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45화 (45/197)

# 45

그림 그리는 마법사 - 45회

한가람미술관에 다시 방문한 강수는 모네의 작품들을 몇 번에 걸쳐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들판에 비치는 햇살’ 앞에 섰다.

‘역시 그림은 완벽한데 미묘하지만 느낌이 달라. 그건 붓 터치가 조심스럽다고나 할까? 채도의 미세한 차이 같기도 해. 과연 내 안목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해보자.’

모네 그림 앞에 선 강수는 살짝 긴장했다.

‘60호 정돈데 설마 쇼크가 오진 않겠지?’

쇼크가 생기지 않길 빌면서 강수는 속으로 영창을 끝내고 이센셜아이를 캐스팅했다. 마나하트에서 마나가 쑥 빠져나갔다.

뇌리로 그림의 정보가 흘러들어 왔다.

-1936년 작··· 아마천 1924년 생산··· 카드뮴 옐로··· 버밀리온··· 티타늄 화이트··· 오레올린··· 코발트 바이올렛.

“와, 위작이었어! 내가 제대로 봤구나.”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강수가 흠칫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관람객이 적지 않았지만, 자신을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네는 1926년 사망했으니 위작이 틀림없었다.

강수는 ‘들판에 비치는 햇살’을 다시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음, 혹시 레플리카인가?’

강수는 이내 부정했다.

‘아냐. 이 작품만 레플리카일 리가 없지. 그리고 레플리카는 레플리카라고 알려주지. 결국, 미라세미술관 측도 위작이란 사실을 모를 소지가 다분한데? 알려줘야 해 말아야 해?’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위작 사실을 알고 나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들판에 비치는 햇살’은 위작인데 모네의 작품으로 전시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라세미술관에서 위작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모를까 위작임을 알고 있다면 대중을 속이고 호도하는 행위였다. 미라세미술관의 전통과 명성으로 보건대 절대 위작을 진품인 듯 전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을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몰라도 현재 그림 가격은 수백억 원을 호가할 것이다. 위작으로 판명 나면 수십만 원으로 곤두박질치겠지만.

생각을 정리한 강수는 일단 한가람미술관 전시담당자에게 위작 사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담당자가 마라세미술관 관계자에게 위작 사실을 전달해 줄 것이고, 미라세미술관에서 어떤 조처를 할지는 강수의 관심 밖이었다.

강수는 전시장 밖으로 나가며 마나를 확인했다.

마나 잔량은 30%쯤이었다.

‘어휴, 마나 소모가 너무 심하다. 2서클을 빨리 만들어야 맘 놓고 캐스팅을 하겠어. 물감은 이틀 뒤에나 사야겠다.’

강수는 물감의 물성 정보를 확인해서 가장 좋은 물감을 살 계획이었다.

전시장 밖으로 나온 강수는 한가람미술관에 전화를 걸어 미라세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담당자를 찾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학예사 민원진입니다.]

“안녕하세요. 미라세미술관 특별전을 감명 깊게 관람한 관람객입니다. 특별전을 감상하고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무슨 사실을?]

“다름이 아니라 전시 작품 중 모네의 작품 ‘들판에 비치는 햇빛’은 위작입니다. 모네 사후 10년 후인 1936년에 만들어진 위작이죠. 마라세미술관 관계자에게 위작 사실을 알려주시면 좋겠군요.”

[예?]

민원진은 생뚱맞은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위작?’

곧 위작이라는 단어의 뜻이 떠올랐다. 장난 전화인가 싶어 끊으려다 무슨 근거로 위작이라고 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당신은 누구죠? 무슨 근거로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겁니까?”

[근거요? 근거라면 제가 그림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군요. 실은 미라세미술관 관계자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어도 프랑스 말을 모르고, 연락처도 모릅니다. 민원진 님이 미라세미술관 관계자에게 위작 사실을 책임지고 전달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림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고?’

상대방의 주장이 황당했지만 가끔 절대음감처럼 특별한 감각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도 비슷한 능력을 갖춘 사람일 수 있었다. 약간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 남다른 눈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려는데 꼭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수화기에서 신호음이 떨어졌다.

“허.”

수화기를 내려놓은 민원진은 장난 전화라고 치부해버렸다.

‘모네의 작품이 위작이라니! 말이 돼?’

