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무림에는 인피면구를 이용한 변장이나 역체변환술로 어린 여인이나 노인으로 변장하여 암습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러니 안휘마검의 행동은 무리한 행동이 아니었다.
실제로 청년의 경우는 검을 쥐고 있었다.
“혀, 현아!!”
“으. 내가 있는 이상… 은설 누이를 해할 수 없다!”
“내 검을 막아?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구나.”
안휘마검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깜짝 놀랐다.
아무리 지쳤고, 검강을 발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일검을 받아낼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의 검은 창천검군조차 몰아세웠을 정도로 고강했다.
그렇기에 그는 확신했다.
약관으로 보이나 실상은 어린 고수가 아니라고.
그리고 역천마라경을 노리는 자들이라고 확신했다.
“허나… 요행은 한 번뿐이다.”
“누이. 내 뒤로 물러나시오.”
“혀, 현아…….”
청년은 검을 쥐지 않은 팔로 여인을 자신의 뒤로 보내며 보호했다. 안휘마검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으나 대별노괴의 종용에 생각을 접었다.
“빨리 가세나. 애송이들을 상대로 시간을 쓸 생각인가?”
“알겠소. 선배. 장난은 이제 끝이오.”
창천검군도 인정한 안휘마검의 검이 섬뜩한 소리를 만들며 허공을 갈랐다.
채챙!
“큭! 어림없다!”
“헉! 미친!”
놀랍게도 청년은 안휘마검의 검을 막아냈다.
안휘마검이 방심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를 본 대별노괴가 짜증을 냈다.
“장난칠 시간 없네! 아니면 나 혼자 가겠네.”
역천마라경을 품에 넣고 있는 대별노괴의 입장에선 독식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 역시 지친 상황이었다. 천중산에는 아직도 많은 무림인들이 자신들을 추적하는 상황이었다.
홀로 그들을 모두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에 들지 않으나 안휘마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고작 애송이를 상대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짜증은 안휘마검 본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냐, 죽여주마!”
안휘마검의 검에서 오연한 빛이 유형화 되었다.
이를 본 청년의 검에서도 은은한 빛을 발현했다.
하지만 안휘마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의 검강과 달리 청년의 것은 검기였기 때문이다.
콰쾅!!
“혀, 현아!!”
여인의 구슬픈 절규만 천중산에 울려 퍼졌다.
천검
“종리 아우, 현이는 어디 갔는가?”
“현이 말입니까? 아까 설이가 약초를 딴다고 나가서 현이가 따라갔습니다.”
천중산장주인 한승은 의제인 종리우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요즘 분위기가 흉흉하니, 산장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거늘! 자넨 말리지 않고 뭐했는가!”
“그래서 말리긴 했는데… 저도 설이 고것의 고집을 꺾을 수 있어야지요. 그래도 현이가 같이 갔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한승의 제자인 한호현 아니, 이현호는 2년 전 천검비록의 천검을 전수받았다.
천검은 신공절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절세검학이었다.
어지간한 재능과 노력으로는 절대 익힐 수 없었다.
이현호는 한승과 함께 2년간 폐관수련을 한 덕분에 천검에 입문할 수 있었다.
말이 입문이지, 천검비록을 3성까지 익힐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절정지경에 올랐으니 천검이 얼마나 위대한 검학인지 알 수 있었다.
“설이는 제 딴에 현이의 부족한 내공을 채워주겠다고 그러는 것이니, 형님께서 이해해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의독선생(醫毒先生) 종리우의 사부이자, 한승의 의숙인 독의(毒醫) 덕분에 이현호는 백 년 내공을 가질 수 있었다. 독으로 잠재능력을 격발시켜서 단전을 강제로 늘리는 비학 덕분이었다.
물론 독을 이용하는 만큼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강해지고 싶다는 이현호의 염원에 독의는 결국 수락해주었고, 멋지게 성공하고 말았다.
약관의 나이로 백 년 내공을 가진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천검의 계승자로서는 부족한 편이었다. 천검비록이 3성에 그친 이유 중 하나가 내공 부족도 있었다.
한승의 경우는 그의 사부가 죽는 순간, 전이대법으로 내공을 넘겨준 덕분에 심후한 내공을 가질 수 있었다.
허나 이현호는 그렇지 못했다.
“후… 느낌이 좋지 않네. 잠깐 나갔다 오겠네.”
“알겠습니다. 형님.”
종리우는 그를 보며 걱정도 팔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만류하진 않았다.
천중산장을 나온 한승은 주변을 살폈다.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세하지만 고수의 기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승은 다급한 마음에 전력을 다해서 경공술을 펼쳤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는 볼 수 있었다.
힘겨워하면서도 제 여식을 끝까지 보호하고 있는 제자와 그의 뒤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딸의 모습을.
“오냐, 죽여주마!”
“혀, 현아!!”
콰쾅!!!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천중산을 헤집고 다니는 무림인들이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폭음이었다. 덕분에 대별노괴는 기겁했다.
“미, 미쳤군! 우리의 위치를 알려줄 생각… 헉! 자네 괜찮나!”
“우웩!! 흐! 누구냐! 네놈은……!”
놀랍게도 천하의 안휘마검이 다량의 피를 토하고 말았다. 허나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한 중년 검객이 들어왔다.
“현아, 괜찮더냐.”
“사, 사부님… 죄송합니다.”
