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6화
* * *
"노아. 내 생각난다고 울지 마."
"안 그러거든? 내가 무슨 애인 줄 알아?"
애는 아니지만, 마음이 여린 건 맞지. 내가 없으면 밤잠 설칠텐데 어쩌려나.
노아가 방에 있는 곰인형을 껴안고 쓸쓸함을 달래는 모습을 상상했다.
"오면 휴가내고 놀러가자. 어때?"
".. 그래. 빨리돌아와."
이렇게 기대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내 예상보다 훨씬 기대를 하는 건지 노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북부를 다녀와서 노아랑 찐하게 놀아줄 계획을 세워보자.
다프닐로 가는 마차를 타기 전에 가볍게 껴안고 입맞춤을 나눴다.
"다녀올게."
인사를 한 뒤에 헤어졌다. 마차에 오르면서 노아와 떨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거기에 에리엘하고도 좋은 분위기가 돼서 아쉬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북부로 가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지금 좀 쉴까 하는 타이밍에 가는 건 싫다.
"하아. 시발."
익숙한 도시다.
도착한 편지 한 통에 의해서 나는 다프닐로 돌아왔다.
루프란에서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다프닐로 복귀를 해야 하지?
그런 의문이 샘솟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저지른 짓이니까.
그런데 세계수 인트라넷 이거 추적 안되는 거 아니었냐고.
다들 초성으로 바꿔서 마음편히 조리돌림하고, 모든 아이디가 익명으로 표기되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디도 당연히 익명이었는데 어떻게 찾은 걸까.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좆됐고 북부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 북부를 언제 한 번 가야 한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럴 줄은 몰랐지."
마차에서 내린 뒤에 잠시 휴식하고, 다른 마차에 올라탔다.
단번에 북부로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친 말을 바꾸기 위해 중간 거점을 계속 들려야 한다.
북부까지 마차만 타고 간다면 한달은 넘게 걸리겠지만.
다행히 북부와 남부를 잇는 포탈이 있다.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순간이동 포탈. 그거 맞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도 닷새는 족히 걸릴테니 지루한건 매한가지다.
게임이었다면 스킵버튼을 눌러서 시간을 절약했을 텐데. 오늘따라 스킵이 유난히 그립다.
이왕이면 포탈을 곳곳에 깔아주면 안되나. 닷새를 어떻게 하면서 보내야 하지?
북부로 가면서 지루할 것을 생각하니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끌려가듯이 마차에 올랐다. 아니 실제로 끌려가는 건 맞잖아.
망할.
노아나 에리엘이 있다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텐데.
혼자서 북부를 가는 건 고역이다. 나는 마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드르륵 드륵
마차가 천천히 움직인다. 북부로 가는 일정의 시작이다.
지루한 날의 시작이네. 하아.
더럽게 흔들리지만 누워서 잘까. 하고 옆에 손을 짚으니 뭔가가 있다.
물컹.
물컹물컹한 촉감이 느껴졌다.
"어우 씨팔!! 깜짝이야!!!!!"
나는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 곳엔 누군가 앉아 있었다.
붉은 머리칼의 여인. 라이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그녀지만, 지금은 시녀복을 입고 있다.
세계관에서 손 꼽힐 정도의 미녀고, 눈물점이 남자를 매혹하는 페로몬을 풍기는 것 같다.
이런 미녀랑 같이 마차에 타고 있다니. 놀랐다.
아니 진짜 놀랐다. 언제부터 마차에 앉아 있었지?
"숙녀의 몸을 그렇게... 거칠게 만지시다니.. 너무해요..."
그녀가 연약한 척을 하며 순결한 척 내숭을 떤다.
하지만 인생의 매운맛과 쓴맛을 농축한 암흑가의 여제다.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겠지. 이런 걸로 진심을 내보일 리가 없다.
"... 저희는 거래가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아요. 끝이죠."
"시발. 설마 저를 죽이러 온 겁니까?"
누군가 나를 암살해서 보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만 있다면 내 목숨을 취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을 테니까.
몸 값이 얼마든 간에 대륙에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인물이 둘 셋쯤은 존재한다.
하지만 라이라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중위님에게 관심이 생겨서요."
