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정확히는 기습하려고 하는 순간, 성승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포효하는 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중후하고 강렬한 사자후는 수십 장 이상 물러난 절강고수들조차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하물며 지척에 있는 사마염이라 해서 무사할 리가 없었다.
사라지존수를 펼치기 위해서 끌어올린 내공이 성승의 사자후로 인해 사마염의 통제에서 벗어나 날뛰면서 내상을 입고 말았다.
피를 토하는 사마염을 보며 성승이 나직하게 말했다.
“소시주, 빈승에게… 가혹한 결정을 내리길… 바라는가.”
“쿨럭… 자비를… 쿨럭…….”
그의 얄팍한 수작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성승은 역시 성승이었다.
“빈승의 마지막… 자비일세. …돌아가게.”
“감사… 우웩… 합니다.”
소교주인 사마염이 성승의 앞에서 피를 토하고 있으나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했다.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몇몇은 사마염의 어리석은 행동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성승을 자극한다면 천사교는 물론, 절강무림이 끝임을 모르지 않았다.
사마염이 의식을 잃은 천사존을 부축해서 물러나자 그제야 천사교 오대교령들이 다가왔다.
멀리서 성승에게 예를 표하고 천사존과 사마염을 업고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나자 나머지 천사교 고수와 절강고수들 역시 물러났다.
그렇게 그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성승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 그의 등을 누군가 받혀 주었다.
“아미타불…! 너를… 못 보고 가나…싶었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쓰러지려던 성승의 등을 받친 자는 바로 검신 이현성이었다.
성승 료굉대사가 소림을 떠난 직후 범천대사는 정주 이가장으로 사대금강을 은밀하게 파견했다.
사조인 료굉대사께서 파군성의 주인인 천사존을 막기 위해서 소림을 떠났다며 도움을 청했다.
갓 태어난 이천악에게 푹 빠져 있던 이현성이었지만, 소림의 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성승 료굉대사가 무림의 전설이었지만, 상대인 천사존도 만만치 않은 자였다.
그걸 알기에 이현성은 제갈현지와 문교교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최대한 서둘렀음에도 결국은 한발 늦었다.
“파군성의… 주인인… 그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만 말씀하세요!”
료굉대사는 생기가 빠르게 흩어지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죽어가고 있었다.
태의나 독왕이 아니라 대라신선이 온다 해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허나 이현성은 그의 죽음을 이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지 료굉대사에게 기운을 주입했다.
“되었다… 되었어.”
“하지만!”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료굉대사였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없듯 그의 몸은 이미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무거운… 짐을… 너에게…….”
“하, 할아버지!!”
료굉대사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 그를 부여잡고 이현성은 절규했다.
료굉대사와 이현성은 피가 통한 것도 아니고, 많은 교류를 한 사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대가 없이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이현성이 지금의 그가 된 것에는 성승의 가르침도 한몫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현성은 성승을 안은 채 돌아갔다.
그를 이곳에 안치할 수 없었다.
성승의 시신이 없는 이상, 그의 타계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허나 이를 눈치챈 자가 있었다.
* * *
“허… 그 역시 떠났구나.”
영롱한 빛을 내던 별이 사라지는 것을 본 사내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사내는 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숨을 거두는 것은 내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마성을 너무 가볍게 봤구나.”
놀랍게도 사내는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성승의 죽음은 물론, 그 죽음에 천사존이 관여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내는 천기를 엿볼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 사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네가 남아 있었지. 천무성… 아니, 검신.”
이미 빛을 잃고 사라진 자미성의 옆에 있는 별이 사내의 눈을 사로잡았다.
자미성의 영롱한 빛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던 작은 별.
허나 그 작은 별은 어느새 자미성 못지않은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미성이 사라진 지금 작은 별 아니, 천무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너라면 내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겠느냐?”
사내는 오만했다.
하지만 결코 오만해 보이지 않았다.
오만은 오직 그를 위한 말인 듯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한 사내가 다가와서 부복했다.
“왔느냐.”
“나와 계셨습니까, 주군.”
사내를 향해 부복한 자는 놀랍게도 혈궁주인 혈뢰검마였다.
사내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마음이 좀 풀리더냐.”
“죄송…합니다. 속하가… 주군의 뜻을 거슬렀습니다.”
혈뢰검마의 말에 사내는 피식 거렸다.
사망도제의 죽음은 분명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아직 써먹을 데가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혈뢰검마를 질책하지 않았다.
“되었다. 어차피 놈의 역할은 그것뿐이었으니까. 30년 전 그날, 나를 위해 자신의 자식을 버린 네 사부를 생각한다면… 고작 놈을 버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사내와 혈뢰검마 아니, 사내와 초대 혈궁주 검마 사이에는 거대한 비밀이 존재했다.
그런 검마의 제자인 혈뢰검마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소한 실수쯤은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아니, 넘어가 주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는지 사내의 얼굴이 굳어졌다.
“…떠나려는 게냐?”
“이 미천한 목숨… 주군의 것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허나 주군이 가시려는 길이 어떠한지 알기에… 마지막은 그녀를 위해서 사용하고 싶습니다.”
혈뢰검마의 말에 사내의 눈빛이 변했다.
순간 밤하늘을 가득 채우던 별들이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흡사 사내의 분노에 별들이 숨죽이는 듯이…….
