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4화 (4/314)

4화.

“그래서 말인데… 이 아줌마의 제자가 되지 않을래?”

“아줌마 제자요?”

“이 아줌마가 꽤 세단다. 다신 그런 나쁜 놈들에게 슬픈 일을 당하지 않게 널 강하게 만들어줄게.”

이현영은 6살짜리 아이답지 않게 차가운 표정이었다.

가족을 잃은 이현영은 더 이상 어리기만 한 여아가 아니었다.

“저를 강하게 만들어주실 수 있어요? 얼마나 강해질 수 있나요?”

“누구도 널 핍박할 수 없을 정도로… 네 오빠를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잘 부탁드려요. 아줌마.”

“그럼 날 아줌마가 아니라 사부님이라고 부르렴.”

“예! 사부님!”

그렇게 이현영은 이현성의 안배와 달리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한천마녀(恨天魔女) 화옥령과 말이다.

‘그 아이가 태어났다면 이 아이와 비슷한 나이일 텐데… 네놈. 좋아하지 마라. 이번에는 놓아주지만 두 번은 없다!’

화옥령이 수년 전부터 찾고 있는 자가 있었다.

기필코 제 손으로 베어야 할 원수였다.

원수를 찾기 위해 천하를 뒤졌다.

그 과정에서 여인을 울게 만든 짐승들을 베어냈다.

그 수(數)가 두 자리를 넘자 사람들은 그녀를 한천마녀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녀가 이 산으로 온 것 역시 원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곳을 지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짐승 같은 놈들에게 유린당하려는 어린 소녀를 발견해 검을 뽑았다.

‘현영아. 네가 나처럼 힘이 없어서 눈물 흘리는 일이 없게 해주마. 너는…….’

혈무곡

“…모두 내려라.”

몇날 며칠을 달리던 마차가 멈췄다.

아이들은 다시 마차를 갈아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달리, 더 이상 마차를 탈 이유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혈무곡(血霧谷)이라… 오랜만이군.’

이현성은 이곳 혈무곡이 낯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에 이곳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이곳 혈무곡은 혈살객을 양성하는 훈련소 중 한 곳이다. 정확히는 혈살객 후보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곳을 포함해 또 다른 훈련소에서 살아남은 혈살객 후보들만 모종의 장소로 갈 수 있다. 즉, 수백여 명 중에서 옥석을 가리기 위한 장소인 셈이다.

“여, 여기는 어디죠?”

“너희가 앞으로 5년간 지낼 곳이다. 아, 그리고…….”

짜악!

부교두의 손이 움직였다.

그는 질문한 소년의 뺨을 후려쳤다.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제 뺨을 부여잡았다.

“너희들에게는 질문할 자격이 없다. 오직 대답뿐이다. 이번에는 설명해주기 전이었기에 이 정도로 그치지만 다음에는 목이 날아갈 것이다. 알겠느냐.”

“예…….”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 알겠느냐.”

“예!!”

부교두가 아이들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다수를 통제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일벌백계(一罰百戒)함으로써 다수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다.

단, 아예 죽이면 공포심이 과해져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기에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작은 공포심을 주입한 그는 만족스러워했다.

“아, 헛된 희망을 가지지 말라고 미리 말해두는데. 이 주변은 우리 동료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만에 하나… 그러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우리의 눈을 피했다고 해도 소용없어. 이곳 주변은 운무로 인해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면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 방법을 모르고 운무(雲霧)에 갇히면?”

그가 차가운 아니,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미세한 살기와 함께 말이다.

아이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다신 안으로도,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운무 속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이 혈무곡인 것이지.”

이 주변에는 혈혈운무진(血血雲霧陣)이라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다. 인위적으로 운무를 발생시키는 진법이다.

물론 단순히 운무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혈혈운무진으로 인해 발생한 운무에 갇히면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고수라고 해도 예외는 아닌 만큼 조심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고서 다시 한번 오들오들 떨었다.

“너희는 동관에 속하게 될 것이니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

‘여기까진 그대로구나.’

회귀 전, 자신이 혈무곡에서 수련받을 때 역시 동관이었다.

혈무곡은 동서남북의 사관(四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 서, 남관에 각기 100명의 아이들이 수용된다.

총 300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수련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북관은?

북관에는 혈무곡의 총책임자인 곡주와 아이들을 훈련시킬 교두 및 부교두 등이 생활한다. 그 외에도 혈무곡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 북관에 존재했다.

‘혈살동(血殺洞)에 들어가면 도망칠 방법이 없어. 그러니 5년 안에 준비를 마쳐야 해. 5년 안에…….’

* * *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의숙님!”

“나도 놀랐다. 설마 진짜 월음절맥(月陰絶脈)일 줄이야…….”

한승은 설마하는 마음에 의원을 초빙했다.

정확히는 돌아가신 사부님의 의제로, 무림에선 독의(毒醫)라고 불리는 고수였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듯 독과 의술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명의(名醫) 중 명의인 그라면 믿을 수 있었다.

“설아가 월음절맥일 줄이야. 난 설아의 숙조부로서 자격이 없어… 자격이…….”