“아니다. 되었다. 그리고 설이, 너! 이 아비가 당분간 산장 밖에는 나서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그게…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
간혹 산을 내려가서 민초들의 병을 치료해주기에 인근에선 의선녀(醫仙女)라고 불리는 한은설이었다.
그녀의 고집은 한씨 가문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증거였다.
하지만 제 잘못으로 사랑하는 동생을 죽일 뻔했다는 것을 알기에 잘못을 시인했다.
순순히 용서를 구하는 딸을 보며 한승은 화를 거두었다.
“미친 연놈들. 감히 내 앞에서 무슨 짓… 헉!”
“입 다물어라. 사랑하는 딸과 제자를 노린 너희를 용서한 것이 아니니까.”
언제 움직였는지 한승이 안휘마검의 코앞에 있었다. 물론 안휘마검은 본능적으로 검의 간격 밖으로 물러났다.
안휘마검은 물론 대별노괴 역시 긴장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나 안휘마검의 검강을 막아선 자라면 최소한 초절정고수란 뜻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들은 족히 백여 명을 베면서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조금 전의 충돌로 안휘마검은 내상까지 입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눈 앞의 사내가 적의를 가진다면 곤란해진다.
“우릴 보내준다면 그냥 떠나겠소.”
“선배!”
“검을 뽑지 않았다면 몰라도… 검을 쥔 이상 쉽게 거둘 수 없소이다.”
기척들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 대별노괴가 다급해졌는지 그냥 떠나겠다고 제안을 했다.
이에 안휘마검은 발끈했다.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한승 역시 그들을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검을 쥐기까지는 신중하지만, 한번 쥔다면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하는 성미였다.
게다가 근래 천중산의 분위기가 흉흉한 원인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젠 더더욱 그냥 놔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허나 늙은 생각이 맵다고 대별노괴는 보통이 아니었다.
“귀하의 실력은 인정하외다. 허나 여식과 제자를 지키면서 우릴 상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외다. 괜히 서로 힘 빼지 맙시다.”
“…….”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상대가 온전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초절정고수 둘이었다.
그들 중 한사람이 자신의 발을 묶고 나머지 한사람이 이현호와 한은설을 제압하면 곤란한 쪽은 자신이었다.
게다가 그 역시 몰려드는 기척들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저들을 상대하면 쓸데없는 일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고지식한 그의 성격 상 물러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승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융통성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는 결국 검을 거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검을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사부님… 제가 목숨을 걸고 누이를 지키겠습니다. 부디 저희 때문에 뜻을 거두지 마십시오!”
“현아! 허허… 과연 나의 제자답구나. 내 잠시 흔들렸으나 너희의 사부이자 아비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리라!”
결의에 찬 이현호의 눈을 본 한승은 검을 꽉 쥐었다.
일이 틀어지자 대별노괴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오히려 잘 되었네. 자네가 저자를 붙잡고 있게. 애송이들은 내가 잡겠다. 인질을 내세워서 저자를 이용하세나.
―후… 오래는 못 버티오. 선배.
―걱정 말게.
안휘마검은 자존심이 차마 애송이들을 맡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중년 고수로부터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 역시 숨길 순 없었다. 대별노괴가 서두르지 않으면 자신이 더 곤란해질 것이다.
―조심하거라.
―예, 아버지.
―사부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
―오냐.
한승은 안휘마검에게 선수를 양보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안휘마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천검출세(天劍出世)!”
“크윽!”
챙! 채챙!!
상대가 상대인 만큼 한승은 천중검법이 아닌 천검을 펼쳤다. 내공 소모가 큰 천검이었지만, 한승은 무리 없이 펼쳤다.
이현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러나 안휘마검의 입장에선 한승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상 그의 발을 묶어야 했다.
그는 방어위주의 소극적인 방식으로 대항했다.
덕분에 한승도 제법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현호는 의외로 대별노괴를 상대로 선전했다.
“빌어먹을 꼬맹이가!”
“숙녀에게 꼬맹이라니! 노안이 왔나 보네요.”
“이익!!”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이 벌벌 떨었던 한은설이었다. 이젠 많이 진정된 모양인지 본성을 드러냈다.
이현호에게는 잘 보여주지 않았던 대찬 본성이었다.
고작 절정지경에 오른 이현호가 대별노괴의 부법(斧法)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의외로 제법 선전하고 있었다.
그건 한은설이 의독 선생 종리우에게 배운 하독술(下毒術)과 비침술(飛鍼術)로 이현호의 공백을 메워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초절정고수인 대별노괴였다.
한승을 협박하기 위해선 두 사람이 무사해야 하기에 손속에 사정을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화가 난 대별노괴는 살초를 펼치고 말았다.
“사지(四肢) 하나 없어진다고 인질로 부릴 수 없는 것은 아니지!”
“하합!!”
대별노괴의 전부(戰斧)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를 녹림 삼대 고수로 만들어준 파산부강(破山斧罡)이었다.
아무리 이현호가 천검비록을 계승했고, 한은설이 하독술과 비침술을 익혔다고 한들 파산부강 앞에선 무의미했다.
“젠장! 멍청한 놈!”
“헉… 헉… 헉…….”
대별노괴의 전부가 이현호의 세치 앞에서 빗겨 나더니 무언가를 쳐냈다.
그건 검이었다. 대별노괴의 전부에 의해 튕겨난 검은 누군가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후. 늦지 않았군.”
“사, 사부님!!”
대별노괴가 이현호를 대신해서 쳐낸 것은 한승의 검이었다.
제자인 이현호가 위험해지자 그가 검을 던진 것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