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창괴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천사교주는 오만하지만 미련한 자가 아니었다.
오만만 했다면 진즉에 움직였을 것이고, 천하일통을 하거나 성승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긴 시간 때를 기다렸다는 것 자체가 그가 미련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가 움직였다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아…! 젠장. 늦었어!”
“끙…! 차라리 성승이 이기길 바라야 하다니…….”
* * *
“사마 시주, 이제라도 생각을 바꾸실 생각은 없으시오?”
“성승… 오랜만이구려.”
안휘성으로 넘어가기 전에 천사교 무리를 향해 한 노승이 나타났다.
비루한 노승을 본다면 모두 비웃겠지만, 노승의 정체를 안다면 어느 누구도 비웃을 수 없었다.
노승은 바로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성승 료굉대사였다.
실제로 오만한 천사교주의 입에서 하대가 아닌 반존대가 나오지 않던가.
덕분에 천사교 및 절강고수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 시주께서도 아시지 않으시오. 진짜 적은 따로 있다는 것을…….”
“물론 본 교주 역시 잘 알고 있소. 허나 상관없소. 그자도 언젠가 본 교주가 쓰러트릴 생각이니…….”
천사교주의 오만한 발언에 성승은 그답지 않게 한숨이 나왔다.
그의 강함은 성승이라고 해서 모르지 않았다.
성승 역시 천사존이야말로 자신과 필적할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은 싸워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파군성의 주인인 천사존과 자미성의 주인인 성승이 충돌한다면 이긴다 하더라도 두 쪽 모두 성치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혈살성의 주인은 오로지 천무성의 주인이 감당해야 한다.
천무성은 자미성에 필적한다지만 아직 더 성장해야 한다.
그렇기에 혈살성을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만약 자미성과 파군성이 천무성을 돕는다면 충분히 혈살성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군성의 주인은 생각이 다른 듯싶었다.
“사마 시주, 혈살성의 주인은 시주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끄럽소! 성승! 아직도 날 그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요! 이 천사존이!”
료굉대사는 거듭 천사존을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설득이 오히려 천사존의 심기를 건드렸다.
지금까지 자신을 가로막은 거대한 산이었던 성승이기 때문에 곱게 들리지 않았다.
분노한 천사존은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냈다.
일존(一尊)이라고 불리는 천사존다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기운이었다.
성승에게 집중되었지만, 천사교 고수들이 휘청거렸다.
약간의 여파조차 위협적이라는 증거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기운에 집중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성승은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천사존과 성승.
이미 그들은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었다.
“과연… 사마 시주요. 이 힘을 천하를 위해서 쓰길 원했거늘…….”
“천하를 위해 쓸 것이오, 성승. 천하의 주인으로서 말이오!”
낙성
쾅! 콰쾅! 쾅쾅!!
“미, 미친! 이, 이십 장 아니! 삼십 장을 더 물러난다!!”
사마염은 기겁하며 외쳤다.
이미 오십 장이나 물러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성승과 천사존의 격돌로 인한 여파가 미치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화경고수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들은 그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강했다.
아니, 그냥 절대적이었다.
사마염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천사교와 절강고수들은 더 물러날 생각이었다.
정파고수들과 싸우기 전에 두 절대자의 격돌의 여파로 개죽음을 당한다면 그만한 망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같지 않은 늙은이들! 젠장, 저런 늙은이들을 어떻게 넘어서!’
교주이자 조부인 천사존이 천사경을 대성했다고 했을 때만해도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젊음이 있었다.
천사경의 절대무학들을 익힌다면 자신도 조부 못지않게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들의 신위를 보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말 그대로 신위(神威).
그들은 이미 무신(武神)이었다.
한낱 인간이 범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저 괴물들은 스스로 죽을 때까지… 그 누구도 죽일 수 없을 거야.’
사마염은 인정했다.
스스로 죽지 않는다면 누구도 죽일 수 없는 괴물들이라고.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두 괴물(?)의 격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망할, 천사경을 대성했거늘! 그럼에도 꺾질 못하다니! 괴물 같은 늙은이!’
천사존은 천하의 성승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은 대단한 신위를 보여주었다.
허나 그 스스로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절대무경인 천사경의 9성의 벽을 깨고 10성에 오른 지금, 성승이라도 꺾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성승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더 강했다.
천사경을 대성한 지금도 그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라지존수(邪羅至尊手)!”
“다라엽수(多羅葉手).”
콰쾅!
천사존의 손에서 펼쳐진 사라지존수는 사마염이 펼쳤을 때와는 전혀 격이 다른 위력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간의 경지의 차이도 있었지만, 사라지존수의 진정한 위력은 천사경의 다른 절학들을 익혔을 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무지막지한 위력에도 성승은 무난히 상쇄시켰다.
“천사혈장(天邪血掌)!”
“수미불면장(須彌佛面掌).”
쾅! 쾅!
소림무학 중 하찮은 절기가 있겠냐만 성승의 손에서 펼쳐진 절기들은 외부에 잘 알려진 절기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천사존이 펼치는 천사경의 절학들을 막아냈다.
