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그뿐만 아니라 청성파 장문인이 일백의 제자들을 이끌고 놈들의 뒤를 추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들까지 해를 당한다면 청성파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다. 초절정고수인 원로에 이어서 장문인까지 잃은 상태로 청성파가 얼마나 유지되겠는가.
물론 아직 대라신군과 몇몇 장로들 그리고 삼백의 청성파 제자들이 건재했다. 본산에도 어린 제자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허나 이들만으로 대 청성파의 위명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청성파는 최소 한 세대 이상 봉문하며 힘을 회복해야 할 정도로 위험해졌다.
그렇기에 어떡하든 장문인과 함께 움직인 청성의 제자들을 살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미파와 사천당가의 고수들이 함께라는 점이었다.
“서둘러라! 지쳐서 따르지 못하는 자는 놔두고 가겠다!!”
“…….”
인자하기로 유명한 대라신군의 닦달에 그 누구도 반발할 수 없었다. 일천의 사천무림인 중에 청성파 제자들이 여럿 있었으며, 그들 외에도 청성파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대라신군은 선언했던 것처럼 지쳐서 따르지 못하는 자들은 과감하게 두고 떠났다. 부상자도 아니라 단순히 체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곧 체력을 회복하고 합류할 수 있을 테니까.
사천성의 북부에서 동북부에 도착할 때까지 이백 이상의 인원이 떨어져 나갔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강행군이었다. 허나 그 덕분에 단기간에 사천의 동북부 즉, 청해성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시각, 청해성 부근에선 사천삼세 고수들과 혈천 순찰령의 전투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 * *
“이… 악마 같은… 놈…들… 컥!”
수백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온전한 시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한 모습이었다.
독과 암기 그리고 화탄 때문이다. 천하의 독종인 사천당가의 솜씨는 아니지만, 어찌 보면 그들의 솜씨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만든 독과 암기 그리고 화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천당가에서 만든 것에 의해서 그들이 잔혹한 상태의 시체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혈천의 순찰령. 즉, 칠웅방이 사천당가 본가를 습격한 자들인 것을 몰랐던 사실이 너무도 큰 실책이었다.
그 결과는 너무도 뼈아팠다.
화탄이 터지는 순간 사천삼세의 고수 2할이 무방비하게 당했고, 그로 인해 당황하는 사이 독과 암기에 의해서 3할 가까운 사상자가 나왔다.
남은 인원은 고작 5할. 순찰령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인원이었다. 그나마 이미 몇 차례 전투를 치르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순찰령을 생각하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적 공자.”
“…그럴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소.”
챙겨온 사천당가의 전리품은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용독술과 암기술은 사천당가만큼 뛰어나지 않다. 그렇기에 결국 마지막에는 육탄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사천삼세의 고수들은 강했다.
물론 흑도바닥에서 온갖 더러운 꼴을 겪으며 악에 받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순찰령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희생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수가 적다고 해도 상대는 사천삼세의 고수들이다.
희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순찰령주인 현휘군은 전면에 나섰다. 초절정고수인 그가 전면에 나서는 것으로도 희생은 급격하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순찰령에도 절정고수가 몇몇 있으나 장문인과 장로급이 여럿 포함된 사천삼세의 고수들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인원이 줄수록 혈천 내의 순찰령과 현휘군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기에 현휘군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였다.
적천우를 호위하던 사해련 고수들이 합류했다.
머릿수는 고작 십여 명에 불과하였지만, 개개인이 절정 혹은 그에 근접한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순찰령과 달리 체력을 비축한 그들이 합류는 제법 큰 도움이 되었다.
“알면 이 빚은 꼭 갚기 바란다.”
“이 적모, 빚을 지고는 못 사는 놈이외다.”
“내 수하들의 희생은 결코 싸구려가 아님을 기억하고…….”
―혈룡대주의 이름이 부족하다면, 부천주님의 손자로서 약속하외다. 현 령주.
관현의 대장간에서 만난 암기술의 대가에게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던 적천우였다. 그는 얼마 전에 의식을 되찾고는 내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운기행공에 힘썼다. 그럼에도 2할도 채 회복하지 못했다. 그만큼 적천우의 부상이 심각했다.
허나 호위를 줄이는 것은 가능했다.
덕분에 사해련 절정고수들이 순찰령을 도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순찰령도 사천삼세 고수들을 상대로 일백 이하의 희생만으로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제 순찰령의 인원은 이백오십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혈천삼십육대의 상위 육대에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상위 육대주의 무위는 팔각주에 버금가지만 영향력은 반수 아래였다. 즉, 순찰령의 입지는 오당팔각 아래가 되었단 뜻이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현휘군이 아니었다. 그는 이 빚을 비싸게 보상받을 생각이었다. 적천우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덕분에 현휘군은 만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만 빠져주지.”
“아니 왜…….”
“그만! 그간 고마웠소.”
사해련 고수들은 순찰령이 떠나겠단 말에 당황했다.
