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245화 지금이 지옥인 거 같지
메르스(MERS).
일명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었다.
2015년 5월, 국내에 첫 환자가 발생해 11월 종료 선언이 있기까지 무려 7개월이나 전염되었다.
이 병이 무서운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 치사율이 무려 30%에 달한다고 했다.
여기에 정부 발표와 대처가 늦어져 많은 혼란을 부추겼다.
2015년 11월 최종 결과.
감염자 186명.
사망자 38명.
하지만 그 여파로 피해를 본 외식 자영업자의 수는 집계가 불가능했다. 그냥 직간접적으로 수백만 명 이상이 큰 손해를 본 걸로 짐작할 뿐이었다.
그 중심에 강형우가 있었다.
***
“하, 하하하.”
강형우는 며칠 내내 실소를 흘렸다.
화끈한 형제들 서면점은 오픈 날부터 대박이었다. 화요일 점심 즈음에 시작했는데, 손님들도 많이 몰렸고 일부 음식의 경우 조기 마감됐던 것이다.
약간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천여만 원의 매출 때문에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메르스 환자가 생겼음을 인정했다.
이후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외식하는 사람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들어 버렸다. 절반 정도가 아니라, 반의 반, 혹은 그 이하 수준까지 떨어진 거다.
그게 딱 일주일 만에 생긴 변화였다.
그사이 인터넷으로 정체불명의 소문들이 잇달아 퍼지고 있었다.
중동 호흡기 증후군, 즉 메르스는 감염자와 가까운 접촉을 하기만 해도 옮을 수 있다.
타액을 통해, 혹은 손잡는 정도의 신체 접촉만으로도 전염이 된다.
마지막으로, 심지어 같은 공간에서 숨 쉬기만 해도 병에 걸릴 수 있다.
이런 비과학적인 헛소문이 퍼진 이유는, 호흡기 증후군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이걸 오해한 덕에 무시무시한 공포가 급속도로 전파된 것이다.
그 외에도 인터넷에 많은 글들이 올라왔는데 요약하면 이러했다.
일단 바로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다.
미리 예방 접종도 불가능하다.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을 받으면, 바로 격리 보호된다더라. 그건 감옥에 갇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픈 증상이 있는 사람이 걸리면, 셋 중 하나는 무조건 죽는다.
사람 많이 몰리는 곳에 가면 반드시 걸린다.
이런 소문들이 퍼지면서, 아예 사람들이 외출을 거의 피하게 되었다. 목숨 걸고 나가느니 집에서 음식 해먹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아이들 있는 집은 더했다.
면역력이 약하니 걸리기만 해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에서였다.
어쨌든 정부는 제대로 된 발표를 차일피일 미뤘고, 대처도 내놓지 않았다. 덕분에 불안과 공포가 삽시간에 전국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일주일 뒤 전국의 유치원고 초중고등학교 80여 곳이 휴업을 선언했다.
그다음 날 200여 개로 늘었고, 또 다음 날 1,100여 개의 학교가 휴학을 결정했다. 그러다 화끈한 형제들 오픈하고 2주 만에 전국 2,700여 군데의 학교가 휴업을 선언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국가적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재수 더럽게 없다고 해야 하나?”
강형우는 가게 입구 옆 골목으로 향했다.
거의 끊었다 싶었던 담배가 다시 늘어났다. 집에서는 거의 피우지 않지만, 어느새 하루 반갑 수준까지 이른 것이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뒤,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강형우는 그걸 본 직후 주변을 둘러봤다.
한낮의 번화가였다.
부산에서 유동 인구가 제일 많다는 지역이고, 유명한 학원가 옆이었다.
하지만, 길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한 시간에 서른 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메르스 발표 이후 이주나 지났음에도 오히려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들기만 했던 것이다.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진짜 사람 돌아버리겠네.”
현재 일 매출이 20만 원도 안 나오고 있었다.
주말에는 간신히 50만 원을 넘길 정도였고, 그마저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런 매출을 보니 숨이 턱 막혀왔다. 진짜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옥죄는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지성분식 2호점과 3호점은 반의 반토막이었다.
화끈한 형제들 본점은 더 심했다.
셀프식인 것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렸던 장소라서였다.
듣기로, 부산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서면 맥도X드나 롯X리아도 일 매출 백만 원을 겨우 넘겼다고 했다. 그러니 지명도가 떨어지는 가게들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었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무슨 방법을 내야지. 이러다가 말라죽겠다.”
***
“형네는 괜찮아요?”
“우리? 우리라고 뭐, 별수 있겠냐?”
주혁 형은 빈 잔에 술을 채우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토막에 또 반토막 상태다. 아주 그냥 재앙이지. 이건 천재지변이야.”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해요?”
“그건 아니지.”
주혁 형은 또다시 잔에 술을 채우고 비우기를 두어 번 더 반복했다.
“일단 할 거는 다 해놨어. 손님들한테 홍보도 했고…….”
가게에 손 세정제를 가져다놓고, 일부 매장의 경우 세면대를 입구 쪽에 비치했다고 했다. 메르스 터지고 이틀 만에 대책을 세워 지금 여러 곳에서 공사 중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 무균 물티슈를 테이블마다 배치하고, 그릇과 수저를 철저하게 소독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손님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책 세우면 뭐 하냐? 정부가 병신 삽질을 하고 있는데, 씨발.”
한동안 주혁 형의 불만이 폭발했다.
이럴 때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해야 하는데, 대처가 너무 늦고 있다. 정확한 감염 경로, 현재 환자 숫자, 그리고 어떻게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보가 하나도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국민들의 불안이 하늘로 치솟고 있단다.
“하여간 공무원 놈들도 마찬가지야. 어떻게든 책임 안 지려고 미루기만 하니… 계속 대책 발표가 늦어지고 있잖아.”
