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159화 (159/197)

그림 그리는 마법사 - 1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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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 미술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평론가 최이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볼만하군. 작품 가격도 신인들 전시회답게 저렴하게 책정해서 구매하는 데 부담 없고. 사실 이강수가 참여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관심 끌지는 못 했을 텐데 이강수 덕을 톡톡하게 보는구나.’

1층을 둘러보고 2층 3관, 4관을 둘러보던 최이석이 걸음을 멈췄다.

‘이 작품은 상당히 개성적이고 완성도가 있는데? 작가가... 이동석?’

최이석은 팸플릿을 뒤져 이동석의 프로필을 찾아보았다.

‘이 친구도 홍우대 졸업했군. 12학번이면 이강수, 깅종대와 동기구나.’

프로필에는 단체전 참여만 있을 뿐 개인전 경력은 없었다. 팸플릿에서 작품으로 시선을 돌린 최이석은 이동석의 작품을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동석의 작품은 20점이나 되어 개인전 수준의 작품 수를 전시했다.

‘구상표현주의 양식에 초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요소까지 가미되었어. 여러 장르가 뒤섞이면 난잡하기 마련인데 이 친구 작품은 의외로 구도와 채색이 안정적이군. 그래서 그런지 작품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있고. 이런 스타일로 꾸준히 작품 활동하면 독특한 구상표현주의 작가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겠어.’

최이석은 이동석의 그림에 대한 특징과 느낌을 노트에 메모했다.

메모를 끝낸 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하하. 이 친구 작품도 김종대 못지않아 보이는데? 이거 홍우대 12학번 세 명이 트로이카를 구축하는 건가? 이강수, 김종대, 이동석. 이들 세 명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회에 나온 신인들을 주축으로 예술계에 새바람이 불겠군.’

3층 4관까지 전시된 작품을 살펴본 최이석은 주목할 작가를 벌써 15여 명이나 발견했다. 자기 목소리가 확실한 신예 예술가인 박해나, 김이연, 장동운, 심오균, 윤병기, 남호용, 심준영, 민소일, 함기평, 채서령, 이강수 등의 뒤를 이을 포스트 신예들이 대거 등장했음을 직감했다. 잠재력을 품고 있는 신예의 등장은 한국 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고 예술의 대중화는 한층 폭넓게 펼쳐질 것이다.

‘희망을 던져라전을 앞으로 계속 개최하고, 전시회가 성장해 나가면 한국 예술의 부흥에 견인차가 될 수도 있겠어. 단발성 행사로 끝나면 안 될 것 같군. 강하아트 관계자를 만나봐야겠어.’

최이석은 주최 측 강하아트에 정기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제안하기로 마음먹었다.

*

우민식은 작품 구매를 위해 줄 서 있는 10여 명의 사람을 보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우민식이 옆에서 계약서 작성을 도와주고 있는 20대 초반의 알바생 이유빈을 불렀다.

“유빈 씨.”

“예, 대리님.”

이유빈은 키가 165cm로 적당했으나 몸에 살이 없어 말라 보였다. 블라우스에 가디건을 걸친 그녀는 깔끔한 외모의 여성이었다.

“팀장님한테 전화해서 내가 의논할 게 있다고 사무실로 오시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유빈이 서둘러 전화했고, 잠시 후 이유빈의 전화를 받은 염진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팀장님, 손님이 너무 많습니다.”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여는 우민식에게 손을 저었다.

“알았다. 도와주지.”

상황을 파악한 염진구는 즉시 자기 자리에서 노트북을 들고 와 이유빈의 옆 책상에 앉았다.

염진구가 줄 서 있는 50대 중반의 여성에게 말했다.

“손님, 이쪽으로 오시죠.”

“아휴, 그림 하나 사기 힘드네. 한참 기다렸어.”

여성이 염진구에게 다가가며 푸념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작품 구매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느 작가 작품을 구매하시겠습니까?”

“장이진 작품 하나 살게. 얘가 내 조카인데 ‘낯선 기억 속의 문’이란 작품이 아주 멋있네.”

“아, 장이진 씨가 사모님 조카 되는군요. 사모님께서 안목이 좋으시네요. 훌륭한 작품을 고르셨습니다.”

“호호. 총각이 보기에도 ‘낯선 기억 속의 문’ 괜찮지?”

“그럼요. 장이진 씨 그림들은 굉장히 몽환적이고 특이한 작품입니다. 잠자다 갑자기 일어나서 느낀 생생한 꿈과 그 꿈보다 더 낯설게 다가오는 현실, 그 중간의 지점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듯하죠? ‘낯선 기억 속의 문’, ‘개울가에서 잠들다’, ‘지평의 끝에 서다’ 같은 작품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서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몽환적인 붓 터치로 그려내고 있는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년 여성이 눈을 깜박이며 염진구를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몽환적이면서 현실에 바탕을 둔 그림이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조카 장이진, 엄청나게 재능 있지 않아?”

