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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56화 (256/314)

256화.

“아니에요. 우리 묘족의 영도자이신 아버님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셨어요. 제게 미안해하지 마셔요.”

란희라고 섭섭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부녀지간에 앞서서 독왕은 만독궁주이자 묘족의 영도자였다. 묘족의 미래를 위해서 사사로운 감정은 잠시 접어둬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독왕은 그녀를 데려와준 무리. 정확히는 한 사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맙네. 검신… 모두 자네 덕분일세. 정말 고맙네.”

“……!!”

“거, 검신!!”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청각을 증폭시킬 수 있는 고수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독왕의 말을 들은 고수들은 경악했다.

허나 이현성은 그들의 반응은 모른 척했다.

“그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란희 소저를 데려오는 길이 수월치가 않았었습니다.”

망토로 가리긴 했으나 조금씩 드러난 이현성의 옷이 성치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신이었기에 독왕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독왕은 그의 말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말은…….”

“과연 오제는 오제더군요.”

“……!!”

이현성의 말에 독왕과 좌중은 눈이 커졌다.

그의 말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놀란 독왕은 다급하게 물었다.

“몸은 괜찮은가? 성주라면 자네라도 위험했을 텐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허나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성주께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실 테니까요.”

“…!! 그게 저, 정말인가!”

이현성은 독왕의 물음에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독왕은 감탄을 넘어서 얼이 나갔다.

독왕은 누구보다 지옥대제를 잘 알고 있었다.

오래전이었지만 그의 손속도 느껴봤던 독왕이었다.

그런 지옥대제로부터 란희를 구해낸 것만 아니라, 그와 충돌했음에도 무사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현성의 말대로라면 그가 도망친 것도 아닌 듯싶었다.

“지금쯤 성주께서 돌아오고 계실 겁니다. 이곳에서 만나면 서로 불편할 테니, 이만 돌아가시지요.”

“함께 가세. 소개시켜줄 사람이 많네.”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 독왕은 남만까지 함께 가길 권했다. 이현성은 남만의 은인이었다. 이대로 그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야수왕, 흑봉주 그리고 독모 역시 그를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허나 이현성은 그의 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집을 오래 비워서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허허… 그런가. 너무 아쉽군.”

혼사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신랑인 그가 집을 너무 오래 비웠다. 게다가 무림 정세가 심상치 않은 지금 빨리 돌아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에 독왕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걱정에 독왕은 무척이나 아쉬웠다. 허나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수도 없었다.

“자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 흑봉주, 흑밀환(黑蜜丸) 하나 내어줄 수 있겠는가? 만독신단이 본궁에 있어서 말일세.”

“물론입니다. 어르신.”

천하 3대 신의인 독왕이었다.

그런 그가 제조한 만독신단은 남만제일의 성약이었다.

허나 지옥대제에게 건네기 싫어서 지옥성에 온 이후로는 영단을 제조하지 않았기에 수중에 가지고 있는 영단이 없었다. 그런 독왕의 물음에 언제 다가왔는지 흑봉주가 품에서 금박이 된 환단을 꺼냈다.

흑밀을 정제한 후 몇 가지 약재와 섞어 제조한 남만의 대표 영단인 흑밀환이었다. 꿀인 흑밀을 기본으로 삼아서 제조된 영단인 만큼 오래 보관이 어렵기에 금박을 입혀서 봉해두었다. 흑봉주에게 흑밀환을 전해 받은 독왕은 다시 이현성에게 건넸다.

“성주를 상대했다면 아무리 자네라도 무사할 순 없겠지. 흑봉주가 제조한 흑밀환은 효과가 좋네. 지금 복용하게나.”

“…사양하는 것은 예가 아니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독왕의 말처럼 이현성 역시 지옥대제와의 충돌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다만 회복력이 뛰어난 혼원신공과 태극의 정수 덕분에 다소 진정된 상황이었다.

허나 온전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독왕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이현성은 흑밀환을 거절치 않았다.

‘과연… 소문대로 대단하구나.’

흑밀환이 입에 들어간 순간 달콤 쌉싸름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당과보다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 정도라면 흑밀환이 영단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피로감이 사라지고 활력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단답게 소모된 내공도 조금씩 회복되는 듯싶었다. 과연 남만을 대표하는 영단다웠다.

이현성은 독왕은 물론 흑봉주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토록 귀한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검신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검신과 독왕의 관계를 알 수는 없었으나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흑봉주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덕분에 흑봉주는 자식뻘인 이현성을 보는 눈빛에 경외감이 어려 있었다.

그때 란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황밀환이 넉넉하시면 몇 알 주실 수 있나요?”

“아가씨 어디 안 좋으십니까?”

“저는 괜찮은데… 암월 호법께서 저를 지키면서 지옥쌍괴를 상대하셔서 조금 다치셨거든요. 다른 분들도 지치셨을 테고…….”

