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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29화 (229/314)

229화.

허나 그의 말에 심기가 불편한지 여인이 차갑게 말했다.

“공자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부탁드렸습니다만?”

“하하…그랬던가?”

여인의 이름에 매(妹)를 붙여서 부를 수 있는 경우는 남자형제나 사랑하는 사내만 가능한 일이었다.

적천우는 여인의 가족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희매라고 부르는 것은 대단한 실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정중하게 희매라고 부르지 말라 청했으나, 적천우는 능글스럽게 대응할 뿐이었다.

덕분에 여인은 한숨만 나왔다.

여인의 이름은 문인주희. 혈천 대군사인 문인윤걸의 손녀이자 혈룡대의 부대주였다.

그리고 한때 혈무곡에서 207호라 불렸던 여인이기도 하였다.

적천우는 사해련주의 손자이면서 동시에 혈천의 미래라는 혈룡대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중책을 맡아 중원에 나오게 되면서 적천우를 보좌하기 위해 부대주인 그녀가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과 함께 동행한 30대 장한들은 혈룡대의 조장들이었다.

혈천 출신의 마흔 이하 중 가장 뛰어난 기재들을 모아서 창설한 집단이 바로 혈룡대였다.

그런 혈룡대에서 조장을 맡았다는 것은 대단한 재능과 실력을 겸비했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강한 것은 당연하였다.

‘대주께선 무슨 생각이신 모르겠군. 나까지 대(隊)를 비우면 혁련휘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데 말이야.’

내색하지는 않고 있으나 문인주희는 적천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혈룡대는 두 명의 부대주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그녀 문인주희이고, 나머지 한 명이 바로 혈천 대호법의 장손인 혁련휘였다.

그가 혈룡대주의 자리를 노린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물론 문인주희 역시 다르지 않았다.

허나 그녀는 실력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이고, 혁련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룡대를 가지려고 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적천우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부대주인 혁련휘에게 큰 기회이며, 그에겐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혁련휘를 견제해줘야 할 또 다른 부대주인 그녀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바로 적천우의 요청에 의한 명령이었다.

문인주희로서는 그런 그의 생각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이제야 마중을 나왔군.”

‘나보다 먼저 기척을 느끼시다니… 역시…….’

적천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음풍귀조는 깜짝 놀랐다.

혈룡대주인 그가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명색이 초절정고수이자 사해련 사대봉공인 자신보다 먼저 기척을 읽었다는 것은 그가 자신보다 기감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마중 나온 자들. 즉, 천웅방 고수들의 기척을 느꼈다는 것은 아무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반각이 채 지나기 전에 한 무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사해련 고수들은 각자의 무기에 손을 대며 경계를 했지만, 혈룡대 조장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들의 기감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경계할 만한 자들이 아니란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적 공자님이십니까. 천웅방의 구악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본방까지 모시겠습니다.”

“아… 구 형이셨구려. 사해련의 적 모외다. 만나서 반갑소.”

그들을 마중 나온 구악은 하찮은 자가 아니었다.

천웅방 팔패의 수좌인 천패 구황의 아들이자 천웅방주의 둘째제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천우가 직접 포권을 취하며 화답을 했다.

“그런데 구 형. 다른 이들은 도착하셨소?”

“운남의 소성주들께선 도착하셨고, 절강의 소교주께선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적천우는 물론 구악 역시 사파사세의 후계자급이지만, 사해련주의 손자인 적천우와 달리 구악은 천웅방주의 여러 제자 중 하나일 뿐이었기에 그를 상대로 말을 올렸다.

굳이 이렇게 구분할 필요는 없으나 적천우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하하 그렇소? 앞으로 회담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리겠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적 공자님.”

* * *

“황유, 어떻게 되었나.”

“…2할 정도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작 2할이라고! 장극, 너는!”

“…죄송합니다.”

혁련휘는 자신의 오른팔, 왼팔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보고에 짜증이 났다.

눈엣가시와 같은 적천우가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게다가 사사건건 자신을 견제하던 문인주희마저 함께 떠났다.

혈룡대를 노리는 혁련휘로서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인 셈이었다.

이에 혁련휘는 자신의 측근이자, 혈룡대 조장인 장극과 황유를 움직였다.

황유에게는 혈룡대원들을, 장극에게는 조장들의 포섭을 맡겼다.

혁련휘는 오랜 시간 혈룡대를 장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음에도 큰 성과는 보지 못했었다.

물론 아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열 명의 조장 중 두 명과 그들의 조원들을 끌어안았으니까.

허나 열 명의 조장 중 무려 네 명이 적천우를 따르고 있고, 두 명의 조장이 문인주희를 따르고 있었다.

중립적인 성향을 고수하는 조장은 고작 둘뿐이었다.

혈룡대원들의 경우는 상당수가 문인주희를 지지했다.

뛰어난 무위는 물론 아름다운 미모 그리고 공평무사한 성격 때문이다.

혁련휘는 두 사람이 없는 지금의 상황을 틈타서 이 판세를 뒤집을 생각이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다. 필요하다면 자금은 얼마든지 지원해주마. 최대한 포섭해. 나의 미래가 곧 너희의 미래라는 것을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주군.”

