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216화 이게 뭐야
“끄응.”
전에 아파트 상가 아가씨한테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전에 사장님이 장사하다가 포기하고 가게를 내놓은 이유를 말이다.
사연은 이랬다.
원래 영업사원이었는데, 잦은 음주 덕에 만성 위경련을 가지고 있었단다. 일종의 직업병이라 회사 그만두고 식당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김밥과 라면에 칼국수 같은 분식으로 시작을 하다가 손님이 떨어지면서 점차 메뉴를 늘렸다고 했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시판 제품을 사다 쓸 수밖에 없었다. 메뉴 하나하나를 새로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니까.
어쨌든 시판 제품은 마진이 애매한 편이었다. 너무 싸구려를 쓰면 손님이 안 오고, 어느 정도 퀄리티를 올리려면 비싼 제품을 써야 했던 것이다.
아마 그것 때문에 가격을 올렸을 거다. 주변 상가들도 다 그렇게 장사해서 먹고 살았을 테니까.
사실 강형우도 3호점 계약하기 전 상권조사를 하면서, 이전의 가게를 검색해 봤다.
동네 새로 생긴 분식집.
딱 그 정도 타이틀로 블로그 글 서너 개가 나오는 게 전부였다. 갈 데가 없어서 가는 거지, 굳이 찾아갈 집이 아니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던 것이다.
가격도 조금 애매했고, 사진상으로도 결코 맛있게 보이질 않았다.
놀라운 건, 상가 아가씨의 이야기였다. 그래도 자리가 좋아서 어느 정도는 벌어먹고 살았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장사를 접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스트레스!
그것 때문에 지병이 재발해서,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입원했는데, 당연하게도 사장이 없으니 장사가 잘 안 되었다. 매출은 바닥을 치는데 인건비와 월세가 꼬박꼬박 나가니, 차라리 문을 닫는 게 이득인 것이다.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권리금이고 뭐고 다 귀찮겠지. 오히려 빨리 정리하는 게 손해가 아닐 테니까.”
몇 년 동안 장사해서 먹고 지낼 만큼 벌었다. 여기에 보증금까지 돌려받으니까 겨우 투자비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건 그만큼 상권이나 상가가 알짜라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근처 상가 사람들이 많이 괴롭힌 모양이었다. 민원도 자주 들어왔고, 이상하게도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단다.
거의 매주에 한 번씩 경찰이 왔다 갔을 정도라나?
“그 정도면 없던 병도 생기겠는데?”
호흡법을 통해 멘탈이 강해지지 않았다면 아마 강형우도 못 버텼을 거다.
그만큼 장사 스트레스는 무시무시한 거였다. 그걸 이겨내고 버티고 버터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수익을 내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
싸움박질이라면 또 모를까, 이건 음식 장사였다. 찾아가서 치고받고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
“설치 완료했습니다.”
두루캅 직원들이 다녀가고, 강형우는 노트북 화면을 확인했다.
결과는 일단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미 오픈할 때 작업을 하긴 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전문 방역업체와 계약까지 맺었다.
“초기 비용이 비싸지만, 매달 10만 원이면 괜찮기는 하네.”
초반에 전체적으로 하는데, 3호점이 평수가 있어서 60만 원을 부르더라. 이걸 3년짜리 장기계약을 하면 28만 원에 해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두루캅과 제휴업체라서 많이 할인받은 거였다.
실제 업소용 종합 관리는 더욱 비싼 편이었으니까.
어쨌든 한 달에 두 번 방문해서 확인한다고 했다. 출장비로 계산하면 비싼 편은 아니었고, 보험적인 성격도 있었으니 나름 합리적이라 볼 수 있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소독 부분만 철저히 하면 되겠지.”
인성식품 수준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규칙은 잡아놨다.
주방 안팎으로 출입하기 전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을 것, 그리고 물티슈나 세정제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팍팍 쓰라고 했다.
또, 테이블 청소 때도 마지막엔 반드시 소독제를 뿌리고 전용 수건으로만 닦으라고 일러두었다.
