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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49화 (49/163)

〈 49화 〉 47.1화

* * *

에리엘은 강한윤에게 간호를 받던 때를 떠올린 뒤 얼굴을 붉혔다.

내가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지?

애인처럼 자연스럽게 물고 빨고.

가장 부끄러운 곳까지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다니.

아무리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 행위는 정상이 아니었다.

분위기에 휩쓸린 매우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

에리엘은 차를 마시려던 걸 멈췄다.

찻잔으로 향하던 손을 멈춘 뒤 약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결국 찻잔을 잡지 못했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 거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정말로 분위기에 휩쓸렸을 뿐인가?

스스로에게 되묻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다.'

에리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마음을 허락하고 싶은 사내가 강한윤이었다.

여유가 있을 때 저절로 얼굴이 떠올리는 상대도.

작업을 같이 할 상대를 찾으면 무심코 강한윤부터 찾고 있다.

그를 연모하고 있다.

에리엘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받아들였다.

"....."

그렇게 생각하니 여태까지의 행동이 더욱 부끄러웠다.

강한윤도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으리라.

하지만 어떻게 얼굴을 봐야할 지 모르겠다.

부끄러웠다.

에리엘은 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를 마시려 했지만, 들어 올린 찻잔이 부들거렸다.

"...젠장."

강한윤을 생각하자 마음이 진정 되지 않았다.

에리엘의 붉어진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

에리엘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드디어. 애원하던 진급을 할 수 있었다.

진급 신고 보고서를 받아든 에리엘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별을 달게 되다니.'

원래대로라면 족히 3년은 더 걸릴 거라 예상했건만.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몸이 간질간질 거리면서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에리엘은 이 순간에도 떠오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강한윤.'

그와 만나고 난 뒤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사내 덕에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얻어버렸다.

돌파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일주일도 안돼서 무너뜨렸고.

남부를 점령하고 오드웰 연합군의 남부 세력은 순식간에 커졌다.

인간 영지 3개를 단숨에 흡수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하는 강한윤을 에리엘은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이 사내의 끝은 어디일까.

어떤 것을 원하는 걸까.

돈에 대한 욕망이 강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권력? 그렇기엔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병사들을 계급으로 찍어 누르지도 않고 친절하게 대했다.

승리를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뭘 원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싶다.

에리엘의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고 아무도 없는 집무실에서 혼자 얼굴을 붉혔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에리엘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강한윤을 마음에 품고 있다고.

이게 사랑인지 그저 호기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유가 생기면 떠오르는 사람은 강한윤이었다.

항상 힘써주는 강한윤을 위해서 뭔가 해주고는 싶다.

하지만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 건 아니었다.

뭘 선물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그렇다고 따로 얘기할 이가 있나?

고민을 하던 에리엘은 강한윤과 가장 가까운 사이인 사람을 떠올렸다.

'노아 중위.'

강한윤과 노아가 애인관계라는 건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건가?

상관인 자신이 부하의 애인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하는 게?

다른 사람의 애인을 권력으로 빼앗으려는 나쁜 년으로 보이지 않을까.

"으으으..."

혼자서 고민한다고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노아 중위에게 말하기엔 애매한 내용이다.

말하면 그녀가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을까.

그러나 이 마음을 숨기고 싶진 않았다.

인생에서 남자를 만날 여유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검을 휘두르고 가문을 위해서 일하면서 남성과 접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그와 가까워지고 싶고.

연인처럼 다정하게 애정 행각을 하고 싶고.

같이 밤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오랜 고민을 떨쳐내고 싶었으니까.

부딪히자.

말을 해보고 나서 결정을 하자.

에리엘은 용기를 냈다.

"노아 중위."

"네."

집무실로 노아를 부른 에리엘은 평상시처럼 차를 대접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입은 열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하지?

"..."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에리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리엘 대령님. 혹시... 강한윤 중위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 어떻게 알았지?"

"그야.."

에리엘을 지금까지 봐온 노아라서 짐작할 수 있었다.

일에 관련된 얘기라면 쉽게 얘기를 꺼냈을 거고.

개인적이고 단순한 용무였다면 이렇게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었을 테니까.

반대로 개인적이고 무거운 분위기가 필요한 공통된 주제.

그렇다면 떠오르는 건 하나 뿐이었다.

자신의 애인인 강한윤이었다.

"그래서 맞습니까? 에리엘 대령님."

노아의 당당한 물음에 에리엘이 당황했다.

에리엘은 마음을 다잡은 뒤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 강한윤 중위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불렀다."

에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윤 중위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선물을 하고 싶다."

부하의 애인에게 선물할만한 것을 물어보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에리엘은 노아가 눈치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선물... 말입니까??"

"그렇지. 여태까지 잘 해주었으니까."

작전 수행으로 올린 성과도 좋고 문제 삼을 행동을 한 것도 없다.

에리엘은 본심을 살짝 숨겼다.

그저 강한윤이 작전을 잘해서.

