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62화
* * *
"묘족들은 캣닢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좋아하지. 좋아하지만 묘족들의 캣닢은 고양이들의 캣닢과 다르다는 걸 아나?"
"예. 훨씬 크고 잘 자라지 않는 품종이죠.
고양이들에게 캣닢이 있다면.
묘족에게는 묘족 전용의 캣닢이 있다.
여러 가지 설정이 붙어있지만 겉보기엔 거대 캣닢이다.
캣닢이 엄지만 하다면, 묘족 전용 캣닢은 그것보다 2배는 크다.
"그건 다른 종족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생각보다 아는 게 많군."
"예. 묘족들에게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알게 됐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묘족과 사이가 좋아진다면 나쁠 건 없으니까.
"캣닢을 구하기 힘들텐데.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 보군.
캣닢을 보급 받는다면 부대 내의 불만도 줄어들겠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적귀가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이 얘기했다.
캣닢을 보급하는 건 일회용이다.
한 번 보급해서 불만을 잠재우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계속해서 묘족들에게 명령을 시켜야한다.
'묘족들의 불만사항이 계속 나오는 것도 좋진 않지.'
묘족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묘족들의 캣닢은 비싸고 공급기 적은 물품이죠.
그렇기 때문에 구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요?"
"캣닢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대체 어떤 방법이지?"
적귀의 얼굴에 호기심이 서린다.
"캣닢을 쉽게 구하는 방법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직접 키우면 됩니다."
"말장난을 하러 온 건가?"
"야뇨 그건 아닙니다."
묘족들의 캣닢이 귀한 이유는 잘 자라지 않아서다.
씨앗 100개를 심으면 90개는 죽고 10개 정도 겨우 성장한다.
그 중에서 관리가 안 돼서 죽는 캣닢이 절반.
재배율이 극악인 식물이다.
나는 재배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있다.
"캣닢을 죽지 않고 키우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신에."
말을 끊고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계약을 맺는 건 어떻습니까?"
계약을 한다면 묘족의 대표인 적귀가 모른 체하기는 힘들 거다.
에우제니아 대장.
에우제니아의 이름을 팔아서 계약을 맺을 거니까.
*
계약의 내용은 간단하다.
나는 캣닢이 잘 자라는 조건을 알려준다.
적귀는 에우제니아의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한다.
무리한 명령까지 수행하는 건 안 된다고 딱 잘라서 정했다.
부대에 잔류하고 있는 묘족의 절반까지다.
그 이상으로 인원을 차출한다면 계약의 내용은 무효가 된다.
묘족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제약이 걸려있는 계약이긴 하지만 나쁘진 않다.
이런 식으로 마나를 담아 계약서를 작성하면 적귀가 발뺌하기도 힘들다.
거기에 명분이 생긴다.
얼마든지 묘족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명분이.
"알려준 방법대로 하고도 캣닢이 자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지?"
"이 계약은 당연히 무효로 합니다. 이 조건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하나 더 패널티를 걸도록 하죠."
"정직 3개월이라."
그 밑에 조건들을 주르륵 적어 내려갔다.
계약서를 무효로 하고 나에게 에우제니아와 적귀가 직접 징계를 내린다는 조항까지 넣었다.
"더 필요하십니까?"
"더는 의미가 없겠지. 그보다 캣닢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캣닢이 잘 자라는 조건은 일단 해가 잘 드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하지."
"그리고 양지바른 곳에 씨앗을 심은 뒤. 물 대신 커피를 줘야합니다."
"... 커피?"
"예. 마시는 커피입니다."
어떤 유저가 발견한 이스터에그다.
재배를 주로 하는 유저가 캣닢이 자라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알아냈다.
물 대신 커피를 주면 잘 자란다고 한다.
"어이가 없군. 물 대신 커피를 주라고?"
"믿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대신 계약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연락을 주도록 하지."
똑같은 내용의 서류 두 개를 서로 나눠가졌다.
커피를 줘야 한다고?
적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읊조렸다.
나중에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연락이 오지는 않을 거다.
캣닢은 잘 자랄 테니까.
물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쑥쑥 자라는 캣닢을 보고 오히려 놀라겠지.
