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처절한 생존
불필요하게 시간 낭비를 해 버린 꼴에 강준은 이가 갈릴 지경이었지만 자신의 판단 착오 때문이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강준은 최대한 빠르게 밀러가 붙잡혀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만 했고 이내 울타리가 마주 보이는 수풀 앞까지 도착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울타리의 위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남자를 보고서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어젯밤 자신이 벌집을 건들이 듯이 건드려 놓은 것이 문제였다.
‘내부가 보이지 않아.’
내부의 밀러의 상태를 확인을 할 수만 있다면 좋을 터였지만 이대로 가까이 다가가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준으로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경계를 서고 있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서 내부의 밀러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했다.
‘좋은 방법을 떠올리자. 분명 방법은 있을 거야.’
주변에는 그다지 높은 나무들도 없었고 있다고 할지라도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버린 고사된 나무들 뿐이었다.
그런 곳을 올라가면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결국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 방법은 사용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땅을 파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상당히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지만.’
어둠이 자신의 몸을 가려주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 죽음을 당할지 알 수가 없는 밀러의 상황에 다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밀러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전부 죽여 버리겠다.’
강준의 두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강준은 유심히 시간을 기다리다가 주변의 상황을 바라보며 고민을 하기 시작을 했다.
‘어둠만을 기다리기에는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언제 밀러가 죽을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강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최악의 상황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자위를 했다.
자신 혼자서는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이들 속에 있는 밀러를 구출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었고 밤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내일 아침이면 두 번째 폭발의 시간이 올 것이었고 그 때에는 밀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벤의 일행들 중에 꼭 이 임팩트에 맞춰서 타이머가 영으로 될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 것도 추측일 뿐이었기에 최악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만 했다.
그렇게 고심에 고심을 하던 강준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여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강준이 하려고 하는 것은 도박이었다.
어쩌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 것이 아니라면 울타리 너머로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부를 보지 못하니 상황도 알 수가 없었고 자신의 인내심도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유지가 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강준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고자 했고 부싯돌을 부딪쳐 불을 만들기 시작을 했다.
평소라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사용을 할 불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더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불이 퍼져 나가야만 했다.
‘내가 저 울타리 쪽으로 갈 길은 남겨 둬야 한다. 그리고 하늘의 상태를 보았을 때는 오래지 않아 비가 내릴 거야. 비로 불이 꺼지기 전에 끝을 내야만 한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지금 강준이 피울 불로 인해 섬은 불바다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강준은 단순히 모닥불이 아니라 벤의 주변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탁! 탁!
빠르게 부싯돌을 통해 불을 만들어 낸 강준은 갈대같은 풀들을 한데 뭉쳐서는 불을 붙인 뒤에 바람이 불어나가는 방향에서 울타리 방향을 향해 불을 연신 붙여 나가기 시작을 했다.
휘이잉!
뜨거운 대낮의 열기와 함께 불어가는 바람은 불길을 빠르게 만들어 내기 시작을 했다.
습도가 높은 정글이라 쉽사리 불이 붙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을 하자 습도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
강준은 충분히 불이 피워 오르면서 울타리 쪽을 향해 번져 가는 것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잘못하면 저 울타리 너머에 있는 밀러도 죽을 수도 있었지만 이 방법이 아니라면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불이다! 불이야!”
불길에 연기까지 피워 오르기 시작을 하자 울타리 위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던 에디가 다급하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을 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울타리 쪽을 향해 빠르게 번져 오는 것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자연 상태에서도 불이 만들어 지는 경우도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불에 무언가 의심이 가더라도 지금 당장 자신들을 불태워버릴 불길이 우선이었다.
“무슨 소리야? 에디!”
벤은 몇 일 사이에 동료들이 두 명이나 죽어 나간 것에 침통해하고 있다가 불이라는 소리에 오두막에서 나오자 연기가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아연질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무슨!”
