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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기둥서방이 되었다-139화 (139/192)

〈 139화 〉 킹 메이커 #8

* * *

“ 크으윽?! ”

더크가 세 놈의 허벅지를 꿰뚫자 자연스레 낮은 비명소리가 새어나왔고, 온 몸으로 바닥을 쓸 듯 쓰러졌다.

있는 힘껏 달리던 도중 강제로 멈추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로 인해 허벅지에 칼날이 꽂힌 것도 모자라 바닥에 쓸려, 누가 봐도 참 아플 것 같은 몰골이었다.

“ 으으… 이 망할 쥐새끼가! ”

내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놈들 곁으로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욕을 뱉어댔다.

그러다 어둠속에 서 있는 나를 보고는 입을 꾹 다물더니, 흔들리는 눈빛을 띤 채 입을 열었다.

어둠에 눈에 익은 덕에 놈들의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 너… 쥐새끼가 아니구나. 쥐새끼들은 절대 너처럼 클 수가 없어. 대체 어느 놈이냐? ”

“ 네 알 바 아니지. ”

종족 특징이 두드러지는 귀도 머리칼에 가려져 있는데다 복면까지 쓰고 있으니, 내가 수인이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는 모양이었다.

몰래 움직이고 싶은 입장에서는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말없이 가장 먼저 말을 건 한가운데 놈의 두 팔을 양 손으로 잡아 있는 힘껏 비틀었다.

뿌드득, 하고 뼈와 근육이 뒤틀리는 섬뜩한 소리가 귀에 쏙 박혔다.

각오하고 저질렀음에도 순간적으로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 끄아악!! ”

팔이 뒤틀린 놈이 아주 우렁차게 비명을 질러댔다.

허벅지에 더크가 박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통이 클 테니 당연했다.

칼에 박히는 통증이야 잠시 화끈거리고 끝이라도, 이렇게 뒤틀리고 나면 끝도 없을 터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의 비명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했는데, 약간 조급했던 탓에 팔부터 꺾고 봤다.

그렇기에,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남은 두 놈의 옷부터 벗겨 재갈 대신으로 사용했다.

둘둘 말아 둔 옷을 입에 물려두면 소리도 못 지르고 혀도 깨물지 못해, 여러모로 참 편했다.

더구나 마음이 편하면 여유 있게 행동할 수 있기 마련이라, 가슴 졸이는 일 없이 남은 두 놈의 팔을 마저 꺾어버릴 수 있었다.

어째서 굳이 팔을 꺾느냐고 묻는다면, 고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곤한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었다.

억눌린 비명소리가 재갈에 스며들었고, 그를 뒤따르듯 많은 발소리가 등 뒤에서 점점 커져갔다.

무장을 마치자마자 급히 달려온 서인족 전사들이었다.

나는 다급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열려는 서인족들을 향해 시선을 주며, 입술에 오른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잠시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다.

미리 말은 해 뒀지만 급한 상황이니만큼 말실수를 할 수도 있었기에.

다행히 서인족들은 내 부탁에 아주 잘 따라줬다.

그것이 눈치가 빠른 탓인지, 혹은 시키니까 그냥 따른 것인지는 모르나 참 감사했다.

“ 우선 놈들을 거점 근처로 옮기겠습니다. 좀 도와주시죠. ”

원래 같았으면 힘차게 한 마디 할 법 했으나, 서인족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놈들의 다리를 붙잡고는 땅에다 질질 끌었다.

굳이 정성스럽게 들어서 옮길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덤으로 고통도 좀 주고.

그동안 부상 입은 사람은 따로 부축을 받은 뒤 응급처치를 받고, 덩치 세 놈은 모닥불 앞에서 손목이 묶인 채 한껏 인상을 찡그렸다.

부러진 팔이 강제로 묶여 꼼짝 못하는 신세라 그런가보다.

“ 대… 으음. ”

어느새 한동안 언덕을 감시하던 이브가 조용히 내려와, 말을 하려다 말고 낮게 신음했다.

평소처럼 대공이라 부를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 주인님. 뒤를 쫓는 놈들은 없어 보입니다. ”

그러다, 나를 주인님이라 부르며 말문을 텄다.

넓게 보면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묘하게 오싹한 느낌이었다.

더구나 평소 나긋하고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사무적이고 딱딱한 투를 사용했기에 내심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단숨에 호칭은 물론 말투까지 비위를 맞추는 것을 보니, 이브도세상에 참 많이 물들었구나 싶다.

“ 그래. 수고했다. 수도 쪽은 어떠냐? ”

“ 다행히 성벽과 거리가 먼 곳이라 사람이 지른 비명소리로 느끼지는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수색을 보내려 하는 등 분주한 기색도 없어, 굳이 거처를 옮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성문과 제법 거리가 떨어진 언덕이기에 사람의 두 눈으로 살피기엔 어려우나, 이브라면 가능할 만도 했다.

