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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기둥서방이 되었다-34화 (34/192)

〈 34화 〉 다크엘프 용병 레드후드 #4

* * *

“ 야. 아직 어린 놈 같은데 얼른 나가지 그러냐? ”

내가 어느 술집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축객령이 날아들었다.

막 문을 열었기에 사람이라고는 날카로운 인상의 주인과 나 뿐이었다.

그렇기에 허전함과 적막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주인의 축객령을 무시한 채 카운터석에 자리 잡았다.주인과 눈을 마주보는 것이 가능한 자리였다.

순순히 물러나지 않은 이유는 굳이 다른 술집을 찾아보기가 귀찮았고, 무엇보다 아이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선 설령 아이의 주머니라도 털어먹을 놈들이 많을 것 같았으니까.

“ 야. 내말 못 들었냐? 당장 꺼……. ”

하지만, 상대가 계속하여 거절하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한껏 험악한 인상을 쓰는 사내의 목덜미에 더크를 들이대며 피식 웃었다.

말할 것도 없이 검은 연미복 재킷 안쪽에 숨겨둔 물건이었다.

내가 칼을 들이댄 이유는 간단했다. 쓸데없는 말은 집어 치우고 얌전히 손님이나 받으라는 뜻이었다.

“ 하아──. 이런 개 같은 놈을 봤나. 야, 그 칼 쓸 줄은 아냐?! ”

“ 이 영지에 오기 전에 도적들 모가지에 잘 꼽아줬지. ”

“ 아직도 되도 않은 지랄을……. ”

나는 한껏 열이 오른 사내의 목덜미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더크를 던졌다.

마치 쓰레기를 버리는 듯 가볍게 손목을 움직였을 뿐이나, 그 결과가 제법 살벌했다.

주인의 목덜미에 얇고 붉은 실선을 그리며 술을 놓아둔 진열대에 꽂힌 것이다.

“ 일부러 살짝 스치게 한 거야. 다음엔 머리통이다. 죽기 싫으면 얌전히 손님으로 받아. ”

“ 이 새끼…! ”

사내는 무척 화가 난 듯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물어뜯을 듯 덤벼들려 했으나, 내가 재킷 안쪽을 슬며시 보여주자 핏기가 싹 가신 듯한 얼굴을 했다.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하여 격양된 것이 연기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그제야 사내가 대화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 주머니 속에서 은화 세 개를 꺼내 카운터 위에 두었다.

“ 이건…? ”

“ 맥주 한 잔 줘. 나머지는 팁이고. ”

“ 팁이라……. ”

남자는 떨떠름한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잽싸게 은화를 받아 챙겼다.그리고 맥주 한 잔을 내 주었다.

본래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예의상 주문한 한 잔이었다.

나는 제법 커다란 잔에 담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본래 많이 마실 생각도 없지만, 미적지근한 맛이라 입을 대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맥주가 찰랑이는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은 뒤,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 사실 나는 상인이거든. 블루네일 왕국의 내전이 상상보다 길어져 적당히 한 몫 잡으려고 왔는데… 괜찮으면 들은 소문이라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 ”

“ 쯧. 이 돈은 팁이라는 거로군. ”

“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기밀 정보를 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현 상황이나 향간에 떠도는 소문 정도만 알려달라는 거니까. ”

“ …하는 수 없지. ”

사내는 받은 돈값을 치르겠다며 무뚝뚝한 말투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사하는 사람치고는 제법 고개가 빳빳해 보였으나, 조금 전 보다는 훨씬 우호적이었다.

내게 있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현 전황은 묘하게 고착되어 있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요충지라 할 수 있을 고지 하나를 두고 세 파벌이 다투는 가운데, 그 세력이 가장 큰 1왕자와 3왕자의 연합이 고지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것을 2왕자와 4왕자의 파벌이 연합하여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6.25에 있었던 고지전을 떠올렸다.

