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227화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괜찮아요?”
“아우, 삭신이 다 쑤신다.”
창주 형이 엄살을 부리는데, 농담이 아닌 진담 같았다. 아주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입술 옆까지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야! 나도 못 하겠다. 이건 진짜 장사도 장사지만, 내가 기계가 된 느낌이야.”
덕수 형까지 죽는 소리를 하니 강형우는 살살 달래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에이~ 형, 그래도 어제 하루 쉬었잖아요.”
“야! 이게 하루 쉰다고 될 일이냐?”
“그래, 우리가 너처럼 음식 만드는 로봇이냐고.”
헐, 그놈의 로봇 이야기가 또 나오네.
하여간 인정둥이 놈들 같으니라고.
정우는 나름 입이 무거워서 덜한데, 인우 녀석은 주둥이 가격이 자판기 커피만도 못했다. 뭐 하나 먹고 가라고 하면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주절주절 떠드는 게 습관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나름 장점이라고, 인우 녀석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기는 많았다.
각설하고, 녀석이 몇 번이나 그런 이야기를 했단다.
내가 미래에서 온, 밥 하는 터미네이터 같다고 떠벌린 것이다.
뜬금없이 강형우 로봇설이 난 게 그래서였다.
갑자기 덕수 형이 물었다.
“근데, 거, 경찰서 간 건 잘 해결된 거냐?”
“아. 그게요.”
대충 둘러대긴 했는데, 형들도 궁금하긴 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때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간단히 말하고 넘겼었다.
하지만 내심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최대한 짧게 이야기했다.
박 경위란 분이 우리 가게 단골인데, 최대한 힘써서 설득했다고. 그래서 적당히 합의 보고 넘어갔다고 했다.
“헐, 영업 방해까지 이야기했다고?”
“예. 그래야 저쪽에서 더는 수작질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아저씨 꾼이네, 꾼!”
“예?”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덕수 형이 설명했다.
“맨날 뺑이만 도는 애들은 잘 몰라. 하지만 범인 잡으러 다니는 형사들이 더 무섭다고. 어떨 때는 검사보다 법을 더 잘 알아서 아주 범죄 예방까지 해버리거든.”
보통 썩은 계란 던지는 일로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장사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재수 없네 하고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술서니 뭐니 해서 각서까지 받아낸다는 게 보통 기술(?)이 아니란다.
“그게… 그런 거예요?”
“에이구, 순딩이 새끼! 하긴 골목길도 꼬박꼬박 신호 지켜서 건너는 준법시민 놈이 뭘 알겠냐? 경찰이 그리 한가한 줄 아냐?”
“아니, 원래 신고하면 잡으러 다니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맞긴 맞지만, 다 하지는 못해. 하루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얼만데? 솔직히 내가 대한민국 직업 중에 존경하는 게 딱 둘인데, 소방관하고 경찰관이다. 그거 사명의식 없이는 못 하는 거야. 얼마나 힘들다고.”
역시 한 번 빵에 다녀온 형이라 말하는 게 다르긴 달랐다.
흔히 말하는 동네 경찰관도 엄청 힘들다고 했다. 워낙 진상들이 많은 시대라, 장사하는 자영업자만큼 개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신경 썼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란다.
“솔직히 일반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지. 경범죄 교사라니. 큭큭큭.”
“법에 있는 거라던데…….”
“당연히 있으니까 그걸로 걸지. 그런데 경찰이 영업 방해까지 말하지는 못해요. 그게 법적으로 무슨 개입인가 그런데, 그거 불법이야.”
“헐.”
덕수 형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쿡쿡 두드렸다.
“그게… 이건 내 생각인데, 그 아저씨가 널 좋게 본 모양이다. 아무래도 동네에서 오래 볼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거기까지 한 거 같은데?”
“진짜요?”
“그래. 원래 형사였다면서? 여기 지구대 말뚝 박고 정년까지 다닐 거면 그럴 수도 있지.”
일부 형사들은 여러 사유로 진급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게다가 체력적인 문제라든가, 기타 등등의 이유 때문에 지구대 근무로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면 보통 거기서 말년까지 보낸단다.
그럼 처음에 무얼 하느냐?
동네 정탐(?)은 필수라고 했다. 강력범들 잡던 사람들이라 큰 범죄의 싹을 미리미리 예방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 맞은편 인간들이 문제라고 봤겠지. 그래서 미리 압력을 넣은 거야.”
