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79화 (179/251)

# 179

179화 이게 뭐라고

“나만 좋다고 되냐? 서로 좋아야 되는 거지.”

“원래 연애는 길게 하는 게 아니다. 좋을 때 후딱 해치워야 해.”

“때라는 게 있어. 놓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자연스럽게 되는 건 없다? 죽도록 노력해도 될까 말까거든.”

등등의 무수히 많은 애정 어린 조언들이 있었다.

여기에 홍태구의 협박(?)과 혁기 형의 절규도 포함됐다. 게임 계정을 포기하고, 인생을 포기할 거라면 결혼을 선택하란다.

마지막에 신원의 형이 이렇게 말했다.

“왜 연애 소설 같은 데 보면 항상 이런 내용이 있거든. 주인공을 좋아하는 여자와,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 이 사이의 갈등 같은 게 많아.”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신원이 형은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읽으면서 주인공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간다. 그게 참 낭만적으로 보였단 말이지.”

“근데요?”

“나중에 보니까, 그게 제일 병신 짓이더라고. 끝내 사랑을 이루기는 했는데, 전 재산 다 털리고 고액 보험 가입하고 자살당하고 끝나더라.”

“헐. 그게 무슨 연애 소설…….”

“마지막에는 주인공 좋아했던 여자가 대신 복수해 주지. 그 악녀를 꼬여서 여행 가자고 한 다음에, 독약 먹여서 죽여 버려. 아주 고통스럽게. 그런데, 그렇게 자극적으로 끝나는 게 걸 크러시라나? 뭐 그렇다네. 그게 그 장르의 매력이래.”

진지하게 말을 하니 안 믿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었다.

“에이~ 말도 안 되죠.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병신 같이 끝나는데… 저라면 그 작가 책 다시는 안 볼 것 같은데요?”

“그 아줌마가 쓴 드라마가 시청률 40% 찍었대.”

이쯤 되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결론은 이거야. 나 좋다는 사람이 최고라는 거지. 다소 계산적일 수도 있지만, 결혼은 현실이거든. 나 봐라. 정말 편하게 산다.”

확실히 은주 형수가 잘하기는 잘한다.

음식 솜씨야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인정했는데, 삼시 세 끼를 꼬박 직접 해서 먹이고 있었다. 거기에 영양제에 보약까지 직접 달여 줄 정도로 정성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신원이 형이 부러울 정도였다. 황제처럼 대접받고 있다고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간단히 말할게. 시간 끌지 말고 잡아라.”

어째 느낌이, 공지혜한테 돈 좀 받아먹은 것 같았다.

어쨌든 여러 경험으로 봤을 때 지금 시기가 적당하다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내기로 결심을 했는데, 막상 하려니 걱정이 앞섰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

MT는 나름 즐거웠다.

일종의 유료 휴가라고나 할까?

다들 간만에 쉬는 거라 무리한 스케줄을 잡지 않아서,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정은혜는 침대에 누워서 폰 게임을 했고, 홍성구는 임정은과 은밀한 사인을 교환한 뒤 밖으로 나갔다.

박호성은 TV를, 그 옆에선 히토미가 널브러지듯 자고 있었다.

은주 형수는 신원이 형과 백사장으로 나갔고 저녁시간 전에 돌아온다고 했다.

아쉽게도 최민지는 불참이었다. 애들 때문에 어렵다고, 같이 와도 된다고 했는데 사양했던 것이다.

어쨌든 다들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간만에 느끼는 여유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낸 뒤, 강형우는 저녁 먹자고 다들 불렀다.

장소는 송정 안쪽의 한 고깃집이었다.

여긴 부녀회 회장님 소개로 알게 된 집인데 생각보다 가격도 저렴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상차림에 특별히 신경 써 준 느낌이 있었다. 소갈비구이가 진짜 맛나게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다들 음식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끄어~ 잘 먹었다.”

이영제는 제일 비싼 부위만 골라서 후다닥 처먹더니 이내 배가 부르다고 했다. 아직 다들 식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담배 피운다고 나가 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이상해지긴 했다.

3호점에 데려가겠다고 한 뒤, 문제가 생겼다. 은주 형수가 임신을 무기로 못 보내겠다고 협박(?)했던 것이다.

애초에 자기가 가게를 비우게 될 것 같아서 자신을 대신해 주방을 맡기려고 철저하게 가르친 거란다. 그런 애를 빼 가면 어떻게 하냐고 했던 거다.

결국 강형우는 이영제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다.

덕분에 애가 몸값이 많이 올랐다. 그러면서 황당하게도 조금 거만해졌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놓은 상태였다.

은주 형수가 조금만 두고 보잔다. 딱 선 넘는 순간, 칼같이 처리할 거라고 해주었던 것이다.

강형우가 별말을 꺼내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어쨌든, 저건 저거고.

“자! 천천히 식사 하고, 숙소까지는 자유 시간입니다. 한 10시 돼서 간단하게 마실 거니까 그때까지는 편하게 쉬세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계산을 마무리 지었다.

와~ 가격이 저렴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심각한 건 다들 무지하게 많이 먹는다는 거!

아니, 무슨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는데 팔십만 원이 넘게 나온단 말인가.

한우도 아닌데.

그럼에도 강형우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간만에 쉬는 건데 기분 좋게 보내자고 마음먹은 거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지혜야, 좀 걸을래?”

말 떨어지지가 무섭게 공지혜가 팔짱을 꼈다.

이건 좋다는 신호였다.

