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 그리는 마법사-43화 (43/197)

# 43

그림 그리는 마법사 - 43회

강수는 블링크를 사용해 포커 카드를 이동하는 마술을 몇 번 하다 그만두었다.

카드가 손에 익지 않은 상태에서 순간이동을 해봐야 어색하기만 하고 카드는 손에서 튕겨나갔다.

노민석이 충고한 대로 카드를 손에 익히고 길들이기는 훈련이 필요했다.

카드를 섞는 셔플, 스프레드, 패닝, 원 핸드 패닝 등.

강수가 카드의 기초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때 카페에서 공연을 끝내고 회원들이 내려왔다.

어느덧 밤 9시가 다 된 것이다.

연주가 강수에게 다가왔다.

“강수오빠, 아직 안 갔구나.”

“그러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마술 공연은 잘 끝났어?”

“헤헤, 회장님 실력이 거의 준프로급이라 문제없죠.”

“민석 형님 실력이 그 정도야? 다음엔 나도 카페에 올라가서 관람해봐야겠다.”

“그럼 좋죠. 참,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기로 했는데 오빠도 같이 가요.”

“맥주? 음···.”

원래 계획은 오늘 원화 한 장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서 채색한다고 해도 늦은 감이 있었다.

“왜요? 바빠요?”

“채색할 게 있는데 내일 하지 뭐.”

“그럼 같이 가요.”

강수는 포커 카드를 캐비닛에 넣고 노민석 등과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온 강창호가 작별인사를 했다.

“형님들, 재밌게 보내세요. 전 알바 때문에 먼저 갈게요.”

“그래, 운전 조심해.”

“잘 가.”

강창호는 곧 인파 속으로 파묻혀 모습을 감추었다.

강수가 팔을 흔드는 연주에게 슬쩍 물었다.

“밤에 무슨 알바를 하러 가지?”

“대리운전이요. 학비 마련한다고. 올해 3학년에 복학했거든요.”

“그래? 개강하면 알바 그만두겠네?”

“아닐걸요. 집안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서 아마 계속할 거에요.”

“···.”

창호는 자신이 5년 전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자신도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고 젊음을 바쳐서 알바에 매달렸으니까. 알바를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연주는 창호랑 친한가 보다. 창호 사정을 잘 알고 있네.”

“동갑이라 가끔 이런저런 얘길 하다 알게 된 거죠. 그렇게 친한 건 아녜요.”

“동갑이면 연주도 25살?”

“맞아요. 올해 졸업했죠. 근데 취업은 안 되고 아빠 일 도와주다 짜증 나고 힘들어서 때려치웠어요.”

“아빠 일?”

“갈비 집 하거든요.”

“아, 부모님이 음식점 하시는구나. 그럼 연주는 지금 취업준비 하는 건가?”

“헤헤, 취준생이긴 한데 우아한 백조죠, 뭐.”

“연주는 목도 길고, 하얀 옷을 입으면 정말 백조 같겠다.”

“정말요? 담에 하얀 옷 입고 와볼까?”

강수와 연주는 잡담을 나누며 앞에서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호프집으로 들어간 일행은 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생맥주 두 잔씩 마시고 2차 없이 곧바로 헤어졌다.

강수는 간단한 술자리를 내심 다행으로 여기며 집으로 향했다.

‘벙어리 황구 죽돌이’의 원화 작업을 끝내려면 이틀 동안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

이틀 뒤.

월요일 늦은 밤 11시경.

“으아아.”

계획대로 15장의 원화 작업을 끝낸 강수는 의자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깍지 끼고 팔을 위로 뻗으면서 기지개를 켰다.

두둑!

뼈마디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드디어 끝났구나. 우와, 빡세다, 빡세.”

목을 좌우로 최대한 돌려주자 우두둑 소리를 내며 뼈가 제자리를 찾았다.

“아이고, 이러다 목 디스크 걸리는 건 아니겠지?”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강수는 완성된 15장의 원화를 펼쳐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한 장씩 감상했다.

‘어?’

원화를 살피던 강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림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원했던 색감과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 채색이 부분적으로 보였다. 그 차이는 미세해서 그림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강수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 때문인가? 늦었으니까 일단 자고 내일 확인하자.”

강수는 간단히 씻고 침대로 가서 그대로 뻗었다.

*

완성된 원화를 무지개출판사로 부치기 위해 한 시간 일찍 수련을 끝내고 돌아온 강수는 원화를 포장하기 전에 그림을 다시 살펴보았다.

역시 어젯밤에 느꼈던 색감과는 미세하게 달랐다.

형광등 불빛과 자연광의 차이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원했던 색상과는 미세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차이지만 강수의 감각은 그 미세한 차이를 감지할 만큼 예리해졌다.

