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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106화 (106/314)

106화.

그런 그의 말에 노승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 어느 하나 하찮은 것이 없고, 모든 존재가 귀하거늘 어찌 스스로를 낮추십니까. 게다가 대협처럼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이라면 충분이 대협이라 칭할 만합니다. 아미타불…….”

이현성은 노승의 말에 황송할 따름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절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아미타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이렇게 만나 뵈니 한가지 청이 생겼습니다.”

노승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현성은 살짝 놀랐다.

동시에 과연 어떤 청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노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 이상으로 놀라웠다.

“제 사질에게 소림 외의 무(武)를 견식할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평생 소림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사질이라서 말입니다.”

“……!!”

기대하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났다.

소림고수와의 비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소림방장(?)께서 먼저 청한 일이니 뒤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제 청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 역시 평소 흠모했던 소림의 고수분과 비무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회귀 전까지 통틀어 오십여 년 중 소림고수와는 싸워본 적이 없었다.

덕분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그때 노승의 입에서 누군가의 법명이 호명되었다.

“공암아. 이분께 무림의 무학이 어떤 것인지 가르침을 받거라.”

“예. 료굉사백.”

“…!! …료, 료굉대사!!”

이현성은 당황했다.

현(現) 소림방장의 법명은 공심.

따라서 그의 사질이라면 당연히 범자 항렬이었다.

그런데 호명된 법명은 예상치 못한 공암.

소림방장과 같은 공자 항렬이었다.

순간적으로 이현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공암대사의 입에서 료굉이란 법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서, 서, 성승이셨습니까!!”

“허허…….”

그제야 그가 료굉대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단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했다. 료굉대사가 소림의 산문을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 은거한 지 30년이 넘었다.

소림에서도 그와 대면할 수 있는 자가 손에 꼽힐 정도이며, 항간에서 그의 입적까지 거론된 상황이었다.

그런 성승이 이곳에 있다고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제야 깨달았다. 성승이 왜 살아 있는 무림의 전설인지를. 평생 느껴보지 못한 이런 기분이 왜 들었는지를.

‘어쩌면 진정 화경조차 넘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초인지경이라고 불리는 화경의 너머에 있는 현경.

반선지경이라 불리는 그 경지에 계시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소림… 과연 대단하구나. 기대가 돼.’

항마신승

쾅!!

‘강하다! 소림에 이런 고수가 또 있었구나!’

태가장은 황제가 비밀리에 만든 비밀거점이었다.

당연히 비밀공간이 존재했다. 이현성은 태가장의 비밀공간에서 소림고수인 공암대사와 비무를 할 수 있었다.

소림은 수많은 고수가 산재한 곳이었다.

성승, 소림삼신승, 범천대사는 겉으로 드러난 예일 뿐이었다. 허나 공암대사는 회귀 전에도 들어보지 못했던 초절정고수였다.

그의 강함에 소림이 왜 소림인지를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왜 이런 고수가 알려지지 않았지?’

그의 실력은 소림삼신승과 비견될 정도였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소림을 대표한 구룡검의 맹약자인 만큼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다.

고수가 제 실력의 삼푼을 숨기듯 구룡검은 황실이 숨겨둔 삼푼인 셈이었다.

그런 구룡검의 맹약자들이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되었기에 공암대사는 소림삼신승과 비견됨에도 이제껏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쾅쾅! 콰쾅쾅!!

용호상박(龍虎相搏) 호각지세(互角之勢)란 말은 두 사람을 위한 말 같았다.

그만큼 두 사람의 비무는 한치의 밀림도 없었다.

세 걸음 물러난 공암대사가 합장을 하며 불호를 읊었다.

“아미타불… 부끄럽게도 빈승이 자만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아닙니다. 대사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맹약자로서 무위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 소림삼신승의 아래가 아니었다. 비록 공자 항렬 중 어린 편에 속하지만, 이현성보다 세 배 이상 나이가 많았다.

즉, 손자뻘의 젊은 청년을 상대로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소림의 입장에서, 공암대사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이현성을 일반적인 후기지수로 봐선 안 된다.

무림 백대고수 중에서도 그와 견줄 자가 많지 않은 정도였기 때문이다.

“사죄의 의미로 칼(刀)을 쥐겠습니다.”

지금까지 권각술만 펼치던 공암대사가 갑자기 칼을 쥐었다. 순간 기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소림무학이라고 하면 백보신권, 천수여래장, 항마연환퇴 등 단련된 신체(외공)와 심후한 내공으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권각술을 떠올린다.

실제로 그런 무학이 대다수였다.

허나 의외로 소림무학 중 무기술도 다양했다.

선장(禪杖)이나 저(杵)는 물론 도검(刀劍), 하다못해 염주(念珠)로 펼치는 무학도 존재했다.

챙챙챙!!

‘헉! 까딱 방심하면 위험하겠는데!’

칼을 쥔 공암대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다. 사실 공암대사는 소림에서도 드문 도객이었다.

공암대사는 구룡검의 맹약자인 동시에 소림의 수호신인 항마신승(降魔神僧)이기도 했다.

