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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91화 (91/314)

91화.

태산으로 향하기 전에 흑운의 가족들에게 돈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현성은 웃음이 나왔다.

“이제 하남으로 떠날까요?”

“…그러세.”

위지천은 깨달았다.

이현성이 산동에서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뭘까? 기대가 되는군. 네가 숨기고 있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일지.’

* * *

“으아아악!!”

“사, 살려줘!!”

산동악가는 발칵 뒤집어졌다.

갑작스러운 황보세가의 급습 때문이다.

명문답게 산동악가는 빠르게 대응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가문의 고수들 중 일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설사 전부 소집되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황보세가에서 권왕(拳王)이 직접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권왕!!”

“창군! 이 새끼가 나와 본가를 병신으로 아는 것이냐!!”

산동악가의 가주이자 산동무림의 원로인 창군.

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강자였다.

하지만 권왕은 격이 다르다.

산동무림의 최강자이자 전 무림에서 십정과 칠사 외에는 적수가 없는 화경고수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분노에 치를 떨고 있었다.

때문에 창군 아니, 산동악가가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권왕의 곁에는 한 팔을 잃은 천왕대주와 황보세가의 원로들 그리고 삼백의 고수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산동무림의 명숙들 역시 동행했다.

산동악가를 무림에서 지우기에 부족하지 않은 전력이었다.

그걸 창군과 산동악가도 알고 있었다.

“신마릉…! 악가의 소행이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보, 본가의 소행이라니요!!”

두 사람은 동시대를 살아왔으나 권왕이 다섯 살 위였고, 사회적 위치 역시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창군 역시 산동악가의 가주이자 무림의 원로 중 한 명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세워선 안 된다.

허나 그걸 무시할 정도로 권왕은 흥분한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의 아비이자, 자랑스러운 가문의 가주였다.

창군과 산동악가로 인해 그들을 잃을 뻔했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왕대주에게 들은 말이 있음에도 직접 나설 정도로 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다 밝혀졌는데 아직도 발뺌인가!!”

“아니, 신마의 유진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본가의 무사들을 먼저 공격했으면서 어찌 본가에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단 말이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창군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가 황보세가는 물론 산동무림 명숙들의 공분을 샀다.

그들 중에는 지옥과 같은 신마릉에서 살아나온 자도 있었고, 죽은 자의 가족이나 친우였던 자들도 있었다.

그러니 이 사태의 주범인 산동악가에게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때 천왕대주가 끼어들었다.

“가주님! 소제가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으음… 자네가? 알겠네.”

천왕대는 황보세가의 직계와 방계혈족 중에서도 실력으로만 선발했다.

천왕대주는 항렬상 권왕의 아우였다.

그의 말에 권왕은 일단 물러났다. 아들을 지키다가 팔 하나를 잃은 아우의 청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 가주님. 제 팔을 봐주십시오. 천붕도법에 베인 이 도흔을!”

“정말… 천붕도법에 베인 것이… 오?”

고수는 상흔만 봐도 어떤 방식으로 다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천붕도법에 의해 베였다면 특유의 도흔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천붕도법이 산동악가의 가전무학은 아니었지만, 도흔을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끄응… 가서 손위처남 아니, 모 호법을 모셔와라!”

“조, 존명!”

악 가주의 눈에도 천왕대주의 팔을 벤 도흔이 천붕도법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조작하려고 마음먹는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고수의 눈을 피하기 힘든 것이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확인을 하려는 것이다.

잠시 후 가주의 명을 받고 떠났던 무사가 홀로 돌아왔다.

“왜 혼자더냐! 모 호법은 어쩌고!”

“그, 그게… 거처에 계시지 않습니다. 혹시 몰라서 시비에게 물어보니, 오늘 들어오신 적이 없으시다고…….”

악 가주만 아니라 좌중 모두가 들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가 미리 빼돌렸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때 악가의 무인 한 명이 뛰어왔다.

“가, 가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더냐!”

“가모께서… 가모께서!”

그는 가주전을 경비하는 무사였다.

다급한 목소리에 악 가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물론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자결하셨습니다!!”

“뭐, 뭐라고!!”

최악의 상황이었다.

산동무림의 고수들이 들이닥쳐 난리를 피우고 있는 상황에서 가모까지 자결을 했다.

가주는 물론 산동악가의 무사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천왕대주가 권왕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무래도 은공의 말씀처럼 배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주님.

―그렇다고 해도 묵과할 수 없네.

―물론입니다. 허나 은공의 청이셨습니다. 저들의 살길은 열어주었으면 한다고…….

이현성의 존재를 숨기기로 했으나 가주인 권왕에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만 신마릉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천붕도의 팔을 벤 것은 자신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인물이라는 사실까지.

이쯤 되니 권왕도 흥분이 많이 가라앉게 되었다.

“창군. 먼저 귀가의 상(喪)에 대해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네. 허나 신마릉의 일은 산동악가와 연관이 있네. 조사에 협조해주게. 그렇게 해준다면 우리도 더 이상 무례를 저지르지 않겠네.”

“궈, 권왕 어른!”

“아, 아니 어찌 그런 말씀을…….”

“갈(喝)! 산동악가에 대한 혐의를 풀겠다는 말이 아닐세. 창군과 산동악가의 마지막 명예를 지킬 기회를 주려는 것일세! 나 역시 흥분해서 찾아왔으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아네. 그렇지만 상가(喪家)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세나.”

