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183화 과로라네
“새끼야! 때려치워라.”
카센터 일하다가 알게 된 나이 좀 있는 형이었다.
직업은 화물차 운전수, 일명 츄레라였다.
“너 인마. 내 막내 동생뻘이라서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너네 사장이 완전 개새끼지. 말이 좋아 숙식 제공이지 카센터 구석에 칸막이 쳐놓고 지내는 거 아냐.”
“그래도… 지낼 만합니다.”
“야, 너 문짝 뗄 때도 사장이 말 잘해줬으면 전과 안 달았어. 전화 받고 출장 간 건데 그 새끼가 쌩까는 바람에 너만 피 본 거라고.”
츄레라 형님은 한참 욕을 한 뒤, 의외의 제안을 했다.
“내가 차 하나 알아봐 줄 테니까. 운전 해볼 생각 없냐?”
일만 열심히 하면 한 달에 오십이 아니라 삼백도 더 벌 수 있다고 했다.
전과? 이쪽 동네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단다. 자신만 해도 전과가 넷이나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다나?
결국 차인철은 카센터를 그만뒀다.
한 달에 오십 가지고 생활하는 데 한계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사장이 더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였다.
“한 달 정도 형님 따라 다니다가 독립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거죠. 이 형님 전과 상당수가 과적 때문이라고.”
한 달 빠듯하게 일해서 사백을 벌면, 차주한테 백만 원이 간다.
여기에 차 기름값하고 관리에 백만 원 가까이가 들어가고, 생활비와 경비로 거의 백만 원이 나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 일하면 남는 건 백만 원 수준.
그런데 과적을 안 하면 돈이 안 벌린다고 했다. 일거리도 안 주고, 심한 경우 차주한테도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결국 손해 볼 수 없으니 먹고살려면 과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심각하게 생각 안 했습니다. 주변에도 전부 전과 몇 개씩 있어서 으래 그러려니 했는데, 나중에 보니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벌금 낼 때는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도 대부분 그런 반응이었고, 나중에 화물연대 파업해서 조건이 관철되면 그런 전과 기록은 삭제된다 했다.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작년에 총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근데 안 되더라고요. 거기에 벌금 맞고 생활비도 떨어졌고,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쉽게 말하면, 차주한테 쫓겨났다고 보면 된다. 츄레라 형님이 중간에서 말을 잘 해줬음에도 가차 없이 계약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역시나 과적 문제 때문이었다.
이미 차주가 여러 거래처에서 전화를 받았단다. 과적 거부하는 건방진 새끼 데리고 있으면, 일거리를 안 주겠다고 협박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과 하나가 더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제대로 터졌죠.”
가장 어이없고도 황당한 사건이 이거였다.
친한 형님이 부탁을 하더라.
여자 친구랑 강원도 놀러가기로 했는데, 하필 음주에 걸리는 바람에 면허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한 4박 5일 일정으로 갈 건데 운전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머리도 식힐 겸 같이 가잔다. 게다가 수고비로 50만 원이나 준다고 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승낙을 했는데, 일이 터져 버렸다.
그 여자 친구가 알고보니 유부녀였다. 남편 몰래 차를 끌고 나온 건데, 그걸 차인철이 운전한 것이다.
“그 남편이란 사람이 차량 절도로 신고한 겁니다.”
“헐.”
이쯤 되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어찌 꼬여도 이렇게 꼬이는지.
차인철은 중간에서 해명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국선 변호사한테 부탁도 했고, 차 주인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도 했다.
하지만, 마누라가 바람 피워서 이혼소송 중인 남자가 합의를 해주겠는가?
“그래도 이전처럼 벌금 내고 말 거다 싶었는데, 일이 그렇게 끝나지가 않더라고요. 비싼 외제차에 동종 전과가 있으니 경찰이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좀 억울한 면도 있기는 했는데…….”
실형 팔 개월이나 나왔다고 했다.
진짜 모르고 그랬다고 억울하다고 했는데, 판사가 그걸 고깝게 봤단다.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괘씸죄(?)가 더해졌다나?
그때 덕수 형이 말했다.
“다 돈이 문제지. 원래라면 변호사 사서 제대로 했으면 되는데…….”
강형우도 몇 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현직 경찰인 이병선 삼촌이 그러더라.
모르면 당하고, 돈 없으면 범죄자가 된다. 정말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맞다는 것이다.
차라리 빚을 내서라도 변호사를 고용하는 게 우선이라나?
물론 국선 변호사들도 열심히 하지만,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어쨌든 차 때문에 전과 4범이었다.
“다 제가 멍청했던 거죠. 하지만 남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결국은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지. 그냥… 운이 없었던 거야.”
“요즘 방송에서 그러더라고요. 모르는 것도 죄라고.”
차인철이 진지하게 말하니, 아니라고 하기에도 어려웠다.
그때 덕수 형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런데 형우야.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해요.”
몰랐으면 모를까, 사연을 다 듣고 나니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동정심이 생긴다고나 할까?
강형우는 머리를 긁적거린 뒤, 소주병을 들었다. 그리고 차인철의 잔에 따라주면서 말했다.
“모레부터 출근한다 생각하고 나와.”
“형님, 정말입니까?”
“싫으면 말고.”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소주 한 잔을 비웠다.
그런 뒤 조건을 말했다.
“대신 회사에서 형님 소리 하면 죽는다.”
