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228화 내가 잘못했다
“삼촌, 물어나 볼게요? 일 중간에 어디 가신 거예요?”
“그, 그게…….”
잠시 떨떠름해하던 강대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가정이 있잖아. 우리 와이프도 걱정 많이 하고.”
들어보니 딸, 딸, 아들, 딸, 아들이란다. 너무 열렬히 사랑(?)한 나머지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첫째 딸이 고3, 둘째가 고1이고 셋째가 중1에 넷째가 초등 4학년, 막내가 올해 초등학교 들어갔단다.
아직 한창 벌어야 할 상황.
당연히 곰 같은 마누라가 보기에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체육관 정리한 건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취직을 포기해서였다.
“내가 너랑 약속한 대로 반년은 죽어라 일만 배운다고 했거든. 그런데 안 믿는 거야.”
“왜요?”
“그게… 내가 안쪽에서 일하잖아. 애들하고 가게도 몇 번 왔다는데 내가 일하는 게 안 보이니까.”
강대용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롯X리아나 맥도X드 같은 곳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건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그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고객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먹던 음식을 버리는 것도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통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불쾌했던 것이다.
그다음이 청결, 혹은 위생 문제였다.
당연히 음식물이 쌓이면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세균 문제도 있고 해서, 다른 ‘공간’에서 처리해야 하는 게 기본이었다.
해서 강대용과 오병헌은 주방 안쪽에서 일해야 했다.
“그래서, 와이프가 꼭 영상통화를 해야 한다는 거야. 일하는지 봐야겠다고.”
하지만 지저분한 차림을 보여주기가 곤란했다. 결국 위생모와 마스크, 조리 장갑과 앞치마를 벗고 나가서 통화해야 했다는 것이다.
“휴우~ 삼촌. 이해는 하겠는데, 그러면 안 돼요.”
“나도 아는데… 가끔 애들하고 있을 때도 영상통화가 오거든. 우리 큰딸이 좀 예민한 시기라서…….”
현재 고3, 자기 닮아서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2년제라도 가겠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때 체육관 관장님 딸이라고 이쁨도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가 음식 설거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보겠는가?
“나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잠깐이지만 환경미화원도 해볼까 했었고. 그런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런 거지.”
“그래서요? 계속 지금처럼 하겠다?”
“그게… 나도 덕수나 창주처럼 손님들 보이는 데서 음식 만들고 그러면 좋겠는데… 딱 보니까 난 아직 멀었더라.”
그래도 자신에 대해 파악은 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강형우는 고민에 빠졌다.
강대용을 받아들인 이유는 여럿 있었지만 결국 열정에 넘어가고 말았다.
무엇보다, 지금도 제일 일찍 출근하고 마지막에 퇴근했다.
또 오병헌이 말하길 성실한 거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특히 힘쓰는 일을 몸 사리지 않고 했고, 지저분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끔 사라지는 걸 빼면 같이 일하기는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하긴, 그런 게 있었으니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참고 넘어간 거겠지.
“대용 삼촌, 지금 하는 일이 부끄러운 건 아니죠?”
“당연하지. 적어도 나는 떳떳하다. 다만 우리 딸들이 이해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뿐이야. 솔직히 그냥 갑자기 영상통화 걸려오는 것만 아니면 괜찮은데…….”
“그러면 사모님하고 시간 정해서 통화하고요. 당분간은 답답하겠지만, 계속 일해줘요. 삼촌은 다른 직원들하고 경우가 다르잖아요.”
“당연히 알지.”
강대용은 약속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사실, 두 사람은 꽤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형우가 월급 준다는 걸, 강대용은 악착같이 거절했다. 오히려 남들은 돈까지 줘가며 배운다고 이게 맞다고 우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타성에 젖을지도 모른다고 무조건 싫단다.
결국 강형우는 그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미뤄 버렸다.
어쨌든, 강대용은 제일 먼저 청소와 설거지부터 하기로 했다.
스스로 말하길 운동할 때도 기초가 무척 중요하단다. 괜히 체력도, 실력도 안 되면서 무리한 기술 연습하다가 선수 생활 접는 경우를 몇 번이나 봤다는 것이다.
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현재는 지성분식 3호점을 기준으로 정문창이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냉장고 청소와 정리, 그리고 아침에 들어오는 식자재 파악과 함께 보관 방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끝나면 이기섭이 하는 주방 보조였다.
제일 먼저 음식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을 다듬고 정리하는 게 임무였다. 그러면서 칼질도 익숙해지고 조리기구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보통 어깨너머로 음식 만드는 과정을 배우는 게 이 단계였다. 여기서 조리법까지 익숙해지면 그제야 겨우 실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시작은 아주 간단하면서 맛에 큰 차이가 없는 것부터 배운다.
바로 라면 같은 거였다.
그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을 때, 강형우가 예상한 시간은 반년이었다.
일단 청소 두 달에 주방보조 석 달이었다.
현재 이기섭이 이런 과정을 겪고 있었고, 요즘에는 인정둥이한테 이런저런 음식들까지 배우고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이거였다.
이기섭이 말하길,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서른 전에 독립이 목표란다.
그건 금일우가 서빙 말고 다른 걸 조금씩 배우려 하는 것과 같았다. 나중에 둘이서 가게 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털어놨던 것이다.
당시 강형우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백창호와 정은혜가 독립을 하고 금일우가 동생들을 데리고 이기섭과 나가면, 투자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물론 실력이 되고, 그때까지도 열심히 일해준다는 조건이 붙긴 하겠지만.
어쨌든, 강대용은 다른 케이스였다.
