 그들의 속삭임으로 살짝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된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가면 쓴 사내는 말을 이었다.
"그 연회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모두 이쪽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그는 2층의 테라스에서 안쪽을 가리켰다.
"다들 따라가 봐요."
2팀은 2층으로 올라간 뒤에 안쪽으로 이동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연무장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어두운 조명의 복도를 걸어가는 귀족들과 함께 쭉 걸어 들어갔다.
그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문이 보인다.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다는 걸 라이라가 알아챘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는 넓은 장소가 드러났다.
"여기는.. 연무장이네요."
주변을 둘러본 세리스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이 안으로 오자 마기의 잔향이 더욱 짙어진다. 옆에 있는 그레모리와는 다르게 피 냄새가 배여 있었다.
"여기까지 오셔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가면을 쓴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문이 닫힌다. 이어서 무장한 기사들이 문을 막아서는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이제 연회의 끝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 말과 함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끌려나왔다.
정신을 잃은 사람들이 허공에 매달린 상태로 연무장에 쌓인다.
"저.. 저건..."
그 모습에 귀족들이 입을 틀어막고.
"모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면 쓴 사내는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분들도 있지만 별 상관없지요."
칼을 빼어든 사내가 가까이에 있는 사람 하나의 목을 베었다.
서걱 목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인다.
공포에 질린 귀족들은 입을 틀어막은 채로 쳐다보았다.
저... 저런 짓을...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까지 전부 죽이자 연무장에 피가 고였고.
연무장의 천장에 검은색의 안개가 모여들었다.
"나를 위한 만찬을 이렇게 준비해주다니."
안개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점점 형상을 갖추었다.
동그랗게. 거기서 길쭉한 꼬리가 생겨나더니 거대한 뱀의 모습이 되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입맛을 다신 뱀은 아가리를 쩍 벌려서 한 입에 사람들을 삼켜버렸다.
"나.. 난... 여기서 나갈 거야.."
귀족이 소리치면서 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하지만 무표정한 기사들의 제지에 도망칠 수 없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가미긴이 서있는 귀족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 중에서 몇 명은 더 먹어도 되겠지. 앞으로 싸우려면 기력을 보충해야하니 말이다.
파지직! 귀족을 향해서 움직이던 가미긴에게로 스파크가 튀었다.
"쥐새끼인가?"
어둠이 모여들며 가뿐히 막는다. 가미긴은 주위를 노려보았다.
아하. 맛있는 냄새가 저기서 나는 거였나. 그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입맛을 다셨다.
"빨리 구워버리고 끝내자."
"당연히 그래야지."
귀족들 사이에 숨어있던 마리아와 마로스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호오."
이 녀석들 말고도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어차피 전부 먹어치우면 해결된다. 가미긴은 음침한 웃음을 지었다.
"발레포르. 부에르."
그의 외침에 공간이 일그러진다. 어둠속에서 나타난 발레포르와 부에르가 고개를 조아린다.
"예. 부르셨습니까."
그의 호출에는 이유가 있는 법.
둘은 가미긴을 향해 살기를 피어올리고 있는 인간을 쳐다보았다.
"아하. 이것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저희 둘이면 충분할 겁니다."
사자의 몸에 말의 얼굴을 가진 발레포르.
말의 몸에 사자의 얼굴을 가진 부에르.
그들은 양쪽으로 나뉘어져 마리아와 마로스. 각자에게로 달려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