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겟 어 라이프-72화 (72/161)

##72 17. 딜레마

미셸이 말한 장소에서 카사바의 덩이 뿌리를 캐어서는 생고구마처럼 먹어 허기를 달랜 강준과 미셸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닭이 소를 보듯이 서로를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딱히 연령대가 맞는 것도 아니고 강준이 프랑스어를 조금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리 능숙한 편도 아닌데다가 미셸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이나 강해서 외국어를 배운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준으로서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극심한 피로감과 미셸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조금 보내기를 했지만 강준의 마음은 꽤나 조급했다.

‘밀러를 찾는 것은 일단 불가능하다.’

어제 저녁 때야 자신의 친구 때문에 이성을 잃어 무모하게 행동을 했지만 지금은 머리 속이 차갑게 변해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일단은 선혜가 어떻게 되었는지부터 알아 봐야겠어.’

선혜에 대한 미안함이 강준의 마음에 가득했다.

그 때 들은 총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후우! 그러고 보니 나와 함께 있었던 이들은 왜인지 다들 죽어 버렸군.’

강준으로서는 기가 막힌 것이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있었던 이들 중 누구하나 멀쩡한 이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강준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결과적으로 다들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으니 강준으로서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문제는 그런 상태에서 눈 앞의 미셸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너무 어린 아이를 그냥 놓아 두고 가기에는 마음이 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준이 보기에도 조심만 한다면 무척이나 안전한 장소였다.

폭탄의 공포가 없는 상태에서 먹을 것만 풍족하다면 이 죽음의 게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아이를 자신이 끌고 다니는 것은 더욱 더 위험한 상황을 불러 온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해도 알 수 있을 터였다.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

강준은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의 정리가 끝이 나자 강준은 미셸에서 조금은 어색스러운 프랑스어로 말을 하기 시작을 했다.

“미셸.”

“예? 왜 그러세요?”

미셸은 강준이 아무런 말이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말을 하려고 하자 긴장을 한 채로 강준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딱히 할 말이 없었기도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강준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에 겁을 먹은 상태였다.

‘뭐지? 나 버리고 그냥 간다는 말일까? 아니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공포보다는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 심한 미셸이었다.

겉으로는 밝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좁은 구멍 속에서 홀로 하루 종일 갇혀 있다 보니 우울증과 함께 폐쇄 공포증도 올 지경이었다.

만약 간간히 들리는 총소리나 비명 소리라도 없었더라면 오히려 더욱 더 힘들었을 터였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총소리와 비명소리였고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독한 적막이 가득할 때가 더욱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강준이 나타나 자신으로서는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신나는 댄스곡을 미친 듯이 부르며 춤을 추는 것에 마음 속이 시원하게 뚫린 미셸이었다.

“미셸. 미안하지만 나는 가 보아야 할 곳이 있어.”

“예?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미셸의 말에 강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 돼. 너무 위험하다. 그리고 이 곳처럼 안전한 곳이 없어. 너는 이 곳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카사바는 충분히 내가 캐 줄 테니까. 이 곳에서 버티고 있어.”

강준의 말에 미셸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거부의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었다.

“싫어요!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여기는 너무 무서워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도 않아요. 나 버리지 말아요. 제발! 나 잘할 수 있어요. 시키실 것 있으면 다 시켜 줘요. 예? 내가 잘할 테니까 나 버리지 말아 줘요.”

섬에 들어오고 죽음의 게임이 시작된 뒤에 처음으로 말을 해 본 상대였다.

단지 느낌일 수도 있었지만 상대는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고 자신을 보호해주고 돌봐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보호해주고 돌봐 주지 않더라도 그냥 옆에만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뿐이었다.

강준은 그렇게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에게 매달리는 미셸이 안타까웠다.

“그런 것이 아니야.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변은 온통 위험한 사람들 천지야. 언제 어디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강준의 말에 미셸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그럼 강준씨도 이 곳에 있어요. 여기 안전해요. 그리고 입구가 좁아서 그렇지 이 내부로 들어가면 두 사람은 충분히 들어가서 숨을 수 있어요.”