한 고지를 두고 피가 터지도록, 수많은 목숨을 버려가며 싸웠던 역사와 겹쳐 보인 탓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그래서 사실상 그쪽 영역을 두고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지만, 2왕자와 4왕자의 연합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하더군. 지금이야 손을 잡고 있어도, 고지를 점령하는 순간 분열이 일 지도 모른다고. ”

“ 으음……. ”

일시적으로 손을 잡은 이상 그 손을 언제 놓아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그 경우 패배한 1왕자의 위협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분열의 틈을 노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전략이었으니까.

남자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각 왕자가 어떻게 지내느냐는 것부터, 알게 모르게 부정이 일어나는 것 하며…….

“ 아. 그리고 현 상황이 고착화되는 데에는 레드후드의 역할이 좀 크다고 했던가? ”

그러던 중, 그의 입에서 내가 가장 원하던 정보가 흘러나왔다. 다름 아닌 엘렌에 관한 소식이었다.

그녀는 현재 1,3왕자 연합파벌에 붙어 진지 방어를 하거나, 몰래 아군 측의 보급선을 지켜 들이는 것도 담당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려 먹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엘렌은 기간이 아닌 건수로 계약을 치르는 여자다.

고로 강압에 의한 임무 수행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아마 그녀 자신의 의지가 가장 큰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자리를 떴겠지.

“ 그렇군. 덕분에 좋은 정보를 들었어. 신세 졌다. ”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들었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미련 없이 인사를 던진 뒤 자리를 떠, 약속했던 집결지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의외였다.

“ 어서 오십시오. 뭔가 성과는 있었습니까? ”

“ 예. 있다면 있었지요. 실은……. ”

나는 이 짧은 시간에 용케 식량을 팔아넘기고 온 덱스의 무리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전체적인 상황은 내가 들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좀 더 세부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같은 파벌 내에서도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 하는 문제 말이다.

“ 저희가 발 들인 곳은 격전지와도 비교적 떨어져 있어 안정적이고, 그래서 물자 흐름이 완전히 굳지 않은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잖습니까? ”

이득을 얻을 수 있으면 얻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장사가 목적이 아니라는 덱스의 말에 십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장사는 의심을 피하기 위한 수단일 뿐, 엘렌에게 접근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격전지에 많은 분들을 끌고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죠. 이득이 목적이 아니니만큼 갈 이유가 더욱 없기도 하고요. ”

“ 그러면… 이제부터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

어떻게 하느냐라.

나는 잠시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생각에 잠겼다.

이곳에서 격전지까지 가기엔 며칠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상인 행세를 하려면 다시 한 번 물품을 마련해야 했다. 이미 다 팔아버렸으니까.

하지만 블루네일 왕국 내에서 물건을 충당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국가 자체가 오랜 내전 상태이기에 필요한 물자가 대량으로 풀릴 것 같지도 않았고, 설령 풀린다 한들 그 값이 너무 높을 것이 분명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영지로 돌아갔다 다시 오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상행을 계속한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진짜로 위험해진다. 고작 위장 좀 하자고 그 꼴을 볼 수는 없었다.

“ …지금 막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선 적당한 숙소로 가죠. 거기서 이야기하겠습니다. ”

◎◎◎

여기서부터는 홀로 움직인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고로 적당한 숙소를 잡아 하룻밤 머무른 뒤, 덱스를 비롯한 모든 인원을 전부 영지로 돌려보냈다.

그들은 홀로 움직이기로 정한 나를 몹시 걱정했지만 어찌어찌 잘 돌려보냈다.

단체로 움직이면 더 눈에 띄고 위험하다는 내 이야기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돌려보낸 뒤 적당한 옷가게에 들러 적당히 깔끔한 옷을 사 입었다.

야영용품을 나눠받은 작은 짐마차 하나를 몰기엔 연미복이 너무 눈에 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괜찮았다 치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차림으로 다니는 것이 속이 편할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품이 헐렁헐렁한 옷을 입자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나를 향해 쏠리는 시선이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실감할 수도 있었다.

