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솔플의 제왕-170화 (170/192)

< 58화. 왕의 무덤 (3).(23시 35분 수정) >

7.

[고대 왕의 유물]

- 퀘스트 등급 : 에픽

- 퀘스트 수행 가능 레벨 : 23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대장장이 올프를 찾아가, 고대 왕의 유물에 관해 물어보십시오.

- 퀘스트 보상 : 용의 뿔로 만든 소라.

[고대 왕의 시험]

- 퀘스트 등급 : 유니크

- 퀘스트 수행 가능 레벨 : 220레벨 이상

- 퀘스트 내용 : 당신은 왕의 무덤에 들어왔습니다. 왕은 당신의 자격을 시험합니다. 시험에 통과한다면 왕은 당신의 무례를 용서할 것이나, 그리하지 못한다면 마땅한 징벌을 내릴 것입니다.

- 퀘스트 보상 : 왕의 재물.

새롭게 생성된 두 개의 퀘스트 내용을 살피던 히르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왕의 시험이라니.’

고대 왕의 시험.

무례함이니, 징벌이니 그럴싸한 표현을 썼지만, 결국 핵심은 간단하다.

널 위해 아주 잡기 힘든 몬스터를 준비했으니까, 고생 좀 더 해봐라!

‘설마.’

이 순간 히르칸은 조만간 자신이 마주하게 될 왕의 시험관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예상은 왕의 무덤 입구에 도달했을 때, 어두컴컴한 어둠 너머로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현실이 됐다.

왕의 무덤 입구 앞에 두 개의 거상(巨像)이 서 있었다. 거상은 기사였다. 돌로 만들어진 검을 들고, 돌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본인 스스로도 돌로 만들어진 기사!

‘그래, 내 이럴 줄 알았지.’

왕의 무덤 입구, 그 입구를 지키던 석상들이 왕의 무덤을 침입한 침입자를 시험하기 위해 깨어난 것이다.

[왕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기사가 당신을 노려봅니다.]

그 시험관들이 침입자를 인지했다.

쿠쿠쿠!

두 거상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내렸다. 그들이 왕의 무덤 입구를 밟고 있는 히르칸을 바라봤다.

돌을 깎아 만든 얼굴, 눈동자가 있을 리 없고, 표정을 지을 수 있을 리 없음에도 히르칸은 두 거상이 자신을 노려보고, 자신을 당장에라도 짓밟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은 당장 히르칸을 공격하지 않았다. 히르칸을 바라만 봤다.

히르칸이 아직 왕의 무덤 안에 있었으니까.

왕의 무덤을 향해 검을 겨누는 건 물론, 왕의 무덤을 향해 검을 휘두를 순 없으니까.

히르칸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보면 자비다. 지금 수호기사는 히르칸에게 나름의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

받는 입장에서는 그리 기분 좋을 것 없는 자비이기도 했다. 몬스터에게 얕보이는 게 기분 좋을 리 없지 않은가?

‘오냐’

여기서 히르칸은 결심했다.

‘어디 한 번 해보자.’

잡을 것이다.

이 시험 기꺼이 통과해줄 것이다.

아니, 자신을 얕잡아보는 놈들을 확실하게 응징해줄 것이다.

‘나한테 시간을 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그 시작은 소환이었다.

왕의 무덤 입구를 나오기 전까지 수호기사들은 히르칸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건 곧 히르칸은 무엇이든 마음 내킬 때까지 부하를 소환해도 좋다는 의미였다.

히르칸이 땅바닥에 검을 꽂았다. 검은 곧바로 쇳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검이 쇳물을 토해내는 사이, 히르칸은 보석 두 개를 꺼낸 후에 양손에 하나씩 보석을 쥐었다.

뚝뚝!

오른손으로 쥔 보석은 물방울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화르르!

왼손에 쥔 보석은 불꽃이 되어 움켜쥔 주먹 틈을 삐져나왔다.

[아이언 골렘을 소환했습니다.]

검은 아이언 골렘이 됐다.

[골렘을 소환했습니다.]

보석을 머금은 흙은 오우거의 모습을 한 골렘이 되었다.

[파이어 골렘을 소환했습니다.]