미셸은 강준이 이 곳에 남으면 될 것이라는 말을 했지만 강준으로서는 역시나 들어 줄 수가 없는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그리고….”

강준은 자신의 손목에 있는 타이머가 점점 줄어가는 것을 보았다. 미셸 또한 그런 강준의 행동에 자신과는 다른 강준을 확인하고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야 무한정 숨어 있을 수 있다지만 강준은 결코 그렇게 숨어만 있을 수 없었다.

만약 살고자 한다면 다른 이를 사냥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미셸의 얼굴은 창백해져 버려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분명 미셸도 강준을 따라간다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더 어려운 일이었고 미셸에게는 너무나도 저락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준이 아무리 미셸을 설득해도 미셸은 요지부동 강준을 따라가겠다고만 할 뿐이었다.

결국 강준은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을 대리고 오겠다며 미셸을 설득하는 수 밖에 없었다.

“미셸! 그러면 내가 한 사람을 데리고 올 테니까 그 때까지만 기다려 줘. 점심 때까지 무조건 돌아올 테니까.”

“저…정말이에요?”

미셸은 강준이 점심 전까지 한 사람을 데리고 온다는 말에 불안감을 머금으면서 강준을 바라보았다.

“후우! 약속할게.”

강준은 새끼 손가락을 내밀면서 약속을 한다고 말을 했지만 그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는 미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야만 했다.

결국 한국에서는 약속을 이렇게 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렇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보태어서는 미셸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미셸을 설득하고 난 뒤에 미셸을 위해 카나바를 몇 덩이 더 캐어 주고서는 구멍 속에서 자신이 올 때까지 숨어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서 선혜를 찾으러 달리기 시작을 했다.

“꼭 돌아와야 해요.”

“그래.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강준은 미안한 듯이 미셸을 바라보고서는 정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듯이 사라졌다.

그런 강준이 사라지고 나자 미셸은 전보다 더한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을 했다.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면 모르겠지만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난 뒤에는 그로 인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빨리 와요. 강준씨.’

그렇게 몸을 덜덜 떨면서 강준만을 기다리던 미셸은 허기짐도 잊은 채로 구멍 속에서 한참 동안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것인지 마침내 미셸의 귀에 사람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기뻤다.

‘아! 왔다! 돌아왔어! 정말로 돌아왔어.’

미셸은 강준임을 확신했다.

아직 자신을 부르지도 않았지만 미셸은 구멍에서 빠져나와서는 강준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정글 수풀에 가려져 아직 강준의 반가운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줄 것만 같았다.

‘내가 캉낭 스타일로 춤을 추면서 오라고 했는데….’

미셸은 장난삼아 강준에게 자신에게 올 때는 꼭 강남 스타일의 말 춤을 춰 달라고 했다.

강준은 흥쾌히 승낙을 했기에 자신을 본다면 어설픈 그 말 춤을 춰 줄 것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미셸은 수풀을 지나 한 남자와 마주 칠 수 있었다.

“강준!”

자신이 지금까지 잘 버텼다고 기운차게 강준의 이름을 불렀지만 강준은 대답이 없었다.

“누구?”

아니 강준이 아니었다.

“응? 왠 여자?”

낯 모를 수염투성이의 남자는 처음 미셸을 보고서는 상당히 놀랐지만 이내 상대가 별 다른 힘도 없는 여자 아이임을 알고서는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이거 운이 좋은데. 제 발로 걸어 온 복덩이구만.”

남자의 눈에서는 어느 덧 살기와 함께 음탕함이 흐르기 시작을 했다.

미셸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강준이 아니라는 것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강준. 강준.”

부르기 무척이나 어려운 이름이었지만 믿었던 이가 눈 앞에 없는 것에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지는 듯 한 기분이 드는 미셸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셸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 오는 남자의 손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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