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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248화 (248/251)

# 248

248화 얼굴이 폈네

기억하기로 아주 오래전일 거다.

IMF 때였는데, 당시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다만 당시에는 잠시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책임졌다고 알고 있었다. 나중에 회사 다니면서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선택한 게 그래서인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랑 간판도 없는 백 원 오뎅집에 왔을 때는 초등학생이었다.

택시 기본요금이 1,300원 하던 시절. 이때 짜장면 한 그릇이 2,500원 전후였고, 동네 식당의 정식과 찌개 백반이 3,000원이었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2,000원대 식사로 한 끼를 해결했었다. 그만큼 어려웠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위기감이 나라를 덮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택시 기사들에게 저렴한 식사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무엇보다, 영업이 잘되는 날도 있고 못 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싸게 한 끼를 때워야 했는데, 백 원 오뎅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름 그대로 오뎅도 물떡도 여기는 전부 백 원이었다.

밀가루를 많이 섞은 싸구려였지만 신기하게도 맛은 좋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아버지가 일러주길, 그 오뎅값도 아끼려고 국물로 배 채우는 기사들이 많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게 안타까워 가격이 저렴한 무를 엄청 많이 넣었고, 따로 건져서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국물이 맛있어진 게 그래서란다.

덕분에 싸구려 오뎅에도 그 맛이 배어서 먹을 만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할머니는 슈퍼를 오가는 기사들을 위해 오뎅을 저렴하게 팔았다. 배고프면 오뎅 국물을 머금은 무를 몇 개씩 먹게 했고, 대부분 오백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단다.

한마디로 벌기 위한 장사가 아니었다.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뒤늦게 기억이 났다.

“할머니 아들도 택시 기사였대. 그래서 안 남아도 계속 장사하는 거라더라.”

두 개 오십 원 하던 게 20년이 지나서 한 개 백 원까지 올랐다. 버스 종점이 바뀌고, 택시 차고지가 이동했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다.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백 원이라는 가격을 고집 부렸다고 했었다.

“어쩌면…….”

지성분식이 망하기 직전에 새로운 아이템으로 ‘어묵 국밥’을 떠올린 건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단돈 3,000원짜리 국밥.

얼큰한 오뎅 국물에 짭쪼롬한 무, 그 아래 작은 밥 한 덩이.

그게 망해가던 지성분식을 살렸다. 거의 떨어져 나갔던 단골들을 다시 불러들였고 재기의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장사가 일정 궤도에 오른 뒤, 어묵 국밥을 정리하고 말았다. 손이 많이 가는 것에 비해 마진이 적어서였다.

어쨌든, 백 원 오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진짜 우연이었다.

서면 장사를 마치고, 직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파이팅을 다졌다. 그런 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다가 우연히 말이 나왔는데 나이 지긋하신 기사님이 알고 계셨던 것이다.

덕분에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할머니 장례식 때, 정말 많은 택시 기사님들이 찾았다고 했다.

사상의 장례식장 일대가 주차된 택시로 마비가 될 정도였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울컥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랬던 거다.

그날 집에 들어와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주혁 형이 내준 숙제에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장사는 안 되지, 매달 돈은 빠져나가지.

이대로라면 진짜 망할 것 같았다.

지난 5년간 밤잠 줄이고 피땀 흘려가며 일으킨 가게들이 문을 닫는 악몽도 수십 차례 꾸었다. 이모들 식당이 철거된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한마디로 돌파구가 안 보이는 상황.

물론, 주혁 형이 돈을 빌려준다고도 했고, 대용 삼촌이 투자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버텨보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그동안 모았던 돈을 털고, 뒤늦게 인성식품이 수금한 돈을 전부 집어넣었다.

또, 사총사 형들도 지금까지 모아놨던 돈을 내놓았다. 회사가 사는 게 우선이라고 이 고비만 버티자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바닥이 보이고 있어 속이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을 흔드는 말이 있었다.

너는 장사를 왜 하니?

그 고민이 며칠 내내 머리를 복잡하게 했는데, 그러다 우연히 천 원 식당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부산에도 천 원 백반이 있었다. 기운차림 식당이라고, 정부 지원이 아닌 순수 기부와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끼에 단돈 천 원이었다.

나오는 건 김치와 두어 가지 나물, 시락국, 된장국에 쌀밥이 전부였다.

하지만 무료 급식소와 달리 당당하게 천 원을 내고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이 부산이었는데, 현재는 전국 각지에 10개 이상의 식당이 문을 열고 있단다.

솔직히 음식 장사해 본 입장에서 말하면, 천 원이란 가격에 한 끼를 내놓는 건 불가능했다. 한 사람이 종일 일해도 인건비조차 남지 않았고, 누군가의 기부가 없으면 재료조차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벌써 칠여 년이나 운영되고 있었고 조금씩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확실히 세상은 따뜻했고, 좋은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그렇게 기운차림 봉사단에 대해 알아보다가, 의외의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천 원에 백반을 팔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3년 전 암 선고를 받고 문을 닫았다가 다시 재기했는데, 끝내 병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주혁이 형이 말한 그 천 원 식당이 여기 같았다.

봉사단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식당이 원조처럼 느껴졌던 거다.

강형우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백 원 오뎅집은 없어졌고, 천 원 백반집도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왜 그렇게 장사하시냐고 물어볼 사람은 이미 없었지만, 그래도 꼭 한 번 들러야 할 것 같았었다.

그게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식당 문을 열었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와 다르게,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가게 안이 꽉 차 있어서 아무래도 합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강형우가 엉거주춤 서 있는데, 주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오셨어요?”

“예.”