모니터에 시선을 준 민원진은 기획서 자료를 뒤적이다 마우스를 놓았다. 심기가 불편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위작이란 단어가 계속 신경을 거슬린 것이다. 특히 년도까지 짚어서 얘기한 것이 일반적인 장난 전화와는 달랐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에잇, 장난 전화일 수도 있지만, 위작이라고 한 마디 전해주는 것쯤이야 별 일도 아니잖아.”

민원진은 의자에서 일어나 전시 총책임자 롤랑에게 임시로 마련해준 사무실로 갔다.

똑똑!

“롤랑, 미스터 민입니다.”

“컴인.”

사무실에는 프랑스인 특유의 매력적인 외모를 한 40대의 백인 남성이 민원준을 맞이했다.

사무실로 들어간 민원진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롤랑, 좀 전에 이상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장난 전화 같은데 일단 보고하는 게 나은 것 같아 왔습니다.”

“무슨 전화인데 그러시죠?”

“모네의 작품 ‘들판에 비치는 햇빛’이 1936년에 제작된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꼭 롤랑 씨에게 이 말을 전해달라고 해서 일단 보고하는 겁니다.”

위작이라는 말에 멀뚱히 민원준을 바라보던 롤랑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그거 웃기는 전화군요. 그 작품은 미술관에서 소장한 지 80년이 넘습니다. 한데 위작이라니 우습군요. 누가 그런 전화를 한 겁니까? 장난이 심해요.”

민원준도 멋쩍게 따라 웃었다.

“하하. 그러게요. 전화한 사람은 관람객이라고 했는데 누군지는 밝히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롤랑이 웃음을 거두고 물었다.

“익명 전화란 말입니까? 그 사람이 다른 곳에도 위작 얘기를 했다간 명예훼손과 다르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한데 그 사람은 위작이라는 사실만 롤랑씨에게 전해달라는 말만 하고선 바로 끊었습니다. 경고해줄 틈도 없었죠.”

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전화 오면 내게 알려주세요. 누군지 확인해서 법적인 조처를 할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일 보시죠.”

민원진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롤랑이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감히 모네의 위대한 작품을 어떤 자식이 위작이라고 장난을 치는 거야? 요즘은 어딜 가나 미친놈들이 많다니까.”

중얼거린 롤랑이 책꽂이에서 7개국 순회 전시 작품 목록을 정리해 놓은 파일을 꺼내 펼쳤다.

‘들판에 비치는 햇빛’은 모네 사후 10여 년이 지난 1936년에 미술관에서 구입한 작품이었다. 당시의 관장은 제레미 피에르 펠린. 구입 가격은 2만3천 프랑.

특이사항으로 판매상은 2차대전 중 파산, 거처불명으로 나와 있었다. 당연히 사망했을 것이다.

롤랑이 눈살이 살짝 찌푸렸다.

‘머야? 정말 1936년에 구입을 했잖아?’

위작이란 얘기를 듣고 나니 특이사항이 눈에 거슬렸다. 특히 1936년에 구입한 것을 확인한 순간 한 줄기 전율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모네의 그림 가격은 현재 2, 3천만 달러는 기본이고, 작품에 따라 더 고가에 경매된다.

롤랑이 신경질적으로 파일을 덮었다.

*

“관장님, 아크페어 상하이에 참가할 작가 리스트입니다. 검토해주십시오.”

그림과 조각, 공예 작품이 벽과 실내 공간 요소요소에 배치된 20평 넓이의 고급스러운 사무실.

수석 큐레이터 김이라는 관장에게 결재판을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실제 나이는 67세지만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무실의 주인, 갤러리윤의 관장 박윤재는 세련된 오피스룩을 입은 김이라가 내민 결재판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술 한잔했다고 잊어버리고 있었네.”

“예?”

“김 실장에게 한 말이 아냐. 김 실장, 7월 초 선암갤러리에서 열었던 ‘한국청년화가 12인전’에 참여한 작가 중에 이강수라는 화가를 알고 있나?”

“이강수요?”

이강수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언뜻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으나 그녀의 머리에 든 신인작가 정보에는 이강수가 없었다.

“아뇨. 모르는 화가입니다.”

“그래, 김 실장이 모를 정도니 무명작가군. 한데 이강수라는 친구는 최이석 평론가가 칭찬할 정도의 대단한 물건이야. 아트페어 상하이에 참여하기로 했으니까 작가 리스트에 이강수를 포함해서 다시 갖고 와.”

김이라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으나 이유는 묻지 않았다. 관장은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사적인 부분은 굉장히 엄격했기 때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김이라는 결재판을 들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아, 김 실장.”

