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왠지 먼지라기보단 안개처럼 겹겹이 쌓인 느낌이었다. 게이트가 생성된 지 한참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앞이 잘 안 보이지?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안개일 겁니다. 간혹 기체 같은 건 이렇게 밖으로 퍼지기도 하거든요.”
내 의문은 규현의 대답에 풀어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도로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자욱한 안개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깊게 들어갈수록 금이 간 아스팔트와 전선이 엉킨 가로수 따위가 스치듯 지나갔다.
눈앞에 선명하게 들어찼다가 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무언가 툭 튀어나올 것 같아 긴장감을 부추겼다. 계절이 여름인데도 왠지 창백해 보이는 공기에 한기가 느껴졌다.
지수와 다른 가이드들은 현장 가이딩을 자주 가는 편이지만, 나는 처음이기에 이런 현상은 처음으로 봤다. B급 방출 게이트 때도 지하에 있었으니, 지상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도 밖은 이렇게 축축해 보이는 날이었을까.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뭔가 내가 평소에 보던 도시의 모습이 아니라서 창밖에 시선을 뺏기는데, 규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사월 가이드님.”
“네.”
“저 뭐 물어봐도 됩니까?”
“그러세요.”
그는 허락까지 받아놓고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이었다.
“가이드 습격 사건의 범인을 쫓는 이유 말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흘려듣다가 그제야 규현을 바라봤다.
“제가 구사월 가이드님께 캡틴이 알아낸 정보를 공유해서 더욱 위험해진다면 알려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한결 캡틴과 의견이 같습니다. 가이드가 범인을 쫓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이 안 먹힌다면 한결의 어릴 때 사진이나 꺼내서 회유할까 했는데, 규현은 꽤 흔들림 없는 의지를 표했다.
그런 사심을 채우는 조건으로는 정보를 절대 알려 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나직하게 말했다.
“선배한테 떳떳해지고 싶어서요.”
내 말에 지한이 백미러로 우리를 흘깃 바라봤다. 규현에게만 들리게 말하려고 속삭이듯 말한 건데 지한에게도 들렸을지 모른다.
“무슨 뜻입니까? 캡틴께 뭔가 잘못이라도 하셨나요?”
잘못이라…. 그 말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왜 웃으십니까?”
규현은 의중을 알 수 없어 아리송하단 표정이었다. 나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잘못이긴 하죠. 제가 가이드 습격 사건이 일어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멋대로 센터와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식사했으니까요.”
“아…. 그 말씀이셨군요.”
규현은 여전히 미심쩍다는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범인을 쫓는 이유가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 스스로 수습하고 싶다는 건가요?”
다른 변명을 하며 말했기에 규현이 알아들은 바와 진실은 달랐다.
하지만 여기서 실수란 B급 방출 게이트 때 크리처에게 물려 크리먼이 된 일이고, 범인을 쫓는 궁극적인 목적은 항생제가 맞으니 스스로 실수를 수습한다는 것도 내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내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규현은 전보다 더욱 미간에 골이 패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각에 잠기면 입술이 삐죽 나오는 습관이 있는 건지, 평소보다 어려 보이는 표정이었다.
“근데… 구사월 가이드가 나가서 식사를 한 건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고민 끝에 나온 질문은 조금 생뚱맞게 느껴졌다. 가이드 습격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센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식사한 건 명백한 내 실수가 맞았다.
“그러니까 잘못은 범인이 한 것이지, 구사월 가이드가 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성규현 에스퍼. 지금 자신이 무슨 얘기 하고 있는지 알고 계세요?”
“그러니까 전….”
규현은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제 생각을 정리해 보다가 이내 좀처럼 안 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좀 정리가 안 되는데, 사건의 책임이 가이드님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범인은 이미 S급 가이드인 구사월 가이드님을 습격할 계획을 세워 놨었어요. 그날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습격받으셨겠죠.”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S급 가이드는 나 하나뿐이니, 내가 조심했더라도 언젠가는 습격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센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 나가지 않는 건 사고를 조금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다.
지금 또 다른 습격 위험 때문에 기숙사에서 지내고, 경호를 둘이나 대동하고 다니는 것도 범인을 잡지 못하는 한 최소한의 조치밖에 되지 못 한다.
이 사고의 책임은 가이드보다 가이드를 습격한 범인에게 있다.
더불어 나는 왠지 규현의 말이 B급 게이트 사고 때 내가 크리먼이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나를 문 크리처 탓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그날 일에 대해 책임감은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말이라도 고마웠다. 현실은 객관적인 잘잘못보다 크리먼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크리먼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지만….
동등한 인격이었다면 크리먼도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죽기 전까지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아니, 죽어서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범인을 쫓지 않으시는 거지요?”
“아니요. 잡을 건데요.”
“…….”
규현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여전히 의견을 관철하는 나를 보고,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캡틴을 위하지 않으시나요?”