부대에 도움이 됐기 때문에 선물을 하려는 거다.

자신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듯이 사적인 감정을 잊으려고 했다.

그래야 강한윤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 오히려 본심을 숨기고 있었다.

"강한윤에게 선물은... 음..."

그리고 노아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가 뭘 좋아했었지.

고기를 먹는 걸 좋아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꽁냥대는 걸 좋아하긴 하는데.

특별히 뭔가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에리엘 대령님..'

노아는 차를 마시는 척 맞은편에 앉아있는 에리엘을 힐끔 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심란한 표정이었다.

긴장을 감추려는 모습에서 더욱 긴장이 느껴졌다.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눈치를 보는 게 마치 자신 같았다.

강한윤과 애인관계가 되기 전의 자신.

무심코 거울을 봤다가 놀랐었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으니까.

행복하다는 듯이 헤실헤실 거렸으니까.

에리엘은 그때의 노아와 비슷해보였다.

그 표정을 숨기려고 애쓰는 것까지.

누가 보더라도 에리엘은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하아. 강한윤은 여자를 꼬시는 페로몬이라도 뿌리는 건지.

노아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강한윤 중위에게 선물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에리엘 대령님이 진심을 내보인다면 좋아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노아가 이어서 말했다.

"진심이라."

진심이 담긴 선물이라는 건 뭘까.

에리엘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에리엘 대령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노아 중위?"

"혹시 그를 좋아하시는 겁니까?"

노아의 물음에 에리엘이 굳어버렸다.

"... 아니다. 내가 그를 좋아할 리가 없지. 노아 중위의 애인인데 말이야."

괴로운 표정을 일순간이지만 참지 못했다.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올렸으니까.

그리고 노아는 그런 에리엘의 모습을 보았다.

노아는 조용히 에리엘의 손을 붙잡았다.

"에리엘 대령님. 저를 신경 쓰신다고 마음을 숨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의 감정을 제가 억제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노아 중위의 생각은 그런 건가."

"그리고 강한윤의 마음을 막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저의 욕심일 뿐이니까요."

"노아 중위."

"제가 확실하게 말하려는 건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겁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예. 그냥 덮치셔도 됩니다."

"푸흡... 뭐.. 뭐라고?"

노아의 대답에 에리엘은 마시고 있던 차를 조금 뿜어버렸다.

지금 잘못 들은 게 아닌 건가?

노아를 바라보자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에리엘 대령님은 강한윤 중위를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에리엘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본 노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말을 이었다.

"그 편이 강한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테니까요.

에리엘 대령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대령님은 그를 멋대로 휘어잡고 그러실 분은 아니지 않나요?"

"그거야.. 당연하다."

"그렇다면 본심을 전하세요."

노아의 얘기를 들은 에리엘은 감동했다.

자신이 노아의 상황이었다면 마음 편하게 허락했을까?

에리엘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한윤 같은 사내를 다른 여인들에게 넘겨주긴 아깝지.

욕심이 절로 생기는 사내였으니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결론은 노아가 대단하다는 거였다.

에리엘의 마음속에 노아의 이미지가 추가됐다.

유능한 정찰부대 장교에서 영웅을 보필하는 현모양처까지.

"그렇다면 강한윤에게 줄 선물은.."

"저라면 덮쳤습니다. 그것만큼 기뻐하는 게 없을 테니까요."

"..."

확실히 그럴 것 같았다.

노아의 대답을 들은 에리엘은 조용히 차만 마셨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끝냈다.

"노아 중위. 이런 얘기를 꺼내기엔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군."

"아닙니다. 오히려 에리엘 대령님이 저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차를 다 마신 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를 오래 나누기도 했고, 훈련을 해야할 시간이 다가왔으니까.

노아가 나가기 위해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번에 북부로 올라간 날 밤에 자리를 비워드리겠습니다. 에리엘 대령님."

"... 노아 중위."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가.

북부에 올라간 당일이라면 오랜만에 만나서 기쁠 텐데.

그런 자리를 양보해주다니.

에리엘은 또 다시 감동했다.

수십일 만에 강한윤과 만나는 날이다.

그런데 그 날을 비워준다니 정말로 쉽지 않은 선택이다.

에리엘이 감동에 젖어있을 때

'강한윤을 밤에 상대하려면 에리엘 대령님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노아는 강한윤의 욕구를 혼자 받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욕구를 해소시켜주려면 무조건 에리엘 대령님이 필요하다. 고 결론을 내렸다.

자신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매번 실감했으니까.

"고맙다. 노아 중위."

"아닙니다."

그렇게 서로의 생각이 교차했다.

노아는 자신의 소대로 돌아갔고.

에리엘은 집무실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이번에 그에게 진심을 전하자.'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북부로 올라간 당일 날 저녁.

"...오늘도 마사지를 부탁해도 되겠나? 강한윤 대위."

에리엘은 붉게 물든 얼굴로 강한윤에게 속삭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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