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208화 당장이요
“2번 테이블에, 돈가스 하나, 하와이안 둘이요.”
“14번 테이블에, 지성세트 하나, 라면 하나, 제육덮밥 하나요.”
“8번에 지성세트 두 개, 참치김밥 한 줄이요.”
아주 그냥 주문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강형우가 포스기에 입력하고 지시를 내리자 각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주방장은 홍성구였다.
나름 인정둥이와 사인을 맞췄는지 정말 칼같이 지시를 내렸고, 이기섭이 할 일도 지정해 줬다.
또, 정문창도 재빨리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가져왔다.
홀 서빙도 마찬가지였다.
일우가 센터, 진설이가 좌측, 이선이가 우측이었다.
김밥의 경우 공지혜와 금설비가 열심히 말면 일우가 받아서 양쪽으로 나눠주는 식으로 했는데, 불과 이틀 만에 손발이 딱딱 맞아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니 자신의 판단이 맞다 싶었다.
역시 단합에는 회식이 최고였다.
오픈 전날, 가볍게 먹자고 제안을 했다.
홀과 주방 파트로 나눠서 마시게 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서로 친해지더라.
특히 홍성구는 인정둥이뿐만 아니라, 남자애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형우가 자신이 없을 때 네가 사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책임감을 느꼈는지, 애들한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많이 노력했다.
무엇보다, 여자들 특유의 뭐가 있는지 금설비와 공지혜는 진짜 가까워졌다. 슬쩍 들었는데, 아무래도 다이어트 비법 같았다.
이날 웃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다.
“저기 사장님.”
“어, 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김진설이 다가왔다. 그리고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저기… 이거요.”
“뭔데?”
확인해 보니 사만 원이었다.
처음에는 잠시 뭔가 했는데, 표정을 보고 나서야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첫날 일당 계산해 달라는 거 줬던 바로 그 돈이었던 것이다.
“그날 죄송했습니다. 진작 돌려 드려야 하는데…….”
계속 일하기로 했으니 그게 맞기는 했다.
하지만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그거 집 갈 때 택시비 해.”
“정말요?”
“나, 한입으로 두말하는 남자 아니다. 성구가 몇 년째 나랑 일하는 거 보면 알 거야.”
그 말에 용기를 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담아두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김진설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사장님, 혹시 파트로는 사람 안 구하나요?”
“파트?”
“예. 점심하고 저녁 따로요.”
“글세, 솔직히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왜? 할 사람 있어?”
“예. 친구 중에 두 명 있는데, 종일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한 놈은 점심때, 한 놈은 저녁 때 하면 안 되냐고 물어서요.”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알바생 입장에서 하루 12시간이 길기는 했으니까.
어쩌면 파트로 나누면 확실히 지원자가 많아지겠지?
“그럼 언제부터 일할 수 있다는데?”
“그게 다음 주부터요.”
“OK! 알았으니까 편할 때 면접 보러 오라고 하고. 이제 들어가자.”
확실히 일이 잘 풀린다 싶었다.
***
“이제 좀 익숙해지네.”
정식 오픈하고 이틀, 다시 하루를 쉰 뒤 영업 시작한 게 월요일이었다.
오늘이 장사한 지 팔 일째인데, 매출이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일단 새벽에 일어나 공지혜와 함께 회사로 출근한 뒤 조금 느긋하게 업무를 보고, 9시 반에 3호점으로 향했다.
차가 안 막히는 시간이라 도착하면 거의 10시였다.
바로 식사를 하고, 영업 준비를 하면 거의 40분, 이때는 이미 손님들 줄이 생기기 시작해 주문부터 받아야 했다.
11시 오픈.
손님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하면 주문받은 순서대로 음식을 내가고, 그렇게 점심 영업이 시작된다.
마지막 주문은 2시 40분.
거의 3시가 조금 넘어서 점심 장사를 마치면 바로 식사 시간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은 5시까지인데, 손님들이 줄 서 있으면 어쩔 수 없이 4시 40분부터 미리 주문을 받아야 했다.
다시 5시부터 저녁 영업을 시작.
마지막 주문은 9시 반이었다. 마치면 밤 10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니 정리하고 퇴근하기가 바빴던 것이다.
하루 들어오는 현금은 백만 원 이하였다.
하지만 카드가 그보다 네다섯 배는 많았으니 대충 일 매출 오륙백은 찍은 것 같았다.
대충 25일 잡으면 대략 일억 삼천이 넘는 수준.
물론 오픈발인 걸 감안해도 충분히 황송(?)할 만한 수치였다. 이모들 식당이 일 매출 이백만 원 선, 2호점이 삼백만 원이 조금 넘었으니까.
“확실히 수익 면에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주혁 형에게 꾸짖음을 들은 뒤, 장사는 사장 맘대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적인 건, 손님들과의 소통과 그로 인한 안정적인 유지였다. 얼마나 버느냐도 계산해야 하지만 아니라 상권에 무리 없이 들어갔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때문에 강형우와 공지혜는 매일 맘카페와 인터넷을 검색해야 했었다. 손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읽기 위해서 말이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동안 고민하던 강형우는 지성분식 이름으로 맘카페에 글을 올렸다.
<지성분식 3호점을 운영하고 있는 강형우라고 합니다>
우선 많은 성원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성분식의 지향하는 바는, 믿을 수 있는 정직한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팔자는 겁니다.
