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다크엘프 용병 레드후드 #3
* * *
“ 틈을 보이지 마라! 그리고 틈이 보이면 찔러라! ”
우리는 당연한 말을 하며 도적들을 상대했다.
당연했지만, 한창 병기가 부딪히고 목숨이 오고가는 와중이었기에지키기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생사를 오가는 가운데 냉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급해하다 틈을 보일 수도 있었고, 너무 움츠러져 있다 틈을 보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물론 병사들도 잘 훈련되어 있기에 도적들을 하나 둘씩 침착하게 베는 중이었다.
“ 커헉! ”
목젖을 한 움큼 쥐어 뜯어내어 죽였다.
발목을 걷어차 주의를 돌리고, 그 틈을 타서 목젖을 뜯거나 절명할 만큼 강하게 후려쳤다.
죽어가는 도적이 남긴 무기는 줍자마자 남은 도적들에게 꽂아 넣었다. 가슴에 품은 더크 대신이었다.
목이 베여 죽고, 심장이 찔려 죽고, 그것도 아니라면 몸뚱어리에 긴 자상을 남기고 죽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개중에는 내가 던진 칼에 목이나 머리가, 혹은 배가 꿰뚫려 죽은 이들도 있었다.
“ 다들 무사하십니까?! ”
“ 예! 괜찮습니다! ”
도적의 전멸을 확인하고, 근처에 추가적인 적이 없는지 확인한 뒤 큰 소리를 냈다.
무기를 들고 싸운 이들은 하나같이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으나 하나같이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도 걱정하지 말라는 뜻에서 보인 미소이리라.
“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러분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가죠. ”
나는 사람들을 한명한명 꼼꼼히 살피며 상처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가벼운 상처도 내버려두면 탈이 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조치할 수 있을 때 조치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다행히 사람들이 자신 있게 외쳤던 대로 크게 상처 입은 사람은 없었다.
옷자락이 베인 사람은 여럿 있었으나 대부분이 작은 상처였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후미에 있던 짐마차에 담아 두었던 항아리를 빼 그 내용물을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발랐다.
몇 가지 약초를 조합하여 만든, 제법 효과가 좋은 연고였다.
그들은 내가 부족하나마 손을 닦고 연고를 발라주니 무척 감사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조금 전까지 도적들을 죽인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박한 반응이었다.
“ 자, 여러분에게는 죄송하지만… 도적의 시체는 전부 숲 한편에 묻어두고 가도록 하죠. ”
“ 예, 알겠습니다! ”
우리는 조를 이루어 도적의 시체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시체를 적당히 버리고 떠나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대로 놔두면 시체길이 될 것 같아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길바닥에는 도적들이 뿌린 피로 흥건했으나, 그것들은 도적들의 옷으로 최대한 말끔히 닦아냈다.
어차피 죽은 놈들의 옷가지였으니 이런 곳에 사용해도 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난생 처음 시체에서 옷을 벗겨내는 일은 참 묘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뭐라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묘했다.
“ 지… 아니, 블랙 님. 남은 병장기들은 어떻게 할까요? ”
나는 한 병사의 물음에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다소 더럽혀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쓸모가 있어 보였다.조금 닦아 쓴다면 충분히 재활용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죽은 사람의 무기를 주워 쓰는 것이 꺼림칙하여 버릴 생각도 했으나, 이번에는 실리를 우선하기로 했다.
도구에 죄는 없으니까.
“ 가볍게 감싸거나, 날이 물건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차곡차곡 정리해 주세요. 저희가 쓰도록 하겠습니다. ”
“ 알겠습니다. 이봐들! 시체 묻는 사람들 말고는 잠시 거들어 줘! ”
한 사람의 외침에 따라 몇 사람이 우르르 달라붙어 병기를 정리했다.
남은 도적들의 옷가지로 가볍게 피를 닦고, 천으로 감싸 비교적 빈공간이 있는 수레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칼집이 있으면 참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기습을 감행한 도적들이 칼집을 들고 오지 않았기에.
“ 시체 정리는 끝났습니다. ”
“ 무기 정리도 끝마쳤습니다. 상행에 다녀올 동안은 쓸만할 겁니다. ”
각자의 일을 마친 사람들이 내게 우르르 다가와 보고했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아 보였다.
“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정리도 끝났다면 잠시 휴식하고 출발하도록 하죠. ”
급한 마음에 곧장 서두를 법도 했으나, 나는 이쯤에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전투를 치르고 시체를 묻느라 진이 빠졌을 테니, 이쯤에서 한 번 숨을 돌리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일을 잘 하려면 충분한 휴식과 잠이 필수라고 생각했고.
“ 어이쿠! 감사합니다! ”
그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짐마차를 한쪽 구석으로 나란히 치우고, 주위에 둘러앉아 쉬기 시작했다.
금세 이야기꽃을 피우며 어깨에 힘을 빼는 모습을 보니 정말 철저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쉬어야지. 암.
나는 어느 새 옆으로 다가온 마부와 함께 긴 벤치 같은 마부석에 올라 앞을 응시했다.
사람들과 섞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앉아 짐칸 등받이에 기대는 것이 참 편했기 때문이다.
“ 한스 씨도 편하게 쉬시지 그러세요? 뭣하시면 짐칸 구석에 누우셔도 되는데. ”
나는 바닥을 비롯해 이곳저곳에 드러누운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핏 보면 긴장이 빠질 대로 빠진 듯이 보였으나, 앉아 있는 사람이 반 수 이상인 것을 보니 그런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조금 전 가볍게 내기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 그것으로 누울 사람을 정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 허허, 괜찮습니다. 저 같은 마부를 걱정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
“ 그런 말씀 마세요. 모두가 꼭 필요한 사람이니까. ”
나는 은근히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듯한 한스를 위로하며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현대라면 어린놈이 건방지다며 한 소리 들을 법도 했으나, 한스는 정말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마 나이보다 계급이 우선시되는 세계라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 그나저나… 레드후드라. 정말 그 무서운 용병이 저희 쪽으로 와 줄까요? 그야 용병이니 의뢰를 하면 고려 정도는 하겠지만……. ”
한스는 걱정의 빛이 역력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럴 수밖에. 레드후드의 악명은 그 이름에도 잘 드러나 있으며, 용병이다.