엘프처럼 시력이 좋은 것은 아니나 마법을 사용하면 충분했다.

“ 그것 참 다행이구나. 마음이 급한 나머지 놈들의 입도 막지 않고 팔을 꺾어버렸는데… 참 다행이야. ”

나는 호흡을 고르며 한 숨 돌린 뒤, 한 군데 뭉쳐있는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본의 아니게 좋은 떡이 굴러들어온 셈이라 충분히 꼭꼭 씹어 먹을 생각이었다.

“ 아무튼, 이제 슬슬 이놈들이 어느 끄나풀인지 알아봐야겠는데……. ”

슥. 나는 놈들의 눈에 띄지 않는 등 뒤로 발을 옮긴 뒤, 눈을 멀뚱멀뚱 뜬 채 나를 바라보는 서인족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잘못한 사람이 사죄할 때나 보일 법한 태도였다.

그에 서인족들이 몹시 당황해했으나, 곧 왜 그랬는지 알겠다는 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태도를 바꿀 테니 미리 양해해 달라는 것을 이해한 눈치였다.

“ 호인족이군요. 검정과 주황의 줄무늬로 이루어진 뾰족한 귀는 호인족 뿐입니다. ”

“ 그렇군. 호인족이긴 하겠지. 하지만, 이놈들이 꼭 호인족 아래에 있는 놈이라 볼 수는 없지 않겠나. 가령, 따로 지은바 죄가 커서 쫓겨난 놈들이 다른 종족에 몸을 기대는 일도 있겠지. ”

호인족이구나.

나는 자연스럽게 놈들의 종족을 말하는 서인족 남자의 잔머리에 감사하며, 호인족 놈들의 눈앞에 섰다.

그러곤 내가 가장 먼저 꺾은 놈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주었다.

“ 흐음. 제 주제를 파악한 모양이구나.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보니 참 기분이 좋아. ”

재갈을 풀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더니, 쥐 죽은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덕분에 귀가 따가울 일이 없어 참 고맙긴 한데, 우물쭈물하는 기색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마치 겁이라도 먹은 모양새였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착각이 아닐 수도 있으니… 일단 한 번 건드려볼까.

“ 흐음. 왜 이렇게 몸을 떠는 건지 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음에도 그리 추운 것이냐? 어지간히 약한 놈이로군. ”

“ 뭐라?! ”

약한 놈이라는 말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놈이 버럭 소리를 냈다.

팔이 꺾였음에도 아직 팔팔한 것을 보니 강하다 평가할 만 했다.

아니면, 아직까지 정신이 구석에 몰리지는 않았거나.

“ 왜? 약하다는 말은 못 참겠느냐? 하지만 현실이 이러하지 않느냐. ”

“ 크으윽…! 네, 네놈이 지금 무슨 짓… 끄으으! ”

놈은 더한 도발에 화를 내다 말고 얼굴 근육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렸다.

놈의 허벅지에 박힌 더크를 톡톡 두드리며 자극하다 말도 없이 뽑아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 강하게 살려는 건 좋다만, 때를 잘 알아야지. 지금 네놈, 그리고 네 뒤에 선 놈들의 목숭이 오롯이 내 손에 달렸다는 걸 잊지 말도록. ”

“ 이, 씹어 먹을 개새끼가……. ”

“ 어허, 개새끼라니. 만약 견인족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진즉 그 예의 없는 주둥이를 걷어찼을 것이야. 아니면 찢어버리던가. ”

나는 놈의 약이 오르도록 놀리는 한편, 우리를 바라보는 서인족 중 하나를 불러 호인족 놈들의 다리를 치료하도록 했다.

간단한 붕대나 약초뿐이라 완치까지는 장담 못 해도 효과가 있음은 분명했다.

계속 허벅지에 더크를 꽃아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피 묻은 더크를 정성스럽게 닦아 피를 지운 뒤, 가볍게 불을 쬐어 열로 소독까지 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나 피를 가만히 두다 녹이 스는 것보다야 나을 듯싶었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호인족 놈들은 다르게 받아들인 걸까.

놈들의 허옇게 질린 낯빛이 붉고 샛노란 모닥불 너머로 떠올랐다.

“ 흐음. 혹시 이 칼로 네놈들을 고문하는 줄 알았나? ”

“ …할 테면 해 봐라. ”

“ 음? 그래. 나도 이런 야만스러운 짓은 영 내키질 않지만… 자네가 해 보라고 했으니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나는 불 때문에 날이 달아오른 더크를 바닥에 툭툭 두드리다 바닥에 꽂았다.

