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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70화 (270/314)

270화.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시작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름 이빨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거늘, 창제 놈은 고작 애송이도 감당 못 해서 물러나!”

“…….”

검신을 계산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호북무림에 제갈세가가 있으니 어떤 식이든 그가 개입하게 될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지옥대제의 일은 어이가 없으나 천웅창제는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천웅창제에게 당한 검신이 쓰러졌다.

하지만 천웅창제는 호북무림으로 진격하지 않고 물러났다.

정사대전의 개전이 될 호북정벌이 너무도 어이없게 끝나버린 셈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 백의무제는 계산 밖이었다.

허나 천웅창제의 성격이라면 이렇게 쉽게 물러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군사, 놈을 이참에 제거할 방법은 없나!”

“백의무제가 곁에 있다면…….”

남은 혈살객을 모두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의식을 잃은 이현성을 제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천웅창제를 막기 위해서 호북성으로 온 백의무제가 쓰러진 검신의 곁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화경고수, 그것도 오제인 백의무제가 검신의 곁에 있다면 그를 제거할 방법은 없었다.

“혈뢰 호법을 그쪽으로 돌리면 어떤가?”

“그럼 자하검제 쪽은 아예 포기해야 합니다. 부천주님.”

검신만큼이나 자하검제 역시 중요했다.

게다가 자하검제의 경우는 혈뢰검마가 과거의 악연을 이용해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검신을 제거하기 위해선 그를 지키는 백의무제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혈뢰검마는 백의무제를 상대할 방도가 없었다.

“젠장! …대장로와 대호법께서 나서주실 순 없소?”

“커험…! 자칫 본천에 대해 드러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부천주님.”

비록 오제급은 아니지만 대장로와 대호법은 화경고수다.

그들이 움직여준다면 충분히 검신을 제거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백의무제가 곁에 있다고 한들 화경고수 두 사람의 기습을 완벽하게 막아내면서 검신까지 지킬 순 없을 테니까.

허나 그들은 거절했다.

아직 자신들의 존재가 알려질 때가 아니란 이유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부천주는 짜증이 났으나 강요할 순 없었다.

‘여우 같은 늙은이들…….’

‘흥, 천주께서 칩거 중이시라고 제멋대로군.’

‘본좌가 나설 자리는 그딴 곳이 아니다. 이놈아.’

노련한 자들인 만큼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으면서 서로를 욕하는 그들이었다.

혈천이 천하를 오시할 힘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천하일통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들이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어서였다.

물론 괴물 중에 괴물인 혈천주가 칩거 중이라는 점이 가장 크긴 했다. 그때 대호법을 곁눈질하며 부천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군사, 여산에 연락해서 이번 임무를 맡아보라고 해보게.”

“아… 치료를 가장해서 제거하라는 말씀이시군요. 허나 여산을 벗어나지 않던 성수가 갑자기 움직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알겠습니다. 연락해두겠습니다.”

성수의가의 명성을 생각하면 백의무제는 물론 정파고수들 역시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검신이 멀쩡했다면 통하지 않을 것이나 다행히 의식을 잃은 상황이었다.

설사 의식을 되찾았다고 해도 부상이 심각할 테니, 시간은 충분했다.

‘검신 놈, 번번이 방해를 하더니 이제 내 명령을 받는 건천각주까지 죽여?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

* * *

“이, 이 미친 늙은이가 왜 하필 지금 같은 시기에 이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혈천의 연락을 받은 백인혜는 짜증이 났다.

혈마신의 완성을 코앞에 둔 상황이었다.

그러한 중요한 시기에 백우종를 움직이게 할 순 없었다.

검신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실수라도 하면 백우종이 무사할 수 없었다.

그가 죽든 말든 상관없으나 백우종이 죽으면 혈마신을 완성할 수 없었다.

혈마신은 그녀에게 천하를 안겨줄 비밀병기였다.

따라서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백우종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떠한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오랜 시간 백우종의 곁에 있던 백인혜 역시 어느 정도 의술을 익혔다.

허나 혈마신의 제련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백우종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아니 될 일이었다. 허나 부천주의 지시를 무시했다가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혹시 그 늙은이가 눈치챈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녀는 부천주가 혈마신의 존재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의심까지 했다.

분명 말이 안 된다. 성수의가는 천요후의 섭혼술로 완벽하게 장악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정보가 샐 수가 없고, 새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상대는 부천주였다.

절대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 내부청소를 한번 해야겠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찜찜한 느낌이 드는지 백인혜는 간자색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맹검 위지천의 일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니까. 허나 그보단 우선 이번 임무부터 처리해야 하기에 백인혜는 백우종을 찾아갔다.

“혈마신은 언제쯤 완성돼?”

“오, 오셨습니까.”

혈마신을 상태를 살피던 백우종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런 그를 보며 백인혜는 의아했다.

“뭘 그렇게 놀라?”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보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얼마나 집중했기에 내 말도 못 알아들어? 혈마신은 언제쯤 완성되냐고.”