급히 울타리 쪽으로 달려가서는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자 탐욕스러운 불길들이 바람에 빠르게 번져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내 자신들의 아지트를 완전히 불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물로 불을 끌 수도 있었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은 고작해야 식수로나 사용을 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불을 끈다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에디! 팔루! 애들하고 줄리아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움직여! 빨리!”
일단은 피해야만 했다.
가만히 앉아서 불에 타 죽을 수도 없었고 이 정도의 불길을 끌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전혀 없었다.
벤은 순간의 판단이 동료들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일단은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동료들 중에 3명의 남자들이 죽거나 다른 집단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 상태였다.
힘을 쓸 수 있는 남자들이라고는 이제 고작 3명 뿐이었고 이제는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팔루의 잘못이었지만 그동안 팔루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애쓴 것이나 팔루의 행동을 정당화 시켜 준 것이 벤 바로 자신이었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분명 그냥 일어난 일은 아니다. 분명 우리를 노리는 자들이 있어.’
벤은 지금의 상황이 자연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 밤의 일도 그렇게 누군가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자신들은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빠드득!
그리고 마침내 벤의 얼굴에서도 살기가 피워 오르기 시작을 했다.
그 동안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번민과 고민으로 힘들어 했지만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내가 멍청하게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어야만 했어.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몰리지도 않았을 것인데.’
벤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에디와 팔루를 도와서는 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울타리를 넘어서 안전해 보이는 정글 쪽으로 들어가자 다들 숨을 고르며 불길에 타오르고 있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망연자실한 채로 바라볼 뿐이었다.
“제길! 인질들은 어떻게 하지?”
팔루의 말에 벤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오늘 저녁 자신들의 타이머를 초기화 하려고 했었다.
이대로 불에 타 죽어 버리도록 남겨 두는 것이 너무나도 아까웠던 것이었다.
그런 팔루의 아쉬운 목소리를 듣고 있던 벤이 입을 열었다.
“팔루! 권총을 줘! 에디는 팔루와 함께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지켜! 인질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를 할 테니까.”
“벤! 뭘 하려는 건데? 설마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에디는 벤의 말에 놀라면서 외쳤지만 벤의 시선은 자신들의 아지트에 고정이 되어 있었다.
팔루는 벤의 기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며 벤에게 자신의 권총을 내밀었다. 이제는 총알도 두 개 뿐이었다.
“총알 두 개 뿐이니까 조심해서 사용해. 그리고 왠지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아.”
끄덕!
벤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잠시 에디와 팔루를 쳐다보고서는 인질들이 묻어져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을 했다.
“괜찮을까?”
에디 또한 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를 알고서는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지만 팔루는 오히려 재미있어졌다는 듯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후후! 이거 내 타이머도 거의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구만.”
“응? 무슨 소리야?”
에디는 팔루가 웃음을 지으면서 동문서답을 하는 것에 의아한 듯이 팔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 섬뜩함 미소가 느껴진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이마로 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비수를 느끼면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이 팔루를 바라보았다.
“까아악!”
“에…에디 아저씨!”
아이들과 줄리아는 비명을 지른 채로 팔루를 바라보았지만 팔루는 희열에 차 있는 듯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의 타이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삐삑!
잠시 후에 팔루는 자신의 타이머가 초기화 된 것을 확인하고서는 줄리아와 델리 그리고 하이테에게 말을 했다.
“뭐하는 거야? 도망을 가려면 지금 가라고. 살고 싶으면 말이지. 크크큭! 이제 이 파티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까. 살아남고 싶으면 알아서 살아남아야지.”
팔루의 말에 사색이 된 세 사람은 덜덜 떨리는 몸을 움켜 쥔 채로 정글 속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을 했다.
“그래. 도망을 가라. 그래서 살아남아 있다가 내 먹잇감이 되어야지 크크큭!”
팔루는 그렇게 세 사람이 도망을 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시선을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울타리 쪽에 고정을 시키고 있었다.
“후후! 점점 재미있어 지고 있구만.”
팔루는 이제야 갑갑한 옷을 벗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불에 타오르고 있는 자신들의 아지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