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31)

유건은 내 얼굴을 홱 바라보며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네 냄새 맡고 자극받아서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최대한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는 유건만 보이게 실눈을 떴다. 크리처화가 진행돼 흰자가 검은자로 변하고 눈동자가 노랗게 변했을 것이다.

유건이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표정이 더욱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거 한 입만 먹으면 바로 가라앉거든? 손가락 하나만 줘 봐.”

내가 스스로 크리처화를 개방한 것이 아니면, 흡혈을 해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그의 손가락을 입에 넣으려고 했다. 피만 조금 빨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건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곧바로 나를 끌어안고 드러누웠다.

“뭐, 뭐 하는 거야?”

“이러면서 무슨 5년 동안 안 들켰다고.”

유건이 이죽거리며 나무랐다. 그리고 자기 티셔츠를 가슴 위까지 들어 올렸다. 하얀 피부와 탄탄하고 굴곡진 근육이 여실히 드러났다.

밝은 조명 아래 비쳐 다소 선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다른 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그의 살결은 어느 부위든 한입 베어 물면 과즙이 터질 것처럼 달콤해 보였다.

“너….”

“손가락 상처나면 티 나니까 안쪽 살 물라고.”

유건은 갑작스러운 나의 황당한 요구에도 선뜻 몸을 내줬다.

‘손가락을 쥐고 있으면 숨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왠지 유건이 내가 손가락만 물겠다는 말을 못 믿는 것 같았다. 그러니 옷으로 확실히 가릴 수 있는 부위를 물라고 하지.

자극으로 인해 강제로 크리처화가 개방되는 걸 눈앞에서 보았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일단 맛을 보기 시작하면 더 이성을 잃을 테니까

염치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보는 것만으로 침이 잔뜩 고였다. 내겐 어떤 순간보다도 군침이 도는 상황이었다.

“안 먹어?”

나는 애써 흥분감을 억누르며 유건이 끌어 올린 티셔츠를 다시 반쯤 가렸다. 유건이 의아하단 눈을 했다.

“그럴 리가.”

잘 차려진 밥상을 뒤집어엎는 멍청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필요 이상의 노출이 부담스러웠을 뿐. 유건의 허리를 움켜쥐며 고개를 내렸다.

“조금만 참아.”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을 파고들었다.

“윽!”

그대로 물어뜯고 싶었지만, 꾹 참아내며 흡입하듯 빨아들였다. 달콤하고 짭짤한 맛이 입 안에서 퍼졌다.

더 욕심내서 마시자 온몸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강렬하고 황홀한 맛이 전신에 퍼졌다. 혈류의 흐름이 빨라지며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빠르게 뛰었다.

온몸이 그의 피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이미 엎질러진 김에 잘근잘근 씹어 상처를 벌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입을 움직였다. 쭙, 쭈웁 소릴 내며 차근차근 갈증을 채웠다.

“…구사월.”

“아, 미안. 근데 가만히 좀 있어 봐.”

한입 맛보니 주체가 안 됐다. 안 그래도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이 소멸해 가는 기분이었다.

유건의 몸이 어느새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멋대로 자극당한 몸은 습한 파장으로 주위를 에우고 있었지만, 가이딩으로 밀어내며 쭉 빨아 마셨다.

“…제발 살살. 하으….”

내가 짓씹을 때마다 유건이 바르작거렸다. 어느 순간 기억이 뚝뚝 끊겼다. 나는 그야말로 개처럼 게걸스럽게 유건의 피를 핥고 있었고, 유건은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도 너무 아플 때면 잘게 움켜쥐었다.

“읏, 구… 나… 아.”

나중에는 뭐라고 말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건의 손이 내 허리를 타고 내려오다가, 블라우스 끝을 손가락이 하얗게 세도록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몸에서 뜨끈한 열기가 전해져왔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옷자락이 귀찮아서 가슴까지 끌어 올리자 거세게 박동하는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내가 고개를 틀어 각도를 달리하자 근육이 꿈틀거렸다. 건강하고 생동감 있는 움직임이었다.

“진짜 미치겠네….”

유건이 거칠게 호흡했다. 이윽고 내가 정신을 차린 건 스피커에서 매칭률 테스트가 종료되었다는 안내 음성이 들린 때였다.

“2단계 완료했습니다. 매칭률 테스트 종료하겠습니다.”

입술을 손등으로 훑으며 상체를 세우자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유건이 보였다. 옷은 꾸깃꾸깃해져 엉망이었고, 허리뿐 아니라 배와 늑골에 잇자국과 멍, 울혈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손바닥을 펼쳐 보니 손톱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래도 크리처화는 진작에 가라앉았고, 그저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음…. 미안.”

유건의 몸 전체가 빨갰다. 내 사과에도 한동안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그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생전 느껴 보지 못한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반성은커녕 더 마시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거 어쩌지. 너무 맛있는데?’

***

유건과의 첫 가이딩이자, 매칭률 테스트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처음엔 순조로운 듯 보였으나 결국 사고가 났고, 끝마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안에서 뭐 한 거야? 유건이 엄청나게 낑낑대던데.”

진단원 매칭 관리사 지안은 사월과도 잘 알던 사이었다. 매칭 관리사는 각성자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아서 대부분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제가 무거웠나 보죠.”

“사월이가 올라탄 거야?”

“…….”

“와. 요즘 애들 역시 대담하고 건강해. 부럽다, 부러워.”

