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마법사 - 160회
전시회에 출품한 이강수 그림 50점이 사전 판매와 개막 1시간 만에 완판되는 놀라운 성과를 올리자 인터넷 언론 매체에서 다투어 ‘한국 청년예술가들이여, 희망을 던져라’ 전에 대해 기사를 냈다. 특히, 이강수의 그림 판매 대금이 18억 원이라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파가 되어 인터넷으로 퍼져나갔고, 여러 기사에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mongk: 이강수 그림값 거품이라고 짖어대던 것들 다 어디 갔어? 이젠 거품이란 소리 못 하겠지.
-coma: 나는 무엇보다 한 달 뒤에 열리는 세 번째 개인전에서 호당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궁금하다.
┗딩동댕: 세 번째 개인전은 선암갤러리에서 열기 때문에 어쩌면 두 배까지 오를지도 모르지.
┗giYUNUgi: 이상하네요? 무슨 근거로 그림값이 두 배로 오를 수 있다고 하는 겁니까?
┗딩동댕: 근거요. 근거는 이렇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림이 판매되면 주최사 강하아트에서 판매가의 10%만 뗀다고 합니다. 한데 갤러리는 50%를 가져가거든요. 선암갤러리에도 똑같이 호당 280만 원에 출품하면 10호 그림의 경우 갤러리 몫 1400만 원을 떼고 나면 고작 1400만 원밖에 못 챙기죠. 그러니 그림값이 오르지 않겠습니까?
┗giYUNUgi: 그럼 이번에 이강수 그림 산 사람은 한 달 만에 두 배 가까운 수익을 내겠군요. 엄청난 수익률이네요.
┗포스트맨: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달 만에 그림값을 두 배로 올려 받지는 않겠지요?
┗방목형인간: 그림값 책정은 갤러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선암갤러리도 이강수 그림이 순식간에 팔려나간 걸 뻔히 봤을 텐데 그림값 안 올릴 이유가 없다. 얼마나 올릴지 몰라서 그렇지 당연히 그림값은 오를 거임.
-파란해: 하하. 몇 날 며칠 고민 끝에 4년 부은 적금 깨서 이강수 그림 샀는데 두 배는 아니어도 그저 오르기만 해다오.
┗jimchu: 축하합니다. 제대로 투자했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한 점 사 놓는 건데 부럽네요.
┗파란해: 하하. 감사합니다. 한 달 뒤에 개인전 열린다니까 기회는 있습니다. 12월에 열리는 개인전을 놓치지 마세요.
┗sasko: 흐흐.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하지만 과연 그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살 놈만 산다.
┗파란해: 어쩌면 이강수 그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돈에 여유 있는 사람은 투자해 볼 만한 것 같네요.
┗갠세이: 헐, 호당 수백만 원이 저렴하다고? 이강수란 사람이 언제부터 미술판에 나왔다고 호당 280만 원이 저렴한 거냐? 미술판은 비상식이 통용되는 세계로구나.
┗버그인생: 미술계가 본래 그래. 한데 미술판만 그러냐? 스포츠, 음악, 기업체 할 것 없이 다 똑같아. 누군가는 경쟁에서 도태되고, 스타가 빛나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거지. 결론은 될 놈만 된다.
-uefafa:: 여기도 알바생이? 이놈에 댓글은 믿을 게 못 돼.
┗두걸음씩: 넌 무뇌아인가? 기사 좀 읽어라. 이강수 그림 50점 팔린 값이 18억이란다. 입장 바꿔서 네가 연 전시에서 18억을 벌었다 치고, 너라면 댓글 알바 쓰겠니?
┗uefafa: 무뇌는 당신 아냐? 니 의견은 상식일 뿐이고 더 큰 성공을 위해서라면 이런 기회를 노리고 댓글 알바 쓸 수도 있단 말이다.
-monshot: 난 돈 없어 패쑤-
-헬로맨: 전시 한 번으로 그림값이 18억! 이건 로또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잖아?
┗잘살아보세: 아아, 직장생활 하면서 몇 년 저축하면 18억 원 모을 수 있을까?
┗뼈를깎자: 정년퇴직할 때까지 저축하면 되겠지.
┗hitman: ㅁ친. 정년퇴직하면서 18억 손에 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 것 같냐? 모르긴 해도 극소수다. 이강수는 그 돈을 전시회 한 번으로 벌어? 공장에서 죽어라 일해도 한 달에 삼백 벌기 힘든데 무슨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냐? 젠장, 괜히 짜증 난다.
┗밝은면만보자: 세상이 불공평해? 이강수가 부러우면 너도 그림 그려서 돈 벌면 되잖아. 누가 그림 못 그리게 말리는 사람 있냐? 공장에서 일하라고 강압하는 사람 있냐? 돈은 재주껏 버는 거야. 그리고 월 삼백이면 적은 돈도 아니구만.
