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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58화 (58/314)

58화.

북경을 떠날 당시, 문종학은 자신의 여식이 신세를 진다묘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문교교가 봉황지회에서 무시당했다?

수습하지 못하면 북궁세가의 입장 역시 상당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 저는 괜찮아요.”

“아니오. 문 소저. 내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 정말로 미안하오.”

사천당가의 호법과 일전까지 벌이려던 북궁성운이었다.

그런데 특별해 보이지 않는 어린 소녀에게 쩔쩔매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하북팽가의 총관이 조카인 팽유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소녀가 누구인지 아느냐?

―그게… 내각대학사이신 문종학 대인의 따님이셔요.

“내, 내각대학사?!”

하북팽가의 총관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이 자리에 있는 무림 명숙들은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내각대학사가 언급되었으니 당황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팽 대협. 무슨 말이오?”

“갑자기 내각대학사는 왜……?”

그들의 물음에 하북팽가의 총관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북경 바로 옆 천진에 뿌리를 내린 하북팽가인 만큼, 다른 무림세가보다 황실의 정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황실 실세인 내각대학사의 여식이 자신의 가문에서 무시당했으니, 머리가 하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명숙들의 물음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저기에 있는… 아니, 계신 문 소저께서 내각대학사이신 문종학 대인의 따님이시라고 합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 이런!!”

아무리 관과 무림이 불가침조약을 맺었다고 해도 완전히 별개의 세상은 아니었다.

특히 무림세가의 수뇌급인 그들이 내각대학사의 힘을 모를 리가 없었다.

각 성(省)의 성주만 되어도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아니, 지부(知府)만 되어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물며 내각대학사라니…….

덕분에 갈엽 호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만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고, 내각대학사의 권력을 모르는 당령만은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무, 문 소저. 실례가 많았소. 부디 이 무례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시오.”

“호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호법님께서…….”

“입… 다물어라.”

평소와 다른 갈엽 호법의 완고한 태도에 당령은 당황했다.

호법이란 직위가 높기는 하지만 가주의 손녀이자, 소가주의 여식인 자신에게 함부로 굴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그가 갑자기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너도 빨리 사죄드려라.”

“제가 왜요?! 저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자존심 강한 당령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꺾을 수 없었는지, 갈엽 호법까지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이런 소란이 회장의 담 너머까지 퍼졌는지, 각 가문에서 동행했던 청년들까지 몰려오게 만들었다.

“령아. 갈 호법님. 무슨 일입니까?”

“오, 대공자. 잘 왔소. 빨리…….”

청년들 중에는 사천당가의 대공자인 독룡 당천수도 있었다.

갈엽 호법이 그를 다급하게 불렀다.

자신은 당령을 제어할 수 없지만, 그녀의 오라비인 당천수는 달랐다.

그라면 당령을 다그쳐서 문교교에게 사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청년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도 내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들 수는 없다!!”

사천의 낙룡

“하아… 지난번에는 태규라도 있었지…….”

문교교를 봉황지회의 연회장에 들여보낸 이현성은 입장이 애매해졌다.

진주언가의 경우 문태규와 함께 갔기에 그와 같이 지내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북궁세가와 계속 함께 있을 수도 없었다.

일락방주인 북궁성우의 일도 있기에 불편함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리로 갈까? 아서라. 괜히 귀찮아질 뿐이다.”

현재 하북팽가에 모인 자들은 네 부류로 나뉘었다.

주인공인 여협들이 모인 봉황지회.

그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행한 각 가문의 명숙들, 혹시 모를 여협들과의 인연을 기대한 후기지수들. 마지막으로 그들을 호위하기 위한 병력들.

봉황지회와 명숙들의 연회장에는 당연히 출입할 수 없었다.

나이가 비슷한 후기지수들의 연회장은 출입은 가능하지만 들어가봤자 불편해질 뿐이었다.

“바람이나 쐬자.”

하북팽가의 직계혈족 및 중요한 인사들이 거주하는 내원에는 출입할 수도, 해서도 안 되었기에 외원의 외곽으로 향했다.

하북팽가는 오대세가 중 하나였다.

일전에 갔던 진주언가의 본가도 대단한 컸지만, 이곳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일개 장원수준이 아니었다.

외곽으로 향하니 조용하고 한적했다.

“선…객이 있구나.”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아무도 없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북팽가의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칼이 아닌 검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 소리가 그 소리겠지만 고수(高手), 특히 실전 경험이 많은 노고수들은 소리만으로도 많은 단서를 얻는다.

당연히 허공을 가르는 무기의 형태도 유추가 가능했다.

‘역시 검객이구나. 그런데… 사천당가?’

타인의 수련을 보지 않는 것이 무림의 불문율이었다.

무공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무림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기에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이현성은 몸을 숨겼다. 그리고 선객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립(而立 : 30세)쯤으로 보이는 장한이었다.

복장을 통해서 그가 사천당가 출신임을 알 수 있었다.

