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143화
* * *
"저도 오드웰 연합군의 소속이 되는 건가요?"
아침 식사를 마치자 키리아가 질문했다.
...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여기에서 최소 수십 년은 혼자 보낸 것 같던데. 의문이 가득한 채로 강한윤이 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그야 군복을 입고 있었잖아요."
그녀가 빨랫줄에 걸려 있는 군복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마치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한 뉘앙스다. 그녀는 답하고선 커피를 홀짝였다.
"아니.. 내가 묻는 건"
"망각의 숲에서 살고 있는데. 정보를 어디서 접했냐 아닌가요?"
뭐야 알고 있네. 일부러 놀린 건가. 키리아가 큭큭 웃은 뒤에 말을 이었다.
"저번에 거래를 했어요. 어디서 온 사람이 정보를 주는 대신에 흑마법과 관련된 마법을 원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법에 대한 정보를 건넨 적이 있어요."
흑마법과 관련된 마법이라면 생각이 나는 게 있다.
강한윤은 인벤토리의 배낭에서 편지를 하나 꺼냈다.
칼레보른을 처리하고 얻었던 편지. 아마 여기에 적힌 녀석이 거래를 하러온 녀석이지 않을까.
"흑마법에 대한 정보를 거래했다고요?"
"..그때는 별 신경을 안 썼으니까요. 그래도 마족을 좋아하진 않아요. 대부분 날로 먹으려는 녀석들이 많아서요. 저 밖에 있는 걸 보면 알잖아요."
마족들이 처참하게 죽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보라색의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족 곰탕의 기억이 떠오르니 속이 좀 더부룩하다.
강한윤이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고 있을 때, 키리아가 중얼거렸다.
"정보가 없으면 심심하거든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마족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줘요."
마족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챈 키리아가 급하게 변명했다.
정보가 없으면 심심하다라. 강한윤도 그건 동의하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할 일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집안일을 끝내놓고 나면 심심해서 책이나 읽는 게 전부였다.
오래 살아온 키리아라면 심심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키리아의 얘기를 들은 강한윤이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인지 말했다.
"키리아. 밖으로 나가면 오드웰 연합군 소속이 될 확률이 높아요."
어차피 지휘관이 될 테니까. 한 명 정도는 낙하산 태워도 된다.
거기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 반발이 나올 리도 없다.
미인에 강하고 죽지도 않는 살인병기가 될 수 있는 것이 키리아다.
물론 그녀의 심성은 여린 면이 있어서 싸우는 걸 원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연합군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희는 마족을 토벌해 나갈 겁니다. 대륙엔 숨어있는 마족 녀석들이 처리하고 그 녀석들과 붙어먹을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도 제거하려해요."
"마족.. 솔직히 느낌이 좋지 않긴 해요. 음흉하고... 네에."
키리아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역시 마족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 싫어하는 건가.
"그래서 이번에 정보를 거래했다던 녀석을 찾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한 놈을 잡고 그 녀석과 관련된 안물을 전부 집어넣는 정도면 충분하다.
애매하게 관련된 녀석들에게는 경고를 주는 느낌으로 말이다.
주먹을 입에 가져다대며 생각하던 키리아가 입을 열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데다가 따로 변장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모르겠어요. 뭔가 수상한 녀석이라서 죽이고 싶었는데. 제가 정보에 혹했었죠. 그래도 다시 만난다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확실히 알 수 있다고요?"
뭔가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키리아는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안개에 접촉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에 영향을 받거든요. 그 영향이 얼마나 크냐 적냐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몸에 남은 흔적은 지울 수 없다.
망각의 안개를 개발해내고 연구한 키리아다. 그녀는 만나기만 한다면 무조건 알아차릴 자신이 있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
마족과 거래를 일삼은 녀석들을 색출해내는 데엔 키리아가 잘 해주겠지.
"그럼 나가볼까요?"
"...네"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강한윤은 키리아에게 손을 건넸다.
얼굴을 붉힌 키리아가 소녀처럼 손을 잡았다. 그를 따라간다는 생각에 머릿속엔 설렘이 가득했다.
*
간단하게 짐을 챙긴 키리아가 손을 튕기자 아공간 속으로 짐이 사라졌다.
역시 마녀라서 그런지 아공간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다.
"됐어요."
