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208화 (208/314)

208화.

“뭐, 뭐야!”

“무, 무슨 일이야!”

석가장의 혈족만 기거하는 내원(內院)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모두 당황했다. 특히 내원의 경비를 맡고 있는 석가수호대는 기겁하며 출동했다. 전원이 일류고수로 구성된 석가수호대는 공식적으론 석가장 제일의 무력대였다.

그들의 임무는 석가장의 혈족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으로, 그 인원이 이백에 달했다. 혼세교의 마령대는 물론 내당고수들 역시 석가수호대 입장에선 정체불명의 괴한들일 뿐이었다. 그들이 석가장 내원에서 서로 전투를 벌이고 있으니 석가수호대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나 석가수호대의 입장에선 그들을 몰아내야만 했다.

“감히 누구이기에 본장에서 칼부림을 하더냐!!”

석가수호대장은 몇 안 되는 절정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석가수호대의 절반인 일백 고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허나 그의 호통에도 정체불명의 괴한들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수는 제법이었지만, 자신들을 어찌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라 생각해서였다.

그때 내당주가 외쳤다.

“우린 석대중 대장로님을 모시는 자들이오! 그분이 위험하오! 적들을 공격하시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너희… 아니, 그대들이 대장로님의 사람이라니?”

석가수호대는 당황했다. 석가장은 상가이지 무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석가수호대를 포함한 호위대는 전원 석가장의 인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고용되었다.

하물며 대장로가 사적으로 사병을 양성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수는 없었다.

“저들은 본가가 맡겠소.”

“쳇! 지금까지 지켜만 보더니…….”

정체불명의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혁련세가의 고수들이었다.

혁련세가는 수개월 전, 무림맹에 의해 본가가 무너지면서 수백의 무인을 잃었다.

그날 같이 탈출한 인원은 고작 서른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하남성 곳곳에 분산시켜둔 비밀고수들과 그간 은밀하게 흡수한 중소문파 인원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동원한 고수들은 혁련세가 입장에서도 상당히 무리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명색이 혈천 대호법의 가문인 혁련세가였다.

고작 돈에 고용된 석가수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대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젠장. 정말 대장로님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저놈들이 적인 것은 확실하니… 저들부터 제압한다!”

내당의 존재를 모르는 석가수호대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자신들을 향해 검을 겨눈 자들이 있으니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석가장에선 피 튀기는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 * *

“젠장!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전투가 벌어진 것은 내원만이 아니었다.

내원 중에서도 심처인 소가주 석주천의 거처에서 더 무서운 전투가 벌어졌다.

석주천에 이어서 석대중의 숨을 끊으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나타났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불청객의 정체가 번번이 자신들의 일을 방해한 이현성의 수하라는 점이었다.

혁련용후와 우사의 행사를 방해한 자는 먼저 떠났던 암월과 규염이었다.

서두른 덕분에 석대중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나 위급한 상황인 것은 여전했다.

게다가 혁련용후와 우사 때문에 석대중의 상태를 살피지도 못했다.

그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으나 주군인 이현성에게 장원에 큰 도움이 될 일이라고 했기에 가능하면 살릴 생각이었다.

“네놈… 혹시 혁련세가 놈이더냐!”

“……!!”

장강어옹 규염은 혁련용후의 출신을 알아차렸다.

그의 검술은 물론 외모가 누군가와 닮았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 이가장을 습격한 자들. 그중에서도 규염이 상대한 자와 너무도 흡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규염이 상대한 자는 혁련세가의 원로이자 혈족인 혁련중호로 혁련용후에게는 숙부뻘 되는 인물이었다.

검술과 외모 등에서 닮은 점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군. 늙은이가 숙부님을 쓰러트린 장강어옹이었군!”

“역시! 오냐! 네놈도 네 숙부 꼴이 나게 해주마!”

규염도 제갈인겸처럼 술에 취해서 문가장의 혈겁에서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덕분에 유령살군에게 당할 뻔했다.

이현성이 제때 나타나지 못했다면 말년에 추한 꼴을 제대로 보였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명예를 되찾을 기회였다.

혁련용후 역시 안 그래도 복수해줄 기회를 기다렸는데, 장강어옹을 벰으로써 최소한 복수를 할 수 있으니 눈이 뻘게졌다.

냉정한 지략가였던 혁련용후이건만 이가장과 연관되면 그답지 않게 눈이 뒤집어지는 성향이 있었다.

그에 반해 혼세교의 우사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 암월을 상대했다.

챙! 채챙! 챙챙!!

‘팔패의 말석이라고 들었거늘… 강하군.’

천웅방을 대표하는 여덟 고수, 팔패(八覇).

암월은 그중 암월영패라고 불렸다.

탈방 후 이가장의 호법이 되었단 소문은 익히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우사는 그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세간에 암월은 팔패 중 말석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그게 아니라도 자신의 무위에 자신이 있었다.

허나 직접 검을 섞어보니 그 생각이 바뀌었다.

암월은 혼세교의 우사인 자신과 비견될 정도로 강했다.

‘팔패가 그만큼 강한 것인가… 아니면 저놈이 실력을 숨긴 것인가? 어차피 상관없지. 그렇다고 한들 날 넘어설 순 없다.’

우사는 냉정하게 전력을 비교했다.

분명 암월의 검은 강했다.

은밀하면서 빠르다. 아차 하는 순간 낭패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령검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이 익힌 마령검은 좌사가 익힌 천붕도와 함께 혼세신마의 절학 중 하나였다.