그에 많은 분들이 성원해 주었고 정상적으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죄송스러운 점은, 많은 준비를 했으나 아직도 미비한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먼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김밥 재료는 신선도를 생각해 냉장 보관하며, 하루 이상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돈가스 역시 고기를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해 종종 수량이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어떨 때는 하루 두 번씩 준비하기도 하지만 많은 고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장사 초기라 부족함이 많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고, 아낌없는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형우는 이 한 페이지도 안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새벽 두 시까지 잠들지 못했었다. 홍태구가 많이 다듬어 줬지만 자꾸 부족함이 보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대한 겸손하게 쓰려고 했다.
글을 보는 손님들이 불편함을 느껴서는 곤란했으니까.
다행히 많은 회원들이 글을 달아주었는데, 그래서 댓글을 읽는 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족감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김밥 정말 맛있어요. 앞으로 좋은 음식 계속 팔아주세요.
-돈가스 짱 맛있음. 입맛 까탈스러운 우리 애들이 지성분식 가자 하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일주일 만에 이 집 음식 다 먹어봤어요. 다른 분식집과 달리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고 좋더라고요.
-저흰 불친절한 가게는 절대 안 감. 그래서 이 동네 갈 데 없었는데 직원분들이 친절해서 좋았음.
하나하나 읽어보는데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더라.
이게 음식 장사하는 사람의 행복이겠지?
강형우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살펴봤다.
우선 익숙한 닉네임들이 적지 않았다. 몇 동 동반장, 반장 아줌마, 왕언니도 있었고 중간에 동대표님도 보였다.
그 외에도 의외의 이름들이 있었는데, 근처 학원 강사에 교회 집사, KBS 방송국 직원, 그리고 수영세무서 부장도 보였다.
제일 웃긴 건, 회장님이었다. 밑에 댓글에서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확인해 보니 근처 초등학교 학생회장이란다.
<큰 사장 아저씨>
맛있는 음식 먹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지성분식집 김밥 먹고 나서요, 우리 엄마가 처음으로 미안해하더라고요.
지금까지 음식 같지도 않은 거 해줬다고.
이번에 우리 엄마 요리 학원 다니기로 했어요. 맨날 저 학원 보내는 것만 신경 썼는데, 저 낳고 나서 뭔가를 배우기로 한 게 처음이라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우리 아빠예요.
그 밑으로 정말 많은 애도(?)의 댓글들이 달렸다.
-애가 초등학교 학생회장인데, 그 나이까지 맛있는 걸 못 먹었다니.
-남편이 정말 부인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당장 우리 와이프도 데려가야겠다.
등등의 웃지 못할 글들이 잔뜩 달렸던 것이다.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괜히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소리만 한 것도 아니었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와요. 저보다 다른 테이블에 먼저 나가는 걸 보니까 입맛이 떨어짐.
-라면이 맛있기는 한데, 너무 자극적. 기름도 많음.
-한 번씩 김밥이 제대로 안 썰려서 나옴.
-덮밥이 싱거워요. 맵기가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강형우는 그런 댓글까지 일일이 메모했다.
분석해 보니 전체적으로 경험이 부족해서 나온 실수들이 많았다.
이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맵기 조절은 한 번 생각해 봐야겠네.”
그 외에 맛에 대한 평가들도 꼼꼼히 살폈는데, 크게 손댈 건 없어 보였다. 괜히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오히려 욕먹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또, 화장실이 더럽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이건 아파트 상가들이 공통으로 쓰는 거라, 어떻게 하기가 곤란했다.
하지만 동대표 사모님이 언제든 이야기하라 했으니 한 번 문의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렇게 꼼꼼하게 살펴가며 보는데, 쪽지가 여러 통 도착했다.
***
“그러니까 김밥 마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요?”
“예, 사장님. 제가 경력이 좀 되거든요.”
강형우는 잠시 고민했다.
카페 글을 보고 쪽지를 보냈다면서, 혹시 사람 안 구하느냐고 물었다.
일단 구하고 있다 했더니, 사정을 설명하더라.
분식집에서 10년을 일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결혼해서 애 낳으면서 그만뒀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란다.
그럼 이제 초등학생이란 말인데…….
강형우는 일단 면접을 보고 정하겠다고 했다. 일단 사람이 급한 것도 있었지만, 조건이 좀 애매했던 것이다.
이력서를 보니 이름은 최연경이었다.
나이 마흔둘이고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었으며 근처 빌라에서 살고 있단다.
외모도 딱히 거슬리는 건 없었다. 음식 장사 오래하신 분 느낌이 나는 통통한 체형이었고, 얼굴도 웃는 인상이 강했던 것이다.
걸리는 건 따로 있었다.
“그러니까 월수금 3일만 일하시겠다는 거죠?”
“예. 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요.”
최연경이 고개를 숙이는데 잠시 갈등이 됐다.
카페를 통해서 온 쪽지 상당수가 그거였다. 김밥 단체 주문을 받아주냐는 거였다.
게다가 이 동네 특성인지 모르겠는데 정말 김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갔다. 우리 경리님께서 계산했는데 하루 평균 오백 줄이나 팔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월수금이란 조건이 있었지만, 이런 인재(?)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강형우가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최연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은 그렇고요. 좀 괜찮아지면 더 나올 수 있어요.”
“그래요?”
“한 달? 아니면 두 달 뒤부터는 4일씩 5일씩 일할 수 있거든요.”
이 역시도 애매하긴 했다.
강형우는 사정을 묻기가 조금 난감해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언제부터 일할 수 있으세요?”
“그야 당장이요.”
“예?”
강형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최연경이 종이 가방을 열었다.
거기서 나온 건, 김밥천국 앞치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