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살아남은 사람들
어느덧 섬에 갇힌 지도 15일 째가 되었다.
또 다시 찾아온 적막은 치가 떨리도록 삶의 모멸감을 주는 것이었지만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편안한 시간으로 되돌려 받고 있었다.
그 누구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움직이지도 않았고 살인에 대한 충동도 가지지 않았다.
적어도 이 시간 이후 얼마 동안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을 터였다.
강준과 선혜 또한 간 밤의 격정적인 행위를 마치고서 온 피로감과 함께 그 어떤 움직임도 없는 정글에 평안함을 가지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모든 존재들이 깨어나는 아침이 밝아 왓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야행성 동물인 것처럼 다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평온이 한 순간에 깨졌다.
-이거 일주일 만인가요? 다들 즐거운 밤을 보내셨는지 모르겠군요. 정말이지 화끈하면서도 뜨거운 밤이었습니다.-
듣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이토록 긴지 알 수 없었을 만큼 생존자들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자! 다들 자신들의 경쟁 상대들이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아시고 싶으시지요? 그럼 지금 알려 드리겠습니다. 일차로 살아남았던 2115명의 생존자들이 이제는 고작 … 단 142명 만이 남았습니다. 이거 적어도 오백 명 이상은 살아남아 줄 것이라 믿었는데 이래서는 두 달 간의 달콤한 게임이 되지를 않을 듯 싶습니다. 애석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좀 더 분발을 해서 살아남아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142명이라는 말에 다들 몸이 움찔 떨렸다.
오천명 가까이 되던 사람들이 벌써 죽어 나자빠져 버린 상태였다.
일주일동안 다시 20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죽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치가 떨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자신들이 아직 살아있음에 안도를 하는 생존자들이었다.
-그럼 세 번째 라운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이번에도 살아남아서 여러분들의 목에 상금을 건 분들을 기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 사실은 모르셨나 보군요. 하하하! 마지막까지 살아남으신 분은 우승 상금으로 천만 달러와 함께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 드리도록 하지요. 아! 그리고 참고로 우승 상금은 일주일을 버티실 때마다 백만 달러가 추가로 붙게 되니 두 달 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으시는 분은 추가적으로 800만 달러에다가 이백만 달러를 더 추가 해서 이천만 달러를 드리도록 하니 너무 빨리 게임을 끝내지는 말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체불명의 남자의 말에 생존자들은 커다란 망치로 자신들의 머리를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곳에서 서로 죽이고 죽이는 행동을 해 오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야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빌어먹을 개 자식들아!”
강준은 속이 완전히 뒤집어 진다는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자신들의 목숨에 돈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자신들을 이유 없이 이런 곳에 가두어 두고서는 서로 죽고 죽이도록 놓아두는 것이 이해가 갈 리가 없었다.
결국 어둠의 도박장이라는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돈 벌이와 돈 많은 이들의 흥미 거리에 이용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범죄조직이 연관이 되어 있을 터였고 개인의 힘으로 이런 거대 범죄조직들을 상대하기란 어려울 터였다.
부들! 부들!
그렇게 분노로 인해 온 몸을 떠는 강준은 곧이어 자신의 시야가 붉게 변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뚝! 뚝!
눈가에서 떨어지는 물기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 것은 피였다.
분노가 머리 위까지 치밀어 오르면서 혈류량을 급격하게 증가시켰고 핏줄이 외부에 들어나 있으면서도 무척이나 약한 눈의 핏줄들이 터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강준은 지금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강준씨! 그만 해요! 그만!”
선혜는 붉은 피눈물을 흘려대는 강준을 보며 울쌍을 짓고서는 자신의 손으로 강준의 눈가를 닦았다.
두 사람 다 나체로 있었지만 누구하나 부끄러움 보다는 몸이 떨리는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
강준은 자신의 피눈물을 손으로 닦으로 자신과는 달리 맑은 눈물을 흘리는 선혜를 바라보며 물었다.
“…….”