“그게… 되요?”
“안 될 게 뭐가 있냐? 보통 지구대 경위 정도면 대장 바로 밑이고 거의 실무 총괄급인데! 게다가 서에서 나왔으면 거기 끈도 좀 있으니까 파워 장난 아니야. 동네 유지도 함부로 못 한다고.”
덕수 형 말을 들으니, 찔끔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찝찝하다 싶기도 했는데, 그 정도 해주는 것도 나름 어마어마하단다.
말이 좋아 청소비 50만 원이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나?
“아마 그 정도 되면 동네에도 끈이 좀 있을 거야. 어설픈 조폭 애들 불러서 소문 다 들어보고 처리하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라고.”
갑자기 최성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경찰 쪽 일도 하고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박 경위도 그렇게 말했다.
나름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어쩌면 그렇게 그렇게 이야기가 돌아서, 거기까지 해준 것일 수도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와! 정말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들이 정말 많구나 싶었다.
“하여간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다. 거기 경위님이 그 정도 해줬으면, 저쪽은 걱정할 필요도 없겠어.”
“진짜 그래요?”
“한 번 경고 날렸는데, 수작질은 무슨. 됐고, 회의하자고 부른 이유는 뭐냐?”
“아, 맞다!”
강형우는 다급히 수첩을 꺼냈다.
거기에는 직원들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몇몇 애들 이름에 밑줄이 그여 있었다.
일단 이모들 식당에는 박호성과 임정은이 있었다.
월급 200만 원에 보너스까지 넉넉하게 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 사대보험까지 적용된, 인성식품의 직원이었다.
지금은 이모들이 한 번씩 빠져도 걱정 없을 정도로 기초를 튼튼하게 받치고 있었다.
그다음이 지성분식 2호점이었다.
주방에는 정은혜와 히토미가 있었고, 최민지와 은선경이 홀을 담당했다. 여기에 주말 알바가 더해졌고 신원이 형이 전체 관리를 맡았다.
지성분식 3호점은 인원이 더 많았다.
주방에는 홍성구와 인정둥이, 이기섭과 정문창에다가 홀에는 금씨 삼남매에 김진설, 그리고 김밥 스폐셜리스트 최연경 이모와 밥충이 둘이 추가였다.
마지막으로 화끈한 형제들이 있었다.
일단 창주 형 옆에 둘, 덕수 형 옆에도 둘이었다. 거기에 강대용 관장님과 오병헌이, 카운터에도 네 명이었다.
이 중에 음식 조리와 카운터는 오전 오후 두 파트로 나눠져 있었다.
따지면 총 열여덟 명이 일하는 셈.
이로써 강형우와 함께하는 식구들은 이제 오십 명이 훌쩍 넘는다고 봐야 했다.
인성식품 식구만 열 명에다가, 공지혜도 있었고, 순이 이모와 희숙, 애란 이모들하고 반찬 이모, 그리고 신원이 형과 은주 형수, 여기에 옵션인 강학희 아버님.
마지막으로 심복 홍성구와 동생 인정둥이까지.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어깨가 무거워졌다. 뭘 하나 해도 혼자 마음대로 정하기가 쉽질 않았던 것이다.
해서 이렇게 두 형을 부른 것이다.
“그니까 형들이 봤을 때, 누가 괜찮아요?”
“어?”
“그러니까, 형들 일 좀 줄여야 되잖아요. 지금도 힘들어 죽겠다면서요?”
순간 창주 형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고맙다. 역시 우리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에이, 당연히 조정해야죠. 형들이 석 달 약속했지만, 그게 된다고 생각 안 했거든요.”
창주 형과 덕수 형이 발끈했다.
“야! 우리가 장사를 몇 년 했는데… 고작 석 달이 아니라 반년도 할 수 있거든?”
“진짜요?”
강형우가 묻자마자 두 형들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다.”
“농담이다.”
“진짜 죽겠다. 죽겠다고!”
“나 솔직히, 오늘 아침에 눈 떴을 때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형들이 번갈아가며 이야기하는데 역시 본심은 이거였다.
“에휴, 그러면 그렇지.”
“이 자식이!”
갑자기 덕수 혁이 달려들어서 목을 졸랐다. 동시에 창주 형이 등짝을 마구 두들기더라.
