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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마법사-25화 (25/197)

# 25

그림 그리는 마법사 - 25회(1권 끝)

선예가 탐욕스런 눈빛으로 바닷가재회를 쏘아보며 느끼한 미소를 흘렸다.

“으흐흐, 맛있게 먹겠습니다.”

선예는 냉큼 바닷가재회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음, 대체 무슨 맛이기에•••.’

강수도 나무고깔을 집어 들고 바닷가재회를 입에 넣어 맛을 보았다.

차지고 부드럽고 쫀득한 맛이 두말할 나위가 없이 일품이었다.

바닷가재회를 게눈 감추듯 다 먹고 그 맛을 음미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치즈 구이 반, 칠리 소스 구이 반씩 요리한 랍스터 구이가 나왔다. 치즈와 칠리소스를 입혀 구어 진 비주얼이 입안에 침을 돌게 했다. 무게가 나가는 놈이라 크기가 상당했고 양도 많았다.

선예는 쫄깃하고 담백한 치즈구이를 한 점 한 점 오물오물 참 맛있게 먹으며 와인을 홀짝홀짝 마셨다.

단맛보다는 드라이한 맛의 와인이라 랍스터 구이와 잘 어울렸다.

와인을 꽤 마신 선예의 얼굴에 발그레하게 알코올 기운이 돌았다.

선예는 랍스터를 실컷 먹었는지 행복한 얼굴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배를 쓰다듬었다.

문득 선예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입가에 달고 입을 열었다.

“참, 강수오빠,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응? 뭔데?”

“내가 볼 때 오빠는 잘나가는 일러스트 작가고 외모도 괜찮은데 당연히 애인이 있겠지요?”

강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잘나가는지는 모르겠고, 작가라기 보단 일러스트 기술자라고 부르는 게 맞을 걸?’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왜 궁금한데?”

선예가 볼을 뽀루뚱하게 부풀렸다.

“치, 사귀는 사람 있구나. 그러니까 말해주기 싫겠지.”

강수가 피식 실소를 지었다.

‘후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섭게 뜨고 있는 신예 여배우하고 사귀었지. 내가 설희하고 사귀었다고 하면 과연 믿을까?’

선예가 쫑알거렸다.

“애인은 어떤 여자예요? 키는 커요? 몸매는 좋아요? 예뻐요? 성격은 부드러워요 아니면 까칠해요?”

눈을 동그랗게 뜬 선예와 눈을 맞춘 강수가 별 수 없다는 듯이 먹던 걸 삼키고 입을 열었다.

“예뻐. 키는 168정도. 몸매는 완벽한 s라인이지. 성격도 좋고 애교도 넘치지. 누구처럼 덤벙대지 않고 사려도 깊어. 특히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 그리고•••.”

선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강수를 쏘아보았다.

“흥, 그런 완벽한 엘프 같은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완전히 콩깍지가 끼었나 보다. 그리고 누가 덤벙대고 사려도 없다는 거예요. 저 그런 여자 아니거든요.”

강수를 한바탕 쏘아붙인 선예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요?”

강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엇보다도 잠자리가 환상적이지.’

“그리고 지금은 남남이야. 얼마 전에 헤어졌거든.”

“에, 그••• 뭐라구욧! 미, 미안해요, 오빠. 마음이 아플 텐데 제가 괜한 걸 물어봤나 봐요. 아, 나 오늘 왜 이러지? 바보, 멍충이.”

선예가 손으로 자신을 머리를 콩콩 때리며 자책했다. 그 모습조차 귀여웠다.

강수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뭘, 이미 지난 일인걸. 남녀 사이가 만났다 헤어지기도 하고 다 그렇지 않니?

“그렇긴 해도 아픈 건 아픈 거죠. 강수오빠, 사죄하는 의미로 제가 노래방 쏠게요. 노래 잘 불러요?”

왠지 친구들과 만나면 가게 되는 코스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나마 오늘은 시커먼 남자들이 아니라 선예와 가는 노래방이라 살짝 기대가 됐다.

“그냥, 남들 부르는 정도는 불러.”

“히히, 오빠 노래 좀 들어보자. 우리 가요. 실연당한 오빠를 위해 기분을 풀어 줄게요.”

결국 강수는 선예의 팔에 끌려 노래방으로 직행했다.