두 사람은 숙소까지 천천히 백사장을 걸었다.

계절은 겨울이요, 시간은 저녁 8시였다.

백사장 위쪽의 가로등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바다는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홀로 떠 있는 달까지 분위기가 딱이었던 것이다.

“근데, 여기 진짜 많이 좋아졌네요. 옛날에는 군인들만 오던 데였는데.”

“어? 지혜도 그거 알아?”

“알죠. 해운대나 광안리는 사람 너무 많아서 부산 사람들은 일부러 송정 와서 놀잖아요.”

최근에는 타 지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긴 했다.

하지만 10년여 전까지는 근처 사람들만 송정을 찾았다. 워낙 외각에 있어 교통이 불편했고, 시설이 많이 낙후되었던 탓이었다.

지금도 80년대 지어진 민박집들이 상당수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이달 초에 송정역이 폐쇄되면서 기존 철길이 관광지로 개방이 되었다. 거기에 맞춰 여러 시설들이 들어서더니 카페와 고급 식당들이 줄지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짜 예전에는 호프집 한 번 보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신도시 못지않게 공사가 한창이었다.

“와, 오빠 저기.”

“어?”

공지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외관이 번쩍번쩍한 게 무슨 호텔 같았다.

“저기가 풀 빌라라고 요즘 유행한데요. 욕조에 물 받아놓고 바다 감상할 수 있다네요.”

설명을 들어보니, 오호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전면 유리인데, 그 베란다 안쪽에 커다란 욕조가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와인 마시면서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고, 일출을 보기도 한단다.

그런데, 호흡 수련을 열심히 해서일까?

확실히 시력이 좋아진 것 같았다. 분명 안이 안 보이게 해놨을 텐데, 전면 유리 너머로 남녀가 헐떡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할 거면 침대 가서 하지 저게 뭔 짓인지.

그때 공지혜가 불쑥 물었다.

“오빠~ 우리도 다음에 저기 예약해요.”

“어?”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런데 오해한 거였다.

“그러니까 다 같이 모여서 새해 일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큰 방도 있고, 8인실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공지혜가 말하는 건 지금 묵고 있는 숙소였다. 바비큐장도 있고 한 층을 전세 내서 쓰고 있는 것도 좋았지만, 약간 오래된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내년에는 꼭 저런 데를 잡아서…….”

강형우는 슬며시 팔짱을 풀고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지혜야…….”

진짜 무수히 많은 형님들에게 조언을 들은 결과, 최대한 자연스럽게 떠보는 게 중요하단다.

특히 덕수 형이 그랬다. 무턱대고 결혼하자 했다가 분위기도 모른다면서 싸대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근데, 갑자기 목이 턱 막혔다. 진짜 뭐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던 거다.

그때 공지혜가 고개를 돌렸다.

“왜요?”

“아니, 그게…….”

“진짜 무슨 일 있어요? 오늘 점심때부터 이상하던데…….”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는 건지.

강형우는 억지로 호흡을 추스른 뒤 후다닥 생각을 정리했다.

모범 답안 1이, 우리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래?

그다음이, 우리 어디서 살면 좋을까?

마지막으로 준비한 건, 내 아를 낳아도.

아니, 이건 아니었다. 덕수 형이 쌍팔년도 개그를 쳤는데 인상이 남아서 그 말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던 것이다.

어쨌든 그냥 말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어려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고 오는 건데.

“혹시 사고 쳤어요?”

“어? 아니?”

“그런데 왜 그래요?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진짜 그런 거예요?”

“그게… 아오, 왜 이러지?”

답답해서 한숨을 내쉬는데, 공지혜가 손을 들었다.

열이 나는지 이마를 만져보더라.

“오빠, 진짜 아픈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열 많이 나는데요?”

“아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갑자기 공지혜가 말이 없어졌다.

강형우는 다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더니 통장을 꺼내 주고 지갑도 꺼내 주고, 마지막으로 휴대폰까지 건넸다.

“나 다 줬다.”

“예?”

“그러니까 나랑 살자.”

순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어색함이 확 밀려온 것이다.

애초에 예상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달아올랐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던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본능처럼 움직이고 말았다.

***

“오빠?”

“어?”

“바보죠?”

“아니. 그게… 에취.”

“아무리 부산 날씨가 따뜻하다고 해도, 한겨울에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공지혜가 잔소리하는데,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진짜 왜 그랬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막 부끄럽고, 민망하더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달이 보였고, 바다가 보였다.

그래서 그냥 뛰어들었다.

진짜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행동.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다로 들어가다니.

그런데, 그 어이없고도 황당한 행동을 직접 해버렸다. 머리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다들 즐겁게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데 강형우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일박 이 일이라 갈아입을 옷도 추리닝밖에 없어서 그것만 입은 채로 말이다.

수련을 꾸준히 한 이후로, 감기 정도는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겨울 바다는 생각보다 많이 추웠다.

또, 공지혜가 잡으려고 쫓아오다 보니 도망까지 쳐버린 것이다.

그덕에 거의 백여 미터는 물속에서 달린 것 같았다.

진짜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도 모르겠더라고. 대체 왜 그랬는지…….”

생각해 봐도 이상한 거 투성이었다.

갑자기 공지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오빠.”

“어.”

“진짜 그 말 하려고 그렇게 며칠을 끙끙댄 거예요?”

“어?”

“그러니까 같이… 그런 거냐고요?”

공지혜가 빤히 쳐다보면서 묻는데 또 말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 강형우는 열심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공지혜가 두 손을 뻗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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