선혜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강준은 그녀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소속이 어디지? 국정원인가? 아니 국정원이 이런 국제적인 일을 할 리가 없지? 인터폴인가?”
강준의 말에 선혜는 입술을 질금 깨물고서는 입을 열었다.
결코 밝혀서는 안되는 신분이었지만 왠지 지금의 강준에게는 밝히고 싶었다.
지금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욕망과 미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거짓말을 하거나 대답을 하지 않아 강준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국정원도 인터폴도 아니에요. 외교부 소속의 비밀 조직인 방첩대 소속이에요.”
“뭐? 외교부 소속?”
강준은 그게 무슨 뚱딴지냐는 식으로 선혜를 바라보았다.
외교부가 외부적으로 무력 투사를 할 것도 없었지만 설사 있다고 해도 특수 조직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부로 들어나 있기도 한 707 특수임무부대의 부대원이었던 강준으로서도 꽤나 대한민국 내의 몇몇 비밀 조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외교부 소속의 방첩대에 대한 정보는 금시 초문이었다.
“말이 외교부 소속이지 실상은 대통령 직속부대에요. 국정원이 국내임무와 북한 관련 동북아 쪽을 담당하기에도 여력이 없는지라 해외에 퍼져 있는 외교부의 도움을 받아 국외 활동을 하는 조직이에요.”
“허!”
강준은 그런 부대가 있었다는 것에 기가 막히면서도 나름 납득을 했다.
의외로 대한민국에는 비밀스러운 조직들이 상당히 많았다.
과거 독재의 시대를 보냈던 시기에 창설이 되었던 조직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었다.
‘하긴 국정원이라는 곳이 사실상 공무원 조직이 되어 버린 상태이니 이런 실전 부대가 필요도 하겠지.’
강준은 미국의 CIA 와 같은 정보조직이 미국에도 무려 17개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에는 국정원이 있다고 하지만 이미 국정원은 정보 조직으로서의 여력을 잃어 버린 상태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너무나도 외부로 들어나 있어서 국민들까지도 국정원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미국의 CIA가 외부에 들어나 있는 것과 함께 들어나지 않은 첩보조직들이 비교적 주목을 받지 않은 채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론은 특수 임무 때문이라는 거군.’
강준 또한 그런 임무들을 때때로 수행했었기에 선혜가 지금까지 말을 하지 못한 것과 함께 임무에 대해서 말을 못하는 것을 이해했다.
이대로 진짜 목적의 임무에 대해서 캐물을 수도 있었지만 캐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흑! 흐으윽! 윽!”
그렇게 이해한다는 듯이 강준이 등을 두드려 주었기 때문이었는지 선혜는 갑작스럽게 복받여 오는 설움에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된 훈련과 치열한 실전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선혜 또한 인간이었다.
죽음이 두려웠고 가족이 그리웠으며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힘들면 울어도 돼.”
강준은 지금은 진정을 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선혜가 시원스럽게 울도록 배려를 했다.
“흐으윽! 무…무서웠어요. 정말 무서웠다고요. 나 정말 죽기 싫었단 말이에요. 흐어흑! 정말로 죽기 싫었다고요. 그…그 사람! 그 사람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호위하는 것 뿐이었는데 이렇게 으으응! 죽고 죽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흑! 그 사람은 주…죽어 버렸고. 그…그런데 흐윽! 흑! 그 배에서 이상한 흐윽! 사람들을 발견해서! 흑으아아앙!”
강준은 선혜가 흐느끼면서 하는 말들에 그녀의 임무가 자신들을 납치한 이들에 대한 정보 획득이 아니라 단순 요인 호위임을 알고서는 한숨이 나왔다.
‘후우! 어쩐지 어느 정도는 어설퍼 보인다고는 했지만.’
선혜의 모습에서 어설픔을 느꼈던 강준은 그제야 모든 의혹이 풀렸다는 것에 선혜의 흐느끼는 몸을 안은 채로 등을 다독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