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31)

“이거 진단원에서 보내 준 건강기록부랑 파장 관리표인데, 너 파장 그래프 왜 이래?”

“음….”

유건의 파장 그래프는 들쑥날쑥 파도를 쳤다. 그가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걸 고려해도 과했다. 이렇게 형편없는 그래프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나랑 근래 가이딩 계속했잖아. 근데 파장량이 왜 이래? 31%?”

파장의 흐름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가이딩을 해도 말짱 도루묵이었다. 에스퍼가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건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분위기로 봐선 자기 몸 상태를 몰랐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너 파장 안정제 안 먹어?”

“처음엔 먹었는데, 그거 먹으니까 머리가 더 아픈 것 같아서.”

“잠은.”

“수면제 먹고 자지. 그거 먹어도 중간에 서너 번은 깨지만.”

“…….”

“그래도 요즘은 코피는 안나.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거 아닐까?”

점점 심각해지는 내 표정을 보며 유건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지만 나는 좀처럼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유건이 요새 코피가 안 나고 두통이 생긴 건 단지 파장이 응축한 부위가 심장에서 뇌로 바뀌었기 때문이고,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지금까지 방치된 몸은 다른 방식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나는 태평한 유건을 보며 속이 답답해졌다.

“왜 그렇게 심각해?”

“시한폭탄을 맡게 된 기분이야.”

“나 괜찮다니까?”

“너 하나도 안 괜찮아.”

파장량 31%는 불안정기였다. 20% 아래로 내려가면 폭주로 간주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시키는 일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유건은 어딘가 느슨한 구석이 있었다. 아니, 이건 유건뿐 아니라 센터 각성자들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에스퍼들은 대개 이명, 두통, 불면증 같은 증상들을 달고 산다. 그저 예민해진 감각 때문에 아플 수도 있지만, 파장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대부분 파장이 뭉치거나 꼬인 것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가이드가 이 부분을 잡아줘야 하는데, 솔직히 일회성이 될지 다음에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에스퍼의 건강관리를 꼼꼼히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진단원에서 체크하는 건 파장량 뿐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들은 파장량만 채우면 할당량은 채우는 것이니 에스퍼가 아프던 말던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서 더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에스퍼가 그 모든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은 쓰러지고 나서야 심각한 건강 상태를 알게 되곤 했다.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신체를 믿고 자신만만해하다가 큰코다치는 격이었다.

‘하나같이 단순하고 멍청하지.’

그때 진단원에서 온 메일 가장 마지막 문단이 눈에 들어왔다.

구사월 가이드님, 백유건 에스퍼님과 페어를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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