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마법사의 순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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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심히 한다.
늘 하던 마법 연구부터 시작하여 전술 공부까지 추가했음에도 불평 하나 없이 묵묵히 공부를 했다.
올리비아는 너무 열심히 하는 이브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영지 입장에서 봐도 큰 득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동기가 없음에도 늘 이런 모습을 보이면 묘하게 수상쩍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상 다크엘프 마을의 바지촌장을 맡고 있는 올리비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평소 이브와 가까이 지내는 아일라를 불러 물었다.
“ 그 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
아일라는 레드후드 용병단이 머무는 오두막 의자에 앉아, 그들이 만드는 와인을 들이키며 답했다.
모른다. 아일라가 모른다면 다른 다크엘프도 모를 테니 더 알아볼 여지가 없다.
평상시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촉이 날카롭게 선 올리비아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 묘한 계기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고집스러울 만큼 확신하고 있었다.
“ 에이. 빼지 말고 좀 가르쳐 줘. 따로 해코지 하려는 것도 아닌데 뭘. 애초에 내가 그럴 만한 입장도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그래. ”
“ 갑자기? 왜? ”
평소 마을에 관한 일은 부촌장이자 실질적 촌장인 오르커스에게 맡길 뿐, 정작 포도밭을 일구며 와인 만들기나 하던 여자가 올리비아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갑자기 크게 상관도 없던 이브에게 관심을 가진다?
아일라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수상쩍게 보일 뿐이었다.
“ 아니. 공작님 부부가 청문회 때문에 왕궁에 불려 간 이후부터 낌새가 영 이상했거든. 원래 제 할 일 묵묵히 하는 아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묘하게 무게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지……. ”
“ 무게감? 그 애가? ”
“ 응. 그렇다니까. ”
하지만 올리비아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아일라의 가슴이 무겁게 짓눌렸다.
이브의 친구로서 그 마음을 알아, 앞뒤 사정을 전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빠졌다니.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일라는 집착이 깊어 광기로까지 번져버린 여공작의 소문을 떠올리며,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반반한 대공 주위에 여자가 꼬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성향임을 알았으니까.
“ 무게감, 무게감이라……. ”
“ 야, 제발. 뭐 좀 아는 거 같은데 가르쳐 주라. 이대로 놔두다 곪아 터지는 것보단 낫잖아. 내가 이래 뵈도 어느 정도 입김이 있으니까, 이렇게 잘 샤바샤바 해 볼게. 응? ”
올리비아는 아일라의 얼굴을 잠시 스쳐 간 그림자를 귀신같이 알아챈 탓에애교까지 부려댔다.
본래 성격이 능글맞은 덕에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도 거침이 없었다.
살살 긁어서 어떻게든 알아내야지.
올리비아는 공작령의 궁중마법사라 할 수 있을 이브가 엇나가서는 안 되고, 혹여나 그럴 낌새가 보인다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라우저 공작령에 머무는 백성 중 한 사람으로서.
또 엘렌의 친구로서.
아일라로서는 그런 올리비아의 시커먼 속내를 알 수 없었으나, 이브를 걱정하는 마음이 진심인 것 정도는 알았다.
이브 본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크게 보면 그런 셈이니까.
“ 하아……. ”
더구나 일을 미루기만 해선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항복을 입에 담는 대신 허탈함이 듬뿍 담긴 한숨을 내뱉었다.
“ 그 애… 아무래도 여기 대공을 좋아하는 것 같아. ”
“ 어? 진짜로?! ”
드디어 핵심이라 할 만한 이야기가 나올 낌새가 보이자, 올리비아는 깜짝 놀라 박수를 탁 쳤다.
내심 짐작했던 바가 들어맞았다는 달성감도 있었고, 정말 그랬구나 싶은 놀라움도 있었다.
“ 응. 나야 이쪽 마을에 와서 정착한지 얼마 안 됐으니 잘은 모르지만… 낌새만 봐서는 하루 이틀 일은 아닌 것 같아. ”
“ 그런 쪽으로 생각을 안 해 봐서 그런가? 전혀 몰랐어. 거 참… 대공이 워낙 곱상하게 생긴 탓에 일이 터지네. ”
생김새도 그러하지만, 책에 나올 것 같은 자상함까지 지닌 남자다.