“의숙. 우리 설이는 무사하겠지요?”

“발병한 후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발병 전이라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지. 내 독의라는 별호를 걸어도 좋다.”

한승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만약 발병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의숙.”

“으음. 짧으면 5년, 길면 10년간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네. 인형삼왕(人形蔘王)이나 전설의 태양신단(太陽神丹)과 같은 극양의 영약이 있어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절맥일세. 사실상 발병 후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인형삼왕과 태양신단은 현세에 존재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전설적인 영약들이다. 그렇기에 천연(天緣)이 아니라면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귀물이기도 하였다.

한승은 그의 말에 사색이 되었다.

만약 자신이 그 쪽지를 보지 못했다면?

천금과 같은 여식을 잃을 뻔했다.

“그런데 설아가 월음절맥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나조차 설아가 월음절맥이 아니냐는 자네의 말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초기였네.”

“그, 그게…….”

한승은 며칠 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그의 말을 다 들은 독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독의가 한승을 보며 호통을 쳤다.

“그걸 두고 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죄, 죄송합니다… 사부님의 유언이셔서…….”

“아무리 자네 사부 아니, 자네 장인의 유언이라 해도 그렇지! 에잉!”

한승의 사부는 수년 전, 제자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천검비록이란 광세비급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천검비록을 노린 적들과 조우하고 말았다.

무림에서 크게 활동하지 않았을 뿐 고수인 그는 적들을 모두 무찌를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쉽게 무찌른 것은 아닌지 그 역시 극심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가까스로 제자인 한승의 곁으로 돌아온 그는 유언만 남기고 귀천했다.

그 유언은 천검비록을 9성 이상 익히기 전에는 무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승은 제자인 동시에 사위였다.

그가 자신의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면 제자인 한승은 물론 딸까지 위험해질 수 있기에 남긴 유언이었다.

한승은 사부이자 장인의 유언 때문에 위험에 처한 이현영, 현호 남매를 발견하고도 구하지 못한 것이다.

독의의 질책에 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럼 그 아이는 어찌 되었느냐?”

“우선 기혈을 바로 잡고, 급한 불은 껐습니다.”

“뭐하는가! 앞장서게! 은인인 그 아이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 예!”

한승이 독의에게 연락한 것은 딸 한은설이 진짜 월음절맥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현호를 치료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현호가 누워 있는 건넛방으로 향했다.

이현호를 치료하던 독의가 경악을 터뜨렸다.

“헉! 소양지체(小陽之體)라니!”

“소양지체가 뭔가요. 의숙.”

“전설상의 무골인 태양신맥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무골일세. 허허.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독의의 뜬금없는 말에 한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독의가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한승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발병한 후면 몰라도 발병하기 전의 월음절맥이라면 소양지체와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병세가 완화될 수 있네.”

“예에?”

음(陰)과 양(陽)의 조화는 매우 신묘한 것이다.

월음절맥과 소양지체는 서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켜준다.

그러한 월음절맥의 소녀와 소양지체의 소년이 만났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동생을 이곳으로 보낸 이현성조차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우연이지만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곁에서 잘 키워보게. 절대 손해 볼 일이 아니니까.”

“…예.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독의의 말이 없었다 해도 한승은 이현호를 책임질 생각이었다.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그자들은… 그리고 그 쪽지는 도대체…….’

* * *

“헉헉… 헉…….”

아이들은 하나같이 죽을 듯한 표정이었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눈도 풀려갔지만 이를 악물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힘들다고 주저앉았다가 부교두에게 두들겨 맞고 사경을 헤매는 아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헉헉… 형… 헉… 윤성… 형… 헉…… ”

“후우… 왜… 후… 운비야… 후…….”

마차 아니, 회귀 전부터 의형제의 연을 맺었던 초운비 역시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현성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과 달리 힘겹게나마 호흡을 조절하던 이현성이 초운비를 바라보았다.

이미 눈이 반쯤 풀린 초운비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정신… 후… 차려… 운비야. 후우. 거의 다… 후… 왔으니까. 후…….”

이현성은 초운비의 등을 살짝 밀어주며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 작은 배려가 초운비로 하여금 다시 이를 악물게 해주었다.

이각(二刻:30분)은 더 지나서야 부교두가 멈추란 명령을 내렸다.

“약해 빠진 것들… 오후에도 달려야 하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알았나.”

“예.”

“오호? 애새끼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알겠나!”

“예!!”

부교두의 몽둥이를 본 아이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마음을 놓는 순간 저 거대한 몽둥이로 찜질당한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 말이다.

지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번씩 달렸는데 귀신처럼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겨우 쉴 수 있었다.

그렇게 5일쯤 지나자 마보를 포함한 여러 훈련이 추가되었다.

아이들이 혈무곡에 들어온 지 딱 한 달이 되었을 때.

과거의 순둥순둥한 아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독기와 악기로 똘똘 뭉친 소악귀들로 바뀌어져 있었다.

“오늘부터 이걸 외워라.”

부교두가 아이들의 앞에 던진 것은 서책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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