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117화 (117/314)

117화.

“썅! 감히 날 앞에 두고 무시해!”

“무, 무시가 아니라~ 아악!!”

일벌백계를 할 생각인지 그는 비수를 총관의 배를 향해 찔렀다.

총관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고통도 없이 절명한 것일까?

아니었다. 총관 대신 비수를 막아낸 자가 있었다.

“허가 놈, 경비대장이 되었다고 미쳤구나. 감히 내 손목을 잡아?”

“막가야. 감히 본장의 사업장을 건드려? 네놈이 죽고 싶구나.”

그랬다.

총관 대신 비수를 막아낸 자는 바로 태가장의 경비대장인 허정이었다.

명분을 갖되, 인명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막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체절명의 순간 나타났다.

덕분에 그 존재감은 주변에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지금까지 벌벌 떨고 있었다가 이제야 나타난 주제에 어쩌고 어째!”

“뭔 헛소리지?”

허정의 말에 낭아파의 수장인 막추는 어이가 없었다.

태가장의 구역이 뒤집어질 때까지 숨어 있던 주제에 이제야 나타나서 허세를 부리는 꼴이었다.

하지만 허정은 오히려 무슨 소리냐는 듯 어리둥절한 척했다.

그 모습에 막추는 짜증이 났다.

“우리가 주변 점포들을 접수할 때도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그게 무슨 말이지? 너희가 주변 점포를 접수한 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그러니까 너희 관할을…….”

“미친 새끼. 본장이 너희 흑도인 줄 아냐! 우리 관할이라니!”

호통을 치는 허정을 보며 막추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꼈다.

이현성의 의지를 알게 된 허정은 그의 뜻에 따라서 대처했다.

“그, 그럼 북로의 절반이 너희 관할이 아님을 인정하는 거냐?”

“이 새끼가 죽고 싶으냐! 계속 본장을 우롱하다니! 본장은 너희처럼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곳이 아니다! 당연히 보호비를 받은 적도 없고! 그런데 왜 본장을 너희 흑도처럼 말하는 거냐!”

허정은 보호비를 받은 적이 없으니 다른 점포들을 보호해줄 이유가 없다는 점을 은연중에 알린 셈이었다.

주변 점주들은 낭아파의 행포에도 구해주지 않은 태가장을 원망하다가 허정의 말에 멍해졌다.

실제로 태가장에 보호비를 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보호비를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보호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흑도 혹은 사파방파들이 태가장의 눈치를 보며 자신들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착각을 깨달은 점주들은 태가장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마냥 원망할 수 없게 되었다.

허정의 말처럼 태가장의 위세를 빌리면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네놈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알 필요는 없지. 허나 본장의 객잔을 건드린 이상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막가야.”

“미친! 오냐. 무슨 속셈인지 모르지만, 북로 절반은 우리 낭아파가 접수했다!”

그는 몰랐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 시간 사신(死神)이 어느 장원으로 향했다.

* * *

“뭐야? 재수 없게. 장님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장한은 다가오는 사내를 보며 짜증을 냈다.

번을 서고 있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장님이 다가오니 더 짜증이 났다.

허나 그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사신의 심기를 건드렸으니까.

“꺼져! 죽고 싶지… 컥…….”

“와, 왕인!”

입을 잘못 놀린 죄로, 왕인이라는 대력보의 무사는 가슴이 베였다.

함께 정문에서 번을 서던 동료무사는 절명한 왕인의 이름을 부르며 경악했다.

그때 그의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대력보 맞느냐?”

“마, 맞습니다!”

“다행이군. 네놈도 죽이고 다른 녀석에게 물어봐야 하나 했는데… 제대로 왔군.”

대력보의 무사는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늦게 대답했으면 목이 떨어졌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때 맹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들어가서 대력괴곤이란 애송이에게 나오라고 해라.”

“아, 알겠습니다!”

그대로 있다간 목이 베일 수 있단 생각을 했는지, 무사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각이 지났을 때, 맹인이 홀로 피식거렸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는 알 수 있었다.

문 너머에 수십 명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아니,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서걱!

맹인의 검이 움직였다.

순간 대력보의 정문이 쪼개졌다.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제법 두툼했기에 무척 튼튼해서 도끼라도 쉽게 쪼갤 수 없었다.

그런데 맹인은 너무도 간단히 베어버렸다.

쪼개진 정문 너머에 수십… 아니, 이미 일백이 넘는 무사들이 무기를 든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맹인은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을 무시한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력괴곤이란 애송이는 어디에 있느냐? 설마… 너희 중에 그 애송이가 있느냐? 그래도 한가락 한다고 들었는데… 아니겠지. 너희 중에는 쓸 만한 녀석이 없으니까.”

“미, 미친 맹인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개소리를… 컥!”

맹인의 신랄한 비판에 대력보의 무사들은 분개했다.

이곳은 대력보가 아닌가.

정주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무림방파였다.

자신들은 그런 대력보의 무사들이었다.

따라서 정주에서 자신들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고작 맹인이 자신들을 하찮게 취급하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맹인에게 욕설을 뱉은 자들만 깔끔하게 목이 베였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뭐, 뭐야!!”

갑자기 옆에 있던 동료의 목이 떨어졌고, 피가 사방에 비산했다.

백여명은 혼비백산하며 그대로 주저앉거나 도망쳤다.

단 한 수만으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임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의리도 없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쓸 만한 녀석은 없군. 다시 묻지! 애송이는 어디에 있느냐?”

도망칠 자들은 다 도망쳤고 주저앉은 자들은 담력이 제일 약한 자들뿐이었다.