┗dark104: 킥킥. 세상으로 눈 좀 돌려봐. 주급 2, 3억 받는 사람도 수두룩해. 매일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 50점에 18억이면 그렇게 큰돈도 아닌데 왜 혼자 빡 치고 그래? 이상한 놈일세.
-bluelee: 궁상맞게 댓글만 달지 말고 전시장 가서 작품 좀 봐라. 이강수 그림뿐만 아니라 신인 예술가들의 참신하고 재미난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니까.
이강수의 그림 매출액 18억 소식에 네티즌의 관심이 폭발했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네티즌의 관심은 한 달 뒤에 열리는 이강수의 세 번째 개인전으로 쏠렸다. 세 번째 개인전은 선암갤러리에서 열리기 때문에 그림값 인상 논쟁이 벌어졌고, 호당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강수가 한국 미술계에 일으키고 있는 돌풍을 가장 반기는 사람은 선암갤러리 관장 조창석이었다.
11월 12일 금요일.
선암갤러리 관장실에 조창석과 장영봉이 소파에 앉아 업무에 관해 논의하고 있었다.
조창석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장 부장. 이강수 기사 읽었지?”
“예, 읽어보았습니다. 워낙 많은 매체에서 기사로 다뤘더군요.”
“희망을 던져라 전이 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어. 더구나 이강수의 작품은 사전 판매로 30점이나 팔리고 말이지. 이강수 인기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이강수의 세 번째 개인전은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나?”
“얼마 전 통화했을 때 완성된 작품만 90여 점이라고 했고, 110점 정도 준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110점이나. 출품작이 많으면 우리야 환영할 일이지. 소품 위주로 그린다고 한다지만 놀라운 창작력이 아닐 수 없군. 그림값에 관해서는 얘기해 봤나?”
“그건 아직 얘기 못 했습니다.”
“그러면 장 부장은 호당 얼마쯤으로 책정할 생각인가?”
“저는 최소 사백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백이라....”
조창석이 팔짱을 끼고 등을 뒤로 기댔다.
잠시 염두를 굴린 조창석이 입을 열었다.
“음, 조금 더 올리는 건 어떤가? 한 육백은 어때?”
“저는 육백도 괜찮다고 봅니다. 다만 이 작가는 가격에 예민한 편이라 아마 비싸다고 할 겁니다.”
“비싸긴 하지. 하지만 이강수 그림은 공급보다 수요가 모자랄 정도로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어. 그렇다고 인기가 있어서 무조건 가격을 올리자는 게 아니야. 무엇보다 그림이 세계적인 작가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 그림에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자는 얘기일세.”
장영봉이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창석이 마음을 굳힌 듯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당 육백으로 밀고, 이강수가 비싸다며 낮추자고 해도 최소 오백은 받도록 장 부장이 잘 얘기하게. 어차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컬렉터들이 구매할 텐데 그림값을 낮게 책정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조창석의 말이 맞았다.
이강수의 그림은 일반인이 구매하기엔 호당 가격이 너무 올랐다. 구매자가 컬렉터나 갤러리스트, 기업이나 미술관으로 좁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었다. 그림의 퀄리티에 맞게 고가에 팔 수만 있다면 고가에 팔아야 한다. 그것이 자기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최소 오백 이상 책정할 수 있도록 이 작가와 조율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강수 세 번째 개인전에 대한 인센티브는 두 배를 주겠네. 수고했으니 그 정도는 받아야지.”
장영봉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장영봉이 재빨리 머리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관장님, 감사합니다.”
두 배의 인센티브면 전시 수익의 8%다. 10억의 매출을 올리면 갤러리 몫은 5억. 5억의 8%가 장영봉이 받는 인센티브다.
이강수의 호당 그림값을 최대한 올려야 할 뚜렷한 동기가 생겼다. 꾸물거릴 것 없이 즉시 강수와 통화해서 강수의 의중을 파악하고 싶었다.
“관장님, 더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
“아니. 내가 할 말은 다 했네.”
“저는 나가서 이강수와 그림값에 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그러게나.”
관장실을 나온 장영봉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스마트폰을 꺼내 강수에게 전화했다. 꽤 긴 신호가 간 후에서야 통화가 연결되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 작가, 통화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 작가, 세 번째 개인전이 한 달도 남지 않아서 전화해 봤네. 어때? 작품은 계획대로 진행 중인가?”
[본래 계획했던 작품 수보다 적지만 약 115점은 출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5점이면 적은 작품이 아닌데 고생이 많네. 그리고 이 작가.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예? 뭐죠?]
“그림값을 결정해야 할 것 같아. 조창석 관장님이 호당 육백에 책정하라고 하시네. 나도 육백 정도면 적당한 가격 같아서 이 작가만 괜찮으면 육백으로 정하려고 한다네.”