황보세가의 가주이자 십정인 권왕이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느 누가 감히 무시할 수 있겠는가.

산동무림의 명숙들은 분이 가시지 않았으나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산동악가 역시 거부할 명분도 힘도 없었다.

“협조…하겠소. 허나! 오해로 판명된다면 그땐 절대, 좌시하지 않겠소.”

“오해가 아닐세. 책임 역시 지셔야 하네. 창군.”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그 시각. 모처는 발칵 뒤집어졌다.

* * *

“유령살군? 확실한가?”

“내 기감을 속일 수 있는 자가 본천에 몇이나 되겠는가.”

신마릉에서 도주한 그는 산동악가가 아닌 혼세교 비밀총단으로 복귀했다.

일이 틀어진 것은 물론 산동악가의 흔적까지 남았다.

이는 산동악가가 황보세가는 물론 산동무림의 표적이 된다는 뜻이다.

산동악가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했다. 오히려 꼬리를 자를 필요가 있었다.

“유령살군이 유력한 것 같으나 아닐 수도 있네.”

“그게 무슨 말인가. 우사(右師).”

“부천주나 대호법이라면 분명 숨겨둔 한 수가 있을 걸세. 그리고 의외로 석 호법의 살인 인형일지도 모르지.”

좌사 모관형이 현장을 지휘했다면, 우사는 교주를 대신해서 비밀총단을 이끌며 좌사를 지원했다.

교주인 혼세신마는 부천주, 대호법과 함께 혈천 내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자다.

동시에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혼세교만 아니라 혈천 내에도 기반과 지지 세력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직접 혼세교를 이끌 수 없었고, 대계는 좌사와 우사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현무 말인가? 그놈이 그 정도인가?”

“석가장의 막대한 재력으로 만든 살인 인형일세, 가볍게 봐선 안 되지. 그놈 말고도…….”

좌사가 우사와 함께 이번 일을 방해한 자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을 때, 외부로 나갔던 수하가 급히 돌아왔다.

“좌, 좌사 어른! 신녀님께서… 자결하셨습니다.”

“뭐, 뭐라고!!”

산동악가로 보냈던 수하의 보고에 좌사 모관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쳤다.

절대로 원치 않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왜! 그 아이가 왜!!”

“그, 그것이… 궈, 권왕이 직접 산동악가를 습격했습니다. 신녀께선 만약을 대비해서…….”

산동악가를 장악하기 위해서 좌사는 악가 내에 세력을 형성해두었다.

대부분은 혼세교의 존재를 모른다. 요직만 혼세교의 사람이거나 이쪽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좌사는 그들 중 복귀시킬 사람은 복귀시키고, 잠적시킬 자는 잠적시켜서 악가 내에 혼세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수하를 보냈는데 그만 늦어버렸다.

복귀시킬 자 중 한 명인 신녀가 자결을 했다니 말문이 막혀버렸다.

혼세교가 사교집단이지만, 실제로 신을 믿는 교단은 아니었다.

혼세교의 대계를 위해 헌신한 여인에게 내리는 명예직위가 바로 신녀였다.

산동악가를 장악하기 위해서 가모로 투입된 여인 역시 신녀 중 한 명이었다.

그러므로 적의 손에 넘겨줘선 곤란했다.

우드득!

“권왕!!”

“좌사. 진정하게!”

“우사! 지금 진정하게 되었나!! 내 누이가 자결했는데!!”

그렇다. 자결한 신녀는 좌사 모관형의 여동생이었다.

혼세교의 대계와 본인의 야망 때문에 신녀로 만든 여동생이었지만, 죽음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임무를 실패하고 한쪽 팔을 잃었다. 그런데 여동생까지 자결했다.

좌사는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우사는 교주 대신 혼세교를 이끄는 입장으로서 좌사의 돌출행동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황보세가는 그렇다 치고, 권왕은 어찌 상대할 생각이던가! 자넨 본교의 좌사일세!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크아아악!!”

신마릉의 계책만 성공했다면 황보세가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산동악가만으로 황보세가를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혼세교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계획이었다.

자연스럽게 신흥세력으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혈천의 대업은 이제 십 년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음지만 아니라 양지에서도 세력을 넓힐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기에 신마릉이란 강수를 둔 것이다.

이현성, 그의 회귀로 인해 많은 곳에서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로 인해 미래 역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실제로 그의 회귀 전에는 혼세교가 신마릉이 아닌 다른 계책을 사용했고, 당시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마릉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실패하고 말았다.

“권왕이 움직인 이상 산동악가는 물론 산동 전체를 뒤집을 것이다! 꼬리를 자르고 다음 명이 있을 때까지 무기한 잠적하라!”

“존명!”

그간 혼세교가 뿌리를 내린 곳은 산동악가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번 폭풍만 지나면 다시 기회는 있었다.

어차피 이번 일은 산동악가가 혼세교 대신 날벼락을 맞아줄 테니까.

허나 그들은 몰랐다. 이현성의 개입으로 산동무림의 폭풍은 쉽게 멈추지 않을 거란 사실을.

‘네놈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기필코 내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주마!’

모관형은 천명했다.

일을 이렇게 만든 복면인을 기필코 죽이겠다고.

하지만 이현성의 의도대로 혈천의 고수로 오해한 이상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동무림이 발칵 뒤집어지고 있을 때, 북경 문가장은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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