“물론이죠. 앞으로 지켜보시면 알겠지만 그림이 워낙 좋아서 분명히 여류작가로 성공할 겁니다.”

“홍콩에서 칠억에 낙찰됐다는 이강수 작가처럼 우리 이진이도 빨리 성공했으면 좋겠네. 조카한테 홍콩 경매에 출품하라고 해볼까?”

염진구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괜찮죠. 서울옥션이나 와이옥션 그리고 한국에 지부를 둔 크리스티 같은 경매회사에 출품하면 작품 심사를 통해 경매 작품으로 선정될 수 있죠. 사모님, ‘낯선 기억 속의 문’은 60호 작품으로 사백팔십만 원입니다. 여기 구매계약서입니다.”

중년 여인은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구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중년 여인을 필두로 염진구는 밀려드는 구매자를 상대했다.

염진구는 구매자가 선택한 작품에 대해 그림이나 조각, 설치미술의 양식적 특징과 작품에 사용된 재료, 제작 과정 등을 설명해주었다. 구매자들은 염진구의 해박한 예술적 지식과 유쾌하고 적절한 작품 해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했다.

오후 6시 30분, 폐문 안내 방송이 나가고 나서야 구매자 줄이 줄었다.

폐문 15분 전인 6시 45분.

염진구는 30대 후반의 정장 입은 사내가 작성한 구매계약서에서 원본을 떼어내 사내에게 돌려주며 인사했다.

“이동석 작가의 작품을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이렇게 좋은 작품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심도 있는 작품 해설까지 들었으니 오히려 내가 감사하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구매자에게 인사한 염진구가 빨간 스티커 열 장을 챙겨서 우민식에게 다가갔다.

“민식아, 난 스티커 붙이고 전시장 둘러본 후 문 잠그고 오마. 수고 좀 해라.”

“예,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사무실 밖으로 나간 염진구는 입구에서 강수와 김주하, 임해영, 김종대, 이동석을 만났다. 키 큰 이동석이 염진구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염진구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진구야, 전시 여느라 수고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실 있는 전시회라고 평이 좋다. 그래서 내 기분도 날아갈 것 같다.”

“자식. 네 그림이 일곱 점이나 팔려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거 아니냐?”

김종대가 옆에서 이동석을 놀렸다.

“동석이 작품 평이 좋은 건 당연하지. 이번 출품작들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성까지 겸비했잖아?”

“하하. 그렇긴 해. 뭐가 뭔지 모를 추상표현에서 구상표현으로 수준을 내려서 대중의 눈높이에 다가갔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방금 동석이 그림 일반 관람객이 또 하나 샀다.”

“오, 이 자식 작품 완판되는 거 아냐?”

김종대와 염진구가 은근히 자기를 놀려도 일반 관람객이 또 한 작품 샀다는 말에 이동석은 인상 쓰기는커녕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전시회가 대성황이다. 내일도 오늘처럼 관람객이 찾아오면 좋겠다. 진구야, 스티커 붙이러 가는 거냐?”

“어. 스티커도 붙이고 전시장 폐문하러. 들어가 있어라. 전시장 둘러보고 금방 오마.”

“그래. 갔다 와라.”

“진구오빠, 수고하고 사무실에서 봐요.”

“아, 그래.”

강수 일행은 사무실로 들어갔고, 염진구는 1층으로 내려갔다.

한가람 미술관 휴관 시간인 오후 7시.

사무실로 남녀 알바생들이 몰려 들어오며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어서 와. 다들 고생했어. 피곤할 텐데 출근부에 사인하고 퇴근해.”

“예, 우 대리님.”

“유빈 씨하고 선미 씨도 고생 많았어. 두 사람도 빨리 퇴근 해.”

“그럼 저희 먼저 퇴근할게요. 유 대리님, 수고하세요.”

“그래. 내일 보자.”

알바생들이 자기 물건을 챙기며 사무실 한쪽에 모여 있는 강수 일행을 발견하고 힐끔거렸다.

친구로 보이는 캐주얼한 복장의 세 여성이 얼굴을 맞대고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야야, 칠억의 사나이, 이강수 화가다. 후아, 비주얼 죽인다. 한데 저 두 여자는 누굴까?”

“동료 화가인가?”

“바보야, 넌 저 두 여자가 예술 하는 여자로 보이니? 딱 봐도 애인이구먼.”

“누구 애인?”

“김종대 씨는 임자 있을 걸.”

“그럼 이강수 화가랑 이동석 화가?”

“아아, 부럽다. 이강수 오빠 애인이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겠어.”

“키하고 몸매 봐라. 두 여자 생긴 것도 보통이 아냐. 꿈 깨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휴우- 남자다운 남자도 못 만나고 서글픈 알바 인생이라니. 내 청춘이 이렇게 오욕의 역사로 묻히는 건가?”

“그러게 말이야. 누군 저렇게 우아하게 차려입고 다니는데 우린 청바지에 운동화. 이게 뭐니?”

“이것들아, 궁상떨지 말고 나가기나 해.”