“아… 다… 달포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무, 물론 그것도 최소한이라서 확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백우종의 말에 백인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열흘 안에 혈마신의 제련이 끝난다면 그때까지 버텨보다가 백우종을 검신에게 보내면 된다.

허나 달포. 그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니 그때까지 혈천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미룰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의심이 심한 부천주가 무슨 낌새를 느끼고 손을 쓸 수 있다.

“확실해?”

“바, 방금 말씀드린 대로 확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이론상은 몰라도 혈마신을 실제로 제련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백인혜의 차가운 시신에 백우종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는 입술을 삐쭉거리며 시선을 백우종에서 혈마신에게로 옮겼다. 그리곤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천(天)의 명령이야. 의식 잃은 검신을 치료하는 척하며 제거하라고.”

“예? 거, 검신을 말씀이십니까!”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깜짝 놀란 백우종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그런 그의 큰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는지 백인혜가 버럭 화를 냈다. 이에 움찔한 백우종은 두려워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그런데 검신이라면 호북성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호북성까지 다녀오면…….”

“나도 알아! 그래서 물어본 거야! 혈마신의 시기를 앞당길 수 없나 해서!”

백우종이 혈마신을 곁눈질하며 말꼬리를 흐리자,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던 백인혜는 다시 한번 화를 냈다.

덕분에 백우종은 다시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 다녀올 거야.”

“요, 요후 님께서 말씀이십니까?”

“그럼 어떡해. 혈마신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널 움직일 수는 없으니, 내가 다녀올 수밖에 더 있어!”

“그, 그러시군요. 하하하.”

버럭 화를 내는 백인혜를 보며 백우종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그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다면 자신의 계획을 완성하는데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서두르면 두 달까지는 걸리지 않을 거야. 그때까지는 완성할 수 있겠지?”

“두…달이라면 해보이겠습니다.”

섬서성 여산에서 호북성 형주까지 두달 만에 왕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허나 무림고수인 그녀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묘하게 들뜬 듯한 백우종을 보며 백인혜는 뭔가 찜찜했으나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혈마신의 완성에 백우종이 얼마나 열성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으로서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혈마신의 완성이니 그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혹시라는 생각에 백인혜는 천요기를 슬쩍 흘렸다.

“으윽…….”

“왜 그러지?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갑자기 백우종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허나 곧 괜찮아졌는지 일그러졌던 인상이 펴졌다.

그제야 백인혜는 안심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맹검 때문에 너무 예민해졌나보네. 내 천요기가 흩어졌을 리가 없지.’

당연한 것이지만, 백우종 역시 백인혜에 의해 천요기의 씨앗이 심어졌다.

다만 다른 이들처럼 씨앗을 부화시키지는 않았다.

애초 천요기의 씨앗을 심는 것은 무척 위험한 행위였다. 심령만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백치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은단의 경우는 설사 백치가 되더라도 인간병기로서 써먹을 수 있으나 백우종은 아니었다.

그의 의술은 백치가 될 경우 써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천요기의 씨앗을 심어둔 것만으로도 금제로써 써먹을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어쨌든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계획에 차질 생기지 않게 해.”

“아,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백인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두 달 후면 혈마신이 내 거가 된단 말이지. 그리고 이참에 검신의 내공까지 흡수한다면…….’

백인혜는 환희요후 못지않은 채양보음술(採陽補陰術)의 대가였다.

선천적인 천요기와 오랜 시간 꾸준히 사내의 정기로 채양보음을 했기에 그녀는 주안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허나 20대의 미색을 유지하기 위해서 채양보음술로 얻은 기운 대부분을 주안술에 사용하기에 무위에선 환희요후보다 한수 아래였다.

그런 상황에서 화경고수인 검신의 기운으로 채양보음을 한다면? 벽을 넘어서 화경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런 계산 때문에 백인혜는 순순히 자신이 호북성으로 향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백우종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추악한 년, 네년이 원하는 대로 될 것 같아? 크크크… 달포? 닷새 후면 혈마신이 내 거가 된다!’

백우종은 혈마신을 완성하기 위해서 달포 이상 걸린다고 말했으나 사실 닷새 정도면 완성될 예정이었다.

다만 사실대로 말하면 혈마신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기에 닷새를 달포로 바꿔서 말한 것이다.

그런데 백인혜가 두 달이나 자리를 비운다니, 이러한 천운이 없었다.

‘천요기만 믿고 까분 것이 네년의 한계지. 감히 날 그딴 요사스러운 기운으로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아!’

성수(聖手) 백우종. 의술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세 명의 신의 중 한 명이었다.

천요기의 씨앗 정도는 진즉에 봉했다.

없앨 수도 있으나 그랬다가는 천요후가 눈치챌 수 있기에 봉해서 남겨둔 상황이었다. 조금 전처럼 천요후가 의심해서 천요기의 씨앗을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분명 천요후는 백우종의 의술을 과소평가했다.

허나 과소평가한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천요후가 천요기의 씨앗만 믿고 있는 것이 아님을 몰랐으니까.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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