그로인해 천사존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 따위는 그딴 잡기로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천사존은 드디어 숨기고 있던 비장의 패를 꺼냈다.
천사존의 머리 위에 거대한 검이 형성되었다.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는 검이었다.
“날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아미타불… 오해시오, 사마 시주. 빈승은 그런 의도가…….”
성승의 말은 그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성난 얼굴은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런 천사존을 보며 성승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합장을 했다.
그 순간 성승의 머리 위에도 무언가 형성되었다.
놀랍게도 황금빛을 발산하는 부처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형성한 것은 바로 심검(心劍)이었다.
성승의 경우는 검(劍)의 형태가 아닌 부처였으나 그 역시 심검이었다.
심검(心劍)이란 그 사람의 마음을 투영한 것이지, 꼭 검의 형태를 띠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림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무기가 검이기 때문에 검의 형태를 띤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심검이라고 불리게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 심검이란 화경고수도 이룰 수 없는 지고무상한 경지였다.
화경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
즉, 현경에 오른 절대적인 존재만이 가능했다.
성승은 만인들이 예상했던 대로 화경을 넘어서 현경에 올라 있었다.
허나 현경에 오른 것은 성승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천사존 역시 현경에 오른 것이다.
그건 그가 오랜 노력 끝에 천사경을 대성했기 때문이다.
천년무림사에 현경에 오른 존재가 겨우 두 손에 꼽힌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시대에 두 사람이나 현경에 오른 것은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콰~아~앙!!
화경고수들의 격돌도 천재지변이라고 부를 정도의 가공한 위력을 발생시켰는데, 무려 현경고수들이 심검을 펼쳤다.
그 위력이 평범할 리가 없었다.
“미, 미친!”
“어, 어… 어!!”
“사, 살려……!”
심검의 충돌로 인근 산이 사라지고 평야가 생겨났다.
하물며 일개 인간인 천사교 및 절강고수들이 무사할 리 없었다.
이미 수십장 밖으로 피신했음에도 수백여 명이 휘말려서 그대로 사라졌다.
그나마 나머지 수백은 눈치가 빨라서 목숨은 건졌으나, 그중에도 적지 않은 인원이 그 여파로 중상을 입고 말았다.
현경고수들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절강고수들은 제 몸 추스르기에도 바쁜 상황이었지만, 수뇌급은 격돌의 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 교, 교주님이시다!”
“역시 사파제일 아니! 천하제일!”
재앙과 같은 격돌의 중심에서 천사존 사마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발견한 절강고수들은 환호했다.
자신들의 수장인 천사존이 성승을 이겼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환호는 천사존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젠…장…! 우웩!!”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성승조차 넘어섰다고 자신했던 천사존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착각인 듯 비틀거리더니 결국 피까지 토해냈다.
무려 심검이었다.
아무리 현경에 오른 그라도 무사할 리가 없었다.
피를 토하는 천사존과 불과 5장거리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민머리의 노승, 바로 성승 료굉대사였다.
그 역시 성치 않은 모습이었다.
입고 있던 가사는 이미 형체가 사라졌으며 피부는 상당히 그을어 상처가 났다.
안색 또한 창백했다.
하지만 천사존과 달리 굳건히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성승이야 말로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었다.
“아미타불… 사마 시주… 그만… 돌아가시오. …부디, 생각을 바꾸시오.”
“빌어…먹…을…….”
성승 역시 힘이 드는지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중간 중간 끊겼다.
그런 성승의 마지막 권고를 듣는 순간 천사존은 얼굴을 구기며 의식을 잃었다.
직후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천사존과 매우 닮은 청년이었다.
“성승님의 자비에… 교주님을 대신해서 소교주인 제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아미타불…….”
사마염의 감사 인사에 성승은 합장과 함께 불호를 읊는 것으로 대신했다.
사마염은 감사의 인사를 하는 동시에 성승의 상세를 빠르게 살폈다.
자신의 조부인 천사존과 달리 서 있었으나 그 역시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성승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는데… 공격할까? 분명 간신히 서 있는 것일 거야.’
그 순간 사마염은 흔들렸다.
서 있을 뿐 성승 역시 무사하지 않다면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허나 아니라면 최악의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그걸 모르지 않았으나 참기에는 너무도 큰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아미타불… 소시주께서 빈승에게 할 말이 있으신가?”
“아, 아닙니다. 성승님. 저, 저는 이만…….”
나직하게 묻는 성승을 보며 사마염은 속내를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천사존을 안은 사마염이 물러났다.
허나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마음속에 미련이 남은 것이다.
‘그래…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거야!’
결국 사마염은 사고를 치기로 했다.
사파의 영웅이 될지, 천사교를 몰락시킬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마염은 은밀하게 기운을 끌어올렸다.
단숨에 사라지존수를 펼쳐서 성승을 기습하기 위함이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돼…….’
성승이 자신의 기습을 눈치 챈다면 모든 것이 틀어질 수 있었기에 사마염은 최대한의 신중을 기했다.
허나 너무 긴장했기 때문인지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에라 모르겠다!’
“사라지존… 컥!”
“갈(喝)!”
결국 사마염은 사라지존수를 펼쳐서 성승을 기습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