"적귀님은 이번 지뢰 매설 작전을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것을 믿고 작전을 진행하라는 얘기인가?"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명분이 생겨서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귀찮은 작전은 전부 빠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군. 이번에는 속아 넘어가주지."
내 말을 듣던 적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한 작전은 아닐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필요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게 군대니까.
그럼 이만 나가주게. 나는 작전을 나갈 묘족들을 선별해야 하니까."
내쫓기듯이 바깥으로 나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마치 고양이 같다.
'그래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니까.'
우리는 묘족 한정으로 부려먹을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작전이 있다면 묘족은 무조건 참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에리엘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
"강한윤 중위! 아니! 대위라고 들었네! 이번에 승진을 했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승진을 하다니! 이거 섭섭하구만!"
에리엘의 집무실로 가자 아는 목소리가 들린다.
쩌렁쩌렁 울리는 호쾌한 목소리. 헨리크 공작이었다.
"헨리크 공작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왔다네! 맛있는 차도 주더군! 크흐흐! 저번의 엘프? 그 녀석은 싹수가 없었는데 말이야! 에리엘 대령. 아니 이제 에리엘 준장인가!"
"편하실 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헨리크 공작님.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그런가? 그렇다면 편하게 부르지 에리엘!
아무튼 에리엘은 그 놈과는 다르게 잘 대해주는 게 아닌가!
아는 얼굴이라서 그런지 마음도 편하고! 말도 더 잘 통하는 느낌이야! 크하하!"
'어지럽네.'
딱 한마디로 정리가 되는 집무실의 상황이었다.
에리엘과 노아만 있으면 조용조용할 텐데.
헨리크 공작 한명이 늘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시끄러워지는 건가.
방금 전까지 적귀와 얘기를 나누고 와서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인데.
헨리크 공작이 이렇게 떠드니 머리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하네.
에리엘이 건네는 찻잔을 받으며 눈을 마주쳤다.
헨리크 공작이 찾아온 이 상황이 달갑진 않은지 미묘한 눈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헨리크 공작님과 할 얘기가 있었는데 잘 됐습니다."
"그래! 어떤 얘기지? 던전에서 했던 그 얘기인가?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군!"
"예. 맞습니다. 작전에 관한 얘기입니다.
헨리크 공작님은 에리엘 준장님과 같이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이후 작전에서 크게 전투할 기회가 생길테니까요."
에리엘하고 같이 움직이는 게 헨리크 공작에게도 편하다.
안다이얄 거점 쪽은 에우제니아가 있어서 충분히 강한 편이니까.
헨리크 공작이 하이벤 산맥 쪽에 있는 게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이다.
"그래? 그렇다면 여기에서 대련이나 하고 있으면 되겠군!
에리엘! 빨리 대련장으로 가지!"
헨리크 공작이 에리엘을 달달 볶으려 한다.
내가 없는 동안 에리엘에게 똑같은 얘기를 했겠지.
에리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헨리크 공작. 대련장으로 가도록 하지.
강한윤. 미안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을 것 같군."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복귀를 해야 하니까요."
세베라를 데리고 카브란 산맥 쪽으로 가야한다.
여기에서 더 머무르고 싶지만 에우제니아도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있을 터다.
에리엘과 헨리크 공작은 대련장으로 향했다.
이번에 새로 얻은 폭군의 방패를 사용해볼 생각인가 보다.
'헨리크 공작 덕에 에리엘은 강해지겠네.'
영웅은 강자와 싸우다보면 강해진다.
그 만큼의 경험치를 얻기 때문이다
에리엘은 계속해서 강해지겠지.
소드마스터 중급 정도의 실력까지 금방 성장할 거다.
"그럼 우리도 카브란 산맥으로 가자."
집무실에 남아있는 노아에게 말했다.
이제는 카브란 산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크윽... 죽을 것 같아..."
"하아.. 하아... 후우..."
체력이 저질인 세베라와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다. 쉬지 않고 산악행군을 하는 건 체력 5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다.
세베라도 마찬가지로 체력이 저조하다.
체력 7.
나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그런 마법사와 작전 장교가 같이 퍼지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마나도 봉인되어있는 상태라 더욱 힘들겠지.