히르칸의 움켜쥔 손바닥을 펼치는 순간, 불길이 솟구치며 그리폰의 모습을 한 파이어 골렘이 등장했다.

세 마리의 골렘이 각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 상황에서도 수호기사는 움직이지 않은 채 히르칸을 노려만 봤다.

히르칸이 이죽거리며, 허리춤 주머니에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푸른 보석을 입에 물었다.

보석을 입에 물었을 뿐인데, 빠르게 마력이 차올랐다.

그 사이 히르칸이 손목시계를 풀었다. 푼 시계를 움켜쥐자,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공간, 그 틈 사이로 죽음의 기사, 불멸의 기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나이트를 소환했습니다.]

해골마를 탄 데스나이트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콰직!

그 순간 히르칸은 물고 있던 푸른 보석을 입안에 넣고, 그것을 단숨에 깨부쉈다.

보석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 강렬한 박하 향이 히르칸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박하 향은 너무 강렬해서 매울 지경이었다. 히르칸이 그 박하 향을 꾹 참고 삼켰다.

인내는 쓰고, 대가는 달았다.

데스나이트 소환과 함께 바닥을 드러낸 마력은 앞서서 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서리의 힘 개방.”

그렇게 차오른 마력을 제물 삼아, 히르칸이 고대의 힘 서리를 발동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히르칸이 왕의 무덤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수호기사가 당신을 시험합니다!]

시험이 시작됐다.

8.

찰흙놀이 스킬을 통해 오우거의 모습을 빌려 등장한 흙골렘의 신장은 8미터에 다다랐다. 그 덕분에 오우거 골렘은 수호기사 앞에서 눈을 마주치며, 자웅을 겨룰 수 있었다.

그리폰 모습을 한 파이어 골렘에게 몸집의 크기는 무의미했다. 녀석에는 날개가 있었고,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이미 날갯짓을 하며 비상을 시작한 그리폰 파이어 골렘은 수호기사를 발아래 두었다.

평범한 골렘의 모습으로 등장한 아이언 골렘은 이러한 두 골렘에 비해 많은 것이 부족했다. 4미터의 신장과 우람한 체격도, 거물들의 전장 속에서는 작게 느껴졌다. 작았지만, 강철로 만들어진 몸뚱이가 내뿜는 위엄마저 작은 건 아니었다.

이 거물들의 전장에 참가한 마지막 참가자는 데스나이트였다. 해골마를 타고 등장한 데스나이트 역시 거물들에 비해서는 조촐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결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오히려 해골마에 탄 채로, 수호기사들에게 일격을 허용해주려는 듯, 검조

차 뽑아 들지 않았다. 데스나이트는 수호기사들을 도리어 얕보는 듯, 자신의 고고함과 위풍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여섯이 서로의 거리를 좁혔다. 서두르는 자는 없었다. 서두르는 건, 전투가 시작된 이후에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시작된 전투.

후웅!

첫 효시는 수호기사들의 몫이었다. 수호기사 둘이 각각 아이언 골렘과 오우거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수호기사가 쥔 검은 돌을 깎아만든 검이었다. 문자 그대로 돌덩이, 그 묵직한 것이 바람을 가른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것도 그냥 바람을 가르는 게 아니라, 날렵하게 가르고 있었다.

가공함, 그 자체.

오우거 골렘은 그 가공한 수호기사의 검을 향해 피하기보다는 제 손에 쥔 돌도끼를 휘둘렀다.

공격은 공격으로 막는다!

오우거다운 선택이었다.

꽈아앙!

두 개의 돌덩이가 부딪치며 천둥소리를 토해냈다. 그 천둥소리와 함께 오우거 골렘이 휘두른 돌도끼는 이가 빠졌고, 수호기사의 검은 금빛 나신을, 암석 속에 숨었던 진면목을 드러냈다. 만약 오우거 골렘에게 목소리가 있었다면, 비겁한 새끼!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화르르륵!

그런 오우거 골렘의 복수를 해주려는 듯, 그리폰 파이어 골렘이 수호기사의 머리를 향해 불길을 토해냈다.

그사이 다른 곳에서도 격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그 격전의 시작점 역시 수호기사의 일검으로부터 시작했다. 수호기사 하나가 오우거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다른 수호기사 역시 아이언 골렘을 향해 일검을 휘둘렀다.