가방을 챙긴 세 명의 여자 알바생이 미련의 눈빛으로 이강수를 훔쳐보고 사무실 밖으로 터덜터덜 향했다. 퇴근 준비를 끝낸 알바생이 각자 가방을 챙겨서 끼리끼리 사무실 밖으로 몰려나갔다.

*

“민식아, 아침부터 고생 많이 했다. 수고했어.”

“수고했다.”

“민식 씨, 고생했어요. 배고프죠? 저녁 맛있는 거 먹어요.”

강수 일행이 우민식에게 다가가 노고를 치하하자 우민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수고는요, 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전시장을 둘러보고 사무실로 돌아온 염진구가 강수 일행 옆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무슨 소리. 민식이가 고생 많이 했지. 덕분에 전시도 원활하게 열 수 있었고,”

“그래? 전시회 끝나면 보너스라도 챙겨줘야겠는데?”

“앗, 정말이요?”

염진구가 우민식의 허리를 쿡 찔렀다.

“인마, 강하아트 대표이사가 빈 소리 할까? 빨리 감사하다고 해.”

움찔한 우민식이 재빨리 허리를 넙죽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장? 강하아트 대표이사니까 사장 맞지. 혼자 매출 십팔억 올리고 말이지. 이러다 일인 대기업 되는 거 아닐지 몰라.”

이동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장이란 말에 강수가 멋쩍게 웃었다.

“하하. 살다 보니 내가 사장 소릴 다 듣네. 진구야, 작품이 꽤 팔린 것 같다. 얼마나 팔렸냐?”

구매 행렬을 떠올린 염진구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엄청나게 팔렸지. 잠깐만 집계 좀 해보자.”

‘대체 몇 점이나 팔린 거냐?’

속으로 중얼거린 염진구는 노트북을 보며 작품 판매와 매출액을 집계했다.

모니터에 나타난 숫자를 확인한 염진구가 기대 이상의 성적에 눈을 크게 떴다.

“아! 굉장하다. 312점이나 팔렸다.”

“312점이나! 대단한데.”

“이야, 엄청나게 팔렸다? 개막 첫날이라 그런 걸까?”

강수 일행이 놀라운 판매 결과에 입을 벌리고 탄성을 질렀다.

전시장 폐문 시간인 오후 7시가 될 때까지 구매자가 줄을 서서 구매했고, 3명이 달라붙어 구매계약서를 작성해서 판매 성적이 좋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개막식 첫날 판매된 작품 수가 무려 312점이다.

대부분 지인 구매였지만 누가 구매했는지를 떠나서 판매 성적은 고무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강수가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전시회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저녁은 내가 크게 한턱낼 테니까 정리하고 나가자.”

“좋지. 오늘같이 기쁜 날 축하주 한잔해야지. 진구야, 정리할 거 있냐?”

“아니, 할 거 없어. 나가면 된다.”

“그럼 뭘 꾸물거려. 한잔하러 가자.”

강수 일행이 우르르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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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 미숧관 ‘한국 청년예술가들이여, 희망을 던져라’ 전에 관람객 몰려

-이강수의 질주는 어디까지인가?

-벌써 이강수의 세 번째 개인전 기다리는 사람 많아.

-이강수, 홍콩경매의 명성 그대로 이어가.

<11월 10일 오후 4시 ‘한국 청년예술가들이여, 희망을 던져라’ 전이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이 전시회는 회화, 조각, 사진,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청년예술가 125인이 참여하고, 한가람 미술관 3개 층 6개 전시장 전부 사용하는 대규모 전시회다.

이 전시회에 와이옥션 홍콩경매에서 ‘졸업반 아이들’이 7억에 낙찰되며 ‘7억의 사나이’로 불리는 이강수 화가가 참여했다. ‘졸업반 아이들’의 7억 낙찰가는 네티즌 사이에서 이슈가 되었고, 미술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낙찰가라는 의견이 제기되며 거품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이석 평론가는 ‘졸업반 아이들’이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강렬하며 조화로운 채색, 뛰어난 작품성까지 갖춘 보기 드문 작품으로 7억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옹호했다. 이처럼 이강수 그림에 대한 상반된 의견으로 인해 이강수 화가의 작품 50점이 출품되는 이번 전시회는 갤러리스트를 비롯해 미술 관계자, 컬렉터, 네티즌 등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전시회 개막 전부터 관심을 모은 이강수 화가의 그림값 논란은 싱겁게 끝났다.

전시회에 출품된 이강수의 작품 50점은 호당 280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30점이 개막 전에 판매되었고, 나머지 20점은 개막 1시간 만에 전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주최 측에서 밝힌 이강수 작품의 총 판매 가격은 약 18억 원이라고 한다.

이강수 작품의 완판은 다른 작가 작품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강수 작품이 완판 된 후 다른 작가의 작품 판매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 작품은 이강수 작품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무척 저렴해 경제적 부담이 낮다는데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청년예술가들이여, 희망을 던져라’ 전은 한가람 미술관에서 14일까지 개최한다.>

탑뉴스 손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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