준비가 끝난 키리아가 슬며시 강한윤을 껴안았다.
스킨십을 유독 좋아하는 것 같은데. 팔에 물컹물컹한 가슴이 대놓고 닿는 건 역시 좋네. 강한윤은 웃으며 오두막을 가리켰다.
"이렇게 놔두고 가도 괜찮은 건가?"
이제 앞으로는 안개가 걷히고 사람들이 돌아다닐 텐데.
이 곳에 마녀의 오두막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과한 관심을 받을 게 분명하다.
"..아 그러네요."
강한윤에게 심취해서 까먹고 있었던 키리아가 오두막을 향해 마법을 전개했다.
빛과 공간이 왜곡되며 오두막이 절묘하게 사라진다. 마치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사라진 오두막.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아공간에서 마석들도 꺼냈다. 이 정도 크기라면 10년은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걸 기억하는 마녀도 까먹는 게 있네.'
모든 걸 기억하는 것 일뿐. 모든 행동을 완벽하게 하는 건 아니구나. 한 가지 알았다.
오두막이 강한윤의 눈엔 완벽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빈 공간에는 동물 한 마리가 서있었다. 고라니다.
아니 고라니가 이 주변에 서식하고 있나. 왜 이렇게 자주 보이지.
강한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라니! 앞으로 이 주변을 잘 지켜줘. 알았지?"
키리아가 고라니에게 다가가서 목덜미를 껴안고 쓰다듬었다.
이게 대체 뭐지. 당황해하던 강한윤의 표정을 본 키리아가 고라니의 목덜미를 격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 이름이 라니에요. 사역마 역할을 하고 있어요."
"맞아! 끼에에에엑!!!!"
고라니가 대답을 한 뒤에 소리를 내지른다.
뭐야 말을 할 줄 알잖아. 저번에는 그냥 끼에엑 거린 건가? 이유도 없이?
고라니 중에서도 이상한 녀석인 것 같다. 표정도 뭔가 마약을 빤 것 같고. 아무튼 그렇다.
"이 한마리가 전부인가요?"
"아뇨? 세 마리 더 있어요."
진짜로 고라니의 서식지였네. 여기에 머무는 동안 봤던 고라니가 전부 다른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니 뭔가 오싹하다.
모르는 사이에 고라니에게 감시당하고 있던 게 아닐까.
키리아가 고라니. 라니에게 인사를 끝낸 뒤에 강한윤에게 다가왔다.
"가요."
은근슬쩍 손을 잡아오는 키리아. 다른 여인들에게 느껴볼 수 없는 수줍은 느낌이다.
강한윤은 손깍지를 끼며 한 가지 궁금증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안에 있을 때 식량은 어떻게 해결하는 거죠?"
"사역마를 이용해서 식량을 공급해오면 혼자라서 충분하더라고요."
하긴, 그게 아니라면 안개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해야 하는데 불편하지.
그렇다면 고라니가 마을을 털어서 물건을 훔쳐오는 건가?
아니면 결제해서 사오는 건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특히 빵 같은 건 어디선가 사온 제품이라고 생각할 만큼 좋은 품질이었는데.
'모르겠다.'
안개의 영향이 사라져서 그런 건가. 유독 고라니의 그 얼굴이 잊혀지질 않네.
강한윤은 안개가 흐릿해진 숲을 키리아와 걸었다.
*
헤이네라스의 회의실에는 북부, 서부, 남부, 중부의 지휘관과 중동부의 대표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떨고 있었다.
동부밖에 남지 않은 상황. 특이사항이나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으니까.
평상시처럼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이 뭐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병사 하나가 문을 세게 열었다.
"망각의 숲에서 인원이 복귀했습니다."
그 소식에 모두가 반응했다. 안개를 성공적으로 처리한 건가. 그 사실까지는 병사가 말을 하지 않았다.
만약 성공했다면 누가 성공한 걸까.
모두가 궁금해 하던 와중에도 에키르는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분명히 안개를 처리한 인원은 자신이 선택한 강한윤일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에리엘의 사위가 될 자격은 없다.
강하게 마음을 먹고 생각했지만, 에우제니아의 뒤에 서있는 에리엘과 눈이 마주쳤다.
"흠흠.."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실패하더라도 에리엘의 혼사를 막는 건 안 되겠지. 괜히 찔린 에키르는 헛기침을 해댔다.