일단 자본은 충분했고 본인 스스로가 기초가 부실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또, 남들과 다르게 장기전(?)을 보고 있었다. 최소 환갑 때까지는 주방에 설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강형우는 그 결심 때문에 더욱 진지하게 알려주었다.
일단 최소 반년을 배우고, 그 뒤에도 장사 의지가 있으면 먼저 조리 자격증을 따라고.
그게 되면 월급을 주고 점장을 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직접 손님 대하는 걸 겪어보고 장사를 해봐야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그렇게 둘은 합의(?)를 본 상태였다.
“형우야, 미안하다. 나는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어.”
강대용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니, 길게 이야기하기 애매했다.
하지만 짚을 건 짚고 넘어가야겠지.
“삼촌, 열심히 일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음식 장사라는 게 좀 그래요. 바쁠 때는 엄청 바빠서, 사람 하나 빠지면 구멍이 크거든요.”
손님 받고,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그걸 먹고 손님이 나가면,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게 바로 준비해야 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지만, 그 안에는 많은 과정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그걸 원활하게 하려면 일하는 사람들끼리 유기체처럼 호흡이 맞아야 했다. 누군가 빠지면 결국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하는 것이다.
“나도 한 달 해보니까 대충은 알겠더라고. 그게 미안해서 통화하고 오면 더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그건 내가 병헌이한테 말할 테니까요. 대신 자리 비울 때는 꼭 이야기하고 나가세요.”
“알았다. 약속할게.”
강대용이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짧게 한숨을 내쉰 강형우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권고 사항인데, 머리카락 정리 좀 하세요. 아무리 안 보이는 데서 일한다지만, 너무 길어요.”
“위생모 쓰면 괜찮은데…….”
“그건 삼촌 생각이고요. 무슨 바람의 파이터도 아니고…….”
“헐, 그걸 어떻게!”
당황한 건, 강형우였다. 그냥 찍은 건데 진짜 그럴 줄은 몰랐으니까.
어쨌든 강대용은 화끈했다.
바로 다음 날, 시원하게 밀고 나타난 것이다.
확실히 저런 의지라면, 당분간은 믿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
“범식아, 어때?”
“사장님, 감사합니다.”
“아니, 조건이 어떠냐고?”
“아이고, 저는 무조건 좋습니다.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월급 30만 원 추가에 덕수 형 후계자가 정해졌다.
“상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저야 무조건 땡큐죠.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임상현은 툭 치면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고졸이라서, 취직 못 해 알바만 하고 있었단다. 그래서인지 정직원 제안을 하니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이 녀석이 금일우가 추천한 친구였다. 이력서를 보면 거의 쉬지 않고 일했고, 그 성실성을 높게 산 것이다.
마찬가지로 월급은 30만 원을 더 올려주기로 했다.
이렇게 창주 형에게 튀김을 배울 직원이 결정되었다.
동시에, 일정 기간 지나면 채범식과 함께 인성식품 사원으로 채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그냥은 아니었다.
월요일 쉬는 날, 인성식품으로 출근해 제대로 된 과정을 배우기로 했다. 게다가 직원 충원 전까지는 당분간 쉬는 날 없이도 일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악덕업주 같아 보이겠지만, 지금도 알바를 계속 뽑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미친! 화끈한 형제들은 희한하게도 점점 손님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지금 가게 규모로도 소화 못 시킬 정도가 되었고, 특히 마치기 직전까지도 절반이 넘게 차 있었다.
강형우는 그 이유를 열심히 분석했다.
계산을 잘해야 직원 몇 명을 더 뽑을지를 정할 수 있었으니까.
사실, 처음에는 넉넉하다고 봤었다.
일단 창주 형과 덕수 형은 이미 베테랑이었다. 어쩌다 보니 풀타임을 뛰게 되었는데, 강형우가 중간중간 교대해 주면서 휴식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피로는 쌓이기 마련이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그리고 보름이 넘어가자 진심으로 곡소리를 냈다.
보조를 두 명씩 붙여가면서 일했음에도 피로 누적을 이기지 못했으니까.
카운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네 명이서 일했을 때는 주문받고 계산하는 것만 해도 벅차했다. 그러다 공지혜와 강형우가 돕자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후 강형우는 카운터에 둘만 남겼다. 나가서 수시로 테이블도 치우고 정리도 해야 했고, 그 외에 잡다한 일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점심 파트만이 아니라 저녁 파트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건, 무인결제 기계를 두 대나 구입했다는 거였다. 손님들이 신기해하면서 몰리자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덕분에 카운터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일단 여기까지만 보면 큰 문제는 없었다. 아니, 직원을 더 뽑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강형우는 여덟 명 정도를 더 뽑을 생각이었다.
일단 창주 형과 덕수 형이 빠지고, 대용 삼촌과 병헌이 자리도 채워야 했다. 그리고 직원들도 돌아가면서 쉬어야 했기에 여유 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는데, 의외의 소식이 들어왔다.
***
“저 앞에 가게 내놨다고?”
강형우는 황당해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일명 황도양의 가게들(?)이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매물로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런데 들어보니까 안 나갈 것 같더라고요.”
“왜? 그래도 자리는 나쁘지 않은데?”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큭큭, 들어보니까 완전 도둑놈이더라고요.”
강인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한 집을 가리켰다.
“저 제일 끝에 김밥집이, 권리금만 사천이래요.”
“헐, 미친!”
“떡볶이집은 삼천에, 닭꼬지 집도 이천오백에 내놨다고 하더라고요.”
들어보니 진짜 어이가 없었다.
편의점 빼고 다 합치면 권리금만 일억이 넘었다. 손님도 없고 망해가는 가게인데, 무슨 배짱인지 그렇게 내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