시간을 아끼고 효율적인 결과를 내고자 놈이 시키는 대로 한 번 지져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시 재갈을 물리고, 땅에 꽂아둔 더크를 뽑아 다시 한 번 불에 달구었다.

“ 으, 으으읍! ”

막상 강하게 나갈 때는 좋았지만, 상대가 정말로 이러리라고는 생각 못한 것일까.

나를 도발한 놈을 포함한 호인족 세 놈이 하나같이 억눌린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을 보며 일단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으나, 잠깐 겁을 먹었기에 저러는 것뿐이다.

곧 숨통 돌릴 여유를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존심을 세울 것이 뻔했다.

그럴 바에야 크게 한 방 질러 공포를 심어 주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다만, 이브에게 이런 못 볼 꼴을 보여줄 수는 없을 노릇이다.

그러니 날을 대기 전 이브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 너는 잠시 눈을 돌리고 있거라. 아니면 잠시 언덕 위로 올라 있거나. ”

“ …네. ”

이브는 다행히 내 뜻을 이해했는지, 군말도 하지 않고 언덕 위로 올랐다.

아마 본인이 거북해하는 이유도 있기에 멀찌감치 떨어지려는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이로서 준비는 다 끝난 셈이다.

“ 내 말에 순순히 따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앞뒤로 고개를 끄덕이거라. 하지만 늦기 않기를 바라마. 내가 정도를 잘 모르거든. ”

그 후로 정말 참담한 비명이 가슴을 울렸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고기 타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고문을 즐기는 것도 아니거니와 난생 처음 질러보는 것이기에 내심 마음이 무겁기도 했으나, 손은 그와 정 반대로 가볍기만 했다.

“ 으읍! 으으읍!! ”

찌르고, 지지고.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가슴이 다 식는 것만 같았다.

분명 겨울이 가고 조금씩 따뜻함이 느껴질 날씨였음에도 한겨울의 바람이 온 몸을 훑고 지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몇 분. 드디어 항복선언이 나왔다.

달군 칼날을 허벅지로 받느라 눈물 콧물 쏙 빼던 놈이 시킨 대로 격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 드디어 말할 생각이 들었나보군. ”

나는 싸늘하기 짝이 없는 기분과는 반대로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러고는 놈의 허벅지에 대고 있던 더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양 손으로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 예! 말하겠습니다! 뭐든 말할 테니 제발 더 이상은…! ”

극한 상황에서 제 몸을 지키는 걸 보면,그 기세 좋은 호랑이도 결국 짐승이라는 걸까.

아니면 사람의 성질이 섞여서 그런 걸까.

나로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가죽 한 장 벗겨보니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 좋다. 우선 네놈들은 몇이나 끌고 왔느냐? ”

“ 치, 칠십입니다…! 이번에는 쥐 새… 서인족 대표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요! ”

놈은 쥐새끼라 부르다 말고 서인족이라는 말을 썼다. 말을 잘못하다 불똥이 튈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30대 70이라. 쪽수로 따지면 두 배 이상 밀리는 상황이라 무심코 입을 살짝 벌렸다.

물론 호인족이 동원할 수 있는 전체 군대로 보면 몇 안 되는 수지만, 몇 수 아래를 잡고자 동원한 것 치고는 상당히 많아 보였다.

“ 전에는 몇이나 동원했지? ”

“ 그, 그 때는 사십이었습니다. ”

“ 마흔 다음에 칠십이라. 한심한 작태로구나. 너희들이 쥐새끼라 업신여기는 놈들을 잡고자 그렇게까지 하다니. ”

나는 보란 듯이 경멸을 하고, 한숨을 내쉰 뒤 다음 질문을 던졌다.

“ 선별식은 다른 부족이 알아서 머리를 숙이는 경우도 있다 들었다만… 네놈들과 손을 잡은 놈들이 또 누가 있느냐? 숨김없이 말해라. ”

“ 그, 그것이……. ”

기껏해야 다른 종족과 손을 잡고 있다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게 웬 걸?

허벅지가 엉망이 된 놈이 말꼬리를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누가 봐도 다른 속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만큼 수상쩍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침 잘 됐다 싶은 마음에 놈을 재촉했다.

“ 뭐냐? 말하지 않을 생각이더냐. 그렇다면 다시 매운 맛을 봐야겠구나. ”

엄밀히 말하면 매운맛이 아니라 뜨거운 맛이지만, 놈은 충분히 이해한 듯 새하얗게 질린 낯빛으로 다급히 소리쳤다.

내가 더크를 주워들자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다.

“ 제, 제국의 백작입니다! ”

칼을 쓸 일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길 잠시.

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뜬금없는 말에, 저도 모르게 낯빛이 굳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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