후후. 하고 작게 웃는 그녀를 보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왜 나한테 관심을 가져?
라이라가 관심을 가지면 상대에 대해서 알기 위해 집착한다.
스토킹은 당연하고 온갖 뒷조사도 할 텐데. 벌써 머리가 아팠다.
무엇보다 시녀 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아예 작정을 하고 따라온 거다.
이대로면 북부에 갈 수 없다. 라이라와 함께 이동한다고?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그녀를 완전하게 믿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마차를 멈추기 위해 문에 손을 올렸다.
"...."
목에 무언가가 닿아있다. 차가움이 목 언저리에서부터 퍼졌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니 라이라가 웃으며 단검을 겨누고 있다.
식은땀 한 방울이 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그러지 마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요."
진짜 그런 사이 아니라고! 의뢰를 한 번 맡긴 사이일 뿐인다.
근데 왜 멋대로 진도를 나가는 건데? 젠장.
목에 아직도 닿아있는 칼날에 머릿속이 새햐얘졌다.
라이라의 단검에 죽고 싶지 않으니, 나는 마차를 세우려는 시도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또 다시 문에 손을 올린다? 다음에는 경고도 없이 저승 편도 티켓을 끊을 수도 있다.
게임에서도 많은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그녀의 잔혹함만은 유명했다.
"저는 문제가 생긴다면 데려갈 수 없어요."
"생기지 않을 거예요.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해결 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녀의 밝은 미소를 보니 마음이 안심이 되기는 개뿔.
속이 답답해졌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거지?
냉혹한 킬러와 북부까지 가기는 싫지만, 그 킬러에게 죽임을 당하는 건 더더욱 싫다.
"하아... 일단... 알겠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시녀 한명과 북부로 향하게 되었다.
***
의외로 라이라는 괜찮은 거 같은데??
나는 마차에서 라이라의 시중을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법 배낭에서 여러 가지 도구를 꺼내서 차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입이 심심하지 않게 과일도 정성스레 깎아준다.
"..."
독이 든 건 아니겠지. 과일을 집어서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자 시선이 느껴진다.
내 옆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라이라다.
의심은 생기지만 별 달리 선택지도 없으니 입에 넣었다. 맛있기만 하다.
이거 사실 그냥 관심이 생겨서 따라왔을 뿐이지, 큰 생각은 없는 거 아닌 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라이라는 진심으로 잘해주는 중이다.
"아직도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
그녀의 말에 내가 힐끔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어떻게 믿어?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뭐... 그러실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목숨을 취하려 했으면 수십 번도 넘게 기회가 있었다고요."
그렇긴 하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수 많은 기회가 있었으니까.
그녀는 단검으로 나의 목숨을 간단하게 앗아갈 수 있는 실력자다.
생사여탈권은 그녀가 일방적으로 쥐고 있다.
"저는 목숨을 취할 생각이 없어요. 그래도 믿음이 가지 않나요?"
"....."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결정을 내렸다.
"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믿을 게."
"... 썩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네요."
하지만 이게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의 대답이었다.
거짓말로 라이라를 완벽하게 속이려는 시도를 한다?
차라리 어중간한 진실을 대답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단 둘이 있을 땐 편한 모습으로 있어 줘. 계속 이렇게 하고 있으면 나도 불편하거든."
꾸밀 대로 꾸며진 시녀의 모습과 행동으로 떡칠 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색하다.
알고 있는 이미지와 부딪혀서,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인지된다.
그게 나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럼 그러죠."
라이라가 대답한 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래 이게 본 모습 쪽에 가깝지.
진짜 문제는 라이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건데. 전혀 예상이 가지 않는다.
애초에 음지에서 구를 대로 구른 여자를 내가 어떻게 아냐고.
게임에서도 많은 정보를 풀지 않아서 NPC에 불과한 여인이다.
내 시선을 느낀 라이라가 담배를 한모금 빤 뒤에 말을 이었다.
"후우... 뭘 봐요?"
진짜 왜 따라온 거지.
고인물인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
"말도 지쳤고 날도 어둑해졌으니 오늘은 이 마을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중위님."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오크 마부의 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부가 그렇다는 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토를 다는 것도 이상하다.