덕분에 맹인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애송아… 빨리 나오거라. 모조리 베기 전에…….”

나직하게 말했으나 대력보 전체에 울려 퍼졌다.

천리전성(千里傳聲)이란 수법이었다.

이 한 수만으로도 맹인이 보통 고수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건장한 거구의 사내들로 둘은 칼(刀)을 쥐고 있었고, 단 한 명만 긴 철곤을 쥐고 있었다.

대력보주인 대력괴곤과 그의 두 의제들이었다.

“…어느 고인께서 본보에 왕림해주신 겁니까?”

“애송이 놈이 제법 위선을 떠는구나.”

대력괴곤은 제법 정중하게 말했으나 맹인은 그냥 깔아뭉개버렸다.

정파인 척하면서 뒤로 구린 짓을 많이 하고 다니는 위선적인 자라는 것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맹인의 말에 대력괴곤의 두 의제는 발끈했다.

“감히!!”

“형님께서 예를 차리셨거늘!!”

“그만. 되었다.”

대력괴곤은 발끈한 의제들을 저지했다.

허나 그것 역시 위선에 불과했다.

그릇이 큰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척 보이기 위해 의제들을 말린 것이다.

“애송이가 끝까지 위선을 떠는군. 뭐, 좋다. 내 검에 죽기 전에 왜 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마. …그간 제법 쓰레기 짓을 많이 했더구나. 납치에 청부살인… 뭐, 그건 상관없다. 허나 본장을 건드렸으니 죽어야겠지. 장주 아우가 부탁했으니 너희 셋의 목은 꼭 베어주마.”

“본장? 본보가 귀장을 건드렸단 말이오? 그렇다 한들 본인과 의제들을 목을 요구하다니. 과하구려.”

대력괴곤의 말에 맹인은 피식 웃었다.

말투는 여전히 정중하지만,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여차하면 기습하겠단 뜻이었다.

실제로 언제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낭아파라는 쓰레기들이 본장의 사업장을 공격했다고 하더구나. 이제 그만 죽거…….”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구려. 낭아파와 본보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채챙!!

맹인의 말에 대력괴곤이 변명을 했다.

하지만 그건 맹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의제들이 맹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맹인이라 너무 무시한 것이 실수였다.

그들의 칼을 너무도 쉽게 막은 것은 물론, 맹인의 간격 안에 스스로 들어와버리고 말았다.

“혹시 실수였나 싶었는데, 역시 쓰레기였군. 다행이야. 아우에게 변명할 필요가 없겠어.”

“장님이 제법… 컥!”

“크윽!!”

대력괴곤의 의제들은 절정도객들이었다.

대력보가 정주에서 지금의 위세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대력괴곤의 뒤를 받쳐준 덕분이었다.

그런 그들이 맹인의 일검(一劍)에 절명하고 말았다.

정주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라는 대력괴곤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신위였다.

“그, 그럴 리가… 다, 당신이 왜 이곳에…….”

“오호? 내가 누구인지 알았단 말인가?”

“맹인이면서 그런 섬뜩한 검을 쓰는 자는 단 한 명, 천사교의 맹검!”

“반은 맞았다.”

대력괴곤은 제법 식견이 있는지 맹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는 맹검 위지천이었다.

대력괴곤은 혼란스러웠다.

맹검은 사파사세인 천사교의 호교사자였다.

천사교가 대단하긴 하지만 이곳은 하남이었다.

정파무림의 지주인 소림과 천하제일대방인 개방의 권역이었다.

아무리 오만한 천사교주라도 하남에서 분탕질을 칠 수는 없었다.

허나 맹검이 나타났으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반은 맞았다니. 무슨 뜻이오? 그리고 내게 원하는 것이 뭐요?”

“내가 맹검인 것은 맞으나 천사교는 아니지. 난 태가장의 부장주이거든. 그리고 분명 말했을 텐데? 본장을 건드린 네놈의 목을 내놓으라고.”

“미, 미친…! 아무리 네놈이 맹검이라도 날 우습게 보지 마라!”

대력괴곤은 분노했다.

일을 이렇게 만든 낭아파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허나 그들을 징치하기 전에 먼저 맹검부터 처리해야 했다.

철곤을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파공음은 섬뜩할 정도였다.

쾅! 쾅쾅!

대력괴곤은 의제들과는 달랐다.

천하의 맹검을 오히려 밀어붙이고 있었다.

우려와 달리 자신의 철곤을 막아내는데 급급한 맹검을 보며 대력괴곤은 자신이 붙었다.

실제로 그의 곤법은 제법 뛰어났다.

허나 맹검이 주춤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정말 괴력난신(怪力亂神)의 마공이었군.”

“맹검도 별거 아니군. 그걸 이제야 알다니… 그만 죽어라!”

현 무림은 정파(正派)와 사파(邪派)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마도(魔道)는 주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명(明)을 건국한 홍무제는 천마신교의 무서움을 너무도 잘 알기에 구파일방을 지원했다.

황실 대신 천마신교를 밀어내라는 의미였다.

허나 천마신교는 홍무제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강했다.

정확히는 자신들을 배신한 홍무제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컸다.

대대적으로 중원을 침범한 천마신교에 당황한 구파일방은 그들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정파무림은 구파일방에 동조했다.

그럼에도 천마신교는 꾸역꾸역 밀려왔다.

사파무림은 뒤에서 이득만 취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신교는 정사를 막론하고 공격했다.

이성을 잃은 천마신교가 사파무림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황제가 뒤에서 손을 쓴 것이다.

귀환살수

— 문지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