‘호위 중 한 사람인가 보구나.’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오대세가에 속하는 거대세가답게 독과 암기 이외에도 많은 절학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천당가인이라 해도 도검류를 익힌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호위라면 대부분 도검류를 익힌다. 그들의 신분상 비전 독공이나 암기술을 전수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군. 재능은 제법 괜찮은 듯싶은데… 검로(劍路)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어. 불완전한 검술을 익혔다는 뜻이겠지.’

사천당가쯤 되면 호위에게 전수하는 무공도 제법 수준이 높다. 저런 불완전한 검술을 전수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현성은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막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신령한 용이 노니니, 마귀들이 두려워한다. 신룡복마(神龍伏魔)!”

“……!!”

조금 전과 달리 어긋남이 없는 깔끔한 검초였다.

그런 장한의 검술을 본 순간 이현성의 몸이 굳어졌다.

그때 검을 거둔 장한의 푸념이 이어졌다.

“…역시 신룡사검(神龍四劍)이 한계인가.”

‘역시 신룡검법이었구나.’

놀랍게도 이현성은 장한이 펼친 검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은 검법뿐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바로 신룡검객 유백?’

신룡검객(神龍劍客) 유백.

회귀 전, 제법 유명한 검객이었다.

게다가 이현성이 상청동에서 지낸 시절 작성한 명부에도 적었던 인재이기도 하였다.

그는 천북운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천의 명가인 신룡유가의 후예였다.

천북운가는 여전히 그 명성을 유지했지만 신룡유가는 다르다.

수십 년 전부터 주춤하더니 십여 년 전에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신룡유가의 유일한 혈족이며, 이제는 사천당가의 일개 호위무사에 불과했다.

무너진 이유는 간단하다.

신룡유가의 자존심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신룡검법이 실전되었기 때문이다.

신룡검법을 복원하기 위해 수십 년간 고련한 결과가 신룡사검이었다. 동시에 한계이기도 했다.

고작 네개의 초식만으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기회이긴 한데…….’

인재가 목마른 이현성이었다.

사천도 아닌 하북에서 그를, 그것도 혼자 있을 때 만났다는 것은 인연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허나 쉽지 않았다.

사천당가의 가주인 독종(毒宗) 당철영은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서 오갈 곳 없는 유백을 거두었다.

물론 그 역시 유백의 재능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허나 아직 그 재능을 완전히 꽃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한 기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현성은 그가 탐났지만 당철영의 은혜를 입은 유백이 자신을 따를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은 그랬다.

‘아마… 독종의 죽음 이후 쫓겨났지?’

독종의 죽음 이후, 새롭게 가주가 된 암군(暗君) 당자성은 어리석게도 제 손으로 원석을 버렸다.

신룡유가가 무너진 이상, 당자성의 입장에서의 유백은 가문의 일개 호위무사였다. 그렇기에 선친(당철영)께서 돌아가신 이상 호의를 계속 베풀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 호의가 다른 하급무사들에게 불만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은 명분일 뿐이다. 사실은 선친의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더 걷어내고 싶을 뿐이었다.

독종 당철영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눌려, 독공 대신 암기술을 주력으로 익힌 당자성다운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늘의 뜻인가?

혼자가 된 뒤 유백은 깨달음을 얻어 유업(遺業)이었던 신룡검법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후 혈천조차 인정한 사천의 고수인 신룡검객이 된다.

‘인연의 고리 하나를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흠흠. 실례합니다. 일부러 보려고 한것은 아니니 오해 마십시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유백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예를 잃지 않았다. 비록 몰락했다고 해도 명문의 후예다웠다.

“팽가의 분은 아닌 듯싶은데…….”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북경에서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사천에서 온 유백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팽가의 혈족들은 체구가 크다.

여인인 도화 팽유화도 여인치고 키가 큰 편이었다

게다가 이현성은 칼이 아닌 검을 쥐고 있었기에 팽가의 혈족은 물론, 팽가의 무인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파 제일의 도가(刀家)인 하북팽가에서 권장법(拳掌法)을 익힌 경우는 있어도 검을 익힌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은 왜…….”

“북적거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걷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저는 수련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요.”

사천당가의 사람이라도 일개 호위무사인 유백이었다.

하북팽가에 수련장을 빌려달라고 청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이현성은 말할까 말까 고심했다.

검객에게 검보다 좋은 화젯거리는 없었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

“훌륭한 검술을 익히고 계시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검로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듯싶었습니다.”

“보셨군요… 안타깝게도…….”

이현성의 말에 유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독하게 수련한 덕분에 이립에 불과한 그가 벌써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복원한 신룡사검으로는 그 이상을 노릴 수 없었다.

신룡사검까지 복원했음에도 가문이 완전히 무너진 이유이기도 하였다.

그를 힐끗 쳐다본 이현성이 갑자기 검을 뽑았다.

유백은 흠칫 놀라며 긴장했다.

하지만 이현성은 그런 그를 무시한 채 검무(劍舞)를 추었다.

딱히 특정 검법을 검무로 추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백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비록 이현성이 특정 검법을 펼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깨달음을 담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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