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69화 (169/314)

169화.

밝혀진 비사

“끝까지 말하지 않을 텐가!!”

“…….”

적양신장(赤陽神掌) 구연청의 호통에도 사내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런 사내를 보며 배신감이 치밀어 올라 구연청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입을 다물 수 있을 것 같은가?”

“…….”

쾅!

“육태언!!”

“…….”

구연청이 심문하는 자는 같은 이가장의 호법, 아니 호법이었던 풍마참도(風磨斬刀) 육태언이었다.

지난밤 일어난 격전은 무척이나 치열했다. 그중에서도 두 사람의 격전은 단연 최악이었다.

규염의 싸움보다도 더했다.

초절정에 근접한 두 사람의 경지도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심후한 내공과 무리(武理)는 적양신장 구연청이 조금 앞섰고, 치열한 실전감각면으론 풍마참도 육태언이 조금 더 능숙했다.

그렇다 한들 두 사람의 차이는 그야말로 종이 한장과 같았다.

덕분에 이가장의 무인들은 이미 습격자들을 전부 제압했다고 여겨서 뒷수습을 하던 중 기겁하며 주변을 다시 포위했을 정도다.

그들은 당황을 넘어서 혼란에 빠졌다.

확인 못 한 적의 존재가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다름 아닌 구연청과 육태언이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허나 그들이 격전을 벌인 장소가 구연청의 거처.

즉, 육태언이 습격자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짧다고 해도 몇 달간 동고동락한 이가장의 호법이 내통자임이 밝혀졌는데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자네가 아니라도 저들 중 누군가는 입을 열걸세. 나는 자네가 최소한의 속죄를 할 기회를 주고 싶네.”

“…….”

구연청의 권고에도 육태언은 여전히 입을 닫았다.

그런 그를 보며 구연청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자청했다. 육태언과의 혈전으로 부상이 심각함에도 그의 심문은 자신이 반드시 맡고 싶다고.

제갈현지는 그의 청을 수락했다.

그런 자신의 마지막 배려조차 묵살한 육태언에게서 일말의 정을 지우게 되었다.

“…좋네. 이제 더 이상 본장의 호법으로 대하지 않겠다. 육태언, 말하라!”

“…컥!”

이젠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 할 생각인지, 구연청은 손을 독하게 쓰기 시작했다.

퍽! 퍼퍽! 퍼퍼퍽!

두 사람은 부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맞는 육태언은 물론 때리는 구연청 역시 괴로운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그만. 구 호법님 뒤는 본인이 맡겠소.”

“…암월 호법? 그대가 어떻게 여길…….”

구연청을 저지한 사람은 바로 암월이었다.

이현성을 따라서 북경으로 떠났던 그가 돌아온 것이다.

무위만 본다면 암월이 위였지만, 나이는 구연청이 위였다. 그는 장강어옹 규염과 칠현마금 독고혜 다음으로 이가장에서 나이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암월 역시 구연청을 대우해주었다.

물론 이현성이 그러길 바라서였다.

“구 호법께선 장주께 가보시오.”

“장…주님께서 오셨단 말인가? 알겠네.”

자신보다 어리고 같은 이가장의 호법이지만, 눈앞의 사내는 쉽게 대할 수 없었다.

천웅방의 전(前) 팔패, 암월영패.

그의 압도적인 위엄에 구연청은 움찔했다.

그렇게 구연청이 밖으로 나가자 암월이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대답 안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곧 말하겠다고 애원할 테니까.”

* * *

“묵룡대원이 마흔세 명이나 죽었다고?”

“…죄송합니다. 주군. 대주인 제가 미흡해서…….”

이가장에 복귀한 이현성은 자신의 집무실로 가서 보고를 받았다. 습격으로 인한 피해는 상당했다. 물적 피해도 상당했으나 그것은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었다.

허나 문제는 인적 피해였다. 특히 정예라고 할 수 있는 묵룡대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죽은 것은 뼈아픈 결과였다. 그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소요된 자금도 자금이지만, 3년이란 시간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만. 되었네. 허 대주 자네의 잘못이 아닐세. 그들에 대한 후속조치는 어떻게 했나?”

“죽은 대원들의 가족들을 모아서 합동 장례를 치를 예정입니다.”

“위로금은 조장급으로 전달하고, 그들 가족의 생계 역시 문제없이 처리하게.”

“그 부분은 제가 맡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마 집사님. 묵룡대만이 아니라 본장을 위해 죽거나 다친 이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신경을 써 주세요.”

이가장이 피해를 입은 것은 입은 것이고, 사망자 가족의 슬픔과 생계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사상자에 대한 후속 조치가 워낙 후하니 이가장의 가솔들, 특히 무인들이 초개처럼 목숨을 걸 수 있었다.

자신들에게 문제가 생겨도 이가장이 자신의 가족을 책임져 줄 거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주님 오셨습니까.”

“구 호법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견딜 만합니다. …설마 그 녀석이 간자일 줄은… 본인에 대해서도 조사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책하지 마십시오. 구 호법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구연청으로선 면목이 없었다.

일이 커진 것은 육태언이 간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이가장에 추천한 사람이 바로 구연청이었다.

그러므로 그로선 당연히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신변조사를 요청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후… 그렇게 책임을 지고 싶다면 묵룡대의 교두가 되어 주십시오.”

“장주님…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묵룡대를 강하게 만들겠습니다.”

