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한 사람이 아니다.
이 사건을 쫓기 시작하고부터 사람들은 범인이 사라진 연구원이자, 센터의 C급 정신계 에스퍼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동안 그 교집합을 두고 용의자를 쫓아 왔다.
그러나 범인을 두 사람이라고 가정하면, 굳이 교집합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사라진 연구원. 그리고 C급 정신계 에스퍼. 내 주위에서 쉽게 떠오르는 사람이 단 두 명 있었다.
공범이 단지 세뇌당한 크리먼이 아니라, 이 습격을 꾸민 사람이 애초에 두 명이라면….
“멈춰요.”
내 옆에서 상황을 모두 지켜보던 센터의 C급 정신계 에스퍼 강지한과.
“네?”
크리먼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가지며 내게 다가왔던 연구원 이안.
옆자리인 규현이 자신에게 한 말인 줄 알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는 지한의 얼굴이 비치는 백미러를 응시했다.
“지한 선배. 멈추라고요.”
지한과 눈이 마주쳤다. 오랜 기간 알아 온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낯설고 건조하게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분명 지한이 내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 오히려 차는 가속도를 붙였다. 불길한 예감에 모골이 송연해지고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전면을 살피자 게이트 폭발로 인한 불길과 연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황폐해진 채로 정적이 감도는 도시는 오히려 게이트가 지나가고 난 후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접촉과 소리에 과민해져 금이 간 아스팔트를 달리는 소음이 귓구멍을 사포로 긁는 것처럼 까칠하게 느껴졌다. 공기 중 수분이 증발한 듯 숨을 죄어 오는 압박감이었다.
이윽고 저 멀리 안개가 걷히고 희미한 인영이 나타났다. 하나인 줄로만 알았던 인영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열이 되고….
수백 명에 달하는 크리먼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선배!”
“사월아.”
지한이 흐릿하게 웃었다. 여전히 일상적이고 편안한 목소리였다. 익숙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지한이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겹쳐지며 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위에 조심해.”
찰나의 순간이었다.
쿵! 콰당, 찌지직. 쾅!
시야가 뒤집히고 고통이 찾아왔다. 온몸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폭발음과 철제가 찌그러지는 소리. 무언가가 할퀴는 듯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음이 뒤섞였다. 둔탁한 소리와 알싸하게 찾아오는 고통에 흐릿했던 시야를 바로 잡았다.
“허, 허….”
“구사월 가이드님. 괜찮으십니까?”
“으…. 괜찮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차 밖이었다. 규현이 나를 품에 안고 차를 탈출해 바닥을 구른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무슨 상황인지 살피자, 우리가 탔던 군용 차량이 통조림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그 위에 폭주한 크리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쿡쿡 쑤시고 있었다.
폭주한 크리먼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마치 며칠은 굶긴 크리먼들에게 먹잇감을 던진 것처럼 수십 마리가 차에 얼기설기 달라붙어 있었다. 우리가 조금 전까지 저 공간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쾅!
“키에엑!”
얼마 안 가 차의 보닛에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 불길에 크리먼 일부가 지글지글 불타올랐다. 크리먼은 바르작거리다가 숨을 거뒀다. 불길에 새빨간 핵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이게 무슨….”
“강지한 에스퍼.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여기에 크리처가 있죠?”
엉망이 된 군용 차량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에 지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재빨리 탈출했는지, 부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크리처가 위에서 덮치기 전 지한은 습격당할 걸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위를 조심하라고 말했다.
평소답지 않게 웃음기가 지워진 지한의 얼굴에서 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크리처라니요.”
그 말을 한 것은 지한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다른 크리먼 무리가 침을 뚝뚝 흘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목줄을 쥐고 있는 것처럼 그르렁거릴뿐,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사이에서 목소리와 크리먼들의 주인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자세히 보십시오. 그런 멍청이들이랑 비교하면 서운합니다. 뭐, 자신의 의지가 없다는 점에선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은발에… 마법 진 같은 문신. 칼로 깎은 듯한 섬세한 굴곡의 이목구비와 바다 냄새….
“이… 안.”
“안녕하세요.”
머리카락 색도 달랐고, 고대 문자를 그린 문신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다는 점도 다르긴 했지만, 얼굴은 분명 이안이었다.
무엇보다 서늘하고 어딘가 소름 돋는 벽안이 똑같았다.
“용케도 알아보시네요. 이 모습은 처음일 텐데.”
그가 지금은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의 뼛속까지 파헤치려 하는 저 눈동자가 더욱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은 센터에서 보던, 의문스럽지만 지적인 이미지의 이안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떤 점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좀 더 이질적이고, 좀 더 집착적이며, 좀 더 광기가 충만해 보였다.
“어떤 게 나아요?”
그가 센터에서 쓰고 다녔던 은 테두리 안경을 주머니에서 꺼내 썼다.
“구사월 가이드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있어 줄게요. 눈이라도 즐거우면 좋잖아요.”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은색 머리카락이 다시 애시 톤이 섞인 갈색으로 변했다. 문신도 말끔하게 지워졌다.
다시 이지적인 에코팀 이안의 모습이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지켜만 보자, 이내 재미가 없는지 다시 안경을 벗었다.