여기에 공기청정기 세 대를 들였고 피톤치드 소독도 정기적으로 하기로 했다.
이걸 가게 세 개 다 하니 거의 오백이 깨지더라.
그래도 마음만은 후련했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금설비가 다급히 이야기하는데, 뭔가 싶었다.
“왜?”
“저기 밖에 나가보세요.”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3호점을 나섰다.
맞은편 즉석떡볶이 집에 뜬금없이 5주년 기념행사 플래카드가 걸렸다. 그러면서 무려 10%나 할인한다고 떡하니 박아놨던 것이다.
그건 김밥집도, 칼국수집과 닭꼬지집도 마찬가지였다.
김밥 500원 할인, 라면 세트 주문 시 1,000원이나 깎아준다고 했다. 칼국수집도 세트 메뉴가 만들어졌고 심지어 닭꼬지집은 열 개 주문 시 한 개 공짜란다.
“아이고, 의미 없다.”
강형우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맞은편 상가들을 쳐다봤다.
싼 맛에 갈 수 있는 가게가 있고, 싸도 안 가는 가게가 있었다.
솔직히 돈 준다고 해도 안 갈 가게들이었다. 오히려 병원비와 내 오장육부가 걱정될 정도로 음식들이 심각했던 것이다.
떡볶이는 달고 맵고 자극적이기만 해서, 혀를 사포로 박박 문지르는 느낌이었다.
“저런 걸 팔아서 5년이나 장사했으면, 양심도 없는 거지.”
옆의 김밥집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가서 먹어봤는데, 김밥도 미리 싸둔 걸 팔아서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여기에 싸구려 향미유를 발라서 나오는데, 느끼하기만 했던 것이다.
만약 라면 국물이 없었더라면 김밥 집어 던지고 나왔을 거다.
칼국수는 멸치 몇 마리가 헤엄치다 간 육수에 다시다 한 국자 퍼 넣은 맛이었다. 제대로 끓이기라도 하면 모를까 완전히 따로 노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칼국수의 생명이라고 하는 면도 공장에서 사다 쓰는 것 같았다. 가게 어디에서도 밀가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닭꼬지는 말 안 하련다.
그냥 공지혜가 두 입 먹고 버려 버렸다. 혹시나 싶어 한 입 더 먹었다가 토할 뻔했다나?
“진짜 자기들 음식 먹어보고 파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그래도 막 싸게 팔고 그러면 우리 가게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게, 그럴 리가 있나.”
맞은편 가게들이 일제히 컨설팅을 받아서 음식맛을 끌어 올렸으면 또 모른다.
하지만 강형우가 직접 본 사장들은 결코 그럴 사람들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상식만 있어도 안 할 짓을 태연히 했던 것이다.
어쨌든 맞은편 가게들이 일제히 가격 할인을 한 이유는 짐작이 되었다.
얼마 전에 큰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버린 것이다.
사망, 실종자만 3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게다가 단체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강형우는 새벽에 공장 나갔다가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김민석이 호들갑을 떨기에 뭔가 싶어서 TV를 틀었다가 한참을 멍하니 지켜봤던 것이다.
진짜 분노가 치밀었고,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보는데 막 손이 떨리고 눈물까지 나더라.
이후에도 계속 울컥울컥해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걸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데, 진짜 가슴에 누가 커다란 돌덩이를 얹어놓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호흡과 명상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 한동안은 소주 두어 병은 비워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을 정도였던 거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 매출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모들 식당은 20% 정도, 2호점의 경우 40% 가까이 빠졌고, 그건 3호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조금은 달랐다.
마치 이 일대가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사람들의 발길 자체가 뚝 끊어졌으니까.
그 때문인지, 뉴스에서는 자영업자들이 다들 죽는다고 아우성이었다.
물론 강형우도 영향을 받긴 했지만 돌이켜 계산해 보니 그렇게 크진 않았다. 그저 잠깐 주춤했을 뿐, 며칠이 지나자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고 매출도 서서히 회복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맞은편 음식점들은 아니었다.