사람들이 안심을 할 수 있어야 나와 다니는데, 주말에도 집에만 있는다고 했다.
덕분에 외식업계는 지금 죽을 맛이란다.
두루 컴퍼니도 자체적으로 전 매장의 매출 집계를 확인했는데, 무려 삼백억이 증발했다고 했다. 고작 두 달 전과 비교한 건데, 그만큼 확 줄었다는 것이다.
“우린 당분간 식자재 단가를 15% 낮추기로 했어. 남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그래야 가맹점들도 버틸 수 있으니까. 아마 거기까지 계산하면 손해는 최소 두 배 이상일 거야.”
“헐, 매달 그 정도 손해나면 회사 망하는 거 아니에요?”
“글쎄? 당장 망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공장 좀 팔고, 부지 좀 정리하고, 해외 공장 파트 생산량 줄이고, 직원들 휴가 좀 보내고, 마지막으로 아파트 짓는 거 중단하고 현금 돌리면 서너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대체 굴리는 자산 규모가 얼마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말이었다.
“야. 난 그래도 해외에 차린 식당들이 버텨주고 있으니까 걱정 없지만, 넌 진짜 큰일 난 거야.”
“예?”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주혁 형이 단언했다.
“지금이 지옥인 것 같지? 아니다. 앞으로 한참 더 남았어.”
“하, 하하. 진짜 지옥이구나.”
강형우는 메르스 한 달 이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지성분식 2호점이 팔백만 원, 3호점이 천오백만 원이었다.
화끈한 형제들 본점의 경우 사천만 원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면점은, 적자만 칠천만 원이 나왔다.
다 합치면 무려 1억 삼천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손해 본 금액이 그 정도나 되는 것이다.
일단 팔리지 않으니 식자재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냉장고에 일주일씩 열흘씩 넣어놓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폐기해야 했다.
냉동은 그나마 나았지만 그래도 이주 이상은 두지 않았다.
강형우가 자신하던 맛에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결국 인성식품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긴 했지만, 잘될 거라 생각해 준비한 재료들만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이었다.
그다음으로 큰 게 인건비였다.
화끈한 형제들의 경우, 메인급을 제외하면 알바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성분식과 인성식품은 달랐다.
몇몇 알바를 제외하고 대부분 정직원이었고, 거의 일이 년을 손발 맞춰 함께 일했던 이들이었다. 장사 안 돼서 보너스를 못 줄 수는 있지만, 월급을 깎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 한 달이었다.
그 정도도 못 버티고 직원을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
사실 몇 번이나 알바를 줄일까 고민했다.
손님이 없으니 쉬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자꾸 눈에 거슬렸던 거다.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강형우만 왔다 하면 알바들이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화끈한 형제들 본점의 경우 괜히 일도 없는데 다들 바쁜 척을 했던 것이다.
결국 대용 삼촌이 한 소리 하긴 했다.
얼굴 좀 펴고, 웃으면서 다니라고.
“휴우, 미치겠네?”
서면점이 안 되더라도 다른 가게들이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랬는데, 이건 같이 다 망하게 생겼다.
“정말 가게 하나라도 정리해야 하나?”
지성분식 2호점의 경우, 장사가 무척 잘되는 가게라 권리금에 프리미엄이 붙어 있었다.
여기에 보증금과 인테리어, 그리고 기타 등등을 포함하면 못해도 사오억 정도 수준이었다.
그 금액이라면 못해도 서너 달은 버틸 수 있을 터.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러기는 싫었다. 왜인지, 패배자가 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은… 당분간 버티려면 대출밖에 답이 없구나.”
***
“죄송합니다.”
강형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맞은 편에 있던 김철진은 오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비즈니스입니다.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담보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죠. 그래서 필요한 금액이 얼마라는 겁니까?”
이미 계산을 다 하고 왔다.
7월 월세를 다 내고, 8월 1일에 월급 주고, 다른 가게들 월세도 정리하고, 또 중순에 있을 서면점 월세까지 잡았더니 대략 2억 정도였다.
하지만 그다음 달 인건비까지 생각해야 했다.
“삼억 정도 대출 받았으면 합니다. 이건 지성분식 3호점과 화끈한 형제들 본점 임대 계약서입니다.”
이해일 부장이 미리 일러주기를, 강형우 고객님은 VIP라면서 신용 대출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억대 이상의 최종 심사는 대표님이 하는 거란다. 해서 가능하면 서류가 많을수록 좋다고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기는 합니다만, 인력 풀 쪽은… 아시죠? 우리 실장님 허락이 필요하다는 거?”
“예?”
솔직히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물론 철진 기획이 주혁 형 거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것까지 알려지는 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요즘, 주혁 형과 미묘한 마찰 같은 게 있었다.
그 시작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이후의 첫 만남에서부터였다.
주혁 형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던졌다.
그러면서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했고, 스스로를 너무 모른다고 타박했다. 이후에도 종종 만나서 술도 마시곤 했지만 이상하게 거리감이 생겼던 것이다.
게다가 이 상황은, 왜인지 숙이고 들어가는 느낌이 강했다.
“어떻게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김철진 대표의 정중한 질문이, 가슴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바로 며칠 뒤가 서면점 월세를 지불 해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일단 하는 걸로… 합시다.”
개인간의 감정보다는, 가게를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버티고 이겨내서 수익을 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스피커 폰으로 신호가 가는데, 진짜 이 상황도 지옥 같았다.
마침 전화받는 소리가 들렸다.
“예. 실장님.”
김철진 대표가 방금 전의 상황을 천천히, 그러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직후, 김철진이 폰을 건네었다.
“받아보세요.”
“예.”
강형우가 폰을 받아 들자마자, 웃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