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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22화 (122/314)

122화.

장경각에 보관된 서책만 십만에 가까운데, 그것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공공대사는 머리가 뛰어났다.

“…묵룡수(墨龍手)? 본사에 그런 무공이 있었는가?”

공공대사의 대답에 공심대사는 의문을 제기했다.

처음 들어보는 무공이기 때문이다.

공심대사의 물음에 공공대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미타불…! 본각에서 묵룡혼원공의 파해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창안된 무공입니다. 곧 폐기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아미타불…….”

공공대사의 대답에 장로들은 불호를 읊었다.

묵룡혼원공은 마교의 마공이었다.

근력을 두 배 이상 높여주며, 대성한다면 도검불침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마교의 외문무공이었다.

게다가 웬만한 마공과 함께 익혀도 문제가 없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들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았다.

특히 마두(魔頭)급만 되어도 의미가 없기에 주로 하급 마인들만 익혔다.

반대로 말하면 하급 마인들을 비교적 빠르게 양성할 수 있는 무공이기에 정파무림으로서는 골치 아픈 마공이기도 했다.

“방금 말씀드렸듯 파해법 연구과정에서 창안된 무공으로, 묵룡혼원공의 기반이 되는 마기를 제거하고 불기(佛氣)를 접목했습니다. 그렇기에 마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폐기할 예정인가?”

“아미타불…! 아무리 마기 대신 불기를 접목시켰다고 해도 원류가 마교의 마공인지라 본사의 제자들에게 익히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대력금강수의 불기라서…….”

대력금강수(大力金剛手)는 소림 72절예의 하나로, 바위나 쇠조차 으깰 수 있는 대단한 수공(手功)이었다.

그런 대력금강수의 불기, 정확히는 대력금강수의 무공구결을 접목시켰다는 말이었다.

“으음. 묵룡수로 인해 대력금강수의 구결이 유출될 수 있는가?”

“묵룡수만으로 대력금강수의 구결을 알 수 있는 인물이라면, 굳이 대력금강수를 알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장문 사형.”

묵룡수에 포함된 대력금강수의 구결은 극히 일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력금강수를 복원할 수 있다면 무학대종사(武學大宗師)라 할 수 있었다.

허나 무학대종사라면 굳이 대력금강수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대력금강수 이상의 절학도 창안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으음. 좋네. 그럼 묵룡수를 전달하게.”

공심대사의 말에 좌중은 깜짝 놀랐다.

“자, 장문 사형. 자칫 본사의 절학이 유추될 수도 있습니다.”

“마, 맞습니다. 굳이 그 무공을 전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미타불…! 방금 공공 사제가 말하지 않았는가. 묵룡수로는 대력금강수의 무공이 유출되지 않을 거라고 말일세.”

“그, 그야 그렇지만…….”

무위는 장로들 중에서 가장 떨어지지만, 무리(武理)에 관해서는 가장 뛰어난 공공대사다.

괜히 장경각을 맡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부정한다면 공공대사를 무시하는 꼴이 되기에 장로들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공심대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본사와는 인연이 없는 무공이네. 그리고 철혼대마력이 본사의 품에 들어온 이 시기에 묵룡수란 무공이 창안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폐기할 바에는 이가장에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빈승의 생각이네.”

“…장문 사형의 뜻이 그러시다면…….”

다들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소림방장인 공심의 뜻을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그렇게 이가장에 전할 외문무공은 묵룡수로 정해졌다.

* * *

“…….”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오?”

대력보가 무너진 후 정주 실력자들의 시선이 태가장… 아니, 이가장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줄 알았던 이가장은 의외로 별다른 움직임 없이 잠잠했다.

덩달아 정주의 실력자들 역시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한달쯤 지나자 다들 조바심이 나게 되었다.

그때 흑혈방주가 은밀한 회동을 제안했다.

“맞소. 우릴 모은 거면 무슨 목적이 있을것 아니오?”

“진정하시게, 야도문주. 흑혈방주께서 무슨 생각이 있으니 우릴 부른 것 아니겠는가.”

야도문주를 달래는 척하며 흑혈방주를 타박하는 인물은 중앙북로의 절반을 지배하는 독안귀였다.

무영살이 사라진 지금, 정주 제일의 살문이 된 야도문(夜刀門)과 정주 흑도제일고수 독안귀(獨眼鬼)만 흑혈방주의 회동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는 세 사람이 더 앉아 있었다.

흑혈방과 함께 정주사파를 대표하는 귀문(鬼門), 무너진 대력보와 견줄 수 있는 정사지간의 방파인 철기보(鐵騎堡), 마지막으로 정주안가 이전부터 정주를 대표하던 정주하가(鄭州河家).

이들이 바로 정주를 대표하는 세력의 수장들이었다.

이들 외에 색주가를 쥐고 있는 화화대부(花花代父)와 소림 속가제자인 금룡표국주(擒龍鏢局主)는 흑혈방주의 회동 제의를 거절했다.

“이 사람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소, 독안귀 선배.”

“…그럼 이만 일어나겠소.”

흑혈방주의 말에 몇몇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특히 귀문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허나! 이대로라면 정주를 이가장에 넘겨줘야 하오.”

“그걸 누가 모르나. 그걸 알기에 방주의 청에 따라 우리가 모인 것 아닌가.”

그들 전부가 이렇게 모인 적은 없었다.