“…네가 한낱 계집 때문에… 신비각주(神祕閣主)의 좌(座)를 버리겠단 말이더냐!”
“쿨럭… 우웩!!”
사내의 분노에 혈뢰검마는 피를 토했다.
이미 사부인 검마와 같은 경지.
즉, 화경에 오른 혈뢰검마이건만 사내의 호통에 내상을 입고 말았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사내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혈뢰검마는 자신의 왼손을 들었다.
서걱!
“큭! …주군을 지켜야 할 제 오른…팔을…바치겠나이다…….”
혈뢰검마는 자신의 오른팔을 스스로 베었다.
팔이 하나 없을지라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허나 무림고수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다.
특히 혈뢰검마는 우검수(右劍手).
평소 검을 쥐었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대신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어깨에서 피가 흘러나옴에도 지혈할 생각도 하지 않고,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 팔을 사내를 향해 들어올렸다.
그런 혈뢰검마의 행동이 사내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어리석은… 놈!”
“우웩!”
사내의 호통에 혈뢰검마는 다시 한번 피를 토했다.
허나 그는 괴로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혈뢰검마의 오른 어깨에서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사내는 호통만으로 혈뢰검마의 오른 어깨의 혈을 자극해서 지혈시키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떠나라… 넌 더 이상 신비각주가 아니다. …언젠가 네 목을 거두겠다. 그때까지 네 어리석음을 괴로워해라.”
“…감사…합니다. 주군…….”
그렇게 혈뢰검마는 떠났다.
사내는 나직하게 말했다.
“부각주 검괴에게 신비각을 맡기겠다.”
“명!”
허공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사내의 곁에는 수많은 고수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대장군… 그대에게 입은 은혜는 갚았네. 허나 여기까지일세.”
* * *
“경하 드립니다. 련주님.”
“모두 그대들 덕분입니다.”
천사존의 대패로 무림이 시끄러워지고 있을 때, 적천우는 신임 사해련주로서 사해련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숨겨진 혈족인 육참도부와 다정마녀 그리고 이대봉공인 흑천마옹이 그의 편에 섰다.
게다가 불손한 움직임을 보이던 사해육단 중 탈혼단주와 귀면단주를 단호하게 베었다.
그러니 어느 누가 적천우의 신임련주 취임을 반대하겠는가.
적천우는 자신의 사람들을 움직여서 사해련을 빠르게 장악했다.
육참도부와 다정마녀만 북천적가의 사람이 아니었다.
사해육단 중 중립적인 태도를 고수하던 이단(二團)이 놀랍게도 북천적가의 숨겨진 가신들이었다.
이미 죽었음에도 사망도제의 그림자가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뿌리 깊다는 증거였다.
“마군, 색불 호법… 앞으로 잘 부탁하네.”
“성심으로… 련주님을 모시겠습니다.”
“겨, 견마지로하겠습니다. 련주님.”
진뢰궁귀의 제안을 받아들여 혈천 대장로인 혼세신마의 편에 선 그들은 적천우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적천우가 죽은 사망도제의 손자에 불과한 애송이였기에 진뢰궁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인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물론 북천적가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호법인 육참도부와 다정마녀는 물론, 봉공인 흑천마옹이 적천우의 편에 섰다.
진뢰궁귀와 두 사람 모두 겉으로는 적천우를 지지했다.
허나 단순히 상부의 지시 때문만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궁귀 봉공, 천(天)에서는 별 연락이 없소?”
“…안 그래도 조만간 회의에 참가할 수 있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현 사해련에서 혈천과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이대봉공인 진뢰궁귀와 흑천마옹이었다.
흑천마옹은 대호법인 혁련중광의 편에 선 척하며 건천각을 인계받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혈천의 연결고리는 진뢰궁귀뿐이었다.
물론, 적천우가 직접 연락을 취해도 된다.
허나 그는 조부인 사망도제처럼 혈천의 부천주가 아니었다.
신임 사해련주로서 혈천십삼세의 말석을 맡게 되었으나 정식으로 회의에 참석하기 전이었다.
“회의를… 무엇을 위한 회의라고 생각하시오, 궁귀 봉공.”
“본천의 화합과 대계의 도모를 위한 회의인줄 압니다. 련주님.”
진뢰궁귀의 말에 적천우는 피식거렸다.
말이 화합이지, 사해련을 차지한 자신의 기를 꺾기 위함임을 모르지 않았다.
아직 혈천에는 흑천마옹이 자신의 수하가 된 사실은 물론, 북천적가의 숨겨진 저력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대장로와 대호법의 힘으로 사해련을 차지한 허수아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가주님.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고모님.
그들의 속내를 알고 있는 적천우가 젊은 혈기에 일을 그르칠 것을 우려한 다정마녀가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뜻을 전했다.
허나 다행이 적천우는 이 정도로 흔들릴 사내가 아니었다.
“본련의 련주로서 참석할 테니, 그리 알려주시오. 궁귀 봉공.”
“련주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진뢰궁귀는 적천우의 당당함에 기분이 묘했으나 혼자인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애써 무시했다.
쓸데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 역시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뻔뻔한 늙은이들…! 지금은 고개를 숙여주지. 하지만… 지금뿐이다. 지금…….’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