신입 대원을 선출해서 가르치는 것은 물론 기존 대원들 역시 한층 더 강해지기 위해선 고수의 가르침이 필요했다. 초절정지경에 근접한 적양신장 구연청이라면 묵룡대에게 좋은 교두가 되어줄 것이다.

“제갈 각주님.”

“예. 장주님.”

제갈현지가 이현성의 부인이 될 예정이라고 한들, 아직 혼사 전이며 이 자리는 공적인 자리인 만큼 호칭의 선을 지켰다.

“돈은 최대한 지원할 테니 풍운각을 최대한 증편해주십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정주에 한에서는 정보를 꽉 쥐고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정보망을 다시 촘촘히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의 경우는 내부의 조력자 때문이라곤 하지만 백여 명이나 되는 인원이 정주에 들어왔음에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치명적일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신 이런 실책을 범하진 않기 위해선 풍운각의 정보망을 더욱 넓고 동시에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풍운각만 아니라 각 대(隊) 역시 필요하다면 인원을 확충해도 됩니다. 단, 정예화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십시오.”

“예. 장주님.”

그렇게 회의를 마친 이현성은 제갈현지만 그대로 남게 했다. 그녀를 제외하고 모두 돌아가자 이현성이 미안한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다.

“지매 미안하오. 제갈세가는…….”

“알아요. 제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원래 계획은 북경 문가장을 다녀온 후 곧바로 호북 제갈세가에 갈 예정이었다. 혼사를 허락받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정체불명의 집단에 의해 이가장이 습격을 받았다.

다행히 막아냈지만, 그 피해를 무시할 수 없었다.

묵룡대는 물론 잠룡대 역시 상당한 피해를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현성이 다시 자리를 비우는 것은 어려웠다.

장원의 상황부터 안정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님께는 제가 서신을 보내둘게요.”

“아니, 어찌 이런 일을 서신으로 대신한단 말이오.”

혼사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것을 서신으로 대신한다는 것은 제갈세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장은 직접 다녀올 상황도 아니었다.

장강어옹 규염이나 적양신장 구연청이 멀쩡하다면 대신 보내겠지만,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출타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천웅방 출신인 암월을 오대세가인 제갈세가 본가에 보내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훗. 장원의 사정 때문에 안정되면 인사드리러 간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아마 연락을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후… 알겠소. 지매 편한 대로 하시오.”

이현성으로선 미안한 마음만 들 뿐이었다. 허나 당장 다른 방도가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신을 배려해주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서인지 이현성은 제갈현지를 꼬옥 안아주었다.

“고맙소. 지매… 앞으로 내 정말 잘하겠소.”

“그 말씀… 꼭 지키셔야 해요.”

“물론이오.”

* * *

“헉… 헉… 헉…….”

노인은 기진맥진한 채로 숨만 헐떡였다.

노인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곳곳에 피로 얼룩진 것은 물론 머리는 산발이며, 입에선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그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허나 사내는 그런 노인의 상태는 무시한 채 제 역할만 묵묵히 수행했다.

“주, 죽여줘… 제발… 나를…….”

죽여 달라는 노인의 애원에도 사내는 묵묵히 제 일만 했다. 노인도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은 고문 따위에 굴복한 자가 아니라 여겨서였다.

허나 그런 생각이 바뀌는데, 일각도 필요 없었다.

사내는 노인을 철저하게 망가트렸다.

육체를 시작으로 정신까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리 고함을 쳐도 사내는 묵묵히 제 일만 했다.

“으아악!!”

노인은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곤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유지할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사내는 입을 떼었다.

“혁련세가라…….”

노인의 정체는 혁련중호.

혁련세가의 원로이자 이가장 습격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조차 결국은 고문을 못 이겨 입을 열고 말았다.

암월의 심문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체에 대해서 의원만큼이나 정통한 종자들이 바로 살수였다.

살수들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암천회(暗天會).

그런 암천회의 호법이 바로 암월이었다.

그야말로 심문(?)의 대가인 셈이었다.

“이미 입을 맞춘 것이 아니라면… 맞겠지.”

입을 꾹 닫고 있던 육태언 역시 결국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영원한 평온을 얻게 되었다.

그 심문 결과를 토대로 다시 혁련중호를 심문했다.

다행히 심문 결과가 일치했다. 다만 사전에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허나 그건 기우였다.

육태언은 몰라도 오만한 혁련중호는 임무의 실패는 물론 자신이 포로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만일을 대비해서 사전에 입을 맞췄을 가능성은 낮았다. 심문을 마친 암월은 이현성을 찾아갔다.

“혁련…세가…란 말이오?”

“혁련세가에 대해서 아시오? 장주.”

암월의 물음에 이현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믿지 못한다기보단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라졌을 암천의 맹약을 계승하며 곁에 있는 암월에게까지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혈천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외다. 혁련세가는 그런 혈천의 핵심이 되는 혈천십삼세 중 대호법의 가문이외다.”

“예전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는데, 그들이 혈천이었구려.”

놀랍게도 암월은 암중세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덕분에 오히려 놀라는 것은 이현성의 몫이었다.

“알고 있었소?”

“장주께서 말씀하신 혈천이나 혁련세가에 대해선 몰랐으나 뭔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소. 본인만 아니라 사세(四勢)의 주인들이라면 느끼고 있었을 것이오.”

“……!!”

암월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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