“반드시 해내 보이겠습니다.”

그들은 공동운명체였다.

혁련휘가 권력을 쥐지 못한다면 그의 줄을 잡은 그들 역시 빛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찬란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혁련휘를 보좌해야 한다.

허나 천생 무인인 장극에게 조장들을 포섭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황유는 장극보다 나았으나 그 역시 적성에 그리 맞지 않는 임무였다.

덕분에 이 황금 같은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러니 혁련휘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망할 년,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자리를 비웠음에도 놈들이 내 손을 잡는 것을 주저하는 거야!”

평소 점잖고 진중한 그였지만, 상황이 너무 안 풀리자 숨겨진 본성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나에게 이 기회를 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기필코!”

* * *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소만?”

“사마 소교주께서 아직이라…….”

사파사세의 회담을 제시한 자는 사해련주였지만, 개회장소가 천웅방이기에 천웅방 대표이자 방주의 첫째 제자가 회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에 사해련주의 손자인 적천우와 지옥성의 소성주들이 자리에 앉아 회담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되었음에도 회담이 진행되지 않았다.

천사교의 소교주가 회담장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옥성의 소성주 중 한 명이자 지옥대제의 아들인 나백은 이를 지적하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허나 그의 곁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소성주이자 독왕의 수양딸인 란희는 담담했다.

그에 반해 사해련의 적천우는 이 상황을 재미있어 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이런 이런! 다들 모여 있군. 본 소교주가 조금 늦었구려.”

“오셨습니까. 사마 소교주.”

제일 늦은 주제에도 불구하고 미안한 기색이 전혀 안 보였다.

사파사세의 대표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나머지 삼세를 무시한다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천사교주인 천사존은 사파제일고수였다.

그렇기에 은연중 사파지존 역시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소교주에게서도 보이니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꿀릴 것 없는 지옥성 소성주인 나백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회담 시간조차 지키지 못하였다니… 귀교는 그런 것도 가르치지 않소?”

“이봐, 지금 뭐라고 했어. 감히 지옥성 따위가 지금 본교를 모욕해!”

“뭐! 지옥성 따위!!”

두 사람은 혈기왕성한 나이기 때문인지 쉽게 흥분하고 충동적으로 반응했다.

지옥성과 천사교 대표들이 발끈하자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서 동행한 자들 역시 같이 날을 세웠다.

그로 인해 회담장의 분위기는 더욱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회담의 진행을 맡은 천웅방주의 첫째 제자 오철극은 두 사람을 말렸다.

“자자, 두분 모두 진정해주십시오. 중요한 자리인 만큼 감정적으로…….”

“고작 련주님의 일개 제자 따위가 지금 나와 맞먹으려고 해!”

소교주는 지옥성에 이어서 이번에는 천웅방까지 건드렸다.

그 안하무인격의 태도에 천웅방 고수들은 물론 지금까지 예를 지키던 오철극마저 분노케 했다.

빠드득…….

“소교주, 지금 사파무림에는 천사교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요? 본방과 지옥성 그리고 사해련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으로 봐도 되겠소? 소교주께선 이 상황으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책임질 수 있겠소.”

“…….”

오철극이 소방주로 추대된 것이 아님에도 천웅방 대표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만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세는 심상치가 않았다.

사실 소교주 역시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석가장의 일로 자존심이 상한 그는 조부이자 교주인 천사존의 가르침과 많은 지원 하에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비록 편법을 통해서 초절정지경에 올랐다고 해도 초절정고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더욱 오만해졌다. 허나 상대를 잘못 잡았다.

오철극은 물론 적천우 그리고 나백 역시 벽을 넘었다.

물론 다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게다가 아무리 천사존이 사파제일고수라도 천웅방, 지옥성 그리고 사해련을 감당할 순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 사파사세가 아닌 사파일세라고 불렸을 것이다.

아무리 소교주가 오만하였다지만 그러한 사실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소교주는 한 발 물러났다.

“…본 소교주의 말이 지나쳤던 것은 인정하지. 허나… 싸움을 원한다면 두려워할 본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할거야.”

“과연 그 말… 성주님께서 들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가 되는군.”

소교주가 천사교와 천사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듯 나백 역시 지옥성과 지옥대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음에도 서로를 향한 차가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오철극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담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협의를 내리지 못한 채, 회담은 중단되고 말았다.

“…오늘 회담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저녁에 본방의 방주님께서 직접 참석하시는 연회가 진행될 예정이니 모두 ‘늦지’ 않게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감정을 완전히 털지 못했는지 오철극은 ‘늦지’ 라는 말을 강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다들 흩어지게 되었다.

* * *

“…사파무림의 동량들을 만나게 되어서 무척 기쁘네. 본좌는 이만 빠질 테니, 젊은이들끼리 좋은 시간을 보내기 바라네.”

사파사세의 미래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인 만큼 연회는 제법 성대하게 치러졌다.

허나 칠사(七邪)급 거두들이 모인 자리도 아닌 만큼 천웅방주도 오래 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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