관장실을 나가려던 김이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박윤재가 메모지를 내밀었다.

“이강수라는 친구 전화번호일세. 그리고 작가 약력은 물론이고 신상명세도 첨부하도록 하게나.”

“신상명세도요?”

“일반적인 신상명세 양식을 메일로 보내주고, 작가 관리에 필요하다며 양해를 구하면 되겠지?”

“아, 예. 알겠습니다.”

메모지를 받아서 관장실을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김이라는 결재판을 책상 위에 놓고 책장에서 파일을 꺼냈다.

각 화랑의 전시 관련 홍보물을 정리해 놓은 파일이었다.

파일을 뒤적이던 김이라는 곧 찾고 있는 팜플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서 본 이름이다 했더니 여기서 봤구나.’

작가소개란 쪽에서 12번째 마지막 소개작가가 이강수였다.

몇 줄에 불과한 간략한 작가 이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김이라는 수화기를 들어 선암갤러리 장영봉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파트로 돌아온 강수는 첫 개인전 주제를 무엇으로 잡을지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아직도 마땅한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강수는 발코니로 나가 창밖에 펼쳐진 소박한 동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내뱉는 뜨거운 열기에 달궈진 바깥세상은 풍경마저 후줄근했다.

‘서울은 벽과 벽으로 채워진, 벽으로 이루어진 동네야. 어떻게 이런 막힌 도시에서 살까 싶었는데 어느새 나도 익숙해졌구나.’

서울에서 지낸 지난 시간을 반추해보았다.

천만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아가고 있는 서울에서 자신은 어떤 존재였을까?

도시인a, 지나가는 사람1, 미미한 존재, 의미조차 부여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이 동네를 비롯해 서울은 티끌만 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서울에 사는 대부분 소시민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비록 몇몇 사람들 외에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존재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가는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또 가족을 위해서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살아가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고 숙명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죽음과 대면하고 영원한 영면에 든다.

작게는 가족, 넓게는 사회와 인연이 끊기고, 한 톨 먼지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런 삶만으로도 인간의 존재의미는 충분할지 모른다.

‘그렇긴 한데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우매한 질문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 아닌가?

강수는 피식 실소 지으며 스스로 질문 했다.

‘나는 도시인의 삶을 살면서 만족스러웠냐?’

자신의 서울 생활은 때로는 만족해했고, 때로는 불합리와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불만을 품기도 했다.

‘서울, 도시··· 그래. 내가 살아온 이 도시를 그려 보자.’

자신이 경험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도시와 도시인, 아니 도시와 자신의 삶, 희망을 주제로 정했다.

주제(主題, theme)는 작가가 표현하려는 기본이 되는 중심 사상이나 관념이다. 주제가 던져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과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한다.

강수가 잡아낸 주제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독자의 취향에 맞춰 작품을 창작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녹여 작품을 창작하여 대중 앞에 제시한다. 그것을 누리고 비판하는 몫은 독자와 비평가다.

그 때문에 어디까지나 강수의 관점과 세계관에 기초해서 진단하는 도시, 그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과 희망이다.

‘주제를 정했으니 이제 소재를 찾아 작업을 시작하면 되겠구나. 포트폴리오에 있는 15점 가운데 절반 정도는 이 주제에 맞게 재창작할 수 있겠다.’

주제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소재는··· 천천히 찾아보지 뭐.’

소재는 발품을 팔거나 각종 잡지와 인터넷을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실로 들어오니 스마트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다.

‘설마?’

강수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갤러리윤 수석 큐레이터 김이라입니다. 이강수 씨 되시나요?]

느낌이 갤러리윤에서 온 전화 같았는데 예상이 맞았다. 심장이 약간 빠르게 뛰었다.

‘세상에! 박해나가 장난친 게 아니었어.’

강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대답했다.

“예, 이강수입니다.”

[아트페어 상하이에 참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예, 맞습니다.”

[그럼 이강수 씨가 갤러리윤 소속 작가로 아트페어 상하이에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동의하시나요?]

“예, 동의합니다.”

[아트페어와 관련해서 간단히 안내해 드리죠. 아트페어 일정은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입니다. 출품작은 개막 일주일 전, 10월 7일까지 갤러리윤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행사 자료와 참가 시 필요한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줄게요. 행사자료는 읽어보시고 몇 가지 서류는 준비하는 대로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우선 이메일부터 문자로 보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문의 사항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해주시고요, 좋은 작품 기대하겠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수는 즉각 문자로 이메일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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