올리비아는 그를 알기에 순진한 처녀가 쉬이 빠져드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브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인정한 것도 대공이라고 했으니, 안 빠져드는 것이 이상하겠지.
그나마 엘렌처럼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지 않는 수준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 그런데도 이렇다 할 낌새가 없는 건 참 신기하네. 남자한테 반하면 저도 모르게 애교도 떨 법 한데. ”
“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그 애 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어. 좀 더 복잡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꿀꺽.
올리비아는 아일라가 와인 마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반한 것 맞는 것 같은데 뭔가 있다.
올리비아도 이브와 나름대로 친분을 쌓긴 했으나, 아일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일라가 뭔가 있다고 말해버린 이상, 분명 무언가 있음이 분명했다.
올리비아는 우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쾌활한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떠들기도 하고, 옛 이야기도 거침없이 꺼내들었다.
아일라 또한 풍파가 많은 삶을 살았던지라 죽이 잘 맞았다.
그렇게 술자리를 가지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올리비아의 발걸음이 바로 옆 오두막에 머물고 있는 이브를 향했다.
“ 어… 올리비아 씨?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
“ 서로 이웃인데 바빠서 이야기 할 틈도 없었잖아? 간만에 친목 한 번 다져보려고. 들어가도 될까? ”
“ 아, 네. 물론이에요. ”
올리비아도 그렇지만, 이브 또한 제법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에 아침부터 일어나 있었다.
그 덕에 퇴짜 맞을 일 없이 이브의 오두막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럭저럭 친한 사이이기에 서로의 집을 왕래하는 것도 익숙하기는 하지만, 아침부터 친목이라.
이브는 이 기묘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별 의심 없이 차부터 대접할 생각을 굳혔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정령마법을 익히는 데도 도움을 주었던 여자니까.
“ 우선 차부터 드세요. ”
“ 고마워. 역시 아침은 느긋하게 차를 마셔야지. ”
포도잎을 가공하여 만든 차라 그런가, 은근히 포도향이 배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올리비아는 익숙한 향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본의 아니게 아침의 여유를 즐기다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다만, 그것도 잠시.
지금부터 할 이야기를 고려해 보면 차라리 차분한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올리바아의 입술이 열렸다.
“ 미안해. 사실 친목을 다지러 왔다는 건 거짓말이야.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들렀거든. ”
“ 아… 그러세요? ”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울 법도 했지만, 이브는 별 상관없다는 듯 태평하기 그지없는 투로 반문했다.
제법 친한 사이이기도 하고, 굳이 해가 될 거짓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리비아의 질문을 듣는 순간이브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갔다.
백지보다, 한 겨울의 설원보다 더욱 새하얗게.
“ 대공을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맞아? ”
“ 어…? 저어, 그게……. ”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고, 무언가 말을 해 보려고 해도 꾹 닫힌 입술 안에서 맴돌다 녹아버린다.
어떻게든 답을 짜내려 해도 새하얗게 몰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당황.
지금의 이브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 수 없었다.
“ 이. 일단 진정해! 이걸 가지고 몰아붙이려는 게 아니니까! ”
이브의 반응을 보니 사실임이 분명하지만, 우선 진정시키고 보는 것이 우선이다.
올리비아는 이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천천히 숨을 고르도록 했다.
당혹스러울 때 호흡을 고르면 차분함이 돌아오니까.
“ 하아……. ”
이브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차분함을 되찾았다.
당혹감에 물들어 있던 표정도 올리비아를 맞이했을 때처럼 차분해져 있었고,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도 사라져 있었다.
올리비아는 드디어 대화를 나눠 볼 수 있겠다 생각하며, 이브의 이성이 돌아왔음을 확인하고자 입을 열었다.