진짜 이럴 때 호흡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네그려.
강형우가 잠시 당해주는데, 덕수 형이 손을 풀었다.
“됐고. 어떻게 하려고?”
“그, 그야 당연히… 형들 짜르려고 그러죠.”
강형우는 농담을 던졌다가 진짜 죽을 뻔했다. 두 형들이 진심으로 버럭하며 다시 달려들려 한 것이다.
어쨌든 사태는 금방 전정이 되고, 바로 진지한 회의로 들어갔다.
두 형들의 후계자(?)를 선별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
“그러니까,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예. 사장님이 물어보셔서 이야기하는 건데, 대용이 아저씨가 손이 너무 느려요.”
오병헌이 말하길, 너무 굼뜨다고 했다.
자기가 접시 트레이를 세 번이나 나르고 정리하는데도 두 번을 못 채웠단다. 게다가 급할 때 종종 사라지기 일쑤라서 같이 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의 열흘 넘게 손발을 맞췄는데도 이 정도라면 문제는 심각했다.
“일단 아저씨한테는 내가 이야기할게.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니?”
“저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어!”
“전에 이력서 드렸을 때, 제가 음식 배우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거 내가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강형우의 말에, 오병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매일 설거지하고 정리만 하니까 좀 아니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취사병 출신이고 어지간한 음식은 다 할 수 있는데…….”
“미안하다. 내가 설명을 안 해줬나 싶은데…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네.”
강형우는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원래 오병헌은 이기섭이 강력 추천한 인재였다.
자기보다 음식 잘하고, 성격도 딱 부러지는 친구란다. 그러니 이렇게 또박또박 의견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하지만 타이밍이 안 맞았다.
이미 다른 알바들은 미리부터 화끈 오뎅과 형님네 버거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짜 문제 때문에 뒤늦게 와서 차례가 밀린 것이다.
아니, 애초에 오병헌은 금이선 대신 넣을 생각이었다. 처음 말한 대로 군입대 날짜가 이달 말로 잡혀 버린 거다.
하지만 본인이 입대 사흘 전까지 일하겠다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해서 오병헌은 화끈한 형님들에서 임시로 일을 시켰다.
“사정이 그렇게 된 거야.”
“그럼 제가 언제부터 일을 배울 수 있는 겁니까?”
“길어도 이달 말이지. 이제 이 주 남았어. 그때까지만 조금만 힘내주라.”
“예, 사장님!”
오병헌도 어느 정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모양이었다. 적어도 이 주간은 열심히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 결정에 강형우도 한시름 놓았다.
일단 형들과 의견을 조율한 결과, 오전 파트에서 한 명, 오후 파트에서 한 명씩을 우선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일 잘하는 네 명의 월급을 올려주고 승진(?)도 이야기해 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면접을 보고 본인 의사를 물어보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오병헌이 먼저 말을 꺼낸 상황이었다.
강형우는 솔직히 사정을 이야기하고 달랬는데, 아직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관장님, 강대용 아저씨였다.
“아니, 강 사장. 그게 아니라…….”
강대용이 손을 저어가며 이야기하는데, 강형우는 정색을 했다.
“대용 삼촌, 호칭은 정확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여기 혼자 일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그건… 맞지만…….”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가서 이야기하죠?”
“어? 어, 그러지.”
강대용도 눈치가 보이는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형우는 결국, 거의 피우지 않던 담배를 물고 말았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증거였다.
“아~ 대용 삼촌. 가게 안에서는 좀 사장님이라고 불러달라고요. 언제까지 강 사장, 강 사장 그럴 거예요?”
“미안, 그게 습관이 붙어서… 미안하다, 형우야.”
같이 일하기로 하면서 호칭 정리를 했다.
그건 최연경 이모가 먼저 나서서 그러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형우는 삼촌으로 부르기로 했고, 강대용은 둘이 있을 때 이름을, 일할 때는 사장님 호칭을 쓰기로 한 것이다.
강형우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뒤, 한숨을 내쉬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정말 삼촌 제대로 일할 생각 있어요?”
“그야 당연하지. 내가 그랬잖아. 열심히 한다고!”
“그런데… 후우!”
강형우는 잠시 망설였다. 오병헌의 이야기를 꺼낼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다.
결국 몇 번이나 고개를 저은 강형우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