후웅!

역시 가공할 공격이었다. 아이언 골렘은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고, 피할 생각도 없었다. 그대로, 몸으로, 제 머리로 수호기사의 검을 받아냈다.

꽈아아앙!

이번에도 굉음이 터졌다. 단순한 굉음이 아니라,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괴음(怪音)이기도 했다. 그 소리의 결과물은 끔찍했다. 그 단단한 아이언 골렘의 머리가 움푹 파였다. 살아있는 생명체였다면 즉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처.

아이언 골렘을 내리친 수호기사의 검 역시 황금빛 나신을 드러냈다.

펄쩍!

그런 아이언 골렘을 위한 보복은 데스나이트가 해줬다. 해골마가 도약했고, 해골마의 도약 덕분에 데스나이트의 검은 수호기사의 목덜미를 벨 수 있는 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퍼억!

데스나이트의 검이 수호기사의 목덜미 왼쪽을 내리찍었다. 단단한 암석으로 된 수호기사의 갑옷에 깊은 칼자국이 생겨났다.

그렇게 두 수호기사와 세 마리의 골렘, 한 마리의 데스나이트가 전투를 시작했다.

그 가공할 전투를 가공할 소리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후웅! 수호기사가 휘두르는 묵직한 검이 내는 소리를 비롯해 꽈앙! 오우거 골렘의 돌도끼가 수호기사의 몸뚱이를 두드리는 소리나, 까앙! 아이언 골렘이 수호기사의 가공할 공격을 버텨내는 소리, 화르르! 그리폰 파이어 골렘이 거대한 불길을 토해내는 소리, 쉬익! 쉬

익! 데스나이트의 날렵한 칼소리까지!

가지각색의 소리로 가득 찬 전장은 작은 것들의 개입을 감히 용납지 않았다.

실제로 이 전투 속에서 데스나이트와 함께 소환된 해골 전사들과 해골 기사는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들은 코끼리의 싸움 아래 놓인 강아지들과 다를 바 없었다. 코끼리들의 발에 밟히거나, 밟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거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 두 가

지가 전부였다.

그 전장에 히르칸이 몸을 던졌다.

가장 작은 몸을 가진 히르칸의 참가는 고래 싸움에 끼어든 새우의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히르칸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히르칸은 쿵쿵! 지축을 흔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담은 골렘과 수호기사들의 발구름을 요리조리 피해내며, 단숨에 수호기사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후우!”

그 후 짧게 숨을 고른 후에 절벽과도 같은 수호기사의 다리를 등반하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절벽을 기어오른다는 것, 그저 힘이 세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히르칸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에게 가상공간에서의 클라이밍은, 그가 세계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히르칸은 정말 평지를 걸어가는 것처럼 수호기사의 다리를 타고 잽싸게 올라갔다.

꾹!

올라가면서, 틈이 보이면 그 틈에 해골 조각을 집어넣었다. 틈에 집어넣은 해골 조각은 히르칸이 지나가자, 그 틈에서 해골 전사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 모습이 피부에 기생하는 기생충처럼 보였다. 더불어 그 해골 전사들은 서리 입김을, 새하얀 입김을 토해내고 있었

다.

그 해골 전사들은 히르칸이 지나간 궤적이 되어줬다. 히르칸이 수호기사의 등을 타고, 오른쪽 어깻죽지 근처까지 이동했을 때 히르칸이 지나온 길에는 일곱 마리의 해골 전사들이 제 무기로 수호기사의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수호기사 입장에서는 모기에게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공격이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무시할 수 없었다. 온몸에 모기가 달라붙어 침으로 찌르는데, 그걸 그냥 놔둘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수호기사는 제 몸에 달라붙은 그 서리 해골 전사들을 여유가 있을 때마다 떼어냈다.

그럴 때마다 오우거 골렘과 그리폰 파이어 골렘은 수호기사의 틈을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호기사에게 제 오른쪽 어깨에 올라온 히르칸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어깨부터.’

히르칸이 수호기사의 오른쪽 어깨에 검을 꽂아 넣었다.

콰직!