“ 이제 좀 괜찮아? 얘기할 수 있겠어? ”
“ 네, 네……. 괜찮아졌어요. ”
“ 미안해.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질문을 꺼낸 탓에 당혹스럽게 해 버렸어. ”
“ 아니에요. 올리비아 씨의 잘못이 아닌걸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
이브는 약간 풀 죽은 올리비아를 달래며 찻잔에 손을 얹었다.
지금도 여전히 당혹스럽기는 했으나 아무 생각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올리비아도 그를 느꼈기에 풀 죽은 기색을 풀었다.
“ 미안해.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말을 꺼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잊어줘. ”
잊어라. 더 이상 이와 관련한 주제를 꺼내지 않겠다는 말이었으나, 이브는 다르게 생각했다.
어차피 한 번 말을 꺼낸 이상 크던 작던 응어리가 질 것인데, 그런 응어리를 품고 지내면 속이 답답할 것이라고.
“ …말씀 드릴게요. 이미 짐작하시고 계시죠? ”
“ 대충은. 그런데… 정말 괜찮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
“ 괜찮아요. ”
후우. 이브는 잠시 숨을 쉬며 호흡을 고르더니, 눈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 제가 그 분을 마음에 품은 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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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르다 하더니, 그 때문이었나.
이브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 온 올리비아는 팔짱을 낀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브가 품은 마음이 엘렌보다도, 헬레나보다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깊은 것이 아니라, 넓다.
물론 그 깊이 또한 제법 남다르기는 하나, 두 여자가 품은 감정과 성질이 다르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품은 탓에 광기에 빠졌다면, 이브는 그를 포함한 단체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몸담은 환경에서 연이 닿은 사람들을 중요시 한다 볼 수 있었다.
헬레나나 엘렌처럼 광기 짙은 집착 정도는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보다 그 정도가 강하다는 점은 분명했다.
올리비아는 이걸 말해야 하나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결국 헬레나를 찾아 이 이야기를 털어 놓기로 결정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싶어 지나치겠지만, 공작가 내에서도 귀빈으로 취급하는 마법사가 엮여버렸으니까.
“ …그래? 그렇단 말이지? ”
크라우저 저택의 응접실.
전후사정을 들은 헬레나가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빛을 띠다, 곧 화를 가라앉히며 한탄했다.
이럴 것 같아 진즉부터 거리를 두도록 유도했는데결국 이 꼴이 나다니.
무거운 공기가 집무실을 짓누르는 가운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렌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지온은 없었다.
“ 대공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 ”
“ 어. 그 애는 좀 더 넓은 것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 같더라. 물론 대공에 대한 마음도 그 중 하나지만……. ”
“ 알았어요. 그만 물러나도 좋아요. ”
다소 이성이 돌아온 듯, 헬레나가 평소처럼 존댓말을 사용했다.
올리비아는 그 변화를 내심 다행이라 여기며, 인사를 마친 뒤 응접실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한시라도 빨리 무거운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집착.
지온은 그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생각만큼 크게 놀라지는 않을 테지만, 두 여자는 달랐다.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브는 지온이 추천한 인재이며, 그에 맞게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다.
성벽을 둘러싸듯 설치한 수면 마법진.
숲에 설치한 모기를 죽이는 마법진과 환영마법진의 설치 및 보수.
그리고 마법병단의 대장까지.
이미 빠져서는 안 될 중책을 맡고 있으며, 영지에 준 이익 또한 막대하다.
더구나 지온 하나만을 노린다면 모를까, 전부 소중하다고 하던 한 마디가 헬레나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 이건… 답이 잘 안 나오는데. ”
물론 마음먹기에 따라 이브를 잘라버릴 수도 있다.
엘렌을 거부했을 때에 비하면 위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헬레나는 좀처럼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영지를 위해 일하는 인재가 좋아한다고 말한 탓에.
그에 반해, 엘렌은 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헬레나가 온전히 차지하던 자리 일부를 억지로 얻어낸 처지이니만큼, 그를 가지고 불만을 토로할 자격이 없다 생각했으니까.
헬레나도 그것을 아는지,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두드리다 입을 열었다.
“ 이럴 때는… 본인에게 물어 답을 찾아볼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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