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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53화 (253/314)

253화.

출정에 자신도 동행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독왕의 족쇄인 셈이었다.

허튼짓을 할 수 없게 할 족쇄.

“…건방진 놈들, 주제도 모르고. 아버님께서… 음? 왜 그러시오. 란 소성주.”

“…아니에요. 소성주님.”

란희의 천막에 방문한 나백은 혼자 떠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려 지옥대제 즉, 자신의 부친이 직접 출정하였다.

아무리 관일창왕이 화경에 올랐다고 한들, 지옥대제의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게다가 현재 출정한 지옥성 고수들도 대단히 화려했다.

지옥성의 사방위를 수호하는 지옥사천강(地獄四天强) 중 둘과 그들이 이끄는 천강단.

성 내에서 성주를 보좌하는 지옥쌍괴(地獄雙怪).

그리고 묘족 출신의 호법인 오독문주 독군과 혈사당주 혈사부(血蛇父).

묘족 제일의 뱀 조련사인 혈사부는 비록 초절정지경에 오르지 않았으나, 뱀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독사들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특히 거대한 구렁이 혈망(血蟒)은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어주었다.

묘족이면서 친(親) 지옥성 성향을 가진 자들이었다.

묘족 출신의 또 다른 호법들은 비협조적이었기에 동원하지 않았다. 애초 묘족 출신은 독왕의 만독궁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성내에 기거하지 못했다.

독왕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다.

지옥성 내외에서 차출한 칠천(七千)의 대군은 하나 같이 대단한 용사들이었다. 비록 머릿수는 운남무림이 더 많을 지라도 고수의 질에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쉽소. 아버님의 명만 아니라면 나의 활약을 보여줄 터인데 말이오. 하하하!”

“…저는 걱정 마시고, 출정하셔도 됩니다.”

“아, 아니 그, 그게… 위선자인 놈들이 혹 란 소성주를 위해할지도 모르지 않소?”

“독군 호법께서 절 지켜주신다고 했으니, 제 걱정은 않으셔도 됩니다.”

제일 소성주인 나백 역시 초절정고수였다. 비록 편법으로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그럼에도 안타깝게 그의 입지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지옥사천강의 후예들 역시 만만치 않았고, 묘족 출신 기재들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물론 묘족 출신이 지옥성의 권력을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나백이 견제할 자들은 지옥사천강의 후예들이었다.

대대로 지옥성은 지옥나가에서 이끌고 있으나 지옥사천강, 아니 나머지 가문 역시 만만치 않았다.

화경고수인 지옥대제가 건재하고 나백이 점점 힘을 키우는 이상 두렵지는 않으나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나백으로서는 운남무림과의 일전에서 존재감을 모두에게 각인시켜줘야 한다.

이와 같은 기회는 흔치 않았다.

사파사세의 회담에 나백을 보낸 것도 그의 입지를 다져주기 위함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란희를 지키기 위해서 후방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

그럴 때 란희의 말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도… 되겠소? 아, 아니오. 어찌 그대만 놔두고 갈 수가 있겠소?”

“정말 괜찮아요. 북천강의 위 공자와 서천강의 허 공자께서 만반의 대비를 했다고 하더군요.”

“흥! 그래봤자 놈들이 감히 내 상대가 되겠소!”

“맞습니다. 허나 소성주께서 참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두 공자께서 활약을 하신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지옥사천강 중에서 동천강과 남천강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경쟁자가 줄어든 상황이었지만, 나백의 발이 묶인 상황이니 의미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란희가 그의 마음을 자극하니 나백은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으음… 알겠소! 내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참전하리다!”

“그럼 지금 가셔서 말씀드리세요.”

“지, 지금 말이오?”

“내일 움직이실 텐데, 언제 말씀드리려고요? 너무 늦으면 자칫 성주님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란희의 말대로 주저하다가 허락받지 못하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백이 그녀의 천막에서 나가자 란희는 한숨이 나왔다.

“혼자라도 도망쳐야 하나…….”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상 독왕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는 묘족의 미래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차라리 자신이 목숨을 끊더라도 양부인 독왕이 더 빠른 결단을 내리게 만들어야 한다. 허나 자신의 죽음이 은폐된다면 묘족의 독립기회를 잃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독왕이 분노해서 독립이 아닌 전쟁을 선택한다면 묘족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반드시 살아서 도망쳐야 한다.

문제는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묘족임에도 지옥성에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혈사당이야 상관없으나 오독문은 상황이 다르다. 지옥성에 협조적이지만, 그래도 오독문주인 독군은 독왕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를 버리고 갈 순 없었다. 사이가 소원해도 두 사람은 피를 나눈 사이였으니까.

“도망친다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아…! 숙부님!”

나백이 떠나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을 때 하필 독군이 들이닥쳤다.