“저희는 괜찮습니다. 소저.”

살왕의 일로 충격을 받은 암월은 그날 이후 피나는 수련을 했으며, 운남으로 오는 동안 틈틈이 이현성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덕분에 작지만 성과가 있었다.

그런 암월이었지만 초절정고수인 지옥쌍괴의 합공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란희를 지키면서였기 때문이다.

귀림의 호위들은 퇴로를 확보하며 지옥성 고수들을 견제하느라 암월을 도울 수 없었다.

만약 이현성이 조금만 늦게 왔다면 암월과 귀림의 호위들도 낭패를 볼 뻔했다.

“아닙니다. 흑밀환은 더 이상 가져온 것이 없으나 황밀환은 넉넉하니 드리겠습니다. 아가씨를 구해주신 분들인데, 황밀환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암월은 주저했으나 이현성이 눈짓으로 허락하자 거절할 수 없었다. 흑봉주의 흑봉일족이라고 흑봉만 키우는 것은 아니었다.

워낙 교배가 쉽지 않아서 개체수가 적고 키우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일정 수만 유지하고, 대부분은 일반 황봉을 키웠다. 그런 황봉의 꿀로 만든 환단이 바로 황밀환(黃蜜丸)이었다. 흑밀환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황밀환 역시 제법 효과가 좋았다.

암월과 귀림 호위들은 흑봉주와 란희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황밀환을 복용했다. 황밀환 역시 효과가 있는지 그들의 안색이 한결 좋아졌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선배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남만에 방문해주게. 그때 정식으로 다른 사람들도 소개해주겠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작별인사를 마친 이현성과 일행은 바로 떠났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독왕을 위시한 묘족들 역시 그곳을 떠났다.

이를 지켜만 봐야 했던 지옥성 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 *

“급보입니다! 지옥성이 물러나고 있답니다!”

신평에 진지를 세워 전면전을 준비하던 지옥성의 고수들이 물러나고 있다는 소식이 애뇌산에 모여 있는 운남무림인들에게 전해졌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지휘소에 모여 있는 운남무림의 명숙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병력의 수에서는 애뇌산에 모인 운남무림인들이 몇 배 많았으나 실제 전력은 지옥성이 앞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갑작스러운 회군은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던 중 빠르게 신색을 회복한 누군가가 외쳤다.

“놈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추살해야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큰 기회입니다!”

지옥성의 대군이 회군을 할 정도라면 분명 그들 사이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이때 뒤를 친다면 지옥성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많은 명숙들은 지옥성의 후방을 공격하는 것을 찬성했다. 허나 모두가 같은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게 저들의 함정이라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역으로 저희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지옥성 대군의 회군이 자신들을 함정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지옥성의 회군은 너무도 뜬금없었다.

“오만한 지옥대제가 그렇게 하겠소?”

“아니란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상반된 의견이 오고가니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진짜 지옥성 내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더 이상 지체를 해선 안 된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대리 단가주가 관일창왕에게 물었다.

“진인께서는 혹 아시는 것이 없으십니까?”

“…과연 가주시오.”

관일창왕의 대답에 대리 단가주는 ‘역시’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두 사람의 말에 언쟁을 하던 명숙들은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관일창왕은 입을 열었다.

“모두 내심 느끼고 있었을 것이오. 빈도가 화경에 올랐다고 하지만 지옥대제에게 도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아, 아닙니다. 진인…….”

관일창왕의 말에 좌중은 뜨끔했으나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관일창왕은 그들의 반응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니외다. 빈도 역시 잘 알고 있소. 아직 빈도가 상대하기에 지옥대제가 어려운 상대라는 것을 말이오. 그럼에도 이렇게 대협들께 도움을 청한 것은 사실 어떤 분의 청 때문이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인.”

관일창왕의 말에 명숙들은 당황스러웠다. 특히 그의 입에서 ‘어떤 분’이라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관일창왕은 운남무림의 제일 큰 어른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분’이라고 칭할 존재는 운남무림에 없었다.

그리고 중원무림 전체에서도 얼마 없었다.

“빈도가 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우나 빈도의 힘만이 아니었소. 본파에 방문하신 어떤 분의 가르침 덕분이었소.”

“……!!”

“도…대체 그분이 누구십니까!”

좌중은 경악했다.

초절정고수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무림 전체에서도 흔치 않았다. 하물며 화경에 오를 수 있는 가르침을 줬다면 분명 대단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존재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자신들 역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 명숙들의 눈에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관일창왕은 그들의 눈빛에 담긴 열망을 엿봤지만 모른 척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질 테니까.

“검신…이현성 대협이시오.”

“거, 검…신!!”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검신께서 오셨습니까!”

“그분께선 어디 계십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빨리 인사라도…….”

검신의 이름은 대단했다.

운남무림에서 제법 콧방귀를 뀐다는 그들이 우왕좌왕할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관일창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으나 그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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