“그럼 저쪽에 앉으세요.”

가리키는 자리에는 이미 두 분의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김치, 무생채, 콩나물. 여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락국에 밥 한공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밝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곤조곤 대화를 하고 계셨는데,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강형우는 인터넷에 본 대로, 천 원  한 장을 통에 넣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시락국에 밥을 조금씩 말았다. 거기에 나물 반찬을 더해서 먹는데, 간도 적당했고 이상하게 쉽게 넘어갔다.

강형우는 말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리고 조용히 가게를 나섰다.

갑자기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알려지기로 돌아가신 할머니 따님이 힘들게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조용할 때 이런저런 것들을 묻고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건, 애써 억눌렀던 아버지와의 기억이 불쑥 튀어나와서였다.

강형우는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천 원 백반은… 분명 먹어봤었다.

맛이 아닌 그 의미를.

***

“사장님, 이쪽은 다 됐습니다. 확인 한 번 해보시죠?”

설비업자의 말에 강형우는 서둘러 움직였다.

처음 주문한 것과는 달랐는데, 그건 직원들 의견을 참고한 거였다.

하지만 직접 손을 씻어보니 이게 맞는 것 같았다. 높이도 적당했고, 눈에 띄어서 접근성도 좋았던 것이다.

맞다.

강형우는 지금 가게 입구 한쪽에 세면대를 놓고 있었다.

제일 먼저 지성분식 2호점에 설치했고, 그다음은 3호점이었다. 이어서 화끈한 형제들 본점 공사까지 진행했는데 그게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결과는 운명에 따른다는 말이었다.

사실 그동안 안일했다 싶었다.

메르스가 터지면서 우왕좌왕했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나답지 않게 행동했던 것이다.

또, 통장 잔고가 쪼들리면서 점점 더 돈을 아끼게 되었다. 돈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노동력으로 대처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생겼던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과감하게 나가기로 했다.

일단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

메르스. 일명 중동 호흡기 증후군은 주로 손을 통한 감염이 주요 경로였다.

해서 손 씻기를 생활화하고 마스크를 써서 타인의 기침을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강형우는 관련 포스터를 만들어 적극 홍보했고, 가게 입구마다 세면대를 설치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주방 공간도 완전 오픈해 버렸다.

또, 구조상 할 수 없는 가게의 경우, 고화질 CCTV를 달았다. 그걸 홀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게 커다란 TV를 달아 적극 알린 것이다.

우리 가게는 이렇게 청결을 중시하고 있다.

못 믿겠으면 주방 견학도 가능하다.

또, 그것도 부족하다 싶어서 주방 직원들까지 완전 무장을 시켰다.

조리모, 입 가리개, 앞치마에 위생 장갑 착용은 필수였다. 주방 들어서면 무조건 손을 씻게 했고 자비를 들여 신발까지 맞추었던 것이다.

홀직원 역시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게 했고, 일주일에 두 번씩 수거해 인성식품에서 깨끗하게 세탁을 했다.

그렇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다 보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약속을 했다.

지성분식과 화끈한 형제들이 정상 궤도에 오르는 날, 막대한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지금껏 순수익의 일부를 나누어 주던 것의 비율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지금 강형우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오로지 가게를 살리는 것!

그게 최우선이었다.

***

“여행 갔다 왔다더니 사람 얼굴이 폈네.”

“다, 장사 잘돼서 그런 거죠.”

“짜식, 이제 좀 깨달았구나.”

주혁 형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강형우는 이전과 다르게 망설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남자끼리 왜 이래요, 하면서 밀쳐냈겠지만, 오늘은 와락 끌어안은 것이다.

오히려 당황한 건 주혁 형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지 이내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가게 많이 바뀌었다? 확실히 달라졌는데?”

“예? 언제 왔다 간 적 있어요?”

강형우가 기억하기로, 서면점을 들린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냥 겸사겸사 몇 번 지나가다 봤지. 그때마다 네가 똥 싸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 그냥 모른 체했어.”

“헐. 그래도 그렇지.”

“사장 얼굴이 썩어가는데 쉽게 들어와지겠니?”

주혁 형은 그렇게 말한 뒤, 주변을 천천히 돌아봤다.

지나칠 정도의 노력 때문일까?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매출이 회복되고 있었다.

물론 일등공신은 냉라면이었다. 여기에 사골탕면과 새우탕면이 입소문을 탔고, 하와이안 돈가스가 인기를 끌면서 손님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김밥 포장도 두 배나 많아졌다.

덕분에 화끈한 형제들은 오랜만에 북적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2층은 안 해?”

“다음 주부터 오픈하려고요.”

강형우는 씨익 웃으며 주방 안쪽의 인정둥이를 쳐다봤다.

이 아이디어는 강정우가 낸 거였다.

어차피 손님들이 다 차지 않으니 당분간 2층은 잠가두자고 했다. 1층이 붐비면 그것만으로 홍보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면서 그렇게 가자는 것이다.

사실 1층에만 해도 테이블이 거의 스물이었고, 남녀 화장실도 분리되어 있어서 문제는 없다 싶었다.

해서 그 의견을 받아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심때 손님들이 몰리면서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그걸 본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날부터 인터넷에 글이 여러 개 올라오기 시작했다.

블로그 검색을 하면, 두 페이지를 못 채우던 것이 어느 순간 다섯 페이지가 넘어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열 페이지를 채우면서, 소위 말하는 핫한 가게가 된 거다.

“머리 좀 썼네. 하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 내가 그래서 희망국수는 크게 안 하잖아.”

주혁 형은 그렇게 말한 뒤, 좀 더 안쪽을 살폈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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