***
“직원도 구했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 여전히 일이 많네.”
일단 배달은 차인철이 하기로 했다. 또, 형수 친구 삼인방은 김민석이 알아서 교육시키기로 했으니 당분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여럿이었다.
일단 본점에 문제가 있었다.
철거 때문에 단골손님들이 많이 바뀌었고, 다른 메뉴 요청이 무척이나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순이 이모랑 이야기를 했는데, 생각을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일단은 수용하고 몇 가지를 진행시키기로 했다.
또, 3호점도 공사는 벌써 끝이 난 상태였지만 구인광고를 냈음에도 연락이 전혀 오질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설날 때문이었다.
올해는 1월 말일이었다. 불과 이 주 뒤에 설이라 알바들이 전혀 구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엉뚱한 데서 일이 터져 버렸다.
기분 좋은 월요일 아침.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나와서 회사로 출근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신원이 형이 전화를 했다.
“예? 형수가요?”
-어, 와이프가 갑자기 쓰러졌어. 어제저녁부터 몸이 안 좋다고 했는데…….
가게 오픈 준비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단다. 일단 119 불러놓고 대기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 저도 바로 병원으로 갈게요.”
-아니, 병원은 내가 데려갈 거니까 미안한데 가게 부탁 좀 하자.
신원이 형이 그렇게 말했지만, 일단 병원부터 가볼 생각이었다.
해서 공지혜한테 연락해 2호점으로 바로 가라고 했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는데, 신원이 형이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형, 대체 무슨 일이예요? 형수는 괜찮아요?”
“어, 지금은 괜찮아졌어.”
일단 응급실에서 링거 맞고 누워 있다고 했다.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종의 탈진 상태라나?
“그래도 다행이네요.”
“다행은 무슨…….”
신원이 형이 한숨을 내쉬는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왜요?”
“아니, 아니다. 잘못은 내가 했지. 아, 진짜 병신같이… 내가 점장인데…….”
“무슨 일… 있어요?”
신원이 형은 목이 메는지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다 또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게… 유산이래.”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의사 말로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네.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피곤하다고 해서, 주말에는 쉬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했다.
분명 식당 일은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다.
아무리 은주 형수가 경험이 많고 실력이 좋아도 피로가 쌓이는 건 분명했으니까.
그걸 알기에 충분히 생각해서 직원까지 늘린 상태였다.
일단 최민지가 홀을 담당하고 은선경이 보조였다.
주방에는 은주 형수와 영제, 히토미까지 있었다.
여기에 신원이 형이 전체적으로 관리했고, 특히 금요일, 토요일은 브레이크 타임을 없애는 대신 알바 두 명을 더 고용했다.
거기에 급하면 공지혜가 나서서 일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인력 문제는 없게끔 해놨기에,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로로 쓰러졌다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형, 그렇게 상황이 안 좋았어요? 그럼 저한테 이야기를 하시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일단 나도 정확한 원인을 몰라. 그냥 확실한 게 아니라서 깨어나면 물어봐야지.”
표정을 보니 확실히 뭐가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을 못 하는 것 같았다.
“형우야, 며칠만 네가 가게 좀 봐줘라. 아무래도 내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당연하죠. 그건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안심시킨 다음, 강형우는 폰을 꺼냈다.
다행히 공지혜가 가게에는 별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부를 묻는데, 자세히 이야기하기가 어려워 일단은 과로라고만 했다.
“형, 형은 가게 신경 쓰지 말고 형수 옆에만 있으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언니, 괜찮아요?”
“사장님, 대체 무슨…….”
다들 은주 형수가 걱정이 됐는지 다급히 물었다.
강형우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냥 과로래. 지금 링거 맞고 누워 있는데,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네.”
차마 유산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부부 사이의 일을 함부로 말하는 것도 큰 잘못이었고.
“자자, 다들 장사 준비합니다. 나중에 오후 되면 다시 병원 갔다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강형우는 그렇게 분위기를 환기시킨 뒤, 영업 준비에 들어갔다.
다행히 어수선한 느낌은 금방 가라앉았다. 손님들이 밀려들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은주 형수 대신 일단 주방 일을 맡기로 했다.
“그런데, 영제야.”
“예. 사장님.”
“돈가스, 히토미가 하는 거야?”
“아… 그게요. 얘가 일 배우고 싶다고 해서요. 하나씩 가르치고 있거든요.”
이영제는 그렇게 말한 뒤, 슬쩍 뒤로 빠졌다. 처음 가게 왔을 때처럼 오히려 보조 역할에 집중했던 것이다.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창 바쁜 시간이었다. 의심은 나중에 풀어도 충분할 터.
“일단 돈가스는 내가 할 테니까, 영제는 덮밥하고 라면을 맡고, 히토미는 그릇 정리부터 해.”
신원이 형이 해주던 자잘한 일을 히토미한테 넘겼다. 그리고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전반적인 흐름을 확인했다.
손님들은 많았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다들 숙련되어 있었고, 공지혜가 김밥을 맡아줌으로 인해 여유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 같은 게 느껴졌다.
그 중심에 이영제가 있었다.
***
“영제야.”
“예. 사장님.”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강형우가 묻는데 이영제는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반응이 어이가 없어서 손을 드는데, 갑자기 이영제가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고 한숨을 내쉬더니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후 귀를 의심해야 했다.
이영제가 말했다.
“사장님, 저 그만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