마(魔)가 창궐했을 때, 소림과 천하를 구하기 위한 존재가 바로 항마신승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다 실전적인 무학인 도법을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공암대사를 상대로 검을 휘두르긴 했으나 비장의 패라고 할 수 있는 암천살무(暗天殺舞)를 펼치진 않았다.

암천살무는 기본적으로 적을 베기 위한 절학이었다.

펼친다면 종국에는 피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칼을 쥔 공암대사는 암천살무를 봉인한 채 상대할 수 없었다.

“일점…혈!”

“헉!”

채~애앵!!

거침없이 쇄도하는 공암대사의 칼이 너무도 섬뜩했다.

그런 그의 칼을 피하며 절대쾌검인 일점혈을 펼쳤다.

만약 공암대사가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이라고까지 불리는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을 익히지 못했다면 결코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조차 완벽하지 못하기에 칼로 막아야 했다. 실로 등골이 오싹한 순간이었다.

허나 이 정도로 주춤할 공암대사가 아니었다.

그 역시 최고의 절초로 화답할 준비를 했다.

찌릿 찌릿!

소림의 고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섬뜩한 살기가 피부를 자극했다.

꿀꺽.

덕분에 이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천중비화를 펼쳐야 하나… 하지만…….’

일점혈도 대단한 검초였지만 암천살무의 또 다른 검초인 천중비화는 비교를 불허했다. 천중비화를 펼치는 순간 무조건 피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암대사의 살기는 그 외의 방도를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이 일로 소림과 척을 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검을 꽉 쥐었다.

두 사람의 도검에 유형화된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천중…….”

“갈(喝)!!”

순간 강렬한 고함이 두 사람의 귓가를 때렸다.

그 강력함에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료굉대사가 사자후(獅子吼)로 그들의 정신을 일깨워준 것이다. 비무에 너무 몰입하여 더 이상 선을 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공암대사는 칼을 땅에 꽂은 후 합장했다.

“아미타불… 부끄럽습니다. 빈승이 호승심을 꺾지 못하고 실수를 범할 뻔했습니다.”

“…아닙니다. 대사님.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다행히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를 했다. 덕분에 섬뜩했던 분위기가 온화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허나 이 순간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범천아. 분하더냐?”

“아, 아닙니다. 사조님.”

범천대사는 두 사람의 비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소림의 차기 방장으로 거론될 정도로 불심은 물론 절제력도 갖춘 범천대사였지만, 그 역시 무승(武僧)이란 사실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다. 두 사람의 비무는 무승인 그의 가슴에 불을 지른 셈이었다.

그 모습이 료굉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범천아.”

“예. 사조님.”

“중(僧)도 인간이란다. 정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해야지, 정을 버려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아미타불… 아미타불…….”

누가 봐도 차기 소림방장으로 손색이 없는 범천대사였다. 그럼에도 료굉대사는 범천대사에게서 부족함을 봤다.

살아 있는 전설 료굉이었기에 그가 부족해 보인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많은 기대와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염원이 범천대사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으나 동시에 그것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료굉대사는 범천대사가 알을 깨고 나오길 바랐다.

그 단초가 조금 전 둘의 비무가 되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은덕이로구나.’

* * *

“부, 분타주님!!”

중년 거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자신이 낮잠을 자는 것을 알면서도 방해받았으니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년 거지는 낮잠을 깨운 젊은 거지를 보며 호통을 쳤다.

“감히 내 낮잠을 방해해!”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뭐?! 내 낮잠이 중요하지 않다고!!”

“소, 손님이 오셨습니다! 분타주님을 찾아오셨습니다!”

호통을 치던 중년 거지는 젊은 거지의 말에 멈칫했다.

그는 평범한 거지가 아니었다.

천하제일대방이라고 불리는 개방도이자, 이곳 정주 분타를 맡고 있는 분타주였다. 그러므로 찾아온다고 무조건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젊은 개방도가 호들갑 떠는 것을 보면 그만한 귀빈이 찾아왔다는 의미였다.

“누가 찾아왔는데 이리 호들갑이더냐?”

“소, 소림의 스님께서 오셨습니다!”

“뭐! 소림!! 얼른 모시지 않고 뭐하느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게으름을 피우던 분타주는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림승이었다.

어찌 그들을 소홀히 대할 수 있겠는가.

잠시 후 중년승이 천막 안으로 들어와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소림의 범광이 개방의 형제님을 뵙습니다.”

“……!!”

정주 분타주는 경악했다.

눈 앞의 소림승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그는 이곳 정주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보, 본방의 정주 분타주인 운몽개입니다. 소, 소림의 사대금강을 뵙게 되어 여, 영광입니다.”

“아미타불…….”

그렇다. 소림승인 범광은 사대금강 중 한 명이었다. 특히 사대금강은 소림방장의 명에만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그런 범광대사가 정주 분타를 찾아왔으니 분타주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빈승이 분타주님을 찾아온 것은 한가지 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 말씀하십시오, 대사님.”

분타주의 말에 범광은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서신이었다.

분타주는 얼떨결에 범광이 내민 서신을 받았다.

어리둥절해 하는 그를 보며 범광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 서신을 귀방의 용두방주님께 전해주십시오.”

“바, 방주님께 말씀이십니까?”

“예. 매우 중요한 서신이니 신경 써주셨으면 합니다.”

대답은 했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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