정주안가가 두각을 보일 때조차 그랬다. 그만큼 이가장의 존재가 그들 전부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정주의 이권을 노리고 서로 으르렁거리던 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정도로 이가장은 큰 변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주에서 손꼽히는 세력이자, 이 자리에 있는 자들도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력괴곤을 죽인 자가 바로 이가장의 고수였다.

그리고 그를 천사교의 맹검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물론 소림고수의 방문에도 별 다른 일이 없는 것을 봐선 맹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 해도 대력괴곤이 죽은 것은 사실이었다.

즉, 맹검이든 아니든 그에 비견되는 괴물이 이가장에 있다는 뜻이었다.

“이 사람, 죽은 대력괴곤보다 밑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허나 쉽게 이길 자신은 없소.”

“그야 뭐…….”

귀문주도 인정한 정주 사파제일고수는 흑혈방주였다.

충분히 대력괴곤을 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대력괴곤이 괴력난신의 마공을 익히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착각이었다.

“그런 대력괴곤을 단숨에 죽인 괴물이 이가장에 있소. …나 혼자는 힘들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도와준다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오.”

“방주, 그 말은… 설마…….”

흑혈방주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하나같이 눈이 커졌다.

허나 의외로 반발하는 자는 없었다.

이에 흑혈방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소. 본인은 정주연합을 세워서, 이가장에 대항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오.”

“……!!”

이현성 역시 이가장의 세를 넓힐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나 이들과 달리 정주의 이권을 탐내지는 않았다.

그런 이현성의 속을 모르는 이들은 이가장을 무너트릴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그것이 호랑이… 아니, 용의 역린을 건드리는 꼴인 것도 모른 채.

“반대하는 분 없소? 그럼 이 자리에서 협의를 했으면 하오만?”

“…좋소. 본 보주는 찬성이오.”

“본인 역시…….”

정사지간의 방파인 철기보의 보주가 먼저 찬성했다.

그러자 독안귀 역시 힘을 실어주었다.

이제 와서 거부할 수 없는지 귀문주와 야도문주 역시 찬성했다. 그러자 다섯쌍의 눈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정주하가의 가주인 표풍검호(飄風劍豪) 하서종에게로.

“으음. 본인은…….”

“바, 방주님!”

모든 시선이 정주하 가주에게 몰렸을 때, 초를 친 자가 있었다.

회동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흑혈방의 총관이었다.

“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방해를 한다더냐!”

“소, 소림… 소림고수가 다시 움직였습니다!”

“뭐, 뭐라고!!”

짜증을 내던 흑혈방주는 물론 불쾌하게 여기던 좌중 역시 깜짝 놀랐다. 돌아갔던 소림이 다시 움직였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을 암시했다.

덕분에 그들의 회동은 물론 정주연합 결성은 잠시 보류되었다.

* * *

“아미타불…! 사부님께서 장주님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공벽대사의 제자인 범양은 달마당의 무승(武僧) 십여 명과 함께 이가장으로 왔다. 장로회의의 결정에 따라서 이가장에 묵룡수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나한전과 함께 소림 무승을 대표하는 집단이 바로 달마당이었다.

달마당 부당주인 범양은 뛰어난 절정고수였다.

그럼에도 달마당 무승 십여 명을 대동했다. 장로회의 지엄한 명을 실수 없이 수행하기 위함도 있었다.

또한 묵룡수의 가치는 생각보다 낮지 않았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마기를 제거한 묵룡혼원공에 대력금강수의 불기가 만나서 탄생된 묵룡수는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절학이었다.

이가장이 아니라 다른 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골치 아플 정도로.

“감사합니다. 대사님.”

“아미타불…! 소승은 사부님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범양은 달마당의 부당주 이전에 료료, 공벽에 이어서 금강불괴신공의 계승자였다.

철혼대마력을 넘겨준 이현성에게 큰 호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현성 역시 호감을 보이는 그가 싫을 리 없었다.

“별채를 준비해뒀으니 쉬시다 가십시오.”

“아미타불…! 아쉽지만 본산에 빨리 돌아가봐야 합니다. 장주님의 호의는 감사하나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안타깝군요. 그럼… 이거라도… 많지 않습니다. 돌아가시는 길에 동행하신 스님들과 식사라도 하십시오.”

“아미타불…!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니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많지 않다고 했으나 은 천냥 가치가 있는 전표였다.

이가장을 운영하는데 한 달 동안 소요되는 비용도 은 천냥은 되지 않았으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허나 은 천냥은 단순히 소림 무승 십여 명의 밥값이 아니었다.

소림을 향한 그의 성의였다. 그리고 눈앞의 범양은 소림삼신승인 공벽대사의 제자다.

호감을 표해서 나쁠 일이 없었다. 정주에 뿌리를 내린 이상 소림과 적지 않은 인연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범양을 필두로 달마당의 무승들이 돌아가자, 이현성은 소림이 전한 외문무공을 살폈다.

“묵룡수라… 처음 들어보는 무공이지만 장경각의 무공이니…….”

마교의 절세마공인 철혼대마력의 대가로 받은 외문무공이었다.

소림의 자랑인 장경각에서 나왔다면 철포삼(鐵布衫), 횡가철문전(橫架鐵門栓) 수준의 하급 외문무공일 리는 없었다.

이현성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묵룡수의 비급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이 커졌다.

“외문무공이면서 외가기공이라니… 과하군. 너무 과해.”

외공(外功)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육체를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신체능력을 높이거나 피부를 단단하게 만드는 외문무공(外門武功). 흔히 외공이라 부르는 무공이 바로 외문무공인 셈이었다.

허나 단단해진 피부와 달리 내가중수법이나 독으로부터 장기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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