강수도 노래라면 평균 이상이었지만 선예의 노래 실력과 춤은 수준급이었다.

댄스곡부터 트로트까지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10대부터 걸그룹을 목표로 훈련했으면 성공여부를 떠나서 데뷔는 했을 것이다.

순정만화에서 튀어 나온 예쁘고 깜찍한 캐릭터와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라 예약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 밤 10시 반이었다.

“선예야, 시간 끝났어. 이제 집에 가야지?”

충분히 놀았는지 선예가 만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요. 나가요.”

선예가 룸에서 나와 계산대로 가는 강수의 팔을 잡았다.

“여기 계산은 조금 아까 내가 했어요. 그냥 가면 되요.”

“뭐? 너 또.”

선예가 혀를 날름 내밀었다.

“헤헤. 그대신 오빠가 칵테일 한 잔 사요. 이 근처 호텔에 분위기 괜찮은 바가 있어요. 가서 기분전환할 겸 칵테일 한 잔 해요.”

술이 세지 않은 강수도 와인과 맥주를 마신 탓에 술기운이 적당히 돌아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칵테일? 너, 와인 석 잔에 여기서는 맥주도 두 캔이나 마셨잖아. 나도 술기운이 도는데 술 취하지 않았어?”

“헤헤, 오빠. 내가 술 취했을까봐 걱정하는 거예요? 다른 남자들은 더 먹으라고 권하던데. 키키. 이 정도는 안 취하니까 걱정 마요.”

“그렇다면야 칵테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지.”

노래방에서 나온 선예가 팔짱을 끼며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반대편 거리를 가리켰다.

“오빠, 바로 저기 있는 호텔에 분위기 괜찮은 가게가 있어요.”

어떤 건물을 가리키는지 몰라도 호텔로 보이는 빌딩은 대충 2백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거리는 수많은 빌딩과 상점에서 밝힌 조명으로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찬란한 불빛 속에서 멋지게 차려 입은 연인들, 정장 차림의 회사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다. 그 인파의 흐름 속으로 강수와 선예도 끼어서 거리를 걸었다.

‘이렇게 팔짱을 끼고 있으니 남들이 보면 연인으로 알겠지?’

강수는 고개를 돌려 선예를 쳐다보았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얼굴에서 빛이 나고 생기가 넘쳤다.

‘하긴 이제 겨우 22살, 대학생이니 생기가 넘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강수는 술기운이 오른 상태에서 팔짱을 낀 팔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밤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노래방에서 달아오른 열기가 조금씩 식어갔다.

밤바람에 정신을 차린 강수는 야릇한 기분을 떨쳐냈다.

어쩌다 보니 선예와 이곳까지 오게 됐지만 어차피 위층에 사는 여동생 같은 이웃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호텔에 도착했다.

선예는 호텔 로비로 들어가며 팔짱을 풀고 지하1층으로 내려갔다.

지하1층에는 재즈바 까뮨이 있었다.

“헤헤, 여기예요.”

“재즈바구나. 선예는 재즈 좋아해?”

“아뇨. 친구랑 한 번 와봤는데 분위기가 좋더라구요. 그래서 와 본 것뿐이에요.”

재즈바 안으로 들어간 선예는 빈자리를 찾으려는 듯이 실내를 살펴보았다.

실내는 비트가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리듬의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반복되는 비트가 귀에 익어 생각해 보니 바로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였다.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간접조명을 활용해서 약간 어두웠지만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얏!”

앞장서서 걸어가던 선예가 돌연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넘어졌다.

조용히 담소를 나두던 사람들이 갑자기 실내 분위기를 휘저어 놓는 짤막한 비명에 놀란 표정으로 선예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발목은 괜찮아? 삐지 않았어?”

강수가 선예의 발목을 만지며 물었다.

“헤헤. 조금 삔 것 같은데 괜찮아요. 오랜만에 하이힐을 신었더니 이런 불상사가 생기네요.”

강수는 선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워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앉혔다.

“다른 자리 갈 것 없이 여기 앉자.”

“예.”

점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고 두 사람은 칵테일과 간단한 안주를 시켰다.

점원이 물러가자 강수가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하이힐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편한 구두를 신지 그랬어?”

“헤헤. 오빠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담부턴 하이힐 말고 편한 구두를 신어야겠다.”