"그럼 쉬었다가 가자."
노아의 말대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옆엔 세베라도 마찬가지로 돌에 주저앉는다.
마침 쉬기도 좋은 곳이었다.
여기는 두 갈래 길이 나있는 지점이었으니까.
왼쪽으로는 카브란 산맥.
오른쪽으로는 안다이얄 거점으로 갈 수 있다.
인벤토리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우리는 카브란 산맥으로 갈 거야."
"카브란 산맥? 왜?"
"내가 볼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얘한테 있거든."
"어? 나 말하는 거야?"
물을 마시고 있던 세베라가 고개를 들었다.
"안다이얄 거점으로 데려간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녀에겐 다른 일을 시킬 예정이거든."
"일? 무슨 일을 시킨다고?"
"마법에 관련된 일이야."
마탑주인 만큼 부려먹을 곳도 많지.
나는 세베라를 어디까지 부려먹을까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세베라. 마법 각인 할 줄 알지?"
"그 정도쯤은 할 줄 알지. 그건 연금술의 기본이니까!"
"그러면 충분하네."
내가 알고 있던 정보가 맞는 지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녀의 마법 경지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해서다.
일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아에게 말했다.
"노아 너는 안다이얄 거점 쪽으로 이동해. 우리는 카브란 산맥으로 갈 테니까."
"단 둘이면 위험하지 않겠어? 혹시나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아. 라이라 씨가 있었네요."
옆에서 스르륵 등장한 라이라.
모습을 드러내자 노아가 수긍했다.
이러면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에우제니아 사령관님에게 다음날 올라가겠다고 전해줘. 작전 준비할 것도 있거든."
"그럼 빨라도 내일 보겠네?"
"쓸쓸해서 그래?"
"그런 건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지만 노아의 얼굴 한편에는 씁쓸함이 묻어있다.
나는 노아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녀가 느낄 쓸쓸함을 달래주고 싶었다.
어차피 주변에 눈치를 볼 사람도 없으니까.
"흐에에... 이렇게 과한 애정 표현은..."
아니, 세베라도 있었네.
애정행각에 내성이 없는 지 옆에서 과한 반응을 보인다.
세베라를 무시한 채로 등을 어루만지며 껴안았다.
10초 동안 이어진 포옹.
노아는 떨어지면서 아쉽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내일 봐."
"응."
이 대화를 끝으로 노아는 안다이얄 거점 쪽으로 걸어갔다.
누가 보면 몇날 며칠은 못 보는 사이인 줄 알겠다.
'특히 쓸쓸함을 못 견디는 노아라서 그렇지.'
애정표현을 좋아하고 같이 있는 건 더욱 좋아하는 노아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에우제니아도 못 본지 됐네.
내일 안다이얄에 도착하면 그녀부터 찾아가도록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카브란 산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카브란 산맥에 도착하니 마침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주점으로 들어갔다.
주점의 문을 열자 시선이 쏠린다.
오드웰 연합군의 인간.
옆트임이 심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
마나 봉인 목걸이를 차고 있는 포로.
우리의 조합이 이런데 시선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주변의 시선을 무시한 채 수프와 빵, 소시지를 주문했다.
"음."
더럽게 맛없다.
수프는 옥수수를 담갔다 뺐는지 맛은 밋밋하고 옥수수 향이 조금 난다.
빵은 딱딱하고 푸석푸석해서 씹을 때 마다 이가 부서질 것 같다.
수프에 담가서 먹으니 그나마 씹을 만 하다.
소시지는 일반 시중 마트에서 파는 맛이다.
"다 먹었지? 그럼 일어나자."
딱 봐도 라이라와 세베라도 딱 배를 채울 만큼만 먹었다.
수프, 빵, 소시지 뭐 하나 남기지 않은 게 없었으니까.
마을과 거리가 벌어지자 어두워진다.
라이라가 꺼낸 등불로 인해서 밝아지지만, 산속을 한밤중에 걷는 건 달갑지 않다.
쿵 쿵 쿵
달리스의 오두막에 도착하고서 문을 두드렸다.
"이 시간에 도대체 누가... 어...?"
문을 열면서 투덜거리는 달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틈 사이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랜만이네요 달리스."
"젠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