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겟 어 라이프-139화 (139/161)

##139 침묵의 시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생존자들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무려 오천명이 넘는 인원들이 뒤 섞여 있을 정도로 큰 섬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백 명도 되지 않을 인원들만이 남아 있었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단 한 명도 발견을 하지 못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하아! 하아! 찾아야 해! 시간이 없다. 시간이!”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사냥감을 찾아야만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그 때문인지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며 연신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기습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힘들게 싸울 필요도 없이 자신의 시간이 넉넉하다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 일이었다.

손목의 타이머의 프로그램 문제인지 자신이 죽이지 않아도 죽은 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자의 손목 타이머가 리셋이 되기에 일정 거리만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을 생존자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 타이머가 바닥이 나가고 있는 생존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으으! 싫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숨을 죽이며 입도 벌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목이 터져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점점 시간은 가까워져 왔고 공포는 더욱 더 커져만 갔다.

자살을 생각했다면 벌써 했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상황에서 그 누구도 죽고 싶지 않아 했다.

“차라리 누가 나를 죽여줘!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죽음의 공포보다 혼자 남겨져서는 외롭게 죽어가는 것이 더욱 더 견디기 어려웠다.

이미 결론은 나와 버린 상황이었고 그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덜! 덜! 덜!

결국 샌존자는 자신의 타이머의 시간이 0이 되는 것을 보며 두 눈을 질금 감아야만 했다.

펑!

소리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허탈할 만큼 작은 소음이 날 뿐이었다.

하지만 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손목을 넘어 팔꿈치까지 완전히 날아가 버린 상태였고 파편에 의해 가슴과 배에도 큰 상처를 입어 버렸다.

만일 응급조취를 취하고 난 뒤 병원으로 향했다면 목숨만은 살릴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로 인해 점점 싸늘하게 죽어가야만 했다.

“아...아파.”

신체는 과도한 통증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강렬한 마약 성분을 뇌 속에서 분비를 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 때문인지 죽어가는 생존자는 어릿어릿 눈 앞에 누군가를 보게 되었다.

“아! 엄마. 아! 제시!”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가족이 눈 앞에 나타났다.

다들 미소를 짓는 것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 것이 뇌에서 분비하는 마약 성분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적 만족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죽어가는 생존자는 그 시간이 극히 짧은 순간으로 느꼈지만 신체가 죽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의 생명력은 때로는 보잘 것 없으면서도 무척이나 끈질기고 억척스러웠다.

신체의 모든 장기가 멈출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결국 신체는 주변의 온도에 맞춰지며 식어갔다.

그렇게 신체는 침묵에 들어갔고 자연은 자신에게로 돌아온 이를 말 없이 받아들였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난 것인지 모를 때 한 나그네가 찾아왔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라 무심한 눈빛으로 주위만을 둘러 볼 뿐이었다.

아니 한차례 죽어 있는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기는 했다.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자신이 찾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너무나도 무심해져 버렸다.

힘겨운 듯이 몸을 끌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방향마저 정하지 못한 채로 몸을 움직이는 남자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내 힘겨운지 땅바닥에 주저 앉아야만 했다.

“…….”

딱히 삶의 의지는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이대로 눈을 감고 영원히 잠이 들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힘겹게 다시 몸을 일으키는 남자였다.

마치 영원히 지옥을 배회하는 벌을 받는 죄수같았다.

그렇게 다시금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남자는 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동양인 남자. 이걸 어디서 발견한 거지? 정말 어디서 발견을 한 것이냔 말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테일러였다.

꽤나 신중한 성격이었지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게끼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미칠 지경이었다.

무언가가 머리 속에 어른어른 거리지만 그 것의 실체가 도무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 동양인 남자. 그 남자를 다시 만나야만 해.”

결국 모든 비밀의 열쇠는 강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테일러였다.

하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강준을 찾을 길이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는 문제에 테일러는 머리를 주어 뜯어야만 했다.

퍼억!

“커억!”

그렇게 방심을 하고 있을 때 테일러는 자신의 몸을 거칠게 밀치며 땅바닥에 넘어지는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타는 남자에 외마디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나도 멍청한 짓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과거 학자일 당시 한 가지 일에 몰두를 하면 다른 일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성격이 드러난 것이었다.

‘제길! 이 대로 죽는 건가?’

죽는 것은 아쉬울 것이 없었지만 하얀 종이의 비밀에 대해서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두 눈을 질금 감고서는 자신의 죽음을 기다린 테일러였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당장 머리가 터져 나가야만 할 것이 분명한데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테일러는 두 눈을 뜨고서는 자신을 덮친 상대를 바라보았다.

건장한 체구의 서양 남자로 게르만족 특유의 얼굴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은 죽어 있는 것 같이 생기가 전혀 느껴지고 있지 않았다.

“누구?”

테일러는 스스로 생각해도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 만한 질문을 남자에게 했다.

누구라고 물어봐야 대답을 해 줄 리 만무했고 설령 대답을 해 준다고 해서 자신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자의 입이 열렸다.

“가…강…준?”

“강준?”

발음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단어에 테일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그 단어가 이름을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준.”

그리고 테일러는 그 이름이 자신의 머리 속에 동양의 한 나라의 언어 체계와 유사하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한국식 이름인 것 같은데?”

눈 앞의 게르만 족이 가질 이름은 아니었다.

그런 테일러의 말에 남자의 두 눈이 흔들렸다.

“하…한국. 강준의 고향. 친…구.”

말을 더듬는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밀러였다.

죽은 줄로만 안 밀러가 살아남아 있었고 강준을 찾아 섬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강준? 혹시 그 동양인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이 강준인가?”

테일러는 밀러의 말에서 강준이라는 남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하얀 종이의 비밀을 풀 작은 열쇠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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