“나한테 잘 보이려고? 난 순진해서 곧이곧대로 믿고 오해할 수도 있어. 그런 오해 소지가 있는 말은 하지 마라.”

“헤헤. 진짠데.”

조금 후, 점원이 주문한 칵테일과 과일을 놓고 돌아갔다.

선예가 파란색의 칵테일인 스카이블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참, 오빠, 고대시대에는 하이힐이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알아요?”

“뭐? 처음 듣는 얘긴데?”

“이유를 조금 설명해 드릴까요?”

강수가 등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좋아.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겠군.”

잠시 생각을 정리한 선예가 입을 열었다.

“하이힐이 기록으로 남은 것은 기원전 4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 테베 고분 벽화였어요. 그 벽화에서 남자가 하이힐을 신고 있었죠. 중세에는 주로 말을 탈 때 등자에 발을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했구요. 실제로 하이힐이 유행하기 시작한 때는 17세기 무렵 프랑스 황제였던 루이14세 때문이라고 해요. 그가 작은 신장을 숨기기 위해 하이힐을 애용하면서 귀족들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했대요. 그 후 왕정이 붕괴되고, 시민사회가 도래하면서 활동하기 불편한 하이힐은 남성들에게서 자취를 감추게 되고, 여성의 전유물이 된 것이죠.”

“오, 하이힐에 그런 오랜 역사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게 또 남자가 먼저 신었다니 의외인데. 당연히 여성들이 신는 것으로 알았는데 말이야.”

“히히, 처음엔 나도 오빠처럼 생각했지 뭐예요.”

스피커에서는 끈적끈적한 음색의 노래가 흐느끼듯 흘러나왔다.

“재즈 보컬은 왜 저렇게 애절할까요?”

“그게 노예로 살았던 흑인의 한과 슬픔이 녹아 들어서 그렇지 않을까? 블루스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테고.”

“노예제도가 폐지된 게 1863년이니까 160년이나 지나지 않았어요?”

“노예해방선언은 1863년에 했을지 몰라도 흑인의 인권이 사회적으로 보장받은 건 얼마 되지 않을걸. 더구나 인종차별도 심하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빈민층으로 살아왔으니까.”

“그렇긴 해요.”

홀짝이며 스카이블루를 어느새 다 마신 선예의 얼굴이 다시 발그레해졌다.

“오빠, 저 마티니 한 잔 더 마실래요.”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취하지 않았어?”

“헤헤. 오늘은 이상하게 술이 잘 받는걸요. 오빠랑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나랑?”

“흐응. 다른 남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양을 잡아먹으려는 늑대 같아서 취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데 오빠는 내가 취해도 수호천사가 되어 날 지켜 줄 거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강수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왜 믿음직해 보이는 거지? 그냥 나이 많은 이웃집 오빠일 뿐인데. 흠, 좋아. 내가 늑대로 안 보인다고 하니 오늘은 너의 수호천사가 되어주마.’

물론 강수는 선예가 술에 취한다고 해도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요즘은 술에 취한 여자를 잘못 건드렸다간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어쨌든 늑대 같은 남자들과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아서 기분은 좋았다.

“그렇긴 해도 술에 취하지는 말아.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거야.”

“헤헤, 그럼 마지막으로 한 잔 만요.”

“한 잔 더 하는 건 좋은데 이렇게 늦게 들어가도 괜찮아?”

“예. 괜찮아요. 오늘 친구들 만나서 늦게 들어간다고 얘기해놨어요. 그러니까 칵테일 한 잔만 더 부탁해요.”

선예는 떼를 쓰더니 결국 칵테일 한 잔을 더 마셨다.

“선예야, 다 마셨으면 그만 일어나자.”

“에헤. 그러지요, 뭐.”

선예가 일어나려다 픽, 하고 제자리에 주저앉는다.

“왜 그래? 선예야.”

선예가 팔을 뻗어 강수의 손을 잡았다. 취했는지 목소리가 꼬였다.

“조금만 잡아주셔요. 어질어질 해요.”

‘그만 마시라고 해도 말을 안듣더니 얘가 취했구나.’

계산을 한 강수는 자신의 목에 팔을 걸고 안기다시피 한 선예를 부축해 밖으로 나와 로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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