검은 10센티미터 정도 꽂혔다. 그 이상은 쉽사리 들어가지 않았다.

깡!

오히려 딱딱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아래에 뭔가 있군.’

그 순간 제 어깨에 올라온 히르칸을 노리고 수호기사의 왼팔이 거칠게 날아왔다.

‘쳇.’

히르칸이 날아오는 팔을 피해 수호기사의 목덜미 근처로 이동했고, 곧바로 등 쪽으로 내려갔다. 수호기사의 팔이 쉽사리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꽈앙!

그렇게 수호기사가 한눈을 파는 사이 오우거 골렘의 도끼가 수호 기사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여전히 대단한 굉음과 함께 수호 기사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수호기사가 히르칸을 무시하고 오우거 골렘을 바라보며, 오우거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사이 히르칸이 잽싸게 다시 어깨 부근으로 올라왔다.

‘찔러서 안 되면.’

자신이 만든 상처 사이에 뼈폭탄을 심었다.

‘터뜨리면 되겠지.’

콰앙!

곧바로 뼈폭탄이 터졌다.

폭발한 뼈폭탄은 그저 폭발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폭발과 함께 폭발한 부위가 꽁꽁 얼었다. 그 순간 수호기사가 오른팔을 움직였다.

쩌적, 쩌적!

오른 어깨를 달라붙은 얼음들이 수호기사의 거친 움직임을 버티지 못하고 깨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얼음들이 수호기사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호기사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해골 기사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서리의 힘이 수호기사의 움직임을 조금씩 무겁게, 둔하게 만들었다.

그 광경을 본 히르칸이 새로운 뼈폭탄을 꺼내 들었다.

9.

쿠웅!

수호기사가 무릎을 꿇자, 지축이 뒤흔들렸다.

무릎을 꿇은 수호기사는 상처투성이였다. 그 굳건하리라 보였던 몸뚱이는 이제 본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몸을 두르고 있던 암석은 대부분이 깨져버린 탓에 수호기사는 금빛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러낸 금빛 나신 역시 상태가 좋지 못했

다.

그러나 그보다 더 뼈아픈 건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었다. 기사에게는 무릎을 꿇는 건 곧 패배의 선언, 목숨을 건 기사의 결투에서 패배란 죽음을 의미한다.

수호기사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패배, 그에 따른 죽음을 받아들였다.

[파이어 골렘 스킬 랭크가 B랭크로 상승했습니다.]

[아이언 골렘 스킬 랭크가 D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데스나이트 스킬 랭크가 C랭크로 상승했습니다.]

[타이틀 ‘수호기사를 쓰러뜨린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왕의 시험을 통과한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 ‘고대 왕의 시험’을 완수하셨습니다. 수호기사의 몸속에서 왕의 재물이 담긴 상자를 찾으십시오]

수호기사의 패배를 보다 명확하게 알려주려는 듯, 다수의 시스템 알림이 히르칸의 귀를 연거푸 두드렸다.

히르칸은 그 소리에 기쁨의 환호 대신 긴 한숨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힘들었어.’

히르칸은 무릎을 꿇은 수호기사의 어깨를 밟고 일어선 채, 자신의 주변을 바라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정말 애처로울 정도로 찌그러진 아이언 골렘의 몸뚱이였다. 아직 움직인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흙골렘은 잔해로 남아 있었다. 거듭된 수호기사의 공격을 흙골렘은 버티지 못한 채 결국 흙으로 돌아갔다.

파이어 골렘 역시 흙골렘과 신세가 다를 바 없었다. 히르칸의 마력 소모 속도를 회복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히르칸의 마력이 제로가 되는 순간 파이어 골렘은 바람 앞 등불처럼 꺼졌다.

데스나이트는 해골마와 함께 굳건하게 서 있었지만 위용 넘치는 갑옷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번듯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패잔병 꼴이었다.

더 이상 불멸 스킬도 쓰지 못하는 탓에 그가 소환한 해골 전사들과 해골 기사 중 살아남은 건 해골 전사 둘이 전부였다.

진땀승.

더욱이 이 전투를 통해 히르칸은 남은 소비 아이템 전부를 소모했다.

‘진짜 빌어먹을 게임이야.’