여기서 선배 얘기가 왜 나오지?
“한결 캡틴이 크리먼과 관련된 임무에 예민한 거 아시지 않습니까?”
한결의 친모가 크리먼에게 당했다는 것은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백씨 가문의 사용인들을 통해 정보가 새 나갔는지, 그의 팬들은 알음알음 알고 있었다.
나는 당사자에게 들은 것이지만, 규현은 한결의 오랜 팬이라서 백씨 가문의 비극을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알고 있어서 오히려 대화가 편했다.
“그러니까 빠른 시일 내에 잡아야죠. 주변 사람들이 저 때문에 불안감 느끼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왠지 결연한 표정에 나는 규현을 유심이 지켜봤다.
“구사월 가이드님께 처음 정보를 공유하잔 제안을 받았을 때 생각했습니다. 제 성과를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범인을 잡아서 캡틴의 불안감을 덜어드리고 싶다고요.”
“…….”
“크리먼에 대한 캡틴의 트라우마를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제까짓 게 관여해도 되는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결이 규현을 아무리 신임한대도 이런 개인적인 문제는 잘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결을 위하는 모습은 어딘지 뭉클하게 느껴졌다.
규현은 한결을 단순 존경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한결을 좋아하고 아꼈다.
“뭔가 캡틴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볼까지 붉히는 것이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캡틴이 알아낸 게 뭔가요?”
그러니까 규현의 말은 한결 대신 범인을 잡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유야 어쨌건 나와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곧바로 정보에 대해 묻자 규현은 이걸 말해도 되나 아직도 고민되는 건지 입술에 마른침을 발랐다. 이윽고 무거운 입술을 열었다.
“캡틴에게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당연하죠.”
나는 속으로 승기를 거머쥔 듯 기쁨이 차올랐다.
“아쿠아 플래닛 때의 일입니다. 범인을 목격한 목격자가 있습니다.”
아쿠아 플래닛? 얼마 전 한결과 마린 쇼를 보러 방문한 아쿠아리움이었다. 그날 갑작스럽게 마린이 다른 범고래를 공격하는 사고가 있었다. 한결은 그곳에 남아서 오스카 팀을 도와 사건을 조사했다.
가이딩 습격 사건과 연관 지어 생각하더니, 결국 그 장소에서 증거를 잡은 것 같았다.
“누구죠? 범인의 얼굴을 본 겁니까?”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얼굴만 봤다면 이건 잡은 거나 다름없었다.
“네 살짜리 아이가 노란 눈동자를 봤다고 했습니다. 검은 바탕에 노란 눈동자.”
명백한 크리먼이라는 증거였다. 크리처화를 개방한 크리먼의 맹수 같은 눈동자.
“그럼….”
“지국현 에스퍼에게 목격자의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넘겼습니다. 일반인의 기억을 보는 건 윤리적 문제가 복잡해서 서류를 작성하고 절차를 거치느라 시일이 좀 걸렸고요.”
“그럼 기억은 언제 볼 수 있는 겁니까?”
“적어도 내일모레에는 결과가 나올 겁니다. 지국현 에스퍼는 세뇌에 3일 정도가 걸린다고 하더군요.”
이건 범인의 꼬리를 문 게 아니라, 머리를 문 격이었다. 지국현이 기억을 읽고 센터 전원 각성자의 프로필을 확인하면 곧바로 잡을 수 있었다.
크리처화는 눈동자와 손톱, 혈색이 변할 뿐 외형이 변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규현을 돌아봤다.
“범인의 옆에 다른 사람이 또 있었다고 하더군요.”
“예?”
“범인은 공범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의 얼굴은 아이가 못 봤다고 합니다.”
공범? 나는 예상치 못한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범인이 정신계이니 세뇌를 이용해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국현의 친척 동생을 습격했을 때도, 다른 크리먼들이 길을 막아서 범인을 더 이상 쫓지 못했다고 했다.
범행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공범이 맞지만, 세뇌당했으니 범인의 부하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저 의지가 없는 부품일 것이다.
“몽타주는 완성했나요?”
“네 살짜리 아이라서… 참고할 게 못 됐습니다. 그래도 진술한 걸 말해 드리자면, 범인의 모습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발에 왕자님 같다고 말하더군요.”
“…….”
그러다 돌연 내가 뭔가 빠뜨리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중요한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팔뚝에 그리고 목 주변에 마법 진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체 뭐지? 아주 중요한 것 같은데.
사건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범인의 뒤를 캐면서 알아 온 정보들이 이리저리 머릿속에 흩어졌다.
침착하게 하나하나 퍼즐을 끼워 넣듯 정리를 시작했다.
사라진 연구원, 항생제, 정신계 에스퍼, C등급, 센터 각성자, 즉시 세뇌가 가능한 에스퍼인 크리먼, 공범… 두 사람.
“그리고 바다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순간 머리에 전구가 켜진 것처럼 번뜩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