약간의 긴장만 맴도는 분위기와 달리 유독 긴장한 이가 있었다. 중동부의 대표로 나온 헤이네라스의 영주.
비 오듯이 땀을 흘리고 있으니 누구나 그가 긴장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그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드디어 게리스가 복귀했다...!'
망각의 숲에서 돌아온다면 게리스일 테니까.
원래라면 강한윤이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돌아온 뒤에 게리스가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 내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하염없이 기다릴 거냐는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망각의 숲에 들어간 이상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후발대를 보내서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후발대 겸,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게리스를 보내자.
그 의견을 내세웠고, 다른 이들도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으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실책이지. 크큭.'
속으로 웃은 영주는 그들을 비웃었다.
뭘 믿고 경쟁자인 게리스를 보낸단 말인가. 그덕에 일이 쉬워졌다.
게리스의 목적은 안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경쟁자인 강한윤을 죽이기 위해서 망각의 숲으로 간 것.
'죽이기만 하면 일이 풀리거든.'
안개를 처리한 상태라면 죽여서 공을 빼앗고, 실패한 상태라면 경쟁자를 제거해서 자리를 먹으면 된다.
거기에 아무런 힘이 없는 강한윤이 게리스를 이길 방법이라고는 없다.
완벽한 외통수다. 스스로의 계책에 감탄한 영주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이다.
"회의실로 오고 있는 건가?"
"예. 데려오고 있습니다."
지휘관 아르기르의 말에 병사가 빠릿하게 대답했다. 누가 안개를 처리했을까.
궁금증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문이 벌컥 열렸다.
"오. 모두 모여 계시네요."
천연덕스럽게 말한 강한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부, 북부, 남부의 지휘관들에 비해 유독 중부와 중동부의 녀석들이 반응이 심하다.
그 중에서 헤이네라스의 영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힘들었네요. 제가 돌아왔으니 빠르게 결정하고 쉬러가죠. 그리고 혹시나 의심할까봐 설득해서 데려왔습니다."
강한윤의 뒤로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보라색 머리카락의 평범한 미녀?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망각의 숲에서 살고 있던 키리아라고 해요. 마녀라고 하면 더 잘 아실 지도 모르겠네요."
그녀는 그것을 증명하듯이 막대한 마나를 끌어올렸다.
호위하는 병력들이 경계하며 검과 창을 들어 올리자 그녀는 모아둔 마나를 흩트렸다.
그 단순한 행동만으로 모두 그녀가 마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루지 못할 힘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안개를 지운 것도 강한윤인가. 중동부의 지휘관은 결정이 났군."
"그렇지! 당연하지. 애초에 처음부터 강한윤이 했어야 했다고."
에키르의 말에 에우제니아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서부의 아르기르도 말은 하지 않을 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의사를 내보였다.
중부의 카이보옌도 일이 이렇게 틀어진다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모두가 동의하던 그때.
"난 인정할 수 없다!!!"
중동부의 대표. 헤이네라스의 영주가 소리쳤다.
"뭐? 네가 안개를 처리해? 너 따위보다 뛰어난 게리스 경이 처리했을 거다! 어디서 수작질이냐!"
"글쎄요. 그 뛰어난 게리스 경은 뭐하고 계시지. 제가 안개를 처리하는 동안 어디에서 길이라도 잃었나?"
강한윤은 능청스러운 대답과 함께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게리스 경에게 네가 무슨 짓을 한 게 아니냐!"
"아하."
이제는 이쪽이 뭔가를 했다로 몰아가는 건가. 어림도 없지.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게리스 경에게 뭔가를 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거. 격차가 너무 커서 싸우거나, 급습하거나, 함정을 파도 제가 당할 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강한윤의 대답에 영주의 표정이 붉어졌다.
100번 싸워도 100번 이길 사람이 게리스라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망각의 숲으로 보내는 걸 재촉했으니까.
그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뭐. 중동부의 지휘관이 되는 건 제가 확실해졌는데. 그렇게 말해도 괜찮으십니까? 영주님?"
거의 이겼네. 강한윤은 이를 드러내며 당당하게 웃을 때, 뒤에 있던 키리아가 분위기를 살핀 뒤 속삭였다.
"안개에 영향을 받은 이가 저기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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