보수를 제시하면 고려는 하겠지만 그 정도는 어떠해야 좋을지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 보였다.
또 고용된 이후에도 마찰을 빚을지 아닐지에 대한 것도 걱정하고 있었다.
“ 으음… 이미 결정된 이상 어쩔 수 없지요. 최대한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
그러니, 최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말로 그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 있게 그러하겠다고 답하는 것은 꺼림칙했기에 노력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나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앞만을 바라보다,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 소리를 내질렀다.
“ 자, 출발하겠습니다! 다들 준비해 주세요! ”
◎◎◎
하룻밤의 야영을 거친 뒤,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는 4왕자를 따르는 귀족의 영역에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 여느 영지들과 비슷하게 두꺼운 외벽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 네가 책임자냐? ”
“ 예. 알트람 상회의 블랙이라고 합니다. 식량을 팔고자 왔습니다. ”
“ 쯧! 승냥이 같은 놈들 같으니. ”
검문소의 병사는 혀를 차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신분을 확인하겠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증명서와 더불어, 약간의 돈이 든 주머니를 은근슬쩍 찔러 넣었다.
힘든 시기이니만큼 돈이 필요하기도 했으며, 만에 하나 시비 걸 것을 대비한 움직임이었다.
물론 저 병사가 정말로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면 돈을 찔러 넣은 순간 역정을 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짐을 뒤지고 또 뒤져 검문하고,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옥에 가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었기에 찔러준 돈을 은근슬쩍 깊이 넣으며 짐짓 엄격한 얼굴을 했다.
“ 흠이 없는 걸 다행으로 알아! 통과! ”
그는 자신의 검사가 짐짓 깐깐했던 것 마냥 으름장을 놓으며 문을 통과시켜 주었다.
덕분에 꾸벅꾸벅 인사를 올리며 아주 감사하다는 듯 문을 지나쳐갔다.
“ 하하. 그것 참……. ”
마부 한스도 그런 남자가 어이없었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보는 나도 어이가 없긴 했지만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다.
힘든 시기이니만큼 뒷주머니를 차고 싶다는 욕망을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을 테니까.
“ 아무튼, 이제부턴 정보를 얻으러 바삐 움직여야 할 겁니다. 우리가 아는 레드후드의 정보는 오래된 것일 지도 모르니, 이곳에서 검증을 거치는 것도 필요하겠죠. ”
나는 적당한 공터에 멈춰서기 무섭게 사람들을 모아 입을 열었다.
길을 가는 와중에도, 이렇게 멈춰선 와중에도 힐끗거리는 시선이 제법 많았다.
제법 식량이 많이 담긴 마차를 여럿 끌고 왔으니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갔다.
“ 아시다시피 저는 거래를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상회에서 진짜 상인인 덱스 씨를 데려왔죠. 제 일을 미루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곡식 거래는 덱스 씨에게 맡기려 합니다. ”
“ 예. 그 점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
깡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남자, 덱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지만, 그의 역할을 한 번 더 확인하려는 목적에서 말을 꺼내두었다.
“ 그리고 몇 분 정도는 덱스 씨를 따라 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따로따로 흩어져 좋은 건수를 찾는 척 하며 정보를 모아 주세요. 레드후드의 관한 정보가 우선이지만, 잡다한 정보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 예. 맡겨만 주십시오. ”
모두가 한 마음 한뜻이 되어 낮게 외쳤다.
덕분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으나, 나는 그들의 듬직함에 절로 미소가 피는 것을 느꼈다.
“ 물론, 저도 정보를 수집하러 돌아다닐 겁니다. 그리고 그냥 한 번 물어볼 수 있는 일이니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깃거리 하나 줍는다는 생각으로 임해 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요즘 전황은 어떠냐는 식으로 시작해서요. ”
“ 알겠습니다. ”
“ 좋습니다. 아 참, 해산하기 전에… 가능하다면 숙소에 관한 것도 넌지시 알아봐 주세요. 머물 곳은 있어야 하니까요. ”
나는 모두가 떠나기 전 숙소에 관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더해, 일을 마치면 우선 이곳으로 모이라는 말도 남겨 두었다.
휴대폰 같은 연락수단이 없는 이상 집결지를 정해 두어야 일이 편할 것 같아서다.
그렇게 할 말을 전부 마치고 나자, 이들은 각자 몇몇의 그룹을 만든 뒤 뿔뿔이 흩어졌다.
그 중에서도 덱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짐마차를 끌고 가거나 짐을 내릴 사람이 필요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리겠네.
나는 일을 맡김으로서 얻을 수 있는 해방감을 느끼며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었다.
이곳에 이르는 길은 외워두었기에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가지 특징이 섞인 곳이라 눈에 잘 띄기도 했다.
현 시각은 늦은 오후이며, 해가 붉게 타오르며 저물어가는 것을 볼 수 있을 시각이다.
그 말은 곧 해가 저무는 저녁이 찾아온다는 뜻이며, 그것은 술집들이 슬슬 걸어 잠근 문을 열어젖힐 때라는 말이기도 했다.
옛날부터 정보는 소문이 떠도는 술집에서 얻으라는 말도 있고, 실제로 제법 그 효과가 뛰어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가능성도 있었으나, 실마리 정도는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어딘가에 있을 술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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