지안은 제멋대로 상상하곤 휘파람을 불었다.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아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침 유건이 샤워를 마치고 들어왔다.

“뭘 또 씻어.”

“내가 너 때문에 진짜….”

유건은 억울하다는 듯 눈을 흘겼다. 하지만 곧바로 시선을 거두곤 묵은 숨을 내쉬었다.

“애들아. 매칭률 나온 거 볼래? 그래프 완전 웃기는데.”

지안은 커다란 스크린에 우리의 매칭률 그래프를 띄웠다. 시간 순서대로 정렬돼 있었다.

“너희 원래 처음에 89%였잖아. 근데 1단계 때 보니까 한 달 사이에 79%로 뚝 떨어졌더라고. 그동안 사이가 많이 안 좋았니?”

“…….”

“…….”

나와 유건은 둘 다 말을 아꼈다. 거짓말로도 이건 좋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10%나 떨어지다니. 저 녀석도 내가 꽤 싫었었나 보다.

“페어를 할 때 2단계까지 매칭률 검사를 하긴 해도, 보통 정확도 때문에 하는 거지 1단계랑 별로 차이가 안 나거든? 근데 너희 거 봐 봐.”

스크린에 슬라이드로 다음 페이지가 넘어갔다. 그래프는 시작과 동시에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요동치다가 어느 순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2단계 가이딩 중에 5%나 올랐어. 단순 파장량이 아니라 매칭률이 말이야.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네. 너희도 처음 보지. 응? 안 그래?”

지안은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와 다른 연구원들에게 요란을 떨었다. 나는 그 그래프를 한동안 주시했다.

신기함과 동시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유건 또한 스크린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눈에 힘을 주고 꽉 다문 입술. 왠지 비장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매칭률 기록부를 받아서 알파 팀 사무실로 이동했다. 내가 가는 동안 유건에게 몇 마디 건네긴 했지만, 그는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나를 경계했다.

“내가 무서워?”

“아니? …어.”

유건은 처음에 부정하다가 곧바로 시인했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이 샜다.

“지금이라도 페어 하기 싫으면 말해. 나 때문에 억지로 하지 말라고. 너한테 들키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잘 살았어.”

“퍽이나. 네가 씹은 데 다시 볼래?”

유건이 어이없어하며 자신의 배를 훌렁 까서 보여 줬다. 하지만 피만 빨아서인지 이미 생채기는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

“재생력 좋네.”

내 발언에 유건이 할 말을 잃었다.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다음에는 다른 데로 먹을까?”

“내가 어쩌다 이런 거한테 홀려선….”

유건이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그는 아직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팀원들이 왜 놀리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유건은 놀리는 맛이 있는 사람이었다. 반응이 크진 않지만, 곧이곧대로 드러나는 게 재밌었다.

“페어 무를까?”

여기서 무섭다고 도망친다면 나로선 가장 좋은 일이었다.

“너 너무 맛있었어. 자기 전에 또 생각날 것 같아.”

그래서 일부러 더 진저리 칠 만한 말을 쏟아 내자 유건의 안색이 점점 파리하게 질렸다.

“아니, 아니야…. 페어 할 거야.”

유건은 내가 그런 말을 했는데도 기어코 페어를 할 거라고 했다. 약간 멍한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조금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페어를 꼭 해야겠다는 집념이 보였다.

‘얘는 대체 왜 이렇게 페어에 집착하는 걸까.’

처음엔 가이딩도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크리먼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한결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테니까.

그런데 매칭률 테스트 중 유건이 한 말이 걸렸다.

“그렇잖아. 에스퍼는 가이드에게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 이론으로 배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 못 했는데 알 것 같기도 하고.”

유건 말대로 에스퍼가 가이드에게 맹목적이라면, 단지 내가 크리먼인 걸 숨겨 주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매칭률이 떨어질 정도로 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으면서.’

유건은 알파 팀 사무실에 도착하자 한결에게 직접 페어 요청서에 승인받았다. 내가 유건에게 요청서를 제출하러 행정과에 같이 갈 거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혼자 다녀왔다.

“유건. 사월이랑 페어 하니까 좋아?”

“결국 하네. 의지의 에스퍼다. 축하한다, 유건아.”

그의 곁에 팀원들이 흥미로운 눈길로 너도나도 말을 걸었다. 유건은 아직도 창백한 낯으로 조그맣게 대답했다.

“네… 네. 좋아요…. 진짜 좋아요.”

그건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좋아야 한다고 홀로 주문을 거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투였다.

***

유건과 페어를 한 이후로 나의 하루 업무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유건은 이전에 말했던 대로 내 앞으로 온 가이딩 요청 건을 전부 반려시켰다.

이제 더 이상 여러 명의 에스퍼와 가이딩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가이딩 크리스털 또한 유건 것만 충전해 두면 됐다.

이처럼 가이드 또한 한 에스퍼만 돌보면 되니 페어가 가이드에게도 이득일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이드에게 페어는 오로지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며칠간 유건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의 생활 패턴을 파악했다. 게이트나 임무가 따로 없을 땐 훈련소나 캡슐, 이번 가이드 습격 사건 임무 말고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거기까진 좋았지만 나는 진단원에 요청한 문서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유건. 이리 와 봐.”

“왜?”

유건이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는 원래 나와 한참은 떨어진 자리였는데 내 바로 옆자리로 이동했다. 굳이 옆자리 팀원이 페어와 나란히 앉으라며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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