어찌 한낱 암중호위의 검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순간 우사의 검에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마도의 검법답게 그 위력은 물론 검초가 무척이나 패도적이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암월의 검과는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렇다고 암월의 검 역시 일개 호위의 검이 아니었다.

수백 년에 걸쳐서 성숙해진 만큼 무림 최상위 검법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의 검에 실린 기운은 결코 우사의 것에 뒤지지 않았다.

쾅!

“으윽!”

“큭!”

이번 격돌로 우사는 득도 그렇다고 실도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산동의 임무를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한 팔을 잃은 좌사의 입지가 다소 줄었다.

덕분에 우사는 명실상부 혼세교의 이인자가 되었다.

이번 임무를 완수해서 그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생각이었다.

공동임무를 추진하고 있는 혁련세가는 중원전장을 은밀하게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에 반해 혼세교는 석가장의 잡다한 사업 몇 가지를 빼돌렸을 뿐이었다.

석대중을 죽이고 중원상단을 얻지 못하면 이번 임무를 성공해도 성공한 것이 못 된다.

쾅! 콰쾅! 쾅! 쾅!

우사는 암월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였다.

겉보기에는 우사가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렇다고 할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셈이었다.

‘이놈들이 왔다는 것은, 곧 이가장 놈들이 들이닥친다는 뜻이다. 그전에 석대중이라도 죽여야 해!’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이가장의 고수들이 들이닥치면 그에게 승산이 없었다.

혼세교는 물론 혁련세가 역시 정예만 임무에 투입된 만큼 이가장 고수들까지 감당하긴 어렵다.

결국 철수해야 했다.

다행인 점은 만약을 대비해서 석가장 곳곳에 혼세교의 사람을 심어둔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서 석대중만 죽는다면 시간이야 다소 걸리겠지만 중원상단을 은밀하게 장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우사는 생각을 바꾸었다.

눈앞의 암월을 베는 것보다 석대중을 먼저 죽이는 쪽으로.

“죽어라!”

“이런!”

암월에게 향하던 우사의 검로가 틀어졌다.

그의 검이 향한 곳은 석대중이 쓰러져 있는 방향이었다.

우사의 돌발행동에 암월은 대처가 늦고 말았다.

이미 부상이 심각한 석대중이었다.

우사의 검을 막지 못하면 즉사하고 말 것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쾅!

“으윽!!”

“헉! 네놈들이 어떻게 여길! 서, 설마!!”

우사는 석대중을 베지 못했다.

그의 검을 대신 막아낸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의 검을 막아낸 자는 석가장의 내당주였다.

그의 곁에는 내당고수로 추정되는 자가 둘이나 더 있었다.

자신의 친위대인 마령대가 저들의 발을 묶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럼에도 이곳에 있다는 것은 마령대가 당했다는 뜻이었다.

혼세교에서도 손꼽히는 정예인 마령대가. 우사로서는 믿을 수 없었다.

“대장로님! 무사하십니까!”

“소가주님을 구하라!!”

그들만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수가 많지 않다고 하지만 무려 혼세교와 혁련세가의 정예고수들이었다.

고작 석가장 따위에게 당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이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외당주의 결단 때문이다.

소가주인 석주천의 명으로 그들은 소란 속에서도 침묵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결국 석가장을 도우면서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외당이 석주천을 따른 것은 그가 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였다.

허나 아무리 외당을 포함한 삼당이 석가장의 공식적인 무력대가 아니라지만, 석가장의 식구인 것은 변치 않는다.

적들에 의해서 석가장이 유린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침묵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외당주는 외당고수들을 이끌고 혁련세가 고수들의 뒤를 쳤다.

석가수호대 입장에선 당황스러웠으나 자신들의 적을 공격하자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혁련세가의 고수들은 물론 마령대 역시 무너지고 말았다.

석대환과 현무가 사라졌다고 석가장을 너무 가볍게 본 대가를 톡톡하게 치르게 된 것이다.

‘빌어먹을!’

우사로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미 다 된 밥이거늘,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우사, 혹시 숨겨둔 것 없으시오?

―…….

―이대로라면 곤란한 것은 나만이 아니라 생각하오만? 더 이상 숨기지 맙시다.

혁련용후도 그렇지만 우사도 만약을 대비한 안배를 해두었다.

다소 경계가 느슨한 석가장 외원 곳곳에 혼세교의 교도들을 심어두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들과 달리 평교도들은 의심을 하지 않고 석가장에 스며들 수 있었다.

평소와 석가장이라면 불가능하지만, 석대중과 석주천의 분쟁으로 석가장이 혼란스럽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석가장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나 여차하며 불을 지르거나 숨겨둔 화탄에 불을 붙이는 역할 역시 부여되었다.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이것들아! 잔머리 그만 굴리고, 항복해라!”

“이 늙은이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규염의 호기로운 외침에 혁련용후는 발끈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흥분한 것이 아니었다.

저들의 방심을 유도한 것에 불과했다.

―지금이오!

혁련용후가 신호를 주자 우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구 쪽으로 집어 던졌다.

석가장의 고수들은 움찔하며 피했다.

허나 예상했던 폭발 대신 붉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우사가 던진 것은 화탄이 아니라 발연탄이었다.

“연기로 우리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더냐!”

“크크크.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붉은 연기는 단순히 시아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우사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콰쾅!

연기는 석가장 외원에 심어둔 평교도들에게 비밀임무를 수행하라는 신호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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