이미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다시 주워서 담을 수 없는 법. 란희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옥성으로부터 묘족의 독립을 설명하고 함께 도망을 칠 생각이었다. 나백에게 가려졌으나 란희도 묘족을 대표하는 후기지수였다. 허나 수천의 군세 속에서 아무도 들키지 않고 몸을 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초절정고수인 독군이 도와준다면 상황이 다르다.

“네가 도망친다면 형님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느냐!”

“그게 아니라… 사실…….”

결국 란희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검신에 대해서 막 발설하려고 할 때였다. 독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크크크…! 그 늙은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예? 숙부님……?”

“그건 곤란해. 누구 마음대로 도망을 쳐.”

“…….”

변해버린 독군의 태도를 보며 란희는 몸이 굳어졌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하긴 하지만 명색이 형제였다. 게다가 양부인 독왕도 은연중에 독군을 챙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독군의 변화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옥성의 분열을 혈천이 원했다면 진즉에 독군이 일을 꾸몄을 것이다. 허나 혈천은 사파사세가 정파무림과 분탕질을 하길 원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옥성이 분열된다면 그만큼 정파무림의 힘을 깎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공적은 독군이 가질 수 있기에 묘족의 독립은 막아야 했다. 오독문이 남만에서 손꼽히는 세력이고, 독군 본인 역시 남만의 대표 고수였다.

허나 독왕과 만독궁이 사라진다고 해서 남만을 접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맹수를 흡사 애완동물처럼 조련하고 소림에 비견되는 외공을 익힌 전사들 야수문과 묘족의 신녀인 독모를 모시는 독모곡 때문이다.

그 외에도 쟁쟁한 세력들이 존재하기에 그가 남만을 지배하기 위해선 강력한 조력이 필요했다.

그걸 알기에 독군은 혈천의 호법이 되었다.

“내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늙은이가 개수작을 부리면 곤란해.”

“…이런다고 성주가 당신을 중용할 것 같습니까? 우리 묘족을 형제라고 말하지만, 우릴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그가?”

“크크크…! 누가 몰라? 내가 믿는 것은 성주가 아니다.”

“그, 그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독군의 말에 란희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성주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면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독군은 자신의 양부인 독왕과 묘족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군으로 인해 자신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네가 더 이상 알 필요는 없지. 이제 그만 자거라. 내일이면 도망치고 싶어서 못할 테니까. 크크크 성주에게 말해주면 어떤 반응일지 아주 궁금하군.”

“아, 안 돼요! 절대……!”

“닥치고 그만…헉!”

란희의 미혼혈을 누르기 위해서 손을 뻗던 독군은 기겁했다. 무형의 막에 막혀서 자신의 손가락이 튕겨났기 때문이다. 무형막은 절정고수인 란희가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도 초절정고수인 자신의 손가락을 튕겨낼 수준의 무형막을 펼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허나 무형막을 펼친 사람은 란희가 아니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누, 누구냐!”

놀랍게도 둘밖에 없던 천막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자신이 또 다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독군은 기겁했다.

그런 그를 보며 사내는 피식 거렸다.

“이미 기막을 쳐뒀기에 크게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못하니, 괜한 힘을 빼지 말지?”

“기, 기막… 도대체 누구십니까.”

기막은 독군도 칠 수 있었다.

허나 천막 전체에 기막을 친 상태에서 무형막으로 란희를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강자라는 뜻이었다. 독군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허나 곧 알 수 있었다.

“검신 님 오셨군요!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거, 검신!!”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토록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를.

이립도 되지 않은 나이에 화경에 오른 괴물 중에 괴물.

혈천에서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존재.

독군은 심장이 철렁했다.

‘젠장! 하필이면 검신이란 말인가! 독왕 늙은이가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것이야!’

지옥성으로부터 묘족이 독립하려 한다는 것은 들었으나 설마 검신까지 끌어들였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컥!”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으나… 그대의 목숨을 거두는 것은 내 몫이 아닌 듯하니 이번만은 살려주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란희가 자신도 모르게 이현성의 곁으로 와 있었고, 독군의 목이 이현성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도의 허공섭물이었다.

이현성은 독군을 제압해서 기절만 시켰다. 배신자인 그를 죽이는 것은 독왕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맙시다. 란희 소저.”

“예? 예… 검신 님.”

엄청난 신위를 두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인지 란희는 살짝 얼이 나가 있었다.

이런 신기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형지독을 발휘해서 전멸시키는 독왕의 신위는 본 적이 있으나 검신의 신기는 또 달랐다.

‘아버님도 가능하시려나?’

검신이 팔왕보다 강하다는 소문이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그가 살왕을 베었다고 해도 결국 살수라 생각했다. 이현성에게 검신이란 별호를 준 것은 정파의 검왕과 사파의 검마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어린 나이 때문이다.

이립도 안 되는 나이에 화경에 올랐다면 수십년 후에는 진정 검신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그리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팔왕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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