본래 연미복에 숨겨두었던 더크는 천을 감아 주머니에 넣어 두었고, 남은 것들은 짐마차 한 구석에 실어 두었다.

평소보다 무장 상태가 가벼워 불안할 법 했으나 애초에 맨손 격투가 주였다.

그래서인지 큰 부담은 없었다.

“ 혼자 자려니까 영 기분이 이상하네. ”

늦은 밤. 나는 숲 한편에서 야영을 했다. 본래 나무가 많은 블루네일이라 그런지 곳곳이 숲이었다.

그 탓에 으스스하기는 했지만, 떌감 구하기는 참 쉬웠다.

짐마차 옆에 텐트를 치고, 불을 때우고, 말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 후 짐칸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았다.

나뭇잎에 반쯤 가려져 있었으나 아름다운 밤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다.

은하수가 가로지르는 밤은 늘 곁에 있었지만, 오늘처럼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이 세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정신없이 지낸 탓일지도 모른다.

헬레나를 돌보느라, 훈련이나 잡일을 하느라… 참 바빴다.

“ 아참. ”

한껏 여유를 만끽하던 중, 나는 당황하여 급히 몸을 일으켰다.

혼자 자야 했기에 주위에 간단한 경보를 알려 줄 장치를 설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귀가 밝아진 덕에 부산스러운 기척이 느껴지면 깰 정도는 되었으나, 믿음직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조잡하게나마 나무와 나무 사이에, 또 텐트 근처에 실을 묶고 검게 칠한 작은 방울들을 간간히 매달았다.

빌어먹을 추억이 떠올라 구역질이 났지만 필요한 조치였다.

“ 아……. ”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진데다, 혼자서는 할 짓도 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밤하늘을 바라보다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 자는 것이 전부였다.

불을 피운 장작은 알아서 꺼질 테고, 꺼진다 한들 여름이라 크게 문제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텐트 내부에 제법 더운 공기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식이 끊어진 지 얼마쯤 되었을까.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던 나는 부산스러운 방울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더해 텐트 밖에서 낯선 기척이 느껴지자 졸음에 지친 뇌가 단숨에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이것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잠재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그저 놀라서 잠기운이 달아난 것일지도 모르고.

“ 으음……. ”

도적 같은 부류일 수도 있고,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니 무작정 칼을 던져 사람을 죽일 수도 없을 노릇인지라,나는 텐트 안에서 숨을 죽인 채 귀를 활짝 열었다.

혹여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으니, 그것을 듣고 판단하려는 생각이었다.

─시발?! 들켰어!

─병신같이 뭘 당황해! 들켰으면 당장 쑤셔!

망할.

나는 갑작스러운 소란 속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감스럽게도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도적인 듯싶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쩔지 모르나, 적어도 쑤신다는 말은 안 할 것 같았다.

“ 후우…! ”

그래서 나는 텐트가 상처입기 전에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물론 그 전에 호흡을 가다듬고, 텐트 안에 숨겨둔 더크를 챙겨 나왔다. 양 손에 두 자루, 주머니에 두 자루. 총 네 자루였다.

“ 시발! 깼…! ”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달빛도 새어 들어오고, 무엇보다 어둠에 눈이 익었기에 상대를 확인하는 것은 쉬웠다.

거기다 기척까지 생생히 느껴졌다. 덕분에 어디로 더크를 던져야 할 지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던진 더크는 남자의 복부 위쪽, 명치부근을 꿰뚫었다.

심장이나 목을 꿰뚫어 숨통을 끊고 싶었으나 아쉬운 결과였다.

그렇기에, 나는 곧장 허물어져가는 남자 쪽으로 덤벼들어, 곧장손에 든 더크를 목덜미에 꽂아버렸다.

“ 끄, 끄으으…! ”

그 결과, 남자는 이번에야말로 숨이 꺼진 듯 바닥에 축 늘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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