이 순간 히르칸은 생각했다.

‘이 개고생을 했는데 보상이 별거 아니라면······ 진짜 내가 이 게임 뒤집어엎는다.’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그 대가가 섭섭하다면, 그 섭섭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그 각오를 품은 채 히르칸은 손목시계의 다이얼을 돌렸고, 아이템 스위칭을 했다.

츠릉츠릉!

폐왕검 대신 크라잉 소드가 히르칸의 손에 잡혔고, 히르칸은 크라잉 소드의 칼끝을 이용해 수호기사 하나의 몸뚱이를, 암석 너머에 숨겨져 있던 금빛 강철몸을 부수기 시작했다.

츠릉, 츠릉!

이제는 곡괭이 대우를 받는 크라잉 소드의 울음이 퍽 구슬프게 들렸다.

그렇게 얼마나 작업을 했을까?

“어?”

수호기사의 금빛 나신이 쪼개졌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상자가, 왕의 재물이 세상의 빛을 바라봤다.

‘검은 상······자가 아니라 붉은 상자?’

왕의 재물, 그 정체는 전설급 고대의 힘이었다.

10.

“결국 여기로 다시 돌아왔네.”

해치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시선을 가로막은 거대한 산등성이를 바라봤다. 우르갈 대산맥에 비해서 조금도 꿇리지 않는 거대함을 자랑하는 산맥은 시커먼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위엄과 불길함을 자랑했다.

산의 이름은 블랙콤.

검은 정상이란 의미다.

“역시 블럭 필드인 모양이야.”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하희가 해치를 향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블럭 필드에서 세 시간 동안 고생한 후에 제자리에서 왔다는 사실에 하희의 기분은 이미 최악의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건 해치도 마찬가지였다.

“예, 그러시겠죠. 그렇게 잘 알고 계시니까 워베어가 귀엽다고 껴안으려고 했다가 뒈질 뻔하신 거겠죠.”

해치가 지지 않으려는 듯, 말싸움을 말싸움으로 응수했다.

“야! 너 진짜 뒈질래?”

그런 그 둘의 말싸움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그 둘의 싸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시르가 없었으니까. 시르가 없는 상황에서 나머지 우레사냥꾼 길드원들은 굳이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멈출 생각도, 그럴 힘도 없었다.

몇몇이 해치와 하희의 싸움을 보며 내기를 했다.

“이번에는 해치한테 10골드.”

“그래도 하희가 이기겠지. 하희의 승리에 10골드.”

다른 몇몇은 그 둘의 싸움을 배경 삼은 채 대화를 나눴다.

“이번 야만왕 퀘스트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네. 도무지 퀘스트 단서가 안 나오잖아?”

“금각소라는 동쪽으로, 산을 무조건 넘으라고 하는데 막상 산을 넘으려고 하면 블럭 필드 때문에 돌고 돌아 시작지점으로 돌아오고······.”

“금각소라가 가리키는 것과 별개로 여기 있는 블럭 필드를 해제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 이번 퀘스트는 골치 아프겠어.”

그 순간 하희와 말싸움을 하던 해치가 손바닥을 들었다.

“뭐야?”

하희가 반발했고.

“예, 여왕님.”

해치가 하희의 말을 무시한 채 통화를 시작했다. 그 순간 하희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해치와 시르의 통화가 보여주는 위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통화가 시작되자, 주변의 대화도 멈췄다. 모두가 해치와 시르의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예, 이번에도 블럭 필드 때문에 블랙콤을 넘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퀘스트나 보스 몬스터는 없었고요. 확보한 금각소라는 계속 동쪽으로 넘어가라고 하는데, 넘어갈 수가 없는 걸 보면······ 우리가 진행하는 야만왕 퀘스트와 별개로 블랙콤을 넘기 위한 퀘스트를 완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보고를 하던 해치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해치가 제 입을 가렸다. 음소거 모드, 보이스톡을 통해 상대방과만 대화를 나누기 위한 제스처였다.

“그러니까 저보고 퍼스트 헤드, 그 양반하고 이야기를 하라고요? 예, 알겠습니다. 까라면 까야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58화. 왕의 무덤 (3).(23시 35분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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