스마트폰에서 약간 놀라워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호당 육백이면 지금 전시 출품작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이군요. 가격이 좀 세지 않나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작품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는 다양하다. 미술품의 절대 가치, 미술품이 담고 있는 시대성, 보존상태, 크기, 제작 연대, 컬렉터의 선호도, 미술관이나 유명 컬렉터의 소장 여부, 작가의 사회적 명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이밖에도 작가별로 본다면 연령, 개인전 경력, 대회 수상 경력,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인정, 사회적 영향력 등을 들 수 있다.
단순하게 보면 작품 가격은 갖고 싶은 사람이 기꺼이 지급할 수 있는 금액으로 결정된다. 즉, 판매자가 부르는 가격을 구매자가 지급했을 때 가격이 정해진다.
하지만 그림값은 때때로 위의 요인을 무시하고 특정한 요인에 의해 격렬하게 요동친다.
‘나는 평생 길거리 부랑아로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 장-미셸 바스키아. 그의 그림이 그렇다. 바스키아는 1980년대 초 약 8년 정도 작품 활동했고, 1988년 8월, 스물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1980년대 미국 사회가 안고 있었던 인종 갈등, 범죄, 마약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신표현주의 양식의 그림에 반영한 작가다. 그로 인해 역사적인 대가들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고, 천상계의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강수가 놀라워하자 장영봉은 준비한 답변을 얘기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그림값은 작품성이나 작가 경력, 명성, 그림에 대한 수요, 컬렉터의 선호도, 대중의 인기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되지 않나?”
[그렇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작가 그림은 몇몇 요인이 최고 수준에 올라가 있네. 무엇보다 자네 그림에 대한 수요, 투자나 소장하고자 하는 컬렉터가 넘친다는 거지. 더구나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 자네 그림은 생존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와 견주어도 될 만큼 예술적으로 뛰어나거든. 자네 그림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한 것이 아니냐. 최이석, 한동완, 정기설 같은 평론가와 박윤재 관장, 조창석 관장, 동료 갤러리스트는 물론이고 예술적인 안목이 높은 여러 컬렉터도 자네 그림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네. 그리고 사실 가격을 낮춰 호당 사오백으로 책정해도 일반인이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 어차피 구매 대상이 일반인이 아닌 컬렉터나 투자자, 갤러리스트라면 작품의 내재적 가치에 맞는 그림값을 책정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음, 그렇군요. 저는 제 그림 가격이 얼마면 적당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분야는 조 관장님과 장 선배님이 전문가이시니까 두 분이 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림값이 높으면 저야 나쁠 것 없으니까요.]
“하하. 당연하네. 그림값이야말로 작가의 명성을 판단하는 바로미터 아닌가? 어느 작가나 자기 작품이 최고 가격에 팔리기를 원하는 법이지. 그림 가격은 약간 조정될 수는 있지만, 호당 육백만 원 내외에서 결정하겠네.”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래. 들어가게.”
전화를 끊은 강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넓은 공간에 자동차가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강수가 있는 곳은 예술의 전당 주차장이다.
‘헐, 호당 육백이나? 20호가 일억 이천만 원이면 너무 비싸잖아. 칠억 낙찰가 때문에 그림값이 폭등하는군. 그림값이 오르면 돈은 엄청나게 벌 수 있겠구나....’
돈을 떠올린 강수가 미간을 좁혔다.
작년 여름 화가의 길을 가겠다며 없는 처지에 아파트를 빼서 작업실을 겸할 수 있는 서울의 변두리 값싼 반지하 방이라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투팍탈을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쯤 변두리 반지하 방에서 화가로서 성공하겠다며 붓질하고 있었을 것이다.
돈은 생활의 편익을 위해 인간이 만들었고, 오직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 순간 돈의 노예가 되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할 사회는 가진 돈에 의해 계층이 나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상식적인 사회가 되었다.
문득 강수의 뇌리에 영업이 끝난 분식집에 몰래 들어 가 라면 2개 끓여 먹고 허기를 채운 뒤 2만 원쯤 든 동전통과 라면 10개를 훔친 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는 글이 떠올랐다. 물론 라면 훔친 사람이 중형을 선고받은 이유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상습절도죄가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백, 수천억 사기 치고, 수많은 사람을 지옥 같은 절망에 빠뜨린 놈들은 법망 피해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데 고작 라면 때문에....’
자동차 키를 뺀 강수가 운전석에서 유리창 밖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겨울의 하늘은 맑았고, 눈이 시린 푸른색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밤이 되면 저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로 가득 차서 빛나겠지. 하늘은 저렇게 푸르고 아름다운데....’
사회나 정치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회, 정치, 시민의식의 변화는 세대를 지나며 서서히 변화, 발전해 간다. 당장은 과거부터 수십 년 전부터 기득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들이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차에서 내린 강수는 천천히 한가람 미술관을 향해 걸어갔다.
강수는 최이석 교수와 만나기 위해 예술의 전당 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던 중 장영봉의 전화를 받고 통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