***
유건이 들어간 동굴형 게이트는 미로 형식이었다. 이러한 게이트는 보통 손을 벽에 대고 따라가다 보면 출구가 나오기 마련이다.
아마 보스는 출구를 지나는 방에 있을 것이다. 가는 길목에 트랩이 있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공략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게이트는 항상 비상식적인 변수가 존재한다. 저 멀리 출구가 보였을 때, 갑자기 바닥이 꿀렁이더니 앞이 가로막히고 미로가 변해 버렸다.
알고 보니 시간 내에 출구에 도달하지 않으면 변하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공략에 성공했다.
보스를 잡으니 사방을 가로막던 미로가 눈 녹듯이 허물어졌다. 온종일 뛰어다녀서인지 티셔츠가 땀에 담뿍 젖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 터덜거리며 게이트를 나오는데 누군가 어깨를 치며 아는 체를 했다.
“야. 너 구사월 가이드랑 다시 붙었다며.”
브라보 팀 자연계 A급 에스퍼 김한솔이었다. 그는 얼마 전, 사월이 유건을 잡으려고 현상 수배를 내렸을 때 고자질했던 배신자 녀석이었다.
“말 걸지 마.”
“삐졌냐?”
무시하며 앞만 보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맹렬하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한솔이 공기 중 수분을 냉각시켜 얼음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유건은 주변의 돌덩이를 움직여 막아 냈다.
돌덩이와 얼음 조각은 맞부딪혀 산산이 조각났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초능력이 한솔과 유건에게는 그저 시시껄렁한 장난일 뿐이었다.
“컨트롤 많이 늘었는데?”
“이 정도는 원래 했거든?”
한솔은 유건과 동갑이지만, 센터에 4년 이상 복무한 선배였다. 하지만 다른 팀이기도 하고, 한솔이 먼저 편하게 말을 놓자고 해서 유건과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어차피 네 발로 기어들어 갔다며. 그럼 페어를 취소한 게 내 탓은 아니지.”
한솔은 다소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결과론적으로 그가 한 말이 사실이긴 했다.
그러나 유건이 스스로 사월에게 가기 전에 고자질했으니 배신은 배신이었다. 유건이 눈을 쭉 째서 노려보자, 한솔이 빙글 웃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화해했어? 그럼 2년 뒤에 다시 페어 하는 거야?”
“아니.”
“그럼?”
“제일 가까운 동료로 지내기로 했어.”
“그럼 너희가 그동안 동료가 아니면 뭐였는데.”
한솔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쪽 눈썹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그냥 ‘동료’가 아니라 ‘제일 가까운 동료’라고.”
말을 바로잡아줬지만, 한솔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당최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알파 팀원들이 물었을 때도 이렇게 대답했는데 다들 한솔 같은 반응이었다. ‘동료’와 ‘제일 가까운 동료’의 차이를 모르다니…!
그들이 시큰둥한 반응이어도 유건에게는 값진 타이틀이었다. 싸우고 버티고 고민 끝에 나온 ‘제일 가까운 동료’라는 울타리.
처음엔 유건도 이게 맞나 싶었지만, 점차 이것이 정답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제일 가까운 동료’는 사월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옆에 있을 수 있는 위치였다. 그 안에서는 사월이 뭘 하든 거절하지 않았다.
“지수가 너 삽질 오지게 한다고는 하던데. 꽤 심각하네.”
“뭐? 걔가 뭔가 말했어?”
“삽질한다고만 했어. 지수가 말 안 했어도 A지부 각성자면 너 구사월 가이드한테 삽질하는 거 다 알걸?”
“…….”
유건은 할 말이 없었다.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고. 현재 사월과 사이만 좋으면 된 거다. 주변에서 뭐라든 저들만 행복하면 된 거 아닌가.
얼마 전, 에밀리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거실 테이블에 안주를 늘어놓고 바닥에 앉아서 술을 먹었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화를 듣고 있던 사월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잠기운이 내려앉으려 하는 눈매를 보고 여느 때처럼 홀연히 방으로 들어가 잘 것 같아서 슬쩍 술잔을 건넸다.
“한 입 마셔 볼래?”
“그래! 사월아, 너도 마셔봐. 유건이가 제조해 준 거 신세계야!”
“싫은데….”
“맛만 보고 크리처화 개방해서 해독하면 되지.”
에밀리까지 가세하자 결국 사월은 찝찝하단 표정으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사월은 한 모금 마시더니, 정신을 잃은 듯 엎어졌다.
“사월아. 괜찮아?”
유건은 급하게 사월의 어깨를 흔들며 깨웠다. 축 늘어져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에밀리도 너무 놀라서 애가 숨은 쉬는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살펴봤지만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유건은 사월이 술 한 모금에 취할 줄 정말 몰랐다. 스스로 술이 약한 편이 아니라고 말했고, 사월이 겉보기에도 술이 약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어쩌지…. 어떻게 한 입 먹고 취하지?”
“아마 요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럴 거야.”
“왜? 무슨 일 있어?”
에밀리는 말해 놓고 아차 싶은 표정이었다. 유건은 에밀리의 그런 반응에 뭔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범인을 쫓는데 진전이 없어 힘들어하긴 했지만, 잠도 못 잘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진 않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