듣기로, 지성분식 3호점이 생기고 인근 음식점들 매출이 반토막 났단다.
몇 군데는 아예 손님이 없어서 가게를 내놨고, 곧 접는다는 음식점도 서너 개가 된다고 했다.
강형우가 돌아봤을 때, 지난 두 달 동안 문 닫은 가게 하나 없었고 평소와 거의 똑같았다.
그냥 장사 안 되는 핑계를 다른 곳에서 찾은 것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건이 터졌으니, 이제야 겨우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런다고 손님들이 얼마나 몰릴까?”
“예?”
“아니, 아니야. 그냥 혼잣말.”
강형우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저런 가게들은 망해도 싸다 싶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팔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바가지 씌워서 먹고 살았으니 전부 자업자득이었다.
무엇보다 손님들은 냉정하다.
지금까지는 갈 곳이 없어서 팔아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성분식이라는 대체제가 생긴 이상, 미쳤다고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한 데를 가겠는가?
분명 동대표 사모님이 그랬었다.
지성분식처럼 정성 들여 음식 하는 가게라면, 차리기만 하면 대박 날 거라고.
진짜 매출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강형우는 맞은편 상가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가격 할인? 백날 해봐라. 손님들이 가겠는가.”
***
“오늘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들 감사합니다!”
강형우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자, 다들 손뼉을 쳤다.
시간은 밤 10시 35분.
뒤늦게 학생들이 단체로 몰리는 바람에 예정보다 퇴근이 많이 늦어졌다.
원래라면 벌써 마감해야 했을 터.
하지만 강형우는 알바들을 먼저 보내고, 인정둥이와 홍성구, 공지혜와 함께 마무리를 지었다. 거의 매일 얼굴 보는 단골 학생들이 사정사정을 하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점점 늦어지는 느낌이네.”
원래 이모들 식당이나 2호점처럼 9시에 마치려고 했다가 학생들 때문에 10시까지로 영업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오늘처럼 가끔 오버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어쩔 수 없죠. 애들 배고프다는데…….”
공지혜가 웃으면서 말하는데, 참 기분이 묘했다.
얼마 전 사건 이후, 이상하게 학생들이 남 같지가 않았다. 자꾸 마음이 가니 더 좋은 걸 먹이고, 더 잘해주고 싶어졌던 것이다.
“일단 다들 나가자.”
강형우가 불을 끄고 번호키까지 잠그자 상가 건물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런데 맞은편은 아직도 하네.”
“삽질이지 뭐. 손님도 없는데.”
“쯔,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인정둥이가 중얼거리는데, 강형우도 다 들었다.
“왜? 무슨 일인데?”
“아뇨, 별일 아니에요.”
강정우는 손을 내저으며 시치미를 뗐다.
그때 공지혜가 돌출 간판을 가리켰다.
“근데, 이거 진짜 잘한 것 같아요.”
“아! 그건 그래.”
천천히 돌아보는데 진짜 그랬다.
무려 70만 원이나 들인 LED 간판이었다. 아파트 상가 건물 전체가 어두웠는데, 이거 하나만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광고 효과 대박이었다.
심지어 늦게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 이걸 보면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확실히 이쁘긴 이쁘네.”
“어, 오빠 택시 왔어요.”
오늘 많이 피곤해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미리 콜을 불렀는데, 타이밍이 제대로였던 것이다.
그렇게 지성분식 식구들이 떠났다.
곧 맞은편 음식점 하나가 간판 불을 껐다.
“우웩, 이게 뭐야?”
“으악, 냄새.”
다들 코를 움켜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누가 지성분식 유리벽에 썩은 계란을 집어 던졌다. 개수를 세는 게 무의미할 만큼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악취가 진동했던 것이다.
정말 생선 비린내는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른 새벽에 경비 아저씨 전화받고 달려왔는데, 이 꼴이라니.
“이거 어떻게 하나?”
“일단 신고부터 해야죠.”
“그건 맞는데…….”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폰을 꺼냈다.
경찰 오면 조사하긴 할 거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이 꼴로 둬야겠지.
순간 짜증이 확 치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