저녁도 간단하게 먹은 다음에 우리는 들어갈 여관을 찾았다.
마부는 할 일이 있다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고, 남은 것은 나와 라이라 뿐이다.
"1인 1실로 주세요."
당연하지만, 라이라와 각방을 잡았다.
라이라와 2인 1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 패스다.
무슨 일의 범주에 야한 일은 포함되지 않는다. 포함됐으면 얼씨구나 2인 1실을 잡았겠지.
라이라와 나는 방 열쇠를 각자 나눠 가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라이라를 지켜본 뒤에,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있는 방. 깔끔하다고 해야하나 황량하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누웠다.
급격한 피로가 느껴졌다.
마차를 타서 피곤한 걸까. 신경을 곤두세워서 피곤한 걸까. 아니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난 뒤에 다리를 쭉 뻗었다.
옷을 벗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졸음이 몰려온다.
조금 목이 답답하다는 느낌에 상의만 살짝 풀어헤친 뒤, 눈을 감았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의식이 천천히 어둠속으로 가라 앉았다.
*
찰칵 끼익.
잠금 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렸다.
방 안에 강한윤이 곤히 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라이라는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리고 라이라가 천천히 침대로 다가왔다.
약의 효과가 제대로 돌고 있는지 확인을 끝낸 그녀는 답답함에 웃옷을 벗어버렸다.
코르셋 때문에 숨이 쉬어지질 않아. 누가 이딴 걸 만든 건지.
평소처럼 옆트임이 나있는 드레스로 갈아입으니 몸이 편해졌다.
라이라는 침대에 걸터앉은 뒤,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얼굴은 조금 내 취향일 지도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한 라이라는 사내의 입을 살짝 벌린 뒤, 약을 하나 둘 씩 흘려 넣었다.
자백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최음제가 좋다.
이성을 잃어버리는 데 도움을 주고 마음의 벽이 완화된다.
강력한 자백제와 최음제를 순서와 용량을 지켜서 먹였다.
일을 끝낸 라이라는 약효가 돌 때까지 멍하니 기다렸다.
후우. 굳이 이런 수고를 겪어야하다니. 무능한 길드원들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지.
고작 사내 한 명의 정보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리고 직접 일을 진행해야한다는 점이 아니꼬운 라이라였다.
한 편으로는 직접 움직이게 만든 이 사내에게 궁금증을 느꼈다.
첫 만남 때부터 자신을 아는 듯이 반응하고 정보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아지트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VIP 고객들을 제외한다면 암호와 장소를 아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VIP 고객 중에 누군가 정보를 흘린 건가 싶어서 뒷조사를 해보았다.
심한 경우엔 자백제를 먹여서 정보를 캐냈지만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곧 있으면 아는 것은 전부 술술 불게 만들 참이었다.
라이라가 강한윤의 얼굴을 콕 찔러보기도 하고 뺨을 톡톡 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약의 효과가 제대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녀는 강한윤의 몸을 살폈다.
최음제의 효과가 제대로 들어갔는 지 바지가 볼록 솟아있었다.
"...일을 시작할 때네."
최음제의 효과가 더욱 잘 돌도록 흥분을 유지해야 하는게 중요한 포인트였다.
"어머."
강한윤의 바지를 벗겨낸 라이라가 놀랐다.
발기가 반쯤 됐는데 이 크기라고?
인생을 살면서 처음 보는 크기에 놀랐지만, 일은 진행해야 한다.
라이라가 자지를 붙잡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풀발기가 되면서 자지의 우람한 자태가 드러났다.
이건.. 조금 탐날 지도.
자지를 슬슬 쓸어만져주니 강한윤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그래 그렇게 시원하게 싸버리렴.
사정을 하고 난다면 거기서부터 자백의 시간이니까.
강한윤이 가진 정보를 얻을 것을 상상하며 라이라는 입고리를 슬며시 올렸다.
그리고
[수면제의 효과에 저항합니다.]
[최음제의 효과에 저항합니다.]
[높은 재치로 인하여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높은 재치로 인하여 최음제를 분석, 습득합니다.]
[방중술 최음향을 습득하였습니다.]
[방중술 각인을 습득하였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메세지 소리를 들은 강한윤이 깨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