청해성이 코앞이었지만, 아직 사천성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사천무림이 미친 척하고 청해성 인근까지 추격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해련 본련 고수들이 지원을 올 때까지 함께 있지 않고 먼저 떠난다는 말에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순찰령의 진정한 신분을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적천우가 저지했다.
사해련에는 혈천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이 많기에 본련 고수들이 도착했을 때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기대하고 있지.
현휘군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떠나는 그들을 보며 사해련 고수들은 아쉬운 듯싶었다.
허나 련주의 손자이자 초절정고수인 적천우의 명에 항명할 순 없었다.
그때 적천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저들에 대해선 모두 잊게.”
“예?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해서 련주님께서 은밀하게 양성한 고수들일세. 본련에서도 대부분이 저들의 존재를 모르지. 알려져서 좋을 게 없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저들의 존재가 외부까지 알려질 수도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되는가?”
“물론입니다. 저흰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들도 사해련에서 부대주급에 해당되는 고수들이었다.
윗사람들의 뒷사정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순찰령이 그런 이들이라고 오해한 사해련 고수들은 적천우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몰라도 되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적천우 일행은 사천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다시 움직였다.
사천성과 청해성의 경계쯤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한 무리가 보였다.
“아…! 본련의 지원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살았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사해(四海)라고 적힌 깃발이 보였다. 사해련의 깃발을 달고 오고 있다는 말은 본련에서 지원을 보냈다는 뜻이었다. 순찰령이 먼저 떠난 것도 그들이 접근하고 있음을 눈치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안도해선 안 된다.
그들을 향해 접근하는 무리는 사해련의 지원군만이 아니었다.
“헉! 저들은……!”
“지금부터 말과 마차를 버린다! 전력을 다해서 경공술을 펼쳐라!”
“존명!”
또 다른 방향에서도 상당한 수의 무리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라신군이 이끄는 사천무림의 칠백여 고수들이었다.
그들의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으나 본련의 지원이 도착하기 전에 충돌하면 절대 버틸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갔다. 그렇기에 적천우 일행은 전력을 다해서 경공술을 펼쳤다.
“윽!”
“제가 도와드릴게요.”
초절정고수라도 몸이 온전치 않은 적천우였다.
전력을 다해서 경공술을 펼치려니 상처에 무리가 갔다.
이를 눈치챈 문인주희가 그의 곁에 와서 부축했다.
그녀가 보조해주자 적천우는 경공술을 펼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수월해진 것이 온전하게 경공술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 한 고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멀리서 달려오는 수백의 고수들보다 그가 더 위협적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지나자 고수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청성… 대라…신군!”
“헉!”
음풍귀조가 건곤신군과 동귀어진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듣게 된 적천우였다.
청성의 무복을 입은 자 중에서 죽은 건곤신군을 제외하고 저런 기세를 가진 자는 대라신군뿐이었다.
적천우의 외침에 사해련 고수들은 사색이 되었다.
본련의 지원과 거리는 아직도 제법 되었다. 그에 반해 대라신군은 지척이었다.
잡히는 순간 자신들의 목숨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대라신군은 강하고 자신들은 무력했다.
“놈! 더 이상은 못 도망친다!”
“헉!”
대라신군의 손이 적천우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정확히는 채려는 순간 문인주희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오히려 대라신군에 의해 그녀가 나가떨어졌다.
그만큼 두 사람의 차이는 극명했다.
“안 돼!”
“컥!”
적천우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해련 고수들이 대라신군을 공격했다. 허나 그들은 그의 검에 너무도 쉽게 베였다.
평소와 달리 이미 대라신군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를 버렸다는 것이 옳았다.
그렇게 사해련 고수들을 죽인 대라신군은 적천우를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챙!
“컥! 우웩!”
우드득!
“놈!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으나 이번에는 어려울 것이다!”
적천우는 대라신군의 검을 간신히 막아냈다. 허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나가떨어진 것은 물론 검에 실린 기운을 완전히 막지 못했는지 내상이 다시 도졌다. 피를 토하는 그를 보며 대라신군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그를 벨 생각이었다.
피익!
챙!
“칫! 누구냐!”
적천우를 향하던 대라신군의 검이 다른 것을 베었다.
그건 철시(鐵矢)였다.
철시 자체도 위력적이었지만, 검을 통해서 느껴지는 충격은 고작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그 순간 또 다른 철시가 연이어 날아왔다.
챙! 채챙! 챙! 챙!
철시는 사해련의 깃발을 달고 오는 이들의 방향해서 날아왔다. 족히 백 장(百丈)도 더 되는 먼 거리였다.
수십 장 거리에서 표적을 맞추는 궁(弓)의 대가도 흔치 않은데, 백장 이상 먼 거리에 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위력과 찌릿찌릿한 느낌.
대라신군은 자신에게 철시를 쏜 자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진뢰궁귀……!”
“아…….”
대라신군의 중얼거림에 사해련 고수들은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본련의 지원군 중에 진뢰궁귀가 있다면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