‘그릴 때는 몰랐는데 전부 놓고 보니까 거슬리는 부분이 보이는구나. 뭐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색이 나오지 않지? 물감을 잘못 섞었나?’

과거라면 조금도 고민할 개재가 아니었다.

그냥 넘어가도 아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미술의 재능이 과거에 비교해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지금은 사소한 것도 눈에 띄었다.

예술적인 감각이 스며든 감성의 색감을 물감으로 그대로 표현하는 능력은 결코 아무나 갖고 있지 않다.

강수도 아크릴물감으로 최적의 색을 만들어 썼을 뿐이었다.

빛의 변화에 의해 색감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차이가 미세해서 평범한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또한, 그 차이는 불필요한 정보라 굳이 인지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색채 감각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화가가 대표적인 케이스고 색채 디자인에 종사하는 디자이너 역시 그 감각이 발달해 있다.

강수는 오래전부터 물감을 고집했다.

개개의 물감을 섞어서 자신만의 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감을 섞어서 만든 새로운 색으로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 것은 마치 마법 같았다.

나중에는 어떻게 변할지 몰라도 지금은 다채로운 색채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물감을 다루는 것이 좋았다. 강수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이유였다.

‘음, 각각의 물감이 섞이면 마치 마법처럼 새로운 표현과 감정과 의미를 만들 수 있지. 물감은 마치 마법의 재료 같단 말이야···. 마법 같은 물감!’

문득 강수는 이센셜아이를 떠올렸다. 이센셜아이는 본질을 꿰뚫는다.

‘이센셜아이로 물감의 물성을 파악하면 어떨까? 물감을 더 잘 사용할 수 있을까?’

물감이 공장에서 만들어질 때 결정되는 고유의 물성을 이센셜아이로 파악해 내면 자신이 원하는 색채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채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가 있다는 건데···. 하지만 이센셜아이는 마나 소모가 심하단 말이지. 음, 물감은 작으니까 어쩌면 복권처럼 여러 개를 한번에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일단 하나만 시험해 보자.’

강수는 50ml짜리 코발트 블루를 쥐고 이센셜아이를 펼쳤다.

뇌리에 물감의 정보가 유입되었다.

-아크릴 수지 합성 원료. 내구성 92%, 내광성 87%, 색 발현율 93%.

긴장했지만 심장 쇼크는 발생하지 않았다.

마나를 체크해보니 약 15%의 마나가 소모되었다.

“휴-, 다행이다. 작은 물건이 마나를 덜 먹나 보군.”

대상 물체의 크기나 개수에 따라 마나 소비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색 발현율이 93%. 이것 때문에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은 건가? 비싼 물감은 색 발현율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건데. 다른 물감도 확인해보자.’

강수는 50ml 아크릴물감을 하나씩 확인했다.

물감을 대상으로 이센셜아이는 5번까지 무리가 없었고 마나는 25%가 남았다.

같은 회사 제품이라 그런지 물감의 물성 정보는 1, 2% 내외에서 차이가 날 뿐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나 더 확인하면 마나 잔량이 10%인데···.’

하나 더 확인 했다가 쇼크가 올까 봐 살짝 겁이 났다.

‘저번 복권방에 생긴 쇼크는 심하지 않았어. 그래도 쇼크가 발생하는 기준선을 알아두는 것이 나으니까.’

결국 강수는 흰색 물감을 들고 이센셜아이를 시전했다.

욱신!

“흐흡.”

쇼크는 오지 않았지만 경고를 하듯 심장이 욱신거렸다.

‘아슬아슬했다.’

강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마도 10% 언저리가 쇼크의 기준선 같았다.

‘일단 마나는 10% 이하로 내려가지만 않으면 되겠구나.’

이센셜아이를 사용하는데 있어 물건에 따라 마나 소비가 다르다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확인한 것이다.

‘미세한 차이 때문에 덧칠할 순 없지. 이제 보내자.’

강수는 A3 크기의 원화를 한 장 한 장 포장해서 종이박스에 넣고 완충재를 채운 후 퀵서비스를 불렀다.

시간을 보니 한시 10분.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엉뚱한 데 시간을 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와, 서두르자.”

티에 면바지를 입고 백팩을 멘 후 포장한 박스를 들고 라인 현관으로 내려갔다. 아예 동 라인 현관에서 박스를 주고 곧장 출발해야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부아앙!

요란한 소음과 함께 오토바이가 5동 라인 입구로 달려왔다.

다행히 퀵서비스는 15분만에 도착했다.

“이강수 씨입니까?”

“예. 이 박스를 여기 주소로 보내주심 됩니다. 착불이고요, 그림책 원화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꼭 전달해주세요.”

“하하. 걱정 마세요. 확실하게 전해드리죠.”

박스를 플라스틱 상자에 넣은 기사는 바로 출발했다.

이제 열흘 정도 지나면 자신의 이름을 달고 그림동화책이 세상에 신고식을 할 것이다.

“아, 드디어 내 그림책이 출판되는구나.”

오토바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자신의 첫 그림동화책이 나이 어린 독자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대중에게는 무슨 평가를 받을지, 판매 성적은 괜찮을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강 팀장님에게 문자를 해 줘야겠지.'

심호흡을 크게 한 강수는 지하철역을 향해 걸으며 편집기획팀 강 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

“어, 먼저 와 있었네요. 미안해요. 서두른다고 했는데 좀 늦었네요.”

강수는 한가람 미술관 앞에 서 있는 박해나에게 헐레벌떡 달려갔다.

머리를 숏컷트한 박해나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마른 체형에 키가 커서 의외로 여성적이고 섹시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뇨.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으면 됐죠. 자요, 티켓이요.”

3시 1분 전이었다. 강수가 멋쩍게 웃으며 표를 받았다.

“어, 표는 내가 사려고 했는데 구매를 했군요.”

“미안하면 음료수를 사면 돼요. 가죠.”

“하하. 물론 사야죠.”

강수와 박해나는 한가람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빛을 사랑했다.

같은 풍경도 광량과 빛의 각도에 따라서 색채는 천변만화한다. 빛은 색의 변화만이 아니라 형태조차도 변화시킨다. 인상파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자연으로 나갔다.

대자연 위에 작렬하는 빛의 흐름과 빛의 향연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강수와 박해나는 묵묵히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사실 강수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 등 19세기와 20세기 초 거장들의 원화는 그리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해외 미술관 탐방을 해본 적이 없거니와 국내에서 해외미술관 특별전은 가뭄에 콩 나듯 열리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클로드 모네의 ‘양산 쓴 여인’, ‘지베르니 부근의 센 강변’,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폴 고갱의 ‘노란 건초더미’, 반 고흐의 ‘시인 외젠 보흐의 초상’ 등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을 비롯해 낭만주의, 인상파 화가의 다양한 회화작품, 조각, 공예, 드로잉 등 200여 점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강수는 인상파 거장들이 뿜어내는 빛과 색채의 향연에 빠져들어 넋을 놓고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마치 몸이 굳어버린 듯,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듯했다.

심장과 뇌리에 상쾌한 전율이 번져갔다.

감동과 전율을 느끼며 자석에 끌리듯이 황홀한 표정으로 작품을 따라가던 강수가 한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골의 풍경을 그린 그림 ‘들판에 비치는 햇빛’ 앞이다.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 빛은 사물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강렬한 햇빛과 그 빛에 흡수되어 형태마저 온전하지 않은 뿌연 산과, 나무, 여인과 남자.

강수는 강렬한 색과 빛의 조화 속에서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뭐지? 모네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네?’

한참을 서서 ‘들판에 비치는 햇빛’를 뚫어지라고 관찰했지만 미묘한 차이를 뭐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박해나에게 말해볼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박해나는 이미 저쪽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에이, 모네 작품을 내가 뭐 안다고.’

강수는 박해나를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두 시간에 걸쳐서 작품을 감상한 강수와 박해나는 미술관 로비 한쪽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강주는 생오렌지 주스 두 잔을 사 들고 박해나 앞에 앉았다. 주스 잔을 박해나 앞으로 밀어주었다.

“주문한 오렌지 주스입니다. 해나 씨 덕분에 명작을 감상할 수 있었네요. 고마워요.”

“현대 미술가의 작품과는 참 많이 다르죠? 새로운 사조를 선도한 역량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역시 거장들의 작품은 시대가 변해도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군요. 오늘 많이 놀랐습니다.”

문득, 강수는 모네의 ‘들판에 비치는 햇빛’이 떠올랐다. 박해나는 그 작품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했다.

“혹시 ‘들판에 비치는 햇빛’ 봤나요?”

“예, 모네의 작품이잖아요.”

“그 작품 느낌이 어땠습니까?”

박해나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말했다.

“하늘에서 비치는 빛과 그 빛으로 인해 형태마저 뭉그러진 남자와 여자, 그러면서도 밝은 톤으로 생동감 넘치는 자연이 표현되었죠. 모네의 화풍이 잘 드러난 작품 아닌가요?”

“그렇죠?”

“왜요? 이상한 게 있나요?”

“아뇨, 그냥 뭔가 느낌이 강렬하게 와 닿아서요. 참, 할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박해나가 본론을 꺼냈다.